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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나무들
Collect moments not things. 이 문장을 만난 건 어느 새벽녘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고, 스마트폰으로 웹상에 떠돌아다니는 사진들 사이를 무료히 떠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짙푸른 숲의 사진 위로 갑자기 나타난 저 문장을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물건이 아닌 순간을 수집하길.’ 그건 언뜻 평범한 말 같으면서도, 동시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 같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면 자주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 내가 순간을 수집해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실은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었다. 내 방식대로 순간을 수집하고 싶어진 건 그래서였다.
기억하고 싶어진 것을 잘 기억하는 일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마음을 먹은 건 아니고, 그저 한 달에 하나씩 나만의 수집 서랍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가지 사진을 찍거나 지난 사진들에서 비슷한 순간을 골라내 하나의 서랍에 담는다. 모든 사진은 사실 순간에 대한 수집이므로, 그건 무엇이 되어도 좋았다. 만났다 헤어지는 친구들의 뒷모습, 곧잘 걸음을 멈추고 찍게 되는 빈집의 풍경, 더러 맑은 하늘에서 만날 수 있는 낮달, 담벼락의 지워져 가는 낙서 같은 것들. 잘 찍은 사진일 필요도, 대단히 의미 있는 순간일 필요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어진 것을, 잘 기억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리하여 이달에 담은 것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봄의 나무들이다. 정확히는 그것을 보고 서 있던 사소한 순간들이다. 왜냐고 물으면 그저 자주 걸음이 멈추어서, 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사람들이 하염없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꽃나무 아래가 아니어도 그랬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나무에든 봄은 조용히, 혹은 격렬히 다녀가고 있었다. 이제 막 봄기운을 내는 나무들의 연둣빛을 보고 있으면 불쑥불쑥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싶기도 했다. 처음 겪는 봄도 아닌데 그랬다.
우연히 시작한 수집이 즐거워진 이유는 따로 있다. 시작이야 먼저 눈길을 사로잡힌 탓이었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하니 그 후로는 어딜 가도 봄의 나무만 보였다. 친구와 나선 가벼운 산책에도, 우유를 사러 슈퍼에 가는 길에도, 버스 창밖으로 먼 풍경을 내다볼 때도. 그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좀 신기한 경험이다. 아무렇게나 오가던 일상에 남들은 모르는 주머니가 생긴 기분이다. 어떤 것은 주워담고 어떤 것은 그냥 둔다. 그런 식으로 일상이 쌓이는 게 좋았다. 나만 아는 주머니를 가지고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날엔 우리, 어디로든 가자
그래도 가장 환했던 날의 풍경이라면 이날이다. 지난해 남양주 어디쯤을 걷다가 작은 슈퍼 앞에 한강 쪽을 향해 놓인 평상을 발견한 친구와 나는 해가 다 가도록 종종 그 얘기를 했다. ‘우리 거기 가야 하는데.’, ‘거기 언제 갈까?’ 그런 식으로. 돌아보면 같이 기억하는, 언젠가 같이 가고 싶은 장소를 두고 내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만 해도 늦겨울이라 추워서 밖에 앉을 생각을 못 했는데, 봄이 오니 자연스레 그곳이 다시 떠올랐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주말에, 우리는 중앙선을 타고 남양주에 갔다. 최상의 맥주 맛을 위해(?) 일단 근처의 운길산을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갈증으로 목이 바짝바짝 마를 때쯤 거기 앉아 맥주를 마셔야지, 그런 요량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왔기 때문에 산 입구에서 잠시 판판한 바윗돌 위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먼 산을 향해 앉아 있었는데, 끝난 줄로만 알았던 봄꽃들과 이제 막 잎을 돋우는 나무들의 연둣빛이 아롱져서 온 산이 환했다.
우린 바보들처럼 김밥을 입에 넣다 말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문득문득 놀라 “와.”, “와.”, 하는 감탄사만 내놓았다. 나무들을 거의 하나하나 세는 기분으로 오래 앉아 있었는데, 그럴 만큼 그곳이 좋았다. 이걸로 된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갈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날 땐 그런 농담이 나올 만큼.
그랬으니 그 하루 동안 우리가 얼마나 더 “와.”, “와.” 하고 다녔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오후의 햇볕을 받아 투명해진 연둣빛 이파리들은 걸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다. 봄의 숲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공기가 있었다. 겨울의 단단한 침묵에나 여름의 무성함 속에는 살지 않는 무엇. 아, 이맘때가 너무 좋아. 어느 나무 아래선가 나는 그런 말을 했는데,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4월이 더 좋아졌다. 어떤 것들은 그렇게 말로 표현한 뒤에야 비로소 분명해지기도 한다.
낑깡 나무와 할아버지
오랜만에 다녀간 제주에도 봄은 한창이었다. 제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작은 마을을 찾아 걷는 것이다. 이미 다녀왔던 마을, 혹은 지도를 보며 짚어낸 낯선 마을, 그런 곳들을 찾아가 해가 기울도록 걷다가 돌아오는 일. 그러는 동안 심드렁하게 말을 거는 어르신들이나 어디서나 자분자분 다가와 고개를 부비는 다정한 백구들이 좋았다.
제주 할아방들은 곧잘 어디서 왔느냐 묻고, 서울에서 왔다 하면 ‘우리 딸도 거기 사는데.’ 하신다. 아마 내가 어디서 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름 모를 먼 나라에서 왔다 해도, 거기가 어디냐 묻는 대신 “근데 우리 딸은 서울 사는데….” 하며 하고싶은 얘기를 하셨을 것이다. 낑깡 할아버지도 그랬다. 돌담길을 걷다가 낑깡 나무를 발견하고 ‘이게 원래 봄에 나는 건가’ 생각하며 카메라를 드는데, 돌담 아래서 불쑥 솟아난 할아버지가 그것 좀 먹고 가라 하신다. 사투리를 바로 알아듣지 못해 망설이고 서 있자, 낑깡 몇 개를 후두둑 훑어서 따시더니 담 너머로 내민다.
“그럼, 감사합니다.” 껍질째 입 안에 넣으며 인사를 우물거리는 내게,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느냐 묻고 서울에서 왔다 하니 “우리 딸도 거기 사는데.” 하신다. 그리고 손자들이 이 낑깡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으며 대문으로 들어서자, 온갖 화분과 나무들로 마당이 꽉 차 있다. “와, 할아버지 엄청난 정원이네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놓자 할아버지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간다. 이건 무슨 나무고, 이건 무슨 나무고, 집에 들어가면 거실에는 분재가 있고. 그 덕분에 나는 온갖 나무 이름과 할아버지 손자가 도내 태권도 대회에서 무슨 상을 받았는지까지 알게 됐다.
그 마당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나무는 따로 있다. 제주 유채밭에 가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곤 하는, 나무덤불을 꼬아 만든 하트 모양 액자틀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마당 한편의 나무에 꼭 그 흉내를 내놓으셨다. 손자들이 오면 매번 저기서 사진을 찍는데, 키가 쑥쑥 자라 이제는 무릎을 굽혀야 한다고도 했다. 손자들이 다녀간 지가 오래되었는지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삐죽삐죽했다. 그래도 그 나무는 마을에서 본 나무들 중 가장 사랑스러운 나무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말 대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식으로 순간을 수집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면, 실은 그럴 수 없는 순간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은 늘 기억하고 싶은 순간보다 적다. 이 봄에 내가 가장 많이 앉아 있던 곳은 밤의 운동장에 있는 등나무 아래였다. 그 아래서는 한 번도 사진 찍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늘 그냥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로 이사 온 동네엔 골목 끝에 고등학교가 하나 있어서, 밤이면 교문 옆의 쪽문으로 들어가 텅 빈 학교 운동장을 걸을 수 있다. 슬리퍼 차림으로 나온 청년, 뒤로 걷는 아줌마, 손잡고 나온 중년 부부. 드문드문 운동장을 돌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걷다가 종종 수돗가 옆 등나무 아래에 앉곤 했다.
거기 앉아 불 밝힌 도심의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큰길에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나 술에 취한 사람들의 승강이 같은 도심의 소음에서 떨어져, 이곳만 동그랗게 고요하다. 그곳에 앉아 몇 곡의 노래를 듣거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더러 발치에 툭툭, 꽃잎이 떨어지기도 했다. 밤에만 봐서 꽃이 핀 줄도 몰랐는데 그제야 이 나무에 다녀가고 있는 봄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등나무라니. 이 아래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고백과 얼마나 많은 다툼과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고여 있을까. 어떤 장소에서든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해진다.
오래전 함께 걸었던 봄길이 떠오른 것은 그래서였다. 그때 우리는 낯선 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처음 와 보는 길이었으므로, 서로에게 길을 알려줄 수도 없었다. 이 길이 맞다거나 나를 믿고 와보라거나 그런 말은 더더욱. 다만 함께 걷는 것밖에는. 그런데 그렇게 걷다 보니 문득 ‘아, 우리가 길을 찾으려던 게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걷고 싶어서였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둠이 조금 밝아졌다. 고개를 드니 환한 꽃들이 등불처럼 머리 위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때 꽃은 피고 있었던가, 아니면 지고 있었던가.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은 중간중간 끊겨 있는데, 시간이 지나 그 길이 아주 희미해진 뒤에도 나는 종종 생각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언제나,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람보다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나 역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이 봄의 산책이 다 그런 마음이었다. 봄은 짧으니까. 어떤 순간도 결국엔 과거가 되니까. 우리,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
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