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ckity-Clank

세상에 없는 마을
닮고 싶은 소리

엄마가 걸을 땐
잘그락잘그락.

굴러가는 소리

“어? 엄마 소리 나.”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집도 아니고, 동네도 아니고,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여행을 떠났는데 여기서 엄마 소리가 들릴 리가. 내가 들은 건 엄마 ‘목소리’ 같은 게 아니었다. 무슨 소리더라, 산책하던 걸음을 멈추고 곰곰 생각했다. 곱게 깔린 흙과 자그마한 돌멩이가 뒹구는 잘 가꿔진 산책길에 서서 초점 없는 눈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그리하면 지나간 소리가 돌아올 것처럼.

나무가 노랗고 빨갛게, 새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었다. 출근하지 않은 평일 아침 공기는 너무나 산뜻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던 중에 들은 엄마 소리…. 소리는 재빨리 스쳐 지나갔고, 나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으며 정체를 알고 싶어 장면을 뒤로, 다시 뒤로 돌렸다. 그러다 무심결에 다시 떠오른 소리. 그건 도르륵, 잘그락, 두 개의 울퉁불퉁한 면을 마찰시키는 소리였다. 둔탁하지도, 경쾌하지도 않은, 불쾌하거나 싫지 않은, 그저 반갑고 다정하기만 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어떨 때 나는지 잘 알고 있다. 엄마가 걸을 때, 엄마랑 시장에 갈 때, 엄마랑 집 밖으로 나갈 때, 엄마랑 있을 때….

엄마는 꼭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엄마 손은 보통 사람 손보다 훨씬 작다. 내 손이 그 손보다 작을 때부터 그보다 커진 지금까지 엄마는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다. 주머니 안엔 언제나 두 알의 호두가 있고, 엄마는 자그마한 손으로 그 두 알을 한꺼번에 쥐고 굴린다. 쉬지도 않고 걷는 내내 굴린다. 한 손으로 쥐고 어쩜 그리 매끄럽게 굴리는지, 엄마를 따라 흉내 내보려고 해도 내 손에선 자꾸 미끄러지고 튕겨 나가 호두를 놓치고 만다. 데구루루 구르는 호두를 쫓는 나를 보며 “그것도 못 해?” 하고 묻는 엄마는 손쉽게 호두를 굴리고 있다. 호두를 쥘 때마다 손가락이 길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손바닥이 조금 커지는 게 아닐 정도로 신통한 일이다.

호수길을 산책하며 들은 소리는 바로 그 호두 소리였다. 주머니에 넣고 굴리는, 서로 부딪치며 돌그락, 잘그락, 드르락 하는 그 소리. 나에겐 오롯이 엄마의 소리인 그것이 낯모를 이의 주머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보고 싶어 침을 꿀꺽 삼키며 “엄마 보고 싶다.” 그랬다. 애처럼 마음이 울렁거렸다. 모처럼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여행 와서는 호두를 쥐고 걷는 엄마 걸음걸이를 자꾸만 생각했다.

고소한 기름칠

학교에서 돌아와 신발장 앞에 섰을 때 고소한 냄새가 나는 날이 있었다. 호두들이 바닥에 알알이 널려 있는 날이다. 엄마는 그런 날이면 거실 바닥에 신문을 넓게 깔았다. 그러고는 사 온 호두들을 껍데기째 늘어놓는 것이다. 그 위를 뒹구는 호두들은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엄마는 그중에서도 귀여운 모양의 호두들을 용케 찾아냈다. 손에 쥐어보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크기의 호두를 몇 개 고르고, 유독 못생기거나 너무 커다란 호두알은 가차 없이 장도리로 내리쳤다. 톡톡 건드리면 쪼개지는 호둣속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알맹이가 들어 있었고, 엄마는 그것들을 곱게 모아 한쪽에 쌓아두었다. 야금야금 먹으면서 귀여운 호두를 고르고, 고소한 냄새에 취해있는 나에게 “호두 먹어.” 하는 게 그런 날 엄마의 일이었다. 호두 껍데기에 비해 호두 알맹이는 너무 작아서, 아무리 장도리를 내리쳐도 모이는 양이 많지 않았다. 야금, 야금, 얼마나 먹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집어먹으면 어느새 수많은 알맹이가 배 속에 쌓여 가끔 배앓이를 했다. 호두를 먹고, 배앓이를 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엄마는 모양이 예쁜, 엄마 손에 꼭 맞는 호두알을 찾아 짝을 지어 늘어놓았다. 서로 크기가 닮고, 비볐을 때 어느 정도 촉감이 있는 그런 녀석들로 짝을 짓는데, 아무리 예뻐도 크기가 맞는 짝이 없거나 다른 쌍과 어울리지 않으면 장도리에 깨지는 신세가 됐다. 엄마는 짝이 잘 모이면 뿌듯해했다. “이번엔 결과가 좋네.” 그러곤 붓을 들어 기름을 칠했다. 나중에 무슨 기름을 칠하는 거냐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 대답이 참 좋았다. “아무 기름.” 기름기가 많은 호두 알갱이를 꺼내 껍질에 문대며 바르기도 하고, 식용유나 들기름 같은 걸 바른다고도 했다. 엄마의 미술 도구 통에서 벗어난, 못 쓰게 된 붓들이 그 역할을 했다. 엄마가 호두의 짝을 찾아 기름을 바른 날이면 며칠 동안 집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엄마가 호두의 짝을 새롭게 찾는 날은 주머니에 넣어둔 호두들 표면이 만질만질해졌을 때였다. 울퉁불퉁한 호두가 마찰되면서 닳고 닳아 반지르르하게 변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바지런히 굴린 호두알들은 10여 년 쓴 가죽 지갑처럼, 매일 사용한 일기장처럼 곱게 낡아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호두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열심히 굴린 호두알들이 좋았다. 너무 매끄러워 힘차게 비벼도 더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호두알들. 인제서 깨 먹으려 하면 알맹이가 썩어 있을 게 분명한 호두알들. 엄마는 그것들을 가만히 늘어놓고 바라보았다. 엄마는 무얼 본 걸까. 호두와 함께한 시간일까, 엄마가 걸어 다닌 길일까, 호두답지 않은 매끄러움일까,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걸까. 나도 낡은 호두를 보는 게 좋았다. 엄마 손에 닳고 닳은 호두알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잘 모르는 엄마의 시간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우리집도 좋았다. 엄마가 장도리로 깨주는 못생긴 호두나 기름기 때문에 배앓이를 하는 잠깐의 시간도 좋았다. 새롭게 지어진 짝들이 다시 엄마 곁에서 소리를 내겠구나, 좀더 강하고 센소리를 들려주겠구나, 생각하면 엄마 곁에 서서 걷고 싶었다. 그래서 곧잘 슈퍼에 가는 엄마 옆에, 시장가는 엄마 옆에, 산책하러 가는 엄마 옆에 붙어서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어설픈 닮은꼴

엄마랑 나는 체구도 취향도 비슷해 옷을 같이 입는다. 가끔 엄마 옷을 꺼내 입으면 어김없이 호두알이 만져진다. 내 옷장에서 꺼내 입은 옷에서도 호두알이 만져질 때가 있다. 그럼 그땐 ‘엄마가 내 옷을 입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랑 나는 닮은 점이 많다. 어릴 땐 키도 크고, 발도 길고, 팔다리도 길어서 아빠 닮았단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장이 뚝 멈추고 나서부터는 엄마 닮았단 이야기만 듣는다. 체구도, 신체 구조도 그렇지만 생김새나 분위기 같은 게 닮아 가끔은 엄마가 사진을 들이밀며 “이거 나니, 너니?” 하고 묻기도 한다. 어떤 점에선 성격도 비슷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이렇게나 함께 오래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싶지만 그래도 그런 점을 발견할 때면 신기하고 기쁘다. 하루는 엄마가 수납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뭘 그리 열심히 보느냐 물으니, 화분에서 기어 나온 개미를 보고 있단다. 집에 개미가 생기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단 이야기를 들어 죽여야 하지 않겠냐 물으니 이리 가까이 와서 보란다. 개미는 등에 무언가를 인 채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아침에 내가 먹다 흘린 식빵 조각이었다. 개미 몸집에 비해 몹시도 큰 그것을 등허리에 용케 짊어지고 기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얘를 어떻게 죽여.” 엄마 한마디가 내 뒤통수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그 말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아 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뒤뚱뒤뚱 기어가는 개미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어디로 가는지, 무얼이고 가는지 살피는 사람, 그걸 차마 죽일 수 없겠다 생각하는 사람.

그간 나는 아빠를 반, 엄마를 반 닮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두 사람이 사랑해 만든 생명체이니 두 사람을 반씩 닮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린 어느 날, ‘나를 닮은 사람’이란 꼬리표를 아주 조금만 다듬어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라 수정하고 싶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빠를, 그리고 엄마를 닮고 싶었다. 예쁜 호두알을 한 손에 쥐고 굴리는 그 요령도, 나보다 훨씬 단단하고 아름답게 바느질하는 기술도, “엄마, 그거 어딨어?” 했을 때 재빨리 찾아내는 능력도, “엄마, 이거 안 돼!”란 말에 뭐든 되게 만드는 마술도 전부 다 닮고 싶었다. 오늘은 제법 쌀쌀한 날이다. 쉽게 추워지는 이 계절에 모처럼 찾아 입고 나온 겉옷 주머니에서 호두 두 알이 만져진다. 아마 지나온 겨울에 엄마가 입은 흔적일 테다. 여전히 나는 한 손으로 호두를 굴리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씩 굴리면서 걸어보았다. 엄마처럼 매끄러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드륵 드륵 자꾸만 끊기고 놓치고 말지만 그래도 어딘가 닮아가는 것 같아 좋았다. 한 손 바삐 외출한 동안 엄마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혹시 주머니에 호두 들었니? 한 쌍이 안 보이네.” 나에게서도 오늘은 어설픈 엄마 소리가 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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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