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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산책
주로 흙이 묻은 채로 가판대에 올려져 있는 모습 때문인지, 우엉은 조금 말랐지만 튼튼한 시골청년을 떠올리게 한다. 183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있는, 시종일관 무표정인지라 다가가기가 어려운 사람. 그런데 막상 말을 걸어보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왜 조금 더 빨리 말을 걸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까지 하게 만든다.
나무뿌리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유럽 사람들이 멀리했던 우엉이 이제는 풍미를 인정받아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식재료뿐 아니라 한방재료로도 사용된다. 몸 안의 노폐물을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해주는 우엉. ‘버리고 비우는’ 연습이 필요한 우리에게 우엉은 어떤 도움을 줄까. 무심하고 딱딱해 보이는 재료에 조심스럽게 한 발 다가가보자.
RECIPE 01
우엉을 말리고 볶아
차로 우려내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 길을 헤매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도 얻는 교훈이 있다. 삶이 나아가는 방향에 내 의지가 반영된다는 점. 그 방향의 끝이 어떤 결말일지 모르지만,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간다는 건 좋은 의미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이 힘을 잃어갈 때 바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먹먹함은 칠흑 같은 어둠과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들의 아픔을 대신해줄 수도 그들을 치료해줄 수도 없다. 그때부터 작은 건강식들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속이 안 좋을땐 양배추가 좋다든지, 감기에는 양파가 좋다든지. 우엉은 그중에 ‘버리는 데 도움을 주는’ 재료이다. 몸 안의 나쁜 요소를 제거하는 한약재로 숙변제거, 이뇨, 소염, 해독 등에 탁월하다. 또한 우엉 자체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화가난 마음을 잠재우고 인내를 길러줘 승려들이 즐겨 먹기도 한다.
재 료
우엉 적당량, 채반, 햇빛, 물
TIP 우엉은 자른 단면에 구멍, 얼룩이 없는 것이 좋으며 흙이 묻은 상태로 보관하면 좋다. 마르기 쉬우므로 흙이 묻은 상태라 할지라도 신문지에 싸놓거나, 씻은 경우에는 키친타올에 감싸 보존봉투에 넣어 냉장보관한다.
만드는 법
우엉을 얇게 썰어 신문지나 채반 위에 올린 뒤 햇빛에 2~3일가량 바싹 말린다. 말린 우엉을 프라이팬에서 타지 않을 정도로 볶는다. 우엉을 완전히 말리지 않으면 맛이 떫어지므로 건조에 신경 쓰자. 따뜻한 물 1리터에 우엉 2~3조각을 넣고 우린다. 미지근한 물에서 오랜시간 우려내도 상관없다.
RECIPE 02
얇게 채 썬 우엉과 당근을
곱게 간 깨와 버무리다
사람의 인연뿐 아니라 재료의 인연에도, 모든 곳엔 궁합의 힘이 존재한다. 하나가 하나를 좋다한들 궁합이 맞지 않는 둘은 함께 하기에 벅차다. 궁합이 맞는 둘은 서로를 만나는 순간 둘인 듯 하나이며 하나이자 둘인 존재가 된다.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원칙이 바로 궁합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계절에 수확되거나 같은 과에 속하는 재료들은 서로의 궁합이 좋아 음식의 맛을 살려준다. 우엉과 당근이 그런 존재이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땅속에서 자라난 이 둘은 맛이 조화로워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엉과 당근을 고소하게 버무린 샐러드는 촉촉한 모닝빵에 끼워먹어도 별미다.
재 료
우엉 1대(약4~50cm), 당근 1/2개, 닭가슴살 적당량, 마요네즈 3~4Ts, 식초 1Ts, 간장 2Ts, 미림 1Ts, 설탕 1ts, 곱게 간 깨 3Ts, 소금, 후추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TIP 건 다시마와 건 표고버섯을 하루 정도 물에 담가둔 국물로 우엉과 당근을 삶으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우엉은 위에서 밑으로 얇아지는 형태인데 이를 상·중·하로 나누었을 때 섬유의 굵기나 수분량, 풍미가 조금씩 다르므로 구분하여 조리하면 좋다. 윗부분은 섬유와 껍질이 두껍고 향이 진하므로 조림이나 튀김에 어울리고 중간 부분은 적당한 질감과 향을 가지고 있어 볶음이나 국요리 등에 넣으면 좋다. 가장 얇은 밑부분은 수분이 많고 섬유가 얇아 샐러드, 무침 요리에 적합하다.
만드는 법
우엉은 손이나 천연수세미로 문질러 흙을 제거해가며 흐르는 물에 씻는다. 다 씻은 우엉은 감자칼이나 칼등으로 껍질을 제거한 뒤 4~5센티미터 정도로 채썬다. 감자칼로 연필을 깎듯이 돌려가며 깎아내도 좋다. 손질한 우엉은 10분 정도 물에 담가 떫은맛을 빼준다. 당근도 우엉과 같은 방법으로 씻은뒤 우엉의 길이에 맞춰 얇게 채 썬다. 우엉과 당근이 잠길정도의 물, 간장과 미림 각각 1큰술을 냄비에 넣고 중불에서 데친다. 우엉과 당근이 부드러워지면 체에 건져 식힌다. 닭가슴살도 삶아서 먹기좋은 크기로 찢어 준다. 마요네즈, 식초, 간장, 설탕, 간 깨를 볼에 넣고 잘 섞어 물기를 뺀 당근, 우엉과 닭가슴살을 넣고 버무린다.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춘다.
RECIPE 03
우엉을 튀겨 매콤달콤한
강정으로 만들다
석 달 전쯤이었을까. 가게에 조심스레 걸어들어온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한데 그저 예쁘고 귀엽던 아이가 덜컥 임신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 우엉강정을 준비하려고 주방에 있는데 녀석은 텅 빈 홀에 앉아 나를 멀뚱멀뚱 해맑게도 쳐다본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야옹’ 하고 우는데 근심, 걱정이 먹구름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우엉강정은 가격대비 최고의 영양간식이며 안주이다. 한두 대를 사와서 쓱쓱 흙을 닦아내고 동글동글 썰어서 튀겨 양념을 묻히기만 하면 꽤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다. 갑자기 문득 그런 추억이 떠올랐다.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된다, 안된다.’ 맞춰보던 날들. 우엉강정을 한 알, 한 알, 우물거리면서 중얼중얼 빌어본다. 다 잘될 거야, 다 괜찮을 거야.
재 료
우엉 1대(약4~50cm), 간장 2Ts, 설탕 2Ts, 꿀 1Ts, 식초 1Ts, 고춧가루 1ts, 식용유 적당량, 전분 적당량, 소금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TIP 당근이나 우엉, 감자, 고구마 등의 채소에 묻은 흙을 씻어낼때는 수세미 열매의 속을 말린 천연수세미를 이용하면 좋다. 채소 껍질에도 많은 영양분이 함유되어 있으니 최대한 이용해 보자. 천연수세미는 시장이나 인터넷 등에서 쉽게 구입 가능하다.
만드는 법
우엉은 손이나 천연수세미로 문질러 흙을 제거해가며 흐르는 물에 씻는다. 다 씻은 우엉은 감자칼이나 칼등으로 껍질을 제거한 뒤 공기알 크기 정도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썬다. 너무 크게 썰면 속까지 잘 안 익을수 있으니 작게 썰자. 볼에 전분 적당량과 소금 한두 꼬집을 넣고 우엉을 담아 골고루 묻혀준다. 프라이팬이나 튀김전용 팬에 식용유를 자작하게 두르고 160~170도로 달군다. 우엉은 전분을 털어 넣고 서로 붙지 않도록 굴려가며 튀긴다. 튀겨진 우엉은 키친타올위에 올려 기름기를 뺀다. 볼에 간장, 설탕, 꿀, 식초,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은 뒤 튀긴 우엉을 넣고 양념을 골고루 묻혀 접시에 담아낸다.
에디터 전진우
글·사진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