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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건축에는 문외한인 여자가 언젠가 자신의 집을 짓고 싶어서 건축에 관한 책을 읽는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은 건축이 우리에게 주는 것, 또 우리가 건축에게 바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짓다》와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는 해질 무렵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적 나는 남의 집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요즘은 거의 아파트에 살아서 대부분 집이 판에 박힌 듯 똑같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비좁은 골목길을 지나 친구의 한옥 집에 놀러가면 사시사철 툇마루에 앉아 계시던 그 애의 할머니가 물 고구마를 잔뜩 삶아 주셨다. 그 애의 집은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인형을 들고 집 앞에 나와 있는 그 아이와 인형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애 엄마가 나를 집 안으로 초대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2층에 있는 그 애의 중학생 오빠 방에 몰래 들어가 일기장을 훔쳐 읽곤 했다. 또 다른 친구의 집은 기찻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 집은 꼭 동굴 같았다. 다른 친구의 집 텔레비전 위에는 하얀 손뜨개 커버와 울긋불긋한 조화가 얌전하게 앉아 있었고, 또 다른 친구의 집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었는데 그 애 방바닥에 있는 뚜껑을 열면 땅굴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나왔다.
그때는 비좁은 아파트 대신 이층집에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다. 1층엔 친한 친구네가 살고 2층에는 우리 가족이 살면 좋을 것 같았다. 2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미끄럼틀도 만들고 싶었다. 옥상에서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싶기도 했다. 빨간 머리 앤이 사는 초록색 지붕 집에서도 살고 싶었고 삐삐 롱스타킹의 나무 위 오두막도 괜찮아 보였다. 어떤 집에서 살든 다락은 있어야 했다. 그건 포기할 수 없는 소녀의 로망이었으니까.
그때 만난 집들에는 삶이 배어 있었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다 똑같은 상자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서울에 사는 사람이나 제주에 사는 사람이나 생활 방식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욕실에서 손발을 씻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사과를 집어든 후 거실의 소파에 길게 누워 TV 리모컨을 드는 식으로. 나는 지금 아파트가 아닌 낡고 어둡고 추운 단독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는데, 요즘도 종종 내 집도 아닌 이곳을 고치는 평면도를 낙서하는 것처럼 그려보곤 한다. 때로는 집을 ‘ㄱ’ 자로 배치한다. 출입구를 집 뒤로 해서 비좁은 골목을 둘러가야 ‘짠!’ 하고 마당이 나올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옥상에 선베드를 놓기도 하고, 마당에 나무를 심었다가 베었다가도 한다. 여전히 다락은 있다. 내가 그린 평면도에는 행복한 삶에 대한 나의 비전이 담겨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주택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하게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집이란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결국 그 안에 사는 사람, 즉 가족의 삶을 담아야 하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그 가족을 유일하게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짓다》 중에서
집에 관심이 많아지니 건축가라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생겨 건축 책을 읽기 시작했다. 건축가들은 정말 멋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질릴 정도로 철두철미한 과학자, 수학자, 회계사였다. 냉철하고 작가주의적인 건축가들에게 반한 지 오랜 후에 나는 나카무라 요시후미를 발견했다. 그는 어깨에 힘을 주지 않고 삶을 담은 그릇과 같은 집을 즐겁게 짓는 주택 전문 건축가다. 그의 책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 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나는 이 책을 내 책꽂이에 꽂아둘 책으로 정했는데, 내가 책꽂이에 꽂아두는 책은 두고두고 보면서 살아가는 데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것들이다.
자신을 매료시킨 20세기 주택의 명작을 찾아 떠난 기행문인 《집을, 순례하다》를 썼던 그는 산 중턱의 땅에 자신을 위한 작은 집을 지었다. 멋 부리지 않았지만 멋스럽고, 풍경에 잘 어우러지면서도 풍경을 돋보이게 하며, 겸손하지만 우아한 그런 집을 말이다. 심지어 이 집은 에너지 자급형 주택이다. 전기도, 수도도, 가스도 연결하지 않았다.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직접 고안한 빗물 급수 시스템으로 생활용수를 충당하고, 풍력과 태양열로 전기도 만들어 쓴다. 숯불을 넣은 풍로로 가스레인지를 대용하며, 14평 면적의 집에서 15명이 잘 수 있는 시스템도 고안했다. 이 모든 것을 즐겁게 하는 호기심 많고 모험심 넘치는 건축가답게 그는 접었다 펴는 간이 테이블의 다리로 굵은 나뭇가지를 모양 그대로 잘라서 대고, 대나무 꼬치들을 빽빽하고 둥글게 묶어 칼꽂이로 사용하는 등 생활의 작은 멋도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오두막 욕실이다. 집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한 오두막 욕실은 약 1.75평 크기로 그 절반은 물을 직접 데울 수 있는 아궁이와 철제 욕조가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이 탈의실 겸 서재 겸 침실이다. 그는 이 오두막에 들어설 때면 마치 둥지로 돌아온 작은 새가 된 기분이 들면서 심신의 내부에서 만족과 안도와 달관을 고르게 섞은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고 표현한다.
언젠가 오두막과 집을 비교해본 후에 오두막에는 있고 집에는 없는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것이 오두막만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둥지를 짓는 본능’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러자 어두운 제 가슴속에 희미하게나마 작은 등불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두막에는 인간이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둥지를 짓는 본능이 선명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었고, 결국 그것이 제 가슴을 그리도 뛰게 만들고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것입니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을, 짓다》 중에서
알랭 드 보통이 건축에 관해 쓴 책 《행복의 건축》은 이달의 영화 칼럼에 소개된 영화 <500일의 썸머>에도 등장한다. 건축가를 꿈꾸었으나 카드 회사에서 일하는 톰은 이 책을 들고 기차에 타고, 나중에 헤어진 여자친구 썸머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건축이라는 물질적인 대상을 행복이라는 일견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개념과 연결하는 일은 아마 알랭 드 보통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을 내 마음대로 ‘소심의 철학자’라 부르고 싶다. 세상은 소심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가구의 미세한 흠집, 맞춤법의 오류, 잘못 조인 나사, 거북한 색 조합, 미묘한 맛의 차이 같은 것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사는 게 피곤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멋진 옷을 입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고, 맞춤법이 엉망진창인 책들을 읽고 살아야 했을 것이고, 다리란 다리는 다 무너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만사의 한 꺼풀을 들추면 드러나는 삶의 진실들을 미처 알아채지도 못 했을 것이다.
모든 건축 스타일은 자신이 이해하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중에서
알랭 드 보통의 건축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 잘 드러난다. 그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식사하면서 이렇게 쓴다.
이 식당의 진정한 재능은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강렬한 조명, 이따금씩 냉동 프라이가 기름통에 가라앉는 소리, 카운터 직원들의 다급한 행동을 보면 머릿속에서는 무작위적이고 폭력적인 우주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외로움과 무의미가 저절로 떠올랐다. 유일한 해결책은 먹는 곳에서 생긴 불편을 보완하기 위해 계속 먹는 것이었다.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중에서
그러다 시끄러운 핀란드 관광객들 때문에 더는 먹기도 어려워지자 그는 맥도널드를 빠져나와 바로 옆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당에 들어간 지 10분이 지나자 바깥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겼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갑자기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리석, 모자이크, 어둠, 향의 영향 때문인지 예수가 신의 아들이고, 갈릴리 바다 위를 걸었다는 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박자를 맞춘 듯한 빨강, 녹색, 파랑 대리석들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동정녀 마리아의 설화석고상을 보자. 천사가 당장이라도 런던 위에 겹겹이 쌓인 적운을 뚫고 내려와 회중석의 창으로 들어오면서 황금 나팔을 불며 곧 다가올 천상의 사건에 관하여 라틴어로 고지를 한다고 해도 이제는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불과 4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핀란드 십대들 무리와 튀김 기름통 사이에서 들었다면 미친 소리로 들렸을 개념들이 지고의 의미와 장엄을 얻게 된 것이다. 건축 작품 하나 때문에.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중에서
건축은 우리를 화나게도, 기쁘게도 할 수 있다.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뭔지 모를 불만의 근본적 원인이 알고 보면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집 때문일 수도 있다(수맥이 흐른다거나 터가 안 좋거나 하는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중역들이 모인 회의실에서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간접조명을 은은하게 밝힌 아늑한 거실에서는 어떤 비밀이든 속삭일 수 있을 것처럼 편안해진다. 사람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학교가 교도소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굳이 편한 집을 두고 카페에 가는 이유는 그곳은 모든 것이 세련되게 정돈되어 있는데다,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모여든 친근한 타인들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남의 집에 왜 돈을 쓰냐”는 어른들 말씀이 무색하게 요즘은 전셋집이라도 사는 동안만큼은 내게 편하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멀쩡한 새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모조리 뜯어내고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고용해 집을 하나에서 열까지 세련된 스타일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전 국토가 아파트로 뒤덮이다시피 한 이 시대에도 TV 드라마에서 아파트에 사는 가족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화려한 계단이 집 중앙에 자리한 으리으리한 2층 주택, 또는 요즘은 찾기도 어려운 구식 단독주택이나 한옥에 산다(가끔 창문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을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도회적인 깍쟁이들로 그려진다). 어쩌면 이건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한 대로, 우리의 결핍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집 밖의 세상이 거칠고 무자비하고 피곤하고 마음 붙일 데 없는 곳이기에 반대로 우리는 점점 집을 도피처로서 중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아파트가 한 가족의 행복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딱딱한 공간이기에 우리는 좀 더 정겨운 공간, 둥지 같은 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의 약한 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 세상의 아주 많은 것이 우리의 신의와 대립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고, 중요하면서도 쉬이 사라지는 측면들이 살아 있도록 유지해줄 방이 필요하다.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중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집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그런 집이다.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 집. 숨어 있는 듯하면서도 그 존재만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정겹게 만드는 집. 잘 정돈되어 있지만, 숨 막힐 정도로 깨끗하지는 않은 집. 아름답지만 사는 사람을 압박할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은 집. 손잡이와 난간은 손때로 반질반질해져 있고, 문틀에는 아이들이 키를 잰 흔적이 남아 있고, 여기저기 손본 흔적이 남아 있는 집.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불필요한 것은 없는 집. 그 집에 살면 자연스레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지는 집. 일요일 오후를 빈둥대며 보내기에 적당한 집.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따뜻한 부엌의 큰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집.
친구를 초대해 마당의 나무 아래 투박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랫동안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집. 연인을 사랑하듯, 아이를 사랑하듯, 음악이나 여행을 사랑하듯 사랑할 수 있는 집. 단 한 번도 집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집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집. 행복한 삶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집.
저는 집의 가치는 면적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의 수’로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커다란 식탁을 둘러싸고 허물없는 친구와 홀짝홀짝 술잔을 나누면서 수다를 떨어도 좋습니다. 툇마루에 펴놓은 돗자리 위에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깜박 졸아도 좋습니다. 때로는 골똘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일에 열중해도 좋습니다. 난로 앞에서 바지런히 장작으로 불을 지펴도 좋습니다. 다락에 올라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기분으로 책 속으로 빠져들어도 좋습니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중에서
그러니 언젠가 그런 집을 짓게 된다면 술 한 병 사 들고 놀러들 오시길.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 청미래 | 312쪽 | 148x210mm
알랭드 보통은 늘 면밀한 방식으로 한 주제를 풀어낸다.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을 바탕으로 짚어내는 섬세한 글.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의 공간을 돌아보게 된다.
집을, 짓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 사이 | 284쪽 | 128x188mm
‘인간은 누구에게나 둥지를 짓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저자는 집이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들려준다.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 안에 살아갈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간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 사이 | 144쪽 | 168x225mm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그는 오두막을 짓고 사는 경험을 이 책에서 들려준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환경을 가졌을 텐데, 그는 도대체 어디에 어떤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을까? 그 궁금증에 자꾸만 책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진·에디터 선아
글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