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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좋은 것들을 위한 안내서
한 번 볼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두 번째에는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건 일종의 덤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다시 한 번’이라는 애틋한 마음이 모이면 종종 영화가 재개봉하고 음악이 리메이크되고 소설이 드라마가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좋은 것들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속에서 새롭게 읽히고 불리는 것들을 적어 내렸다. 다시, 또다시.
8월의 크리스마스
개봉 1998.01.24 재개봉 2013.11.06
박제된 1998년의 8월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 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계절이 바뀔 즈음, 훅 끼쳐오는 냄새가 있다. 그런 냄새는 어떤 기억을 불러오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게 하기도 한다. 나는 봄이 다 질 무렵, 운동장 흙먼지 냄새를 종종 맡는다. 그 냄새는 있어야 할 곳에 무언가 없다는 느낌을, 어디로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기분을 던지고 사라진다. 그럴 때면 이유 없이 잠깐 멈추어 있게 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내내 그런 냄새가 난다.
말간 영상의 이 영화가 마냥 가볍지 않은 것은 정원(한석규)의 정물화 같은 일상이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녀와 발톱을 깎다 마루에 누워 눈물을 보일 때, 친구와 술을 진탕 마시고 장난처럼 귓속말로 ‘나 곧 죽는다’고 속삭일 때, 첫사랑이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내려달라고 할 때, 아버지를 위해 비디오를 켜는 방법을 설명해주다 결국 화를 낼 때, 혼자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을 때, 멈칫한다. 그리고 정원이 일상을 살아내며 죽음을 받아들일 동안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은 멈춰 선 정원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불쑥 찾아와 사진관에서 잠깐 쉬고 가겠다고 하거
나,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줬으니 술을 사달라 하고 저녁엔 나타나지 않는 식이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그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다림은 묻는다. “아저씨는 사는 게 재미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죽음도 자연스레 흐를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한구석에 멈춰있다. 그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잊히고 변하고 사라질 때, 죽음으로 인해 간직하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미완성으로 남은 정원과 다림의 1998년 8월은 박제된 시간이다. 사진관 앞에 걸린 정원이 찍은 다림의 사진은 아마 오래도록 거기 있을 것이다.
그랑블루
개봉 1993.05.15 재개봉 2013.07.25
바다의 사람이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
“가장 힘든 건 바다 맨 밑에 있을 때야. 왜냐하면 다시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 항상 그걸 찾는 게 너무 어려워.”
2013년 여름,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그랑블루>를 봤다. 1993년에는 110분이었고 2013년에는 168분이 된 영화. 그때 일요일마다 내가 있던 곳은 합정동이었고 재개봉한 이 영화를 상영해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의 영화관에 찾아갔다. 여름 해가 어깨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날이었다. 겨자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합정에서 이수까지 가는 지하철에서는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관 스크린에서 한 편의 거대한 파랑을 보았다.
<그랑블루>는 자크와 엔조, 두 프리 다이버의 이야기이다. 프리 다이빙은 다른 호흡 장치 없이 자신의 호흡으로 잠수하는 스포츠다.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바닷속에 머무는가로 실력을 겨룬다. 사실 영화에서 둘의 경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푸르름, 바다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자크가 잠수할 때마다 함께 깊은 숨을 참아야 했다. 그러고 나면 머리가 띵했다. 나는 아마 땅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땅에서 발을 떼는 게 무서운 사람. 하지만 자크와 엔조는 평생 물속에서 살았고, 마지막 순간 바다로 돌아갔다.
러시아의 유명한 프리 다이버인 나탈리아 몰차노바가 스페인의 해안에서 실종됐을 때, 그의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는 바닷속에 계실 거예요. 어머니는 그걸 좋아하실 겁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자크를 사랑하는 조안나는 말한다. “당신이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나는 무서워져요.” 그건 아마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자신과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사는 그의 운명을 예감한 탓인지도 모른다. 가족사진이라고 지갑에 돌고래 사진을 넣고 다니는 남자는 아마도 흔치 않을 테니까. 조안나는 결국 바다에 가서 볼 것이 있다는, 붙잡히지 않는 자크에게 말한다. “Go and See, my love.”
습지생태보고서
방영 KBS2 드라마스페셜 원작 최규석 《습지생태보고서》
비참하고 처절한 청춘 블록버스터
닳고 닳은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도망이 아니라 선택일 순 없는 걸까. 패배할 것이 두려워 출발선에 서기를 피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어른이 되는 날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걸까. 불안한 눈빛으로 친구의 연봉을 묻거나 부동산 정보를 뒤적거릴, 어쩌면, 어쩌면 슬플 그 날이. 한때는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노라, 자위할 기억을 만들고 있는 것뿐일까.
습지는 어떤 곳일까. 축축하고 언제나 물이 괴어 있어, 절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비슷하게는 늪, 수렁과 같은 단어쯤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 으레 우리의 삶에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말들. 습지는 그런 곳이다. 단막극 <습지생태보고서>는 최규석 작가의 만화를 단막극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단칸방에서 네 명의 대학생이 옹기종기, 혹은 꾸깃꾸깃 모여 살아간다. 주인공 규석은 나이트클럽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당장 방세가 없어 지역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마저도 고모와 함께 이사장에게 사정을 전하러 찾아가야 할 처지다. 최근 마지막 학기에 성적이 떨어진 것이 여자 때문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이사장에게 규석은 근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게 되었고, 장학금 혜택은 턱없이 줄었다고 맞받아친다. 미간에 ‘내 천川’ 자로 꽈악 힘을 준 이사장이 공격한다. “아무리 장학금 혜택이 줄어도 1등은 줄 거 아냐? 1등을 했어야지, 1등을! 2등은 아무도 기억 못 해.”
규석은 첫눈에 반한 여자와의 데이트를 위해 친구의 정장을 빌리고, 그녀 모르게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오늘 쓴 비용을 계산한다. 방구석에서 소주 한잔 걸치면서 규석이 말했다. “내가 지금 잘못한 거야? 남들 다 하는 연애한 건데.” 그렇지. 남들 다 하는 연애일 뿐인 거지. 먹다 남은 빵 봉지처럼 나는 그가 마냥 버림받아 보였다. 누구라고 지목하기 어렵게, 누군가에게, 혹은 어느 것에게 버림받아 보였다.
같은 방에서 사는 친구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말미에는 언제나 ‘가난 배틀’로 끝이 난다. 급식비 낼 돈이 없어서 운동장 한구석에 숨어 있었다는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가 말한다. “야, 그건 가난의 기본이지.” 다 좋자고 하는 공부고, 아르바이트고, 연애고, 자취고, 여행이고, 문화생활이고, 잉여 짓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처절한 걸까. 그들의 라면 냄비 받침으로 여러 차례 쓰인 듯, 동그라미 자국이 선명한 아프니까 괜찮다는 자기계발서를 보며 생각했다. 장마철마다 비가 새는 반지하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저들의 모습이 멀지 않은 곳의 청춘 블록버스터 같다고.
원녀일기
방영 MBC 2014드라마페스티벌 원작 고전 소설 《춘향전》, 《심청전》, 《콩쥐팥쥐전》
커피소년이 부릅니다. ‘장가갈 수 있을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고구마예요? 나도인데. 똑같다.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요? (국에 든 파요.) 아, 정말이요? 그럼 내가 먹어주면 되겠다. 난 그거 좋아하거든요. 우리 천생연분이다.
원녀는 노처녀를 가리키는 옛말로, 작은 부락에서 콩쥐의 별명은 ‘원녀귀신’이다. 시집가고 싶지만 조선시대 외양지상주의에 주근깨와 기미가 영 자신 없는 콩쥐는 밤새 서책 읽는 것만 좋아할 뿐이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또 다른 원녀 친구들 춘향과 심청이와 함께 평탄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략결혼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양반집 ‘나비’들이 직접 이상형에 부합하는 ‘꽃’을 찾으러 사냥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인을 통해 만날 장소와 시간이 적힌 첨을 보내오면 그걸 ‘첨 탄다’고 한다 했다.
모든 처녀가 그네 앞에 줄을 섰고 그때 누군가 콩쥐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사또의 첨인데, 춘향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면서. 심청과 콩쥐가 의도한 듯, 혹은 의도하지 않게 그 첨은 콩쥐의 첨이 되어 사또를 만나게 되었다. 계획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또에게 자신이 춘향이가 아닌 것을 들킬까 봐 각시탈 하나를 곱게 썼다는 점이다.
결국 임을 향한 마음 도저히 지울 수 없어, 그녀는 심청과 함께 성형 의원을 찾는다. 하지만 그것도 쌀 삼백 석은 족히 든다는 견적이 내려졌다. 심청이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데, 이름하여 ‘인당수 다단계’. 봉사의 눈을 뜨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묘약이란다. 홀리듯 진주 단계까지 올라가면 된다는 심청이를 보니 그녀가 예전에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혼인은 뭐 빈손으로 하니. 예단 400냥에, 잔치 빚 800냥에, 이바지 30냥. 짚신도 짝이 있다고? 짚신이 짚신 만나서 뭐하겠어. 둘 다 힘들게.”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자신이 자신일 수 없을 만큼 자신감이 바닥난 여자와, 자신의 혼인을 치를 경제적 여력이 없어 미혼을 자처한 여자. 그리고 자신의 혼인예정자 집안의 몰락으로 자신만의 고민이 많은 여자. 고전 속 인물들의 이름을 지우니 우리 주변에서 금방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단락에서 자신이라는 말은 도대체 몇 번 나왔을까. 어찌 되었건 얽히고설킨 이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것 또한 이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 되었다. 조잘조잘 셋이서 잘도 노는 콩쥐, 심청이 그리고 춘향이. 나는 감히 조선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이건 어쩌면 우리 주변 원녀들의 사랑스러운 비밀 이야기일지도.
슬픈 인연
원곡 나미 리메이크 015B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언젠가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난 새로 알게 된 사람과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겼다 싶을 때 그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봐.” 그때는 그 뜻을 잘 몰랐다.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이거든.”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기쁠 땐 신나는 노래를, 사랑할 땐 상큼한 노래를, 그리고 이별이 닥쳤을 때 이별 노래를 듣는 것 말이다. 오랜만에 내 플레이리스트를 열어보았다. 오래된 목록부터 뒤져보았는데, 최근 몇 년간 내 인생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었다. 그 목록 중간중간에는 옛날 노래도 끼워져 있었다. 역시 심장을 건드리는 명곡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되새겨 지고 재해석되는가 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나미’가 부른 이 곡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사람은 무던히도 많다. 대중에게 그 결과물을 드러내든 아니든. 많은 편곡 중에서도 015B가 부른 ‘슬픈 인연’이 좋다. 슬픈 인연은 이별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야기다. ‘아 다시 올 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간절하고,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애절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 잘 지낼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그렇게 주문을 외고 있을 뿐. 분명 슬픈 노래지만 015B의 슬픈 인연은 희미한 희망을 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전주 부분의 잔잔한 기타 연주가 특히 그런데 전주만 들으면 봄을 주제로 한 사랑 노래처럼 느껴진다. 절망의 진흙탕으로 걷진 말아라.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위로를 던지는 것 같다. 우린 아무리 슬픈 인연이었어도 살아지는 거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정류장
원곡 이적 리메이크 버스커버스커
곱씹을수록 빛을 발하는 한 소절
저 멀리 가까워 오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댈 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곡의 가사를 외고 있는 노래가 얼마나 될까. 나 같은 경우엔 몇 되지 않는다. 하루에 최소 한 시간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무념무상으로 오로지 음악 감상에 젖어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연달아 열 번을 들어도 처음 들은 것처럼 전율이 느껴지는 음악이 있다.
한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버스커 버스커가 리메이크한 ‘정류장’을 들었을 때, 이 음악을 처음 알았다. 아니다.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 곡을 정말로 알게 된 것이 그때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이 절절해져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하루는 출근길에 버스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데,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가 양쪽 길가에 쭉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한참 이 곡에 감정이입이 되어있을 무렵이었다. 순간 가사와 은행나무 풍경이 머릿속에서 겹쳐져 노래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감정을 흘리는 인간이었다니. 다 노래 탓이었다.
장범준은 엄마를 생각하며 ‘정류장’을 편곡했다고 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 그 대상은 엄마가 될 수도, 애인이 될 수도 있다. 가사 중 ‘내가 사준 옷을 또 입고 낙엽이 뒹구는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대’를 바라보는 장면과 ‘그대여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 이건 해피엔딩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구슬프다. 나에게도 애달픈 만큼 고마운 그대가 있었나.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에디터 이현아
글 이현아 정혜미 이자연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