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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재능을 팝니다
AROUND MARKET
우리의 재능을 팝니다
볕이 좋고 바람은 선선하다. 바야흐로 마켓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마켓들을 구경하다 생각해본다. 셀러 자리에 앉아 구경꾼들을 구경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 호기심 어린 손길로 내가 준비한 물건들을 사주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나에게는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드는 솜씨도 없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재능도 없으며 내다 팔 만한 멋진 그릇도 하나 없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내 재능은 무얼까? 해답을 찾기 위해 어라운드 식구들과 머리를 맞대보기로 했다.
어라운드 마켓의 탄생
지난 1월, 새 달력을 책상에 올려놓으며 ‘아, 조금 더 늙어버렸네.’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조금 더 젊었던 지난해를 떠올려봤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뚜렷하게 그려지는 것이 없었다. 나는 식물이었나?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들었다. 부랴부랴 종이를 찢어 ‘2016년 계획’이라고 적고 열두 개의 목표를 세운 다음 책상 옆에 붙여놓았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울 것이다. 아마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섯 달이 지난 지금 내가 이룬 것은 ‘이사하기’라는 항목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건 목표를 세우기 전부터 결정된 일이었고 나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은행 대출직원의 공이 컸다.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집 오십 권을 한꺼번에 읽을 수도 없고, SNS 팔로워가 갑자기 늘어날 리도 없으며, 여자 친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거나, 내 배에 붙은 여분의 살 8킬로그램이 하루아침에 빠질 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목록을 살펴보다 문득 ‘마켓 참여’라는 글자에서 눈이 멈췄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조그만 책을 만들어 플리마켓에 참여해보자는 계획이었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캠프가 곧 열릴 예정이었고, 이번 잡지의 주제 역시 ‘마켓’이 아니던가. 사실 ‘마켓 참여’라고만 썼지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자유라고, 다만 참석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나는 나를 설득했다. 얼추 그림이 그려지자 설득당한 나는 이 사심 가득한 계획을 어라운드 식구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주 즐겁고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부담 가질 필요는 전혀 없으며, 누구에게나 재능은 하나씩 있으니 그걸 팔아보자고, 잘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소중한 경험 하나씩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 역시 그들은 착했고 별다른 이견 없이 어라운드 마켓을 열자는 데 동의했다. 행사 당일까지 부랴부랴 물건을 준비하느라 호들갑을 떨기도 했고, 어딘가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뭐 어때, 어쨌든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판매할 만한 재능이 있을까? 마켓을 준비하면서 어라운드 식구들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건넨 질문이었을 것이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가 파는 것은 잘 만든 공산품이 아니라 열정 그 자체잖아.”라고 말해주려다 참았다. 아무래도 섬마을 야구부 주장 같은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대신 테이블을 나르고 그 위에 테이블보를 깔고 의자를 날랐다. 나는 그들이 재능을 잘 팔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행사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됐고, 다행히 캠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어라운드 마켓에 모여 우리들의 재능을 사주었다. 우리들이 준비한 마켓 물건은 다음과 같다.
어라운드 마켓 판매 목록
편집장 김이경
아들 지오의 신발과 가방, 앞치마, 컵, 등을 판매하며 가장 마켓다운 마켓을 꾸림
디자이너 구혜민
멋진 디자인 실력을 발휘해 아이들에게 스티커 타투를 붙여줌
디자이너 최인애
애지중지하던 딱지도감을 가지고 나왔으나 아쉽게도 판매 불발
아이 송지오
엄마 옆에 앉아 자신의 신발이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봄
에디터 이현아
신선한 재료로 직접 재운 샹그리아(아주 멋진 맛!)를 완판에 성공
경영지원 박혜미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정성껏 따줌(소요시간 3분, 가격 50원, 최종 수익 700원)
마케터 이지혜
아이가 부모에게 뽀뽀를 해주면 사탕 세 개를 나눠주는 재능을 발휘
에디터 이자연
특유의 재치로 즉석 삼행시 지어주기(소요시간 5분, 가격 10원, 최종 수익 400원)
포토그래퍼 안가람
마켓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사진에 담아줌
에디터·포토그래퍼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