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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4월
스무 살의 4월
4월이 되면 상투적으로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상투적이지 않은 여자아이가 되려고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상투적이기 그지없었던 나의 스무 살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는 플랫폼에 선 가족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기차 안에 탄 누군가를 배웅하는 중이다. 곧 안면이 있는 역장이 다가오고, 그들은 기차 안의 딸이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해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문이 닫히고 기차가 느닷없이 출발한다. 어쩐지 할 말이 더 남았다는 표정을 한 그들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면 그제야 기차 안에 탄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설렘과 긴장과 울적함이 뒤섞인 옆얼굴의 소녀를 태운 기차는 덜컹덜컹 저 멀리 도쿄를 향해 떠난다. 그 소녀의 이름은 우츠키다. 우츠키는 고향 홋카이도를 떠나 혼자만의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될 도쿄의 아파트에 도착한다. 텅 빈 방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던 우츠키는 이내 바닥에 주저앉더니 허물어지듯 옆으로 쓰러진다. 웅크린 듯 누운 자세는 다분히 퇴행적이다. 엄마의 뱃속 태아가 취할 법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는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집을 떠난 소녀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영화다. 3월의 교정에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도착한 우츠키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자기소개의 시간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홋카이도에서 왔다고 말했다가 스키 잘 타느냐는 소리나 듣고, 시큰둥한 표정의 도쿄 여자에게 그런데 왜 홋카이도에서 이 학교까지 왔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받는다.
우츠키에게는 이런 질문에 기억에 남을 만큼 위트 넘치는 답변을 날릴 센스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는 자신감도 없다. 결국, 우츠키는 첫 만남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아까부터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던 도쿄 여자애는 식당에까지 따라와 마주 앉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름이 뭐냐고 두 번 묻는다.
영화 속의 우츠키처럼 집을 떠나 혼자 살아본 사람은 알지 않을까. 처음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몸을 누일 때의 기분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생각처럼 설레거나 두근거리는 일만은 아니다. 나 역시 서울에서 스무 살을 맞은 촌뜨기였는데,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간 후 짐 가방 몇 개와 함께 낯선 기숙사 방에 남겨졌을 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기숙사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넓은 도시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 조금 울었다. 이런 자신이 부끄러워질 즈음에 도착한 건 함께 지내게 될 룸메이트였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스무 살을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게 좋았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함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함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 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시내라는 곳에 나가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창들을 골고루 마주칠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 자란 내게 서울은 너무나 거대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서울은 내가 변신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뭐든 될 수 있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상투적이었고, 그 사실이 못마땅해서 어떻게 나를 바꿀지를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려면 일단 사투리부터 고쳐야 했다. 사투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지적받은 표현들은 다음에 쓰지 않기 위해 애썼다. 예를 들어 내가 자란 곳에서는 ‘우리’동생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내’동생이라고 해야 했다. 그런 쓸데없는 것들에 집착하면서 나 자신을 서울내기처럼 포장하기 위해 애썼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 리는 없었다. 누군가의 말에 센스 있게 대꾸해 주고 싶어도 그런 말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나 생각이 났다.
다들 소집되는 시간에 혼자 옥상에 숨어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여자 선배가 멋져 보였고, 어떤 선배에게도 싹싹하게 다가가는 서울 토박이 동기가 부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흉내를 내봐도 나는 그들 중 누구도 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정말로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무 살이 비슷한 것을 바라고 있었으리라.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기를.
<4월 이야기>의 우츠키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이삿짐 짐꾼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우왕좌왕 대기나 하고, 도쿄 친구의 뜬금없는 제안에 엉겁결에 관심도 없는 낚시 동아리에 가입해 운동장에서 허공을 향해 릴을 던지는 일을 반복한다. 영화를 보러 갔다가는 치한에게 쫓기고, 옆집 아가씨에게 기껏 함께 밥 먹자고 초대해 놓고는 고향에서 걸려온 전화를 끊지 못해 결국 손님이 혼자 밥을 먹는 어색한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우츠키에게는 대답이 있었다. 왜 머나먼 홋카이도에서 도쿄까지 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무척 상투적이지만 스무 살의 소녀에게만은 더이상 진실할 수 없는 대답.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할까 차마 말할 수 없지만, 소녀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대답. 그건 바로 우츠키의 사랑이었다. 사랑의 기적으로 우츠키는 좋아하는 선배가 다니는 도쿄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고, 바로 그 사랑의 힘으로 가족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츠키는 짝사랑하는 선배가 일하는 서점을 매일 들락거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열정과 카레를 많이 만들었다며 옆집 귀신같은 언니에게 같이 먹자고 권하는 촌스러운 마음 씀씀이도 갖췄다. 알고 보니 우츠키는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 동그라미를 그려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에게 조심스럽게 동그라미를 그려줄 수 있는 소녀였다.
서울에 온 지도 어느새 16년이 지나 버렸다. 단발머리에 힙합바지를 입고 사투리를 들킬까 전전긍긍하고, 서울이 참 지저분한 곳이라는 생각에 밖에 나갈 때 흰옷을 입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여긴 눈이 너무 많이 온다고, 엄마가 구워주는 생선구이가 먹고 싶다고 편지를 쓰던 촌스러운 여자애는 어느덧 서울 사람이 다 되어버렸다. 이제 지하철을 타면 무표정한 얼굴로 문 쪽 기둥에 기대 서 있고, 홍대 앞에서 데이트하던 남자와의 첫사랑에 실패도 했고, 대학을 졸업하며 내 책상과 전화기가 있는 진짜 일자리를 갖게 되었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서울도 그다지 거대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우츠키네 앞집의 귀신 같은 언니처럼 변해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얼굴만 빼꼼 내민 채로 빨리 닫으려고 노력하고, 문을 닫은 후에는 이중 삼중으로 자물쇠를 잠그는 언니.
우츠키의 방이 뻔한 학생의 방이라며 그 순수한 상투성과 거리가 있는 척 굴지만, 사실은 그 자신도 상투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언니. 서점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빌린 찢어진 빨간 우산을 쓴 채로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활짝 웃던 스무 살의 우츠키는 어떤 아가씨로 자랐을까. 선배와는 잘 되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스무 살에 좋아했던 남자가 생의 마지막 남자라면 그건 좀 억울하다
아마 우츠키는 조금씩 노련하고 상투적인 도쿄 아가씨가 되어갈 것이다. 집안에는 학생이 아닌 아가씨의 물건들이 하나씩 들어찰 것이고, 차가 있는 잘 나가는 오빠들과 데이트를 해볼 것이고, 열심히 일한 자신을 위한 선물로 고급 화장품이나 예쁜 구두, 여행 같은 것을 즐기는 세련된 여자가 될 것이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우츠키의 얼굴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알기에, 셔터를 꾹 눌러서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에 우리는 뭐든 될 수 있을 거라고, 뭔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은 컸지만, 요령은 없을 나이였다. 낯선 도시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진짜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꾸며낼 수도 있던 나이였다. 물론 그런 시도는 깊은 자괴감만을 남긴 채 실패하고, 우리는 아주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곧 4월이 온다. 나는 지금 지은 지 30년도 더 된 단독주택에서 좀처럼 가시지 않는 추위와 싸우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4월이 되면 아마 키보드 위 손등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뭘 하다 말고 볕 좋은 시간에 슬렁슬렁 집 밖으로 나가서, 가장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할 것이다. 16년 전, 저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상경한 상투적이었던 스무 살 여자아이는 이런 미래를 상상이나 했을까. 16년 후의 자신이 스무 살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낄 거라는 걸 말이다.
에디터 박선아
글 한수희 일러스트 박지연Bay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