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replica Breath sounds

동물모형에서 들리는 숨소리

Animal replica
Breath sounds

동물모형에서 들리는 숨소리

몇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제외하고 보면 나는 동물을 직접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코끼리와 실제로 눈을 맞췄다거나 바다사자의 등을 쓰다듬어 본적도(당연히)없다. 하지만 모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날마다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마음과 함께 커지고 있는 생각이 하나 더 있다.
“그래, 어쩔 수 없다면 만나지 말자.”

나는 동물모형을 모은다. 오래된 일은 아니고, 이제 막 흥미를 가지기 시작해 문득 ‘왜 좋을까’ 하고 종종 생각해 보는 수준이다. 그것들을 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우연히 마주치면 잠시라도 그 앞에 서서 이리저리 훑어보거나 손바닥 위에 올려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생전 보지 못한 동물모형도 있고, 직접 깎아 만드는 것들도 더러 있기 때문에 항상 궁금한 마음으로 자주 구경하는 편이다.

‘모형일 뿐인데.’

동물모형을 만지작거리는 내가,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리해서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까, 단순한 욕구를 여러 번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엉뚱한 검열의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사그라졌다. 딱딱한 모형들은 단순한 플라스틱이나 나뭇조각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왜 좋을까?’

몸 전체를 일자로 폈다가 웅크리길 반복하는 치타를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무척이나 빨라서 녀석을 쫓는 카메라도 정신없이 흔들렸고 주변의 마른 풀들은 그저 갈색 배경으로만 보였다. 마치 내가 쫓기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던 그 순간을 오래도록 지우지 못한다. 떨리고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멋진 세계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또 언젠가는 바오밥 나무에서 환상적으로 피어난 하얀 꽃들과 그 꽃이 떨어진 자리에서 열리는 열매에 관한 영상도 봤다. 이윽고 열매와 씨앗을 정신없이 먹어대는 여우원숭이 떼까지 등장했는데, 나는 어떤 영화에서도 그만큼 황홀한 파티를 본 적이 없었다. 

평균수명이 5000년이라는 독특한 나무의 모양과 주변을 채우는 텅 빈 풍경, 아프리카의 노을, 열매가 익는 짧고 유일한 시기, 그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완벽한 시간을 원숭이들이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리들에 끼어 정신없는 한때를 보낼 수 있다면’하고 몇 번이나 바랐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꿈속에서 큰 고래 한 마리와 오랫동안 헤엄쳤던 적도 있다. 아마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노래를 부르는 혹등고래의 다큐멘터리를 본 날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정말 가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누구든 억지로 끌려가는 일이 없길 기도한다. 이 말은 사실 내가 그들에게로 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지로 이곳에 올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곳은 아주 멀거나 어딘지 정확히 알지도 못해 당장에는 갈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동물모형을 구경하고, 가끔은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경비를 착실하게 모으는 일, 동물모형을 바라보며 그들을 상상하는 일, 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물원에 가볼까?’

억지로 데려다 놓았다면, 그러니까 내가 만약 동물원에 가서 그들을 마주한다면 나는 슬픈 눈만 바라보다가, 들리지 않는 절규만 듣다가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동물을 한곳에 모아 가두는 세상에서는 사실 모두가 갇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침대에 누워 깨닫는다. 그래서 철창이 작을수록, 동물원에 사람들이 붐빌수록 내 생활도 역시 막막하다고 느낀다. 동물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그곳에 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모형은 모형일 뿐인데.’

어쩌면 티브이를 틀거나 그림으로 보는 것이, 좋아하는 동물의 모형을 책상 위에 두는 것이 동물들의 진짜 모습을 보러 가는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다. 흙에 뒹굴고, 서로 장난치고, 어미에게 기대어 잠들고, 기분이 좋아 시끄럽게 울고, 웃고, 전력으로 질주하는 모습들. 나는 그런 모습 앞에 있게 되길 항상 꿈꾼다. 내가 가진 시간이 너무나 짧아 실제로는 결국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프리카나 태평양으로, 아마존으로, 그들을 향해 끝없이 다가갔음을 동물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자신들을 억지로 데려와 가두지 않고 스스로 찾아와 줬음을, 먼 곳의 동물들이 마음 깊이 고마워하진 않을까.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냉장고에 붙은 고래 자석을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우리지만, 언제나 서로 끌어안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어떤 경우에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만나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나는 동물모형을 집어 든다. 단지 모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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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