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WE NEED IS LOVE

《슬픈 카페의 노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OOK 《슬픈 카페의 노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ALL WE NEED IS LOVE
BOOK 

오직 사랑뿐

우리가 외로운 것은 어쩌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겉모습이라는 두껍고 무거운 장막을 걷고 한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우리만의 사랑을 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 끝나고 나니 저녁 시간, 지금 지하철을 타면 퇴근 인파를 마주칠 것이었다. 저녁과 남는 시간을 함께 해결할 곳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맥도날드의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테이블마다 홀로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굽힌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꽂은 채로 두 손에 든 햄버거를 조심스럽게 베어 무는 젊은 여자들. 그녀들은 마치 무슨 벌이라도 받는 것만 같았다. 죄인처럼 햄버거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그녀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나 자신의 복제물들을 보는 것 같아 차마 햄버거를 먹지 못하고 그곳을 나와 버렸다. 

나는 원래 혼자 밥을 잘 먹는 여자다.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동정을 사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다거나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정도로 배짱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그럭저럭 혼자 먹을 만한 곳에서는 혼자 잘 먹는다. 

사실 혼자 밥을 먹는 것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 나와 그 여자들이 혼자 밥을 먹으려는 이유는 첫 번째, 지금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두 번째, 지금 당장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굳이 찾으려고 하면 함께 밥을 먹을 이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편하지도 않은 상대와 어색하게 밥을 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들과 나는 거추장스러운 관계보다는 고독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관계를 원하는 것뿐이다. 나 자신을 좀먹는 관계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들을 보는 것이 불편했던 것일까. 

카슨 매컬러스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인 그녀는 소외된 영혼들과 그들의 고독한 삶을 다룬 황량하고도 아름다운 소설들을 썼다. 아마 그녀의 이야기들은 어릴 때부터 열병과 뇌졸중을 앓고 걷기조차 힘들 정도의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동시에 양성애자인 남편과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는 정신적 고통까지 겪었던 자신의 인생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리라.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의 배경은 미국 남부의 한 황량하고 작은 마을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볼 것이 없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마을에도 한때는 따뜻하고 자부심 넘치는 카페가 있었다. 미스 어밀리어와 그녀의 수상쩍은 꼽추 오빠의 카페가.

어밀리어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만들어 팔아서 재산을 불려갔다. 이웃 마을에 곱창과 소시지를 만들어 팔았고, 청명한 가을날에는 사탕수수를 갈아서 시럽을 만들었는데, 그녀가 만든 사탕수수 당밀은 짙은 황금색을 띠면서 아주 섬세한 맛을 냈다. 그녀는 목수 일에도 능해서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불과 이 주일 만에 가게 뒤에 벽돌로 옥외 변소를 짓기도 했다. 단 한 가지, 어밀리어가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물건과 달라서 우격다짐을 하거나 상대방이 아플 때를 제외하면, 이리저리 손을 댄다고 해서 순식간에 더 쓸모 있고 이윤이 나게끔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여자 어밀리어는 키도 크고 골격도 힘도 마치 남자처럼 강한 사팔뜨기 처녀다. 무슨 일이든 잘하고 돈 버는 수완도 좋은 그녀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만은 어린아이처럼 서툴렀기에 지금껏 누구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적 없이 혼자 살아왔다.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방적 공장에서 일하는 이 한적하고 아무것도 없는 마을, 어밀리어의 사료 가게에 누추한 나그네 하나가 나타난다. 그는 꼽추다. 이 꼽추는 자기 어머니가 어밀리어 어머니의 이복동생이고 그리하여 자신은 어밀리어의 사촌오빠라고 주장한다. 마을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어밀리어가 어떤 식으로 이 수상하고 불쌍한 꼽추를 쫓아낼지 궁금해하고 또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어밀리어는 꼽추를 자기 집으로 들여 함께 살기 시작한다. 

사실 꼽추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들 사이에 즉각적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재능’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낯선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대화를 나눌 줄 알았고 그가 있는 자리는 언제나 유쾌하고 흥미진진해졌다.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리하여 어밀리어와 꼽추의 사료 가게는 마을의 유일한, 그리고 최초의 카페가 된다. 어밀리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버리고 카페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영역 안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꼽추 덕분이다. 기이하게도, 꼽추를 향한 그녀의 사랑 덕분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는 모른다. 카슨 매컬러스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치호 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 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중에서

대학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전철을 탔는데 내 맞은편에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남자와 여자는 연인 사이인 듯 보였다. 의아했던 것은 남자가 썩 잘 생긴 데 반해 여자는 아무리 봐도 별로였다는 거였다. 여자는 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귀엽거나 매력 있는 구석도 없었다. 솔직히 좀 밉상이었다. 여자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팔린 남자에게 기대어 끊임없이 그의 관심을 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아마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어쩌면 내 마음속으로 그 여자애에게 벌을 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너는 저런 남자애를 차지할 자격이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예쁘지 않은 내가 예쁘지 않은 여자를 벌하다니. 

인간의 외면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 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 듯 평생을 사는 걸까?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일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가는 책의 후기에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도, 그래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 그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었기에, 사랑의 조건에 언제나 외모가 걸려 있던 이 남자는 반드시 소설을 써야 했다. 그에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일은 더 이상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잔인한 현실에 아름답고 슬픈 도전장을 던지는 일이었다. 잘생기고 비현실적인 아버지가 못생기고 현실적인 어머니를 버리자, 혼자 살아가게 된 스무 살의 남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백화점에서 그녀를 만난다. 얼어붙을 정도로 못생긴 그녀를.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못생긴 여자. 같은 여자들의 무리에도, 그렇다고 남자들의 무리에도 섞일 수 없는 여자. 평생 놀림감으로 살아온 여자.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속삭이듯 말하는 여자. 무슨 말을 해도 끝까지 이야기하지 못하고 “아니, 아니에요.”로 얼버무리는 여자. 남자는 이상하게 그녀에게 끌린다. 그는 “아니, 아니에요.”의 두꺼운 커튼을 걷고 그녀의 아름답고 개성 있는 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못생긴 당신을, 학벌이 처지는 당신을, 능력이 없는 당신을, 버젓한 직장도 없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랑의 문제다. 그것은 우리를 질식하게 하는 세상 돌아가는 논리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얼굴이 예쁘면 좋다. 돈이 많으면 좋다. 공부를 잘하면 좋다. 월급이 많으면 좋다. 남보다 잘살면 좋다. 그런데 좋은 것은 옳은 것인가.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건 옳지 않은 것인가. 소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실 외모에 대해서라면 내가 남 말을 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수많은 그렇고 그런 여자, 또는 못생긴 여자의 무리에 속한 채로 살아왔다. 우리 엄마나,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쓰여 실명의 위기에 처한 몇몇 남자들을 제외한다면 예쁘다는 말 한 번 들어본 적 없이. 어린 시절부터 예쁜 여자애들을 볼 때마다 그 애들의 인생을 궁금해 하곤 했다. 저 애들은 어떤 기분으로 살아갈까. 저 애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일일까. 내가 저 애가 된다면 어떨까. 저 애들은 사는 게 얼마나 쉽고 즐거울까. 이렇게 쓰고 나니 어쩐지 소매 춤으로 눈물이라도 훔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사랑에 대해 말하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외로움일 테니까. 우리는 외로워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지 않아서 외롭고 때로는 사랑 때문에 외로울 테니까. 문득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전을 보기 위해 미술관 앞에 길게 줄을 섰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들은 아마 젊고 고독했을 것이다. 고독은 멋진 중절모 같은 것이다. 하지만 고독은 어느 순간 외로움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외로움은 쉴 새 없이 긁어대는 고양이의 발톱 같은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은 비참함으로 이어진다. 이 젊은 사람들은 어쩌면 비참함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젊은데, 이렇게 찬란하도록 젊은데, 누구 하나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 역시 누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사실만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기에 그들은 눈물을 흘렸던 것이 아닐까. 내가 맥도날드의 여자들을 보고 불편한 기분을 느꼈던 것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다들 고독했지만 어쩌면 외로울지도 몰랐다. 그리고 오랜 후에는 비참해질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는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 

–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중에서 

어둠에 섞여, 서로를 길들인 짐승처럼 우리는 나란히 그 길을 걸었고, 그 어둠의 어딘가에서 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녀의 작은 손은 누군가의 손을 얹기 위한 조각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관이었다. 갓 지은 양옥이 늘어선 그 골목에서 역시나 누군가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밤이었다. 변함없고 저렴한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도, 역시나 갈 길을 알 수 없다 해도… 나는 이 평범한, 작은 손 하나를 언제까지라도 놓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 변함없고 저렴한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도, 갈 길을 알 수 없다 해도, 평범하고 작고 못생긴 손을 언제까지라도 놓지 않아야 한다. 사랑한다는 건 그런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블랙홀에서 우리를 건져낼 것은 그것 말고는 없다. 그 끝에 더 큰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어밀리어의 카페처럼 폐허가 된다고 해도, 평생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눈물지어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 열림원 | 156쪽 

미국의 작은 마을, 아버지의 사료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때는 오로지 돈을 벌 때뿐이다. 그런 그녀 앞에 사람을 좋아하는 꼽추가 나타난다. 그 후 그녀가 운영하던 사료 가게는 사람 냄새를 풍기는 카페로 변하기 시작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예담 | 420쪽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들으며 한 여인을 추억한다. 사람들이 쳐다보기 싫어할 정도로 못생긴 여자. ‘나’와 여자는 사랑에 빠지지만, 여자는 결국 외모로 인한 상처를 안고 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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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