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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방은 작고 크다
빈센트 반 고흐, The Yellow House, 1888, 캔버스에 유화, 72×91.5cm
세상의 모든 방은
작고 크다
All rooms are small or big
다음 주면 이사를 간다. 바로 옆 동으로 가는지라 다른 때의 이사보다 실감이 덜 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발전하는 속도가 빨라져서인지 어릴 때의 이사가 주는 의미보다 가벼워졌다. 과거의 이사는 가족이 움직였지만, 현대의 이사는 거래된 노동이 움직이는 서비스다.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의 이사를 했을까. 그리고 몇 번의 집을 가졌을까. 그리고 몇 번의 방을 만났을까. 한 번이라도 그 집과 그 방을 소유한 적이 있었을까? 전 세계에서 전세라는 제도가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과연 내 집과 내 방의 완전한 소유는 존재할까?
빈센트 반 고흐, 중절모를 쓴 자화상, 1886, 캔버스에 유화, 42x32cm
예술가들은
어떤 방에서 살아갔을까
“인생을 여러 종류의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을 통해서 산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살아온 집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렇게 느껴진다. 집은 끝없는 여정 중에 거쳐 가는 그런 공간들이다.”
‘집’이라는 주제로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는 한국 아티스트 서도호의 말이다. 그의 말을 빌려 생각하자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인생을 통과하는 여정 중 하나다. 그리고 내 방은 그 여행에서 머무는 나만의 숙소다. 과거에 내가 살던 집들은 행복하거나 치열하게 걸어온 내 지난 여행의 목적지였고, 내 방들은 없던 시간도 길었고, 아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누군가와 합쳐졌던 시간도 있었다. 집과 방은 어떻게 다를까? 사람들은 추위와 더위,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해 벽을 세우고 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함께 사는 가족들의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방을 만들었다. 방이 모이면 집이 되고, 집이 분리되면 방이 된다. 대가족이 사는 집은 많은 방을 품고 있지만,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시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이 방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방이 집이 되기도 한다. 집이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와 함께 소유해야 하는 것이라면 방은 다르다. 방은 온전하게 내 소유다. 그러므로 방 안에서만큼은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나 자신에게 좀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반 고흐 침실, 1888, 캔버스에 유화, 72x90cm
그 화가의 외로운 방
빈센트 반 고흐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존재, 수백 번 봐도 질리지 않고 인정하게 되는 화가. 그는 우리에게 이름만 들어도 먹먹한 화가다. 목사가 되려다 화가로 전향한 그의 삶,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과정, 동생 테오의 지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오고 간 편지들, 그 누구보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했던 자세…. 그의 방문을 두드려본다.
가난하지만 마음만큼은 늘 희망으로 가득 찼던 화가,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동료 화가 고갱과 아를에서 지내며 새로운 화가 공동체를 꿈꾸던 시기인 1889년,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고흐는 아를에 머문 10개월 동안, 1888년 2월부터 12월까지 100여 점의 유화를 그리는데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대표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탄생되었다. 그의 방은 무엇으로 꾸며져 있을까? 그림 속의 방을 천천히 읽어보자. 의자 두 개와 침대, 벽에 걸린 고흐가 그린 또 다른 그림들, 살짝 열린 창문, 그리고 보색 대비가 돋보이는 푸른색 벽과 황토빛 침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은근히 두 개씩 짝꿍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베개도, 창문도, 액자도, 의자도 고흐는 모두 짝을 맞춰 그렸다. 마치 동료 화가 고갱과 함께 지내고 있는 날들을 표현하듯이 말이다.
고흐는 이 그림을 세 가지 버전으로 그린다. 이 작품은 고흐가 세 번째로 그린, 아를에 살던 시절 자기 방의 모습이다.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리며 흡족했나 보다. 보통 화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나 완성 후 마음에 드는 작품의 경우 여러 번 그린다(뭉크의 ‘절규’도 그런 경우다). 고흐는 테오에게 아를의 이 방을 지친 영혼의 안식이 되는 장소, 피난처, 그리고 구원과 위로가 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나는 흐린 남보라색 벽과 금이 가고 생기 없어 보이는 붉은색 바닥, 적색이 감도는 노란색 의자와 침대, 매우 밝은 연두색 베개와 침대 시트, 진한 빨강의 침대 커버, 오렌지색 탁자, 푸른색 대야, 녹색 창문과 같은 다양한 색조를 통해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고흐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고갱과 다투게 되었고, 마음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귀 일부를 자르고 말았으며, 결국 주민의 신고로 생레미의 요양 병원에 가게 된다. 고흐는 후에 기억을 되짚어 이 방을 다시 그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열정 많고 따뜻하던 화가의 방에는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유독 외로워 보인다.
바실리 칸딘스키, ‘Interior (My dining room)’, 1909, 카드보드지에 유화 50x65cm
오! 나의 다이닝 룸
칸딘스키
세상에! 이렇게 알록달록한 주방이 있을까? 우리 집 주방도 이런 모습이라면 나는 아마 영화 <줄리&줄리아> 속 주인공들처럼 매일 요리에 빠져 지낼 것이다. 대체 이런 사랑스러운 주방을 가진 집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이 그림은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그의 집 주방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는 무르나우Murnau에서 지내던 시절 이 그림을 그렸다. 러시아인인 칸딘스키는 당시 팔랑스 미술학교Phalanx School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재직하며 독일에서 지냈고, 이곳에서 제자인 가브리엘 뮌터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바이에른 지방 무르나우에 집을 얻어 함께 지내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했다.
나는 칸딘스키와 가브리엘 뮌터가 함께 창작 활동을 한 이 시기 두 사람의 그림을 모두 좋아한다. 두 예술가가 사랑에 빠진 시기에 선보인 창작물들은 각각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고, 선한 열정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두 사람이 함께하던 청기사파는 해산되고 러시아인인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고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진심으로 사랑하던 이와 함께 있던 방은 온통 색안경을 쓰고 본 세상 같다. 그 색안경이 비록 우리를 눈멀게 할지라도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라고 하라면 나는 기꺼이 그 제안에 응할 것이다. 사랑을 나눈 방들은 늘 찬란하다.
박오롬, 자화상, 2004, 보드지에 과슈, 아크릴, 38.7×36.5cm
붓만 있다면
박오롬
너무 좁고 너무 낮다. 이 좁고 낮은 방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박오롬 자신이다. 온통 붉은 방, 어디부터가 벽이고 바닥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 오로지 노란 선으로 구분을 해두었다. 마치 1950~60년대에 그려진 듯한 이 그림은 사실 1984년생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작가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배경이 근대적으로 느껴졌다면 아마 그가 입은 옷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는 화가들의 작업 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예술가들은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시간을 투자한 것에 비해 수익을 내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화를 즐기고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은 많지만, 문화를 진정 소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원피스를 사고, 신발은 사지만, 작가의 그림에 돈을 쉽게 쓰지는 않는다. 직장인들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하루하루 불투명한 앞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매일 던지며 사는 삶이 나는 예술가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박오롬의 그림 속 좁은 집 안의 화가 모습이 ‘웃프다’. 작지만 화려한 색상이 찬란한 꿈처럼 느껴지고, 깊은 한숨이 구름처럼 둥글게 그려진 모습이 유머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것은 그의 모습이 느긋해 보인다는 것. 세상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고, 나 자신에게 떳떳한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 같아 보는 내가 흐뭇하다.
삶은 역시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그리고 여유다. 나에게는 이 작은 아티스트의 방이 세상 그 어떤 미술관보다 크다. 앗, 지금 보니 누군가 함께 그리는 이가 있었다. 노란 손 하나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제 보니 합동 작품이었네.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