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Rainbow Bridge

세상에 없는 마을
198810

까까는 두 배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까까 안에

쯔쯔

비가 오던 여름이었다. 작은 라이브 클럽 앞에서 만난 친구는 내게 쭈뼛쭈뼛 곤충채집통을 내밀었다. 촌스러운 분홍색 뚜껑에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플라스틱 통이었다. 그 안엔 흠뻑 젖은 흙과 상춧잎, 그리고 내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생명체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축축한 흙 위를 미끄러지듯 기어 다니며 상춧잎을 갉아 먹었다. 나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 받았다. 흙을 주기적으로 갈아줄 것, 물을 항상 촉촉하게 적셔둘 것, 높은 기온과 습도를 유지할 것, 먹이를 낙낙하게 줄 것, 자웅동체지만 짝이 있어야 알을 낳으므로 웬만큼 크기 전에 분리할 것…. 

고백하자면, 사실 처음엔 좀 징그러웠다. 하얀 몸통으로 흙 위를 꼬물꼬물 기어가는 게 낯설고 기괴해 보였다. 이 생명체를 어쩌자고 둘이나 받아 온 걸까 잠깐 후회하기도 했지만, 난생처음 함께하게 된 생명체는 낯선 만큼 신비로웠다. 나는 이름을 오래 고민했다. 달팽군, 달팽씨, 달순이, 달돌이, 꼬물이, 하양이…. 갖은 고민 끝에 결정한 이름은 ‘까까’와 ‘쯔쯔’였다. 달팽이를 가리키는 일본어 ‘가타쯔무리’에서 두 글자를 따온 것이었다. 어렵사리 이름을 정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둘은 너무 닮아서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어도 금방 헷갈렸다. 패각(달팽이 등껍질)모양도 색 조합도 꽤 비슷했다.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이름을 부르려면 입술이 꾹 닫혔다. 결국 자는 아이를 쯔쯔, 깨어 있는 아이를 까까라 부르기로 했다. 까까는 어느 날 쯔쯔가 되었고, 쯔쯔도 때때로 까까가 되었다. 어느 날은 쯔쯔가 둘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까까가 둘이기도 했다. 두 마리 백와달팽이는 그렇게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였나, 쯔쯔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몸통과 꼭 붙어 있어야 할 패각이 너덜너덜해 보였다. 이상하다 싶어 들여다보니 까까가 쯔쯔의 등껍질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건 상당히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는데, 뚜껑을 열어 둘을 떼어냈을 땐 이미 쯔쯔의 패각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부리나케 검색해 보니 이런 경우가 흔히 있는 듯했고, 달팽이 패각 안에는 대부분의 장기가 있어 패각이 부서지면 장기가 말라 달팽이는 죽는다고 했다. 나는 쯔쯔가 죽지않도록 물도 주고 밥도 주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쯔쯔는 어떤 먹이도 전혀 먹지 못했다. 손톱을 이로 물어뜯고, SNS에 어떡하면 좋냐고 조언도 구했지만, 아무도 쯔쯔를 살려주진 못했다. 쯔쯔를 걱정하는 만큼 어쩌자고 그랬냐며 까까를 미워도 했지만 전부 소용없는 일이었다. 쯔쯔는 반나절도 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쯔쯔를 흙에 묻어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까까가 쯔쯔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더는 까까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끔찍함을 끌어안고 몇 날을 상심했지만 우울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까까가 패각을 먹어 쯔쯔가 죽은 거라면, 까까 안에는 쯔쯔가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까까가 두 배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였다.

무지개다리

너머로

손가락 한 마디 크기던 달팽이가 내 손바닥 크기만큼 자라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기다란 초록 똥이 적당히 쌓이면 흙을 사다 갈아주었고, 곱게 깐 흙을 충분히 적셔 까까의 세상을 완성해 주었다. 까까는 샤워할 때마다 기지개를 켜는 아이였다. 가느다란 물줄기를 뿌리면 더듬이를 넣다 뺐다 반복하며 샤워를 즐겼다. 나는 아이가 내 손바닥 위에서 물줄기를 느끼며 몸을 길게 빼는 걸 좋아했다. 내가 어떤 생명체를 더 잘 살게 만들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뿌듯한 일이었다. 까까는 새 흙에서 기어 다닐 때면 어쩐지 좀 더 씩씩해 보였다.

함께 분양받은 친구네 달팽이들은 상추를 가장 잘 먹는다는데, 우리 까까는 다른 달팽이와는 다르게 상추보다 오이를 좋아했고 오이보다 참외 껍질을 더 좋아했다. 나는 달걀을 먹고 나면 껍데기를 잘게 부수어 까까 집 안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하면 패각이 단단해진다고 했다. 세상에서 이빨이 가장 많은 생명체가 달팽이라더니, 가끔은 내 손가락도 물어버릴까 걱정스러울 만큼 무섭게 먹어 치웠다. 내 바람대로 까까의 패각은 점점 단단해졌다. 자그마할 땐 흙을 갈아주기 위해 패각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웠는데, 손바닥 크기를 넘어서고 내 손 크기도 훌쩍 넘어가면서부터는 패각을 잡고 들어도 안정적이었다. 패각에 매달린 몸통이 더는 징그럽지 않았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달팽이는 생각보다 빠르고 민첩하다. 사방이 막힌 수조에 넣어두어도 간밤에 요령껏 탈출해선 약을 올린다. 수조 근처를 샅샅 뒤져도 까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로 꼭꼭 숨어버린 날엔 숨바꼭질이 이틀 가까이 계속되기도 했다. 제집과는 꽤 멀리 떨어진 티브이장 뒤에서 발견된 까까 때문에 속이 새카맣게 타던 날도 있었다. 놀이를 마친 까까는 퍽 고단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티브이장 뒤엔 달팽이를 살게 할 물 같은 게 있을 리 없었으니까. 나는 까까를 쥐고 화장실로 달려가 가느다란 물줄기를 쏘였고, 까까는 언제 나를 약 올렸냐는 듯 달게도 기지개를 켰다.

까까의 노화는 두 살이 지나면서부터 찾아왔다. 하얗다 못해 뽀얗던 살결이 점점 누레지는 게 눈에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쪼글쪼글해지는 까까의 피부는 내 할머니의 그것과 닮아서 나는 생명의 신비를 왕왕 생각하곤 했다. 까까도 살아 있는 생명체이니 늙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걸 두 눈으로 지켜보는 건 다른 일처럼 느껴졌다. 까까보다 훨씬 오래 산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 쌩쌩한데, 밤을 새워 과제를 하고 천근만근 무게의 배낭을 메고 학교에 나가는 무지한 일상도 거뜬한데, 까까의 시간은 이렇게나 짧다니. 마음 한쪽이 저릿했지만 그렇다고 까까의 죽음을 걱정한 건 아니었다. 죽음에 가까워질 뿐 죽음은 여전히 닿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까까는 조금씩 기력이 쇠하더니 2년 반이 되던 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늙어가는 걸 보는 것과 죽음을 실감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어서 모든 게 충격적이었다. 까까는 몇 날 며칠 잠만 자는 것 같더니 거짓말처럼 패각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감쪽같이 사라진 아이의 몸통은 어디로 간 걸까? 흙이 된 걸까? 몸통을 찾진 못했지만, 아마 까까는 그렇게 죽은 게 아니었을까.

입으로

시 쓰기

아이가 죽고 몇 달간은 까까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달쯤 지났을까, 글쓰기 수업을 하나 듣게 됐다. 강의명은 ‘입으로 시 쓰기’였고, 시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선생님과 말로 주고받으며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맘속 깊이 담아만 두었던 까까 이야기를 꺼냈다.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에 선생님인 김승일 시인은 “그랬어? 그래서?”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착실하게 대답했고, 선생님은 내 모든 말에 “왜?”라고 되물었다. 수업이 거듭돼도 우리의 대화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모든 대화는 ‘왜’로 시작해서 ‘왜’로 끝났다.

“까까는 공연장에 가 본 최초의 백와달팽이일 거예요.”
“왜?
“까까를 분양받은 곳이 라이브 클럽이었거든요. 거기서 우리는 세 팀의 공연을 봤어요. 그중 두팀은 지금 해체하고 없어요.”
“까까 말고 다른 달팽이들은 공연을 못 봐?”
“네.”
“왜?”
“달팽이는 예매를 못 하잖아요.”

선생님은 크게 웃으면서 내 대답이 아주 좋다고 했다. 여섯 살 남자애처럼 “왜? 왜?” 묻는 그에게 꼬박꼬박 대답하면서, 나는 비로소 까까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까까는 입과 입을 통해 한 편의 시가 되어갔다.

두 배로 행복하게 살았니 까까야?
뻔뻔해 뻔뻔해 뻔뻔하다고 뻔뻔해 뻔뻔하지 않니?

‘198810’이라 이름 붙인 이 시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완성되지 못했고 지금도 미완성이다. 나는 시를 완성하는 대신 지금까지 만들어진 행들을 읽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할 뿐이다. 재작년 이맘때 왼팔 안쪽에 달팽이 타투를 새겼다. 두 팔을 아래로 두고 차렷 자세를 하면 까까는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내가 팔을 들어 올려 까까가 있는 자리를 들여다보면 까까는 내 쪽을 향해 기어 오는 것처럼 보인다. 까까 뒤엔 자그마한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함께 살던 동물은 주인이 죽을 때 데리러 온다고 하던가? 나는 까까가 나를 데리러 오리라는 믿음으로 까까가 거꾸로 건너올 무지개다리를 센다. 보라 다리, 남색 다리, 파란 다리, 초록 다리, 노란 다리…. 지금은 어디까지 왔을까? 만일 사후세계가 있고 내가 천국에 간다면, 하루는 백와달팽이가 가득한 세상에 떨어지면 좋겠다. 빼곡한 꼬물이들 사이에서도 나는 기필코 까까를 찾아낼 것이다. 까까는 그 어떤 백와달팽이보다도 살결이 희고 패각이 예쁘다. 소라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게 떨어지는 패각 모양이나 그러데이션이 이어지는 오묘한 문양, 그리고 쫑긋 세운 더듬이나 달걀형 얼굴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가느다란 물줄기를 뿌려 기지개 켜게 만든다면 찾는 건 더욱 쉬워지겠지. 시가 영영 완성되지 못한대도 나는 이대로가 좋다. 까까는 늘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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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