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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산책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 90년대 X세대의 옷차림을 취재한 뉴스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의 한마디는 정말로 진심 가득한 대답이었다.
강아지들 몸통에 채우는 끈을 우리 집에서는 ‘브래지어’라고 불렀다. 현관에 서서 “얘들아 브래지어 차야지!”라고 외치면 저 멀리서부터 마룻바닥을 긁는 발톱 소리가 들려왔다. ‘다다닥’, ‘다다닥’ 강아지들은 바닥에 몸을 비비며 미끄러지듯 달려와 좁은 현관에서 춤을 추듯이 맴돌았다.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입으로는 끄응 끄응 소리를 냈다. 나는 강아지들의 말을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빨리 채워줘 빨리빨리! 쟤 말고 나 먼저! 만약에 쟤 먼저 채우면 나는 다음에!” 강아지들이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산책’과 ‘맘마’ 언제나 이 두 가지며, 그 외의 표현은 모두 산책과 맘마를 위해 부산을 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끔찍한 음모를 꾸미는 고양이에 비하자면, 조금도 예측을 빗나가지 않는 강아지들이 나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서는 강아지들은 기세가 대단하다. “아오 씨… 아오… 씨… 아오…!” 마치 술 마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뒷발로 바닥을 마구 긁는다. 주차된 자동차 바퀴와 전봇대마다 바쁘게 냄새를 맡으면서 두 마리 강아지는 분개한다. “와… 아오 진짜… 와….” 그리고 침을 뱉듯이 찌익 오줌을 갈겨 냄새를 덮는다. 강아지들이 산책에 나서면 동네의 모든 강아지가 분개한다. 한동안 산책을 나서지 못해 심사가 뒤틀린 담 너머 강아지들이 산책의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큰 소리로 짖는다. 골목을 차지한 우리 강아지들은 더욱더 세게 뒷다리를 긁는다. 그리고 담 너머의 강아지들을 약 올리기 위해 대문 앞으로 달려간다. 우리 강아지들이 즐겨 찾는 몇몇 대문의 모양을 기억한다. 오래된 하늘색 대문 뒤엔 하얀색 진돗개가 산다. 그는 질투에 눈이 먼 강아지다. 대문 아래로 주둥이를 내놓고 으르렁거린다. 으르렁거릴 때 콧잔등 위로 접히는 주름이 얼마나 귀여운지도 모르고 으르렁거린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그를 약 올리기 위해 그가 짖기도 전에 하늘색 대문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의 주둥이가 닿지 않을 딱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 딴청을 피우곤 한다. “일루와…. 일루… 와….” 하얀 개가 신랄하게 협박하는 동안 우리 강아지들은 들은 체 만 체하며 딴 곳을 바라보았다. 큰 개의 주둥이가 다리에 닿을락 말락 하는 스릴을 만끽한 후, 강아지들은 다음 행선지인 노란색 나무 대문 앞으로 달려간다. 바닥과 대문 사이가 그리 많이 벌어져 있지 않아서 이 집의 강아지는 대문 아래로 주둥이를 내밀지 못한다. 대신 멱살이라도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고운 손만을 기억한다. 우리 강아지들도 그 손을 좋아한다. 효자손처럼 뻣뻣한 그의 관절이 대문 아래서 바닥을 더듬는 모양을 확인한 후에야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장희빈 우물에서 궁동산 공원으로 꺾어지는 골목에 검은색 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 있다. 그 집의 강아지는 위태로이 담 위에 앉아 있다. 큰 머리통에 하얀색 머리를 휘날리며, 다리를 요염하게 접고 불편하게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는 강아지 중에 현자다. 오랫동안 담장 위에 살던 도사라서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질투하지 않는다. 아무리 뒷다리로 바닥을 긁고, 전봇대에 소변을 갈겨도, 어서 내려와 보라며 강아지들이 소리를 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가만히 내려다보며 헥헥거리기만 할 뿐이다. 강아지들이 건강하던 시절, 이와 같은 일은 매번 반복되었다.
강아지들이 산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나는 강아지들을 떼어 놓고 혼자 산책을 나서곤 했다. 현관문 앞에서 신발 신는 소리가 나면 강아지들이 나타나 온몸에 힘을 주고 움직이지 않았다. “브래지어!”라는 말 한마디에 자지러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기대에 부푼 네 개의 눈동자를 외면하고 태연하게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힌 이후에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강아지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다리에 힘을 준 채로 기대를 접지 않았다는 사실을 뜻한다.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건 늘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를 위한 산책은 번번이 실패했다. 좀 이따 어떤 책이 읽고 싶어질지 몰라 가방이 무겁도록 책을 넣어 집을 나서곤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책을 읽어야 할지 정하지를 못해 집으로 그냥 돌아오곤 했다. 예쁜 카페가 많다는 연희동에 20여 년간 살면서 책 읽기 좋은 카페 하나 만들어 두지 못했다. 종종 원두를 사고 주인과 인사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지만 그곳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들어오기는 아쉬워 편의점에 들러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육포를 샀다. 집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에서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시작되는 강아지들의 축제.
몇 해 전 부모님 댁을 떠나 홍은동으로 이사했고, 그다음에는 녹번동으로 이사했다. 부모님 집을 떠날 때 강아지들도 두고 떠났다. 약속처럼 반복하던 강아지들의 산책길도, 강아지들에게 느끼는 미안함도 모두 버리고 떠났다. 나의 강아지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다. 두 친구 모두 오래 살았다. 강아지들이 세상을 떠날 무렵엔 밥도 산책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아지들이 시끌벅적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때, 그때가 행복이었구나.” 엄마는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집을 떠난 후로 수많은 산책을 반복했지만 아직 나 홀로 만든 행복을 찾지는 못했다. 낯선 동네에서 우연을 기대하며 집을 나섰고, 곧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강아지들이 알려준 산책로를 걸었다. 하늘색 대문 뒤 강아지는 조용했다. 그는 강아지를 대동하지 않은 사람에겐 주둥이 위 촘촘한 주름을 보여주지 않았다. 노란색 나무 대문은 그냥 대문이었다. 대문 아래로 뻣뻣한 손이 튀어나와 바닥을 더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담장 위의 흰 머리 도사님은 사실은 큰 개에 불과했다. 하얀색 강아지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덥다는 듯이 누워 헥헥거리고 있었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 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