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ind Read Like A Writing

글처럼 읽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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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글처럼 읽히는 영화들. 쓰고 적는 마음에 관하여.

5달러와 오래된 책에 적힌 것

<세렌디피티>(2001) 피터 첼솜 | 멜로

“틀렸으면요? 실수로 운명을 놓친다면요?
연락처 없이 헤어지면 운명이 우릴 다시 연결해 준대요?”
“오늘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멋진 말이네요.”

완전한 우연 속 중요한 발견. 영화는 제목의 의미처럼 뜻밖의 엇갈림과 필연으로 채워져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백화점에서 같은 장갑을 고른 조나단과 사라는 시작부터 우연한 만남에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미 각자 연인이 있었고 사라는 조난단에게 운명을 믿어보자고 한다. “만날 운명이라면 만나게 돼 있어요. 지금은 아니죠.” 그녀는 조나단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5달러짜리 지폐로 사탕을 사고 낡은 책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헌책방에 판다. “이해하지 말고 믿어요 운명을.” 낭만으로 뒤섞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서로 기억만 남긴 채 몇 해를 보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화 속 우연을 보면서 ‘픽션은 픽션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고로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운명을 믿게 되면 너무 많은 일들이 허무해지니까. 사실 그동안 나에게 벌어진 수많은 행운이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다. ‘운이 너무 좋아서’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 말에 늘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얻은 행운에 굳이 겸손을 더할 필요는 없었는데…. 사라와 조나단이 5달러 지폐와 헌책에 적힌 메모를 발견한 것도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엔 조금 억울하다. 서로 간절히 원했던 지난날의 결과라고 하는 편이 더 좋다.

삶의 끝에서 쓴 편지

<디 아워스>(2002) 스티븐 달드리 | 드라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인생의 모든 행복은 당신 덕분이라는 거예요.
내게 한결같은 인내를 보여줬던 정이 깊었던 당신.
이제 내게 남은 건 당신의 그 깊은 정뿐이에요. 더 이상 당신 삶을 망칠 순 없어요.
세상에 우리보다 행복했던 연인은 없었을 거예요. 버지니아로부터.”

흐르는 강물과 나갈 채비를 하는 손.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가 죽기 전에 남긴 편지를 읊으며 시작한다. 자신이 쓴 마지막 글이 영화 속 일부가 된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나는 편지를 쓰는 손에는 여러 감정이 있다는 걸 이 장면을 통해 알았다. 다급함, 망설임, 떨림, 결연함, 애틋함까지. 펜을 잡은 손은 다양한 서사를 품고 있었다.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각기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세 여자의 삶을 이어서 보여준다. 누군가에겐 최선의 선택이 죽음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죽음 같은 현실보다 삶을 택했다고 말한다. 삶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버지니아의 목소리를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는 <디 아워스>에서 내가 기억하는 건 시작과 끝이다. 편지 위에 얹은 손, 흐르는 강물에 멈춘 사람의 모습만은 오래도록 맴돈다.

책장을 넘기듯

<토니 타키타니>(2004) 이치카와 준 | 드라마

“외롭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외롭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외로워지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늘 따라다니게 되었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서워졌다.”

파란 새벽,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토니 타키타니>를 읽었을 때였다. 기분 좋은 먹먹함에 동명의 영화까지 이어 보기로 했다. 사실 영화를 봤다기보다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책장을 넘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고독한 토니의 삶이 한 장씩 느리게 흐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행복의 크기가 커질수록 불안의 크기도 함께 늘어나는 법이다. 마침내 불안이 행복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떠났고 역시 토니 혼자 남게 됐다. 고독과 외로움은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고독은 혼자라서 온전한 것, 외로움은 혼자라서 사무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토니의 인생은 고독이 외로움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토니 타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건조한 내레이션과 사람들 사이에 홀로 있는 토니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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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