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g journey started from jeju

제주에서 시작된 이야기

제주에서 일 년 반을 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어쩐지 한국을 떠올리면 제주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참 이상한 일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지금, “한국은 그립지 않은데, 제주도는 그리워.”라고 말할 때마다 생각해본다. 제주도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나는 그곳에 무엇을 두고 온 걸까.

등 뒤의 목소리

보통 사람들은 제주에 정착하기 전 여러 번 제주를 다녀간다. 자주 묵는 숙소도 있고, 단골 카페도 있다. 익숙한 동네가 생기고 친구도 사귀고 자꾸만 걸음이 이어지다 결국 정착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한 제주 여행은 한두 번. 딱 한 번 묵은 숙소, 그러는 동안 단 한 번 가본 카페, 한 번 오른 오름, 겨우 한 번 발을 담근 바다가 전부였다. 그런데 휴가가 끝나고 한참 시간이 흘러도 제주가 잊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보통 “우리 또 제주도로 여행가자.”라는 말이 나와야 자연스러운 일인데, 우리는 그보다 먼저 “아무래도 제주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당시엔 잘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조금 신기하다. 그때 제주 여행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차를 빌렸고, 서로 거리가 떨어진 게스트하우스 네 군데를 2박씩 예약했다. 장마철이었다. 내내 비가 와서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못해 숙소에서 머문 시간이 길었다. 일부러 고른 것도 아닌데 숙소마다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쓴 일기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제주에서 우리는 ‘몽자, 왕초, 알, 다크’라는 이름의 네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고 탄탄, 대로, 일랑, 뭉치’라는 이름의 네 마리의 강아지를 만났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이름을 묻지 못한 많은 개와 말과 노루와 그리고 거미와 모기와 파리를 만났다. 제주는 사람이 주인인 땅이 아니라 동물과 벌레와 바람과 돌이 주인인 땅이었다. 그곳에서는 벌레를 만나도 “에잇, 벌레 이 자식!” 하며 내쫓아지지 않았다. 모기에 물려 다리는 온통 울긋불긋했지만, 내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증거인 듯해 밉지 않았다. 특히 한라산을 오를 때는 온갖 벌레들의 향연에도 내가 너희들이 주인인 이곳에 걸음 해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제주에서 등 뒤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삼십 년 넘게 살아온 시간의 등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똑똑똑. 이쪽을 한 번 봐봐.’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돌아간 등은 다시 돌려세우기 어렵다.

어디에나 제주도

회사를 그만두고 긴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제주도에 가서 살기로 마음을 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돌아가면 제주도에서 살 것’이라는 생각은 큰 위안이 되었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서울에서 취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여행이 조금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끝이 다가올수록 불행해졌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방법을 애써 찾아내어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조금 다른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살면 전과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했다. 여행하면서도 좋은 풍경을 보면 제주도 생각이 먼저 났다. “어, 여기 제주도 같다.”, “전에 한라산 갔을 때 올라갔던 그 길과 비슷하다. 그렇지?” 비교 상대는 늘 제주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정말로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지내는 한 달 내내 우리는 지독한 여행 후유증에 시달렸는데, 제주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 그 후유증이 사라졌다.

제주에서의
일년 반

제주도에서의 일년 반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나는 가장 먼저 친구들을 떠올릴 것이고, 자주 가던 카페, 식당 그리고 바다와 오름, 좋아하는 도로에 대해 말할 것이다. 단골 카페 화장실 세면대의 묵은 때, 단골 식당에서 준 물수건의 감촉, 오름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봤던 꽃들, 도로를 달리며 보았던 노을까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곳에서 행복했다. “행복했다.”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좋았다. 

비로소 나의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제주에서의 하루하루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주도에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는 것은 사춘기 이후 오랫동안 간직했던 꿈이었고, 그 꿈을 나는 제주에서 조촐하게나마 이루었다. 어쩌면 제주도에 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들 때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주말이 되면 이주민들은 집에서 만든 양초, 가방, 빵 같은 것을 들고나와 벼룩 시장에서 팔았다. 제주에서 살기 전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웹 디자이너였고, 교사였던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만 꾸던 소박한 꿈들을 거리로 내어놓았다. 그 꿈의 결과물 사이를 걸을 때마다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꿈이 있는데, 해볼까. 써볼까.’ ‘똑똑똑’ 등을 두드려 나를 돌려세운 제주도는 이번에는 ‘토닥토닥’ 그 등을 어루만졌다. 그 격려에 힘입어 내 이름으로 된 두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꿈을 이룬 것과 무관하게 제주에서 우리의 수입은 서울에서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아무래도 불편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느꼈다. 서울에서 살 때는 소비가 삶의 질이었다. 그래서 얼마를 버는가가 중요했다. 그래야 맛있는 식당도 가고, 공연도 보고, 마음에 드는 옷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래야 잘 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실 삶의 질이라는 건, 얼마나 내 시간이 있는지, 스트레스를 얼마나 덜 받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제주에서 살며 알았다. 제주에서 우리는 돈은 적게 벌었지만, 삶의 여유는 확실히 늘었다. 그걸 몸으로 겪어 알고 나니 조금 덜 벌어도 무서울 게 없었다. 무서울 게 없으니 용기가 났고, 용기를 낸 우리는 제주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왔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우리의 등을 떠민 건 제주도였다. 등을 두드려 돌려세우더니, 토닥토닥 격려를 하고, 이번에는 용기를 내라고 등을 떠밀었다.

제주도로
돌아갈 건가요?

바르셀로나에 온 지도 일 년 반이 다 되어간다. 사람들은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제주도에서 살 거예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한다. “네.” 바르셀로나에서 얼마나 더 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곳은 제주도가 될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를 보면 “제주도에도 이런 카페 있으면 어울리겠다”라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제주산 재료로도 이렇게 요리할 수 있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좋은 풍경을 보면 “서귀포로 넘어가는 도로 같아.”, “여기 꼭 마방목지 같지 않아?”라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제주의 음식과 풍경을 그리워한다. 우리는 제주도에서 더 오래오래 잘 살기 위해, 제주도를 떠났다. 4년 전 휴가를 내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남미를 거쳐 제주도를 들렀다가 바르셀로나까지 왔다. 이 이야기는 제주도에서 끝이 날 것이다. 그 이야기가 부디 좋은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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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