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ttle Thing Makes Good

우리는 꾸준히 걸어가는 중이니까, 한수희 작가

요즘 나는 새벽에 일어난다. 해가 뜨기 전 어둑어둑한 집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와 책상에 앉는다. 부모로 산 지난 4년은 나의 호기심과 관심사보다 아이의 성장과 욕구가 더 중요한 시간이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혼자의 시간을 위해 아침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일어날 정도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이 아는 작은 기쁨이 불어가면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빠짝 힘 들어갔던 어깨의 힘도 조금씩 풀렸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남들이 말하는 ‘좋은 엄마’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자신이 즐거운 것들을 하며 그 기운을 나누는 엄마가 ‘좋은 엄마’일 거라 믿고 싶을 뿐이다. 그 신념으로 새벽에 일어나 좋아하는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영어 공부도 조금 한다. 내 의지로 아침이 충만하게 채워지고 나면 아이를 깨우는 일도 끼니를 준비하는 일도 전과 다르게 산뜻하다. 오래도록 이렇게 지내고 싶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쳇바퀴 돌아가는 삶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다고. 그즈음 내 옆에 살포시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다독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오늘 푹 쉬어야 내일 또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어. 오늘 너무 달리면 내일 못 일어나. 나는 단거리 주자가 아니라 장거리 주자야. 1년 달리고 말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달리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해. 게으름 피우겠다는 게 아니야. 꾸준함의 힘을 믿어보겠다는 거야. 

–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INTERVIEW

한수희 | 작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날마다 놀이터 구석에서 읽었어요. 웅성웅성 노는 아이들 뒤편에 앉아 수희 씨와 얘기를 나누는 기분 같았달까요.

그런 말 들으면 기분 좋아요(웃음). 글을 쓸 때 말하듯이 쓰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괄호나 중간에 쓸데없어 보이는 말도 많죠. 읽는 게 아니라 옆에서 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같이 대화하듯이 읽힌다고 하면 뿌듯해요. 

 

작가 소개도 시시콜콜해서 좋았어요.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는 “안양의 산 아래 작은 동네 낡은 집에서 남편, 아이 둘과 함께 살며 해 뜰 무렵에는 산책을, 해 질 무렵에는 달리기를 한다.”라고 적혀 있던데요(웃음). 

뉴욕의 작업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느낌 있잖아요? 그게 너무 웃겨서 일부러 그거 패러디 한 거예요. 안양의 어디. 너무 웃기죠. 저도 안양에 살게 될지 몰랐지만.

 

한적하고 평온한 거 같아요. 

저도 이 동네를 좋아해요. 원래는 평촌 아파트 단지에 살다가 이사 왔어요.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돈은 올려줘야 하고, 남편은 월급이 깎였죠. 또 대출을 받아 메우면서 살아야 할 텐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닌 거 같은 거예요.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요. 주택에서 살자고 마음먹고 알아보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어요. 값도 아파트의 반 정도면 되더라고요. 그때 큰 용기를 낸 거 같아요.

 

어떤 용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결혼했으면 서울 30평대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아파트에 살고, 거기서 아이들 키우고, 가까운 초등학교에 보내는 그런 생활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냥 뭐 이렇게 살 수도 있지.’ 하면서 내려놓았어요. 많은 결심이 필요했죠. 어떤 얘기까지 들었냐면요, 시부모님이랑 친정 부모님이 주택에 살면 애들이 무시당하는 거 아니냐고, 따돌림 당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저는 그런 얘기 들으면 되게 오기 생기는 스타일이에요(웃음). ‘두고 봐. 따돌림당하는지 한 번 보자.’ 하고 마음먹던 기억이 있어요.

 

살아보니 어떻던가요?

처음엔 골목길에 사람이 지나가는 게 놀랍고 무서워서 이사하고 6개월까지 밤에 밖에 안 나갔는데요. 나중엔 문 열어두고 살았어요. 1층이니까 아이들도 마음껏 뛰어놀고, 음식물도 앞에 내놓으면 돼서 편했어요. 지금은 빌라로 이사 왔지만 주택은 마당이 있잖아요. 애들은 늘 집에서 나가고 싶어 하고요. 대문만 닫아놓으면 제가 집 안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아이들이 놀 수 있어 좋았어요. 수도꼭지 틀어주면서요. 오래되고 낡고 좁은 집에 살아도 하고 싶은 일 하고, 맛있는 거 만들어 먹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더라고요.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한가 봐요. 그렇게 시시콜콜한 일들로 하루를 채우며 사는 거겠죠? 커다란 행운이나,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의 좌절보다는 별일 없는 하루가 더 많고요.

그렇죠. 작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기적 같다고요. 지금 제 나이가 되기도 전에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도 있잖아요. 마흔이 넘으면 사람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마음은 준비가 안 되었나 봐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작년 내내 쓰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나라는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무섭다,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같은 생각에 굉장히 빠져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요. 남들이 30대를 맞을 때 저는 아이 둘을 출산하느라 제대로 못 겪었거든요. 아, 40대를 좀 힘들게 맞은 거 같아요.

 

20대는 어땠어요? 

20대 초반은 힘든 나이잖아요. 제2의 사춘기가 와서 힘들었어요. 집은 개판이고 술 먹으러 뛰쳐나가고 그랬어요. 자존감도 약했어요. 더 큰 거, 내 꿈, 어떤 남자의 마음을 얻는 것 등 제가 갖지 못한 걸 많이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주 진하게 난리를 쳐서 미련도 안 남아요(웃음).

 

딱히 그럴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요?

반항심이었던 거 같아요. 너무 모범적인 청소년기를 보내고 갑갑했어요. 그리고 그때는 시대적으로 난해한 분위기였어요. 운동권 세대가 완전히 끝났고 운동권과 오렌지 세대가 공존하던 그 이후 대학에 들어갔죠. 구시대와 결별 같은 거였을까요. 주변에서 머리 염색을 오색으로 하고. 무슨 귀신 떨치는 거처럼 굴었어요. 저도 덩달아 그렇게 보냈죠. 20대 중반 이후 취직을 하고 돈을 벌면서 제 삶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시작했어요. 회사라는 곳이 주는 안도감이 있잖아요. 학교 다닐 때는 아무 틀 없이 제가 무언가를 해내고 증명을 해내야 했다면 회사라는 안식처가 생긴 거죠. 신수가 편해지니까 이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살고 싶다가 생긴 거 같아요.

 

어떻게 살고 싶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어요. 무절제한 자유로움은 아니고, 운동도 하고 싶고, 건강도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저는 규칙적인 생활이 잘 맞고 울타리가 있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소소한 일상은 언제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대학교 때 홈페이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나모 웹에디터라는 프로그램으로 ‘a href’ 이런 거 직접 써서 링크 걸면서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블로그를 했어요. 하소연하듯이, 신세한탄, 팔자타령이었죠(웃음). 거의 친구들이나 보고 댓글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경 안 썼어요. 일기장처럼 썼거든요. 그렇게 7~8년을 쓰다가 《어라운드》에 글도 쓰게 된 거예요. ‘이거라도 안 하면 속상해서 어떻게 살아.’ 하면서 분출하듯이 썼어요. 글을 쓰고 싶다기보다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어요.

 

10년이 넘도록 계속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요.

야심이 없어서 그래요. 어떤 목적을 가지면, 달성이 안 되면 너무 힘들어요. 5킬로그램을 빼겠다는 목표로 달리지 않고, 오늘 네 바퀴만 돌아보자는 식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 그 자체가 개운해요. 땀 흘리는 기쁨도 알게 되고요. 어떤 걸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사실은 견디기 힘든 거 같아요. 무슨 일이든. 그때그때 내가 가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 편이에요? 루틴을 정해놓고 생활하는 거 같던데요.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났어요.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고 글 쓰고 아이들 아침 차려주고 학교 보냈어요. 그다음 다시 일하고, 저녁에 아이들이랑 같이 밥해 먹고, 집안일하다 밤 아홉 시 반이나 열 시쯤 자고요. 요즘은 작업실 공사랑 책 나온 거 때문에 사이클이 많이 망가졌지만요.

 

아침형 인간이네요. 이런 생활을 한 계기가 있었나요?

1~2년 전이었던 거 같아요. 정신없이 일과 집안일, 육아를 동시 다발적으로 했어요. 늦게까지 일을 하면 힘드니까, 아이들에게 짜증내고 그러면 망가지고…. 이런 생활이 반복됐어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요. 그러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저녁에는 절대로 일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사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딴짓을 하면서 시간이 늘어지는 거거든요. 네이버 연예 뉴스 검색하면 하루가 다 가고, 갑자기 막 쇼핑을 하고 있고(웃음). 근데 만약 아이들이 없어서 야근을 할 수 있는 상황이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 같아요.

 

달리기도 하시잖아요.

아침에는 산책하고, 달리기는 밤에 해요. 겨울에는 추워서 낮에 하고요. 많이 피곤할 때 더 자주 하는 거 같아요. 사실 몸을 써서 피곤하다기보다는 머리를 써서 힘든 게 더 많아요. 머리만 노동을 하니까 괴리가 온다고 생각해요. 진이 빠지는 기분. 육체노동을 할 때의 상쾌한 기분이 아니죠.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계속 쉬지 못하고 휴대폰을 보고 있고요. 운동을 하고 땀을 쫙 빼고 나면 균형이 맞는 거 같아요.

 

아이들과 매일 같이 하는 일과가 있나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매일 밤 자기 전 같이 책을 읽었어요. 공부는 전혀 안 시켜서 중학교 1학년인 첫째가 영어를 올해 처음 배웠어요. 알파벳도요.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도 마찬가지고요. 대안 학교에 다녔거든요. 지금은 일반 학교에 다니는데 학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매일 같이 문제집 풀고 제가 봐주는 시간을 하루에 삼십 분 정도 가져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정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요.

저희는 일단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직도 저녁은 웬만하면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고 해요.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정말 힘들지만 바깥 음식 사 먹는 버릇을 들인다거나 채소를 안 먹으려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간단한 볶음밥이라도 집에서 하려고 해요. 그리고 애들을 일찍 재워요. 첫째가 초등학교 땐 여덟시 반, 아홉시 즈음 재웠는데 지금은 열 시에 자요. 아침엔 일곱 시쯤 일어나고요. 잠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일찍 재우고 많이 자게 했더니 아이들이 안 아픈 편이에요. 사실 제 시간이 너무 필요한 것도 있었죠. 일찍 재워야 조금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 수면교육을 3년 시켰어요(웃음). 집에 불 다 끄고 매일 같이 잠들고 그랬죠. 그때는 밤에 일을 했지만 지금은 쉬고 놀고 술도 한 잔 마시고 애들이 없는 시간을 즐겨요.

휴일은 어떻게 보내는 편이에요?

지금은 애들이 커서 따로 무언가를 함께 하려고 노력하진 않아요. 그 전에 같이 하던 게 있으면 계속 해오는 거죠. 가을에 자라섬에 캠핑을 가거나 주말에 도서관 가기 같은 거요. 좀 여유가 있을 때는 함께 집 근처 공원에 갔어요. 누워서 음악 듣고 책 보고 피자 사 먹고…. 특별한 일은 안 하고 보내요. 집에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같이 봐준다거나 영화를 함께 보는 정도예요.

 

클수록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나요?

저는 애들이랑 엄청 친하진 않아요. 사춘기가 되어서까지 부모와 너무 밀착하고 있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네 인생은 네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 그렇게 사는 게 좋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 엄마.” 그러면 싫을 거 같아요. 자기 인생 각자 살다가 만나면 반갑고 그러면 좋겠어요. 저희 부모님이랑 제가 그렇거든요. 부모님이랑 대화하면 즐거워요. 서로 어떻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요. 그게 편하더라고요.

 

보통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멀어져 간다고 하던데요. 친구를 더 좋아하고….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왜냐하면 아이가 대안 학교에서 일반 중학교로 가면서 친구 관계를 많이 힘들어했어요. 아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에 간 거잖아요. 한 달 내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엎드려 있었대요. 중학교 여자애들이 끼워주는 게 쉽지 않잖아요. 두 달을 거의 매일 집에 와서 울었어요. 저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너무 개입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자기 인생이잖아요. 어떻게든 스스로 이 문제를 헤쳐나가면 좋겠어요. 딸이라서 더 조심하게 되는 거 같아요. “엄마 말이라고 근거 없이 다 들을 필요는 없어. 네가 선택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편이에요. 

 

그 나이에는 친구 관계가 전부인 거나 다름없죠? 

그렇죠. 이제 부모와의 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부모와의 관계는 이미 다 형성되어 있잖아요. 이제 부모의 품을 벗어나야 하는 때인 거죠. 아이는 지금 두 마음이 싸우고 있는 거 같아요. 어린아이의 마음과 밖으로 나가려는 마음이요. 무서운 거겠죠. 저는 일부러 좀 밀어내는 편이에요. 여기서 제가 발목을 잡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자기 길을 찾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건가요?

믿음은 없는데요(웃음). 그래도 나가야죠.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다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그걸 믿을 수밖에 없어요. 어떤 책에서 읽었어요. 육아라는 게 굉장히 힘겹고 가혹한 형벌처럼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런데 모든 인류가 짐승 상태일 때부터 오랫동안 남의 가르침 없이 육아를 해왔어요. 그렇다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올바른 무언가를 하려는 게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와 비슷한 마음이에요. 어떻게든 자기 길을 찾아가겠죠.

 

대안 학교에 다니다가 일반 중학교로 옮긴 이유가 있나요?

공교육과 사교육에 거부감이 좀 있었고, 대안 학교에 관심도 많았어요. 먼 곳에 있는 학교를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동네에 대안 학교가 있더라고요. 학비도 싸고 생긴 지 1년 정도인, 규모도 작고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학교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좀더 크니까 또래 친구가 많은 곳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즈음 저희도 학비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너무 대안적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안은 대안일 뿐이잖아요.

대안 학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이상적인 것을 생각하며 만든 공동체는 어느 순간이 되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인 거 같아요. 이상에 가깝게 노력을 해보는 건 괜찮겠지만 이상으로만 가다 보면 결과적으로 인간의 사리사욕이 끼어들 수밖에 없고요. 그런 부분이 많이 보여서 실망을 했죠. 아이들도 우리를 닮아서 너무 진지하고 깊어지는 문화를 못 받아들이더라고요. 

 

일반 학교는 어떻던가요?

괜찮더라고요. 제가 다닐 때보다 많이 나아졌던데요(웃음).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리적인 교육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이걸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구나. 이 정도면 됐지.’ 싶더라고요. 대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배경이 비슷해요. 부모의 성향이나 의식, 아이들도 비슷하죠. 공교육은 환경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어울리는 곳이라는 점이 괜찮더라고요. 급식도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밥을 모두 함께 먹고, 음식이 정말 다양해요.

저는 결정적인 계급, 문화의 차이가 ‘나는 어릴 때 이런 것도 먹어봤는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 친구가 어릴 때 타코도 먹고 파에야도 먹고 이것저것 다 먹어봤는데, 저는 스무 살 때까지 그런 음식을 못 먹어본 거라면, 그 충격과 차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박탈감, 위화감 이런 게 있을 거라고요. 급식이 그런 최소한의 차이를 줄여준다고 여겼어요.

검정고시를 함께 준비하면서 꾸준함을 배웠다고 했어요. ‘꾸준하려면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자신의 속도와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죠. 부모도 아이의 한계를 잘 알고 도와줘야 할 텐데요.

전 주변에 애 키우는 엄마가 거의 없어요. 아이 얘기를 이렇게 오래한 적이 오늘 처음이에요(웃음). 일부러 안 만나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제 아이가 공부 못하는데 엄마들이 ‘우리 애는 어디 보낸다. 그랬더니 몇 점 받는다.’ 하면 당연히 흔들릴 거 같거든요. 그러면 애를 그 기준으로 보게 될까 봐요. 저도 제 아이가 공부를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안 하니까 못하더라고요(웃음). 처음엔 충격을 받고 제가 잘 못 키웠나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제 스승님은 책이었어요. 책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사실 아이 엄마들 만나 하소연 정도는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엄마들의 세상은 엄마들의 세상일뿐인 거 같아요.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 밖의 세상이 있는데 학원 종사자들의 말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좀 무서워요. “요즘 이거 안 시키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에게 왜 자신의 불안을 전파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학교랑 학원 다니려고 자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 밖의 세계로 나가려고 학교를 다니고 집에서 교육을 시키는 건데 왜 그것밖에 생각을 못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 ‘실수를 하지 않겠다,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편이었다고 했어요.

맞아요. 우리 부모님은 나를 왜 이렇게 키웠을까? 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엄마가 저를 심하게 훈육했거든요. 글자 칸 공책을 주고 거기 안에 글자를 쓰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엄청 혼냈어요. 그런 일들이 싫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나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제가 애를 낳아보니까 그게 안 되는구나를 알았어요. 두 살 즈음부터 너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예민하고 너무 힘들게 하는 아이였어요. 그때 느낀 게, 내가 여기서 딱 잡아주지 않으면 애도 힘들고 나도 힘들겠구나. 내가 힘들면 난 애한테 화만 내고, 애는 악마처럼 굴 게 뻔하잖아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웃음). 

 

무리하지 않는 선이라면요?

규칙적인 생활을 만들었어요. 아이가 해선 안 되는 부분까지 제가 허용하고 있었더라고요. 굳이 제가 참지 않아도 되는데 그걸로 힘들어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잘 생각도 안 나요. 안 자려고 할 때, 안 먹으려고 할 때, 그런 거였죠. 단호해져야 했어요.

 

울타리를 만들어준 건가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는 어떻게 하든 괜찮다고 한 거죠. 너무 멀리 나가려고 할 때는 붙잡아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묻잖아요. 사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면 좋지 않을까?’ 우물쭈물 말했어요. 그러면 애들이 바로 눈치채요. 엄마도 확신이 없다는 걸.

 

그래서 뭐라고 답해주셨어요?

생각해봤어요. 나는 왜 기초 학력이라는 걸 무시하고 있을까? 제가 안 배워본 사람으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공부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건 위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애들을 닦달하는 게 싫어서 그랬는데, 기초 학력을 통해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게 아주 많잖아요. 그래서 “공부는 해야지. 잘하면 좋고 못하면 할 수 없지만, 하는 만큼은 해야지.” 하고 단호하게 말해줬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수긍하더라고요. 애들도 확신이 없었던 거예요. 부모도 확신이 없는데 애들이 무슨 확신이 있었겠어요.

 

책에 쓰신 말처럼요? “울타리가 없는 자유는 아이에게 혼란일 뿐이다.”

맞아요. 저는 제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봐요. 원래 저보다 훨씬 관대하고 쿨한 엄마요.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잖아요. 혼자일 땐 내가 만능이고 괜찮은 거 같지만, 조금만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되게 속 좁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잖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구나, 내가 편하게 키우는 게 최선이구나, 생각했어요. 그게 아이를 압박하는 정도만 아니라면요. 나는 애가 일찍 잤으면 좋겠어, 나는 애가 놀이터에서 딱 한 시간만 놀고 집에 왔으면 좋겠어, 나는 애랑 소꿉놀이하는 게 너무 싫어, 그럼 어떻게든 소꿉놀이 친구를 만들어주자. 이런 식으로 제가 좋고 싫음에 맞춰서 키웠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좀 덜 미워지더라고요. 

 

저도 소꿉놀이가 너무 힘들어요(웃음).

딸뿐 아니라 아들도 소꿉놀이를 해줘야 했답니다(웃음). 예전의 저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엄마가 잘 못하는 일에 죄책감 느끼지 말라고요. 모든 엄마가 애랑 노는 걸 즐거워할 수는 없어요. 제가 못하는 거까지 억지로 하면서 힘들어하지 말고 제가 좋아하는 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가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빵을 구워주곤 했어요. 그럼 둘 다 소리를 질러요, 너무 좋다고. 그건 제가 싫지 않은 일이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었죠.

 

엄마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네요.

네. 그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저는 아직도 모르는 거, 궁금한 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아이에게만 제 모든 걸 줄 수는 없더라고요. 엄마가 썩은 얼굴로 그네를 100번 밀어주는 게 과연 얼마나 좋을까요(웃음)? 스트레스 받아서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육아가 힘들지만 기쁨도 크잖아요.

그렇죠. 애들이 귀엽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뿌듯해요. 그리고 애들 말고 누가 나를 이렇게 믿고 사랑해줄까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거 같아요. 미칠 듯한 사랑(웃음). 저만 찾았죠. 힘들었지만 복에 겨운 소리일지도 몰라요. 남의 사랑에 푹 적셔 지낸 시간은 자존감을 높여줬고요. 예전에는 누가 나를 알아주기를 계속 바랐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밖에서 누가 나 좀 싫어하면 어때. 집에 가면 나 보고 싶어서 목을 쭉 내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나 봐요. 

 

요즘 궁금한 관심사가 있나요?

수학이요. 제가 반에서 수학이 꼴등이었거든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숫자만 보면 어지러웠어요. 나는 왜 수학을 못할까, 계속 궁금했거든요. 언젠가는 밝히고 싶었어요. 이상한 거예요. 저는 문자에 있어서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숫자는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수학자들이 수학이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생에서 모르고 죽고 싶지 않은데…. 첫째 아이와 검정고시를 준비하다가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못하는 사람은 어려운 게 뭔지 알거든요.

남편이 수학을 잘해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애들이 작은 거 하나를 이해 못 한다고 너무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수학은 제가 가르치기로 했어요. “이거 어떻게 푸는 거지?” 그러면 애들이 저를 막 가르쳐줘요. 초등학교 4학년 문제집을 푸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인문계 쪽은 답이 없잖아요. 근데 수학은 ‘삼각형 세 변의 각의 합이 180’이라는 빼도 박도 못 하는 규칙이 있고, 그 안에서 나머지 각의 값을 찾는 게 너무 산뜻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면 어마어마한 쾌감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수학에 대해 궁금해져서 책도 읽었는데 반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아요. 더 알고 싶어요.

 

알아가는 즐거움 말고 또 어떤 일에 만족을 느끼는 편인가요?

생활 속에서 제가 뿌듯해지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두는 게 전반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책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수건 삶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요. 요리하고 나면 가스레인지 옆 타일을 싹 닦아두는 일도 그래요. 또 심각한 책을 아무렇지 않게 읽는 것도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지하철 살인가스 테러에 대한 인터뷰집이 있는데, 휴가 때 바닷가에 앉아서 그걸 다 읽었어요. 나이가 드니까 세세한 게 보이는 것도 참 좋아요. 날씨가 좋아서 즐겁다, 바람이 시원해서 참 좋다, 커피가 맛있어서 너무 좋다…. 예전에는 좋은 게 이렇게 많지 않았던 거 같아요. 사실 요즘 너무 바빠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거든요. 그래도 20대 때랑 바꾸라고 하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훨씬 좋아요.

 

힘든 일 사이에서도 좋은 부분을 찾을 수 있게 된 건가요?

큰 비극에 비하면 힘듦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걸 뚫고 나가지 못할 거라는 시련은 오죠. 최근에 남편이랑 일을 같이 하게 됐는데,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6개월은 화를 내면서 다녔던 거 같아요.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걸까? 네가 제대로 일을 못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거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니까, 다르게 생각해봤죠.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건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라는 거야. 한 번뿐인 인생 이런 경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요.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이게 내 팔잔가 보죠.

 

“스튜 끓이는 일은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시간이다.”가 떠오르네요. 저는 그 구절에 제 경험을 더해서, 우리는 어떤 나이, 시기에 반드시 겪어야만 지나가는 일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좋은 말이에요. 저희 할머니가 오래 사신 편인데, 30~40년을 불행해하다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요. 다만 유약했어요. 당시의 악재는 물론 지금의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한국전쟁이 터져서 남편이 죽는 일 같은 거요. 할머니는 악재가 닥치면 도망치는 스타일이었어요. 하지만 자식이 생기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재가를 하고, 저희 엄마와 외삼촌들을 낳으셨어요. 그러다 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난 몰라. 난 나가서 일 못 해.” 이렇게 된 거예요. “네가 나가서 일해.” 하고 엄마를 떠민 거죠. 엄마에게 그 말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하고 일을 해야 했어요. 할머니의 그런 태도는 자식들의 인생에 너무 큰 영향을 줬고,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괴로워했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할머니는 왜 그때 길에서 김밥이라도 팔아보지 않았을까. 왜 자식들 공부를 끝까지 안 시켜서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뭐라도 해봤으면 당신 몸은 힘들고 창피해도 떳떳하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면서 가셨을 때 그 마음은 어땠을까. 할머니를 좋아했지만 그 삶은 아니에요. 저한테도 할머니의 그런 기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되새겨요. 할머니가 제게 준 큰 교훈을요. 죄책감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마음으로 죽고 싶다고요.

 

거대한 일이 생기면 견디고 시시콜콜한 날은 즐기면서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책에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보며 살고 싶다고 썼어요. 시시콜콜한 내용을 자주 쓰면서 이게 너무 유아적이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들곤 했거든요. 세상에는 어떤 사회 제도의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큰 비극도 있죠. 그 주인공이 우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 나만 빨래 삶고, 나만 밥 잘 차려 먹고, 나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나만 산책하면 모두가 행복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건 너무 무책임하고 유치한 거잖아요. 중요하지만 다는 아니에요. 세상일에 눈 감고 나만 잘 사는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이어서 무언가를 바꾸려고 나가서 투쟁하는 편은 아니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지는 계속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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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