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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의 겨울숲
새하얀 겨울을 닮은 자작나무와 그들이 모인 겨울숲.
눈보다도 시린 자작나무가 빼곡한 숲에서 느낀 겨울.
이제 곧 와버릴 하얀 겨울을 미리 느끼고 왔다.
추억을 엿보게 하는 눈
11월 13일. 2012년의 첫눈이 내렸다. 운이 좋게도 올해에는 첫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아볼 수 있었다. 삼청동 골목길에 흩날리는 눈은 굉장히 잘지만 ‘처음’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눈을 기다리고 있다. 1~2월이나 되어야 눈이 펑펑 쏟아질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12월이 되면 내심 눈을 기다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눈 자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눈이 오면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대곤 한다. ‘내린 눈이 녹기 시작하면 흙과 함께 뒤엉켜 길이 지저분해질 텐데’라던가 ‘질척질척한 건 딱 질색이야. 신발도 다 젖겠지’와 같은 이런저런 불만. 그래서 되도록이면 눈의 불편함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실내에서 눈을 감상하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만물을 뒤덮어버린 풍경은 운치가 있어 누구라도 감상에 젖게 만든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실내에서 눈이 만든 풍경을 감상하다가 떠오르는 것은 하얀 눈과 함께 뒤엉켜 놀던 어릴 적 추억이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전까지 나는 꽤 산골에 있는 사택에 살았었다. 4층짜리 아파트건물(아파트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네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단지였고, 아파트 바로 뒤로는 산이 있었다. 집의 구조상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내 방의 창문을 열면 보이는 것이 그 산이었다.
집 주변으로 비탈길이 많았는데 겨울이면 꽤나 만족스러운 썰매장이 되곤 했다. 눈이 잔뜩 내리고 나면 친구들과 각자 비닐포대를 하나씩 들고서 가장 경사가 있는 비탈길로 향했다. 지금은 그 비닐포대들을 대체 어디서 구했던 것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데, 주변에 밭농사를 짓는 곳이많았으니 비료를 사용하고 버린 포대를 재활용장에서 빼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비닐포대를 가지고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씩씩하게 비탈길을 올랐다. 그리고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형광색에 나름 방수기능을 갖춘 장갑과 부츠가 더이상 제기능을 못할 때까지 수십 번을 썰매포대를 타고 내려왔다. 그렇게 몇시간 동안의 썰매놀이가 끝날 때쯤이면 제2의 임무를 끝낸 비닐포대도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나 역시 비닐포대와 같은 상태가 되어 집에 들어가면 뭘 하고 놀았길래 이렇게나 젖어서 들어왔냐는 엄마의 핀잔을 들었다. 그때 빨갛게 달아올라 간지러운 발가락에는 썰매놀이의 여흥이 남아 있었다.
그때가 가끔씩 그립기도 한데, 더이상 우리집 주변에는 그렇게 썰매를 탈 만한 비탈길이 없다. 그리고 그때 그 비탈길 뒤로는 썰매장의 가드레일처럼 향나무와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행유발자
이 겨울여행은 사진 한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자작나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겨울숲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그순간 자작나무숲(특히 겨울의)에 매료되어버렸다.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1는 그의 작품 『나무』에서 ‘나무들이 홀로 서 있을 때 더더욱 숭배한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당시 나에게 하나가 아닌 집합이 주는 감동이란 그 크기가 달랐다. 자주 가는 집근처의 카페 안에도 하얀 자작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원래 있어야 할 무리에서 베어져 나와 카페 안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그 나무는 가여웠다. 반면 흰색의 제복을 입은 병사처럼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는 사진 속의 그것들은 늠름하고 기품이 있었다. ‘멋있다’거나 ‘좋다’라고 느꼈던 여느 숲과 달리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겨울, 나는 아름다운 하얀 숲으로 여행을 떠났다.
숲속의 주인
자작나무는 흰 수피를 가진 큰키나무로 그 모습이 아름다워 도시의 가로수로 심어지기도 하고(하지만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수종이므로 가로수로 적당하지 않다고 들었다) 관상수로써 실내 인테리어로 이용되기도 한다. 활엽수종으로 낙엽이 지며, 추운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자작나무숲이 강원도 산간지방에 분포해 있는데, 대부분이 자생적으로 자라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며 그 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대체로 굽지 않고 직선으로 크게 자라나기 때문에 서양권에서는 그 모습이 기품 있다 하여 자작나무를 ‘숲의 여왕’ 혹은 ‘숲속의 주인’ 이라 부른다고 한다.
자작나무의 흰 수피는 줄기의 결을 따라 가로방향으로 벗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기름기 많은 왁스가 수피표면에 묻어 있어 잘 썩지 않는다. 수피에 기름기가 많으므로 불을 붙이면 잘 타오르는데, 하얀 수피가 타오르며 ‘자작자작’ 하는 소리를 낸다 하여 이름을 자작나무라 한다. 흔히 남녀가 결혼을 할 때 ‘화촉을 밝힌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에 자작나무의 껍질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기원했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잘 썩지 않는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흰 수피에 적어 보낸 사랑의 편지는 사랑을 이루어준다고 믿어져 자작나무가 사랑의 나무로 여겨지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뮤즈
자작나무는 외형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 속에 등장해왔다. 프랑스의 풍경화가인 테오도르 루소Theodore Rousseau는 <자작나무 아래의 저녁Under the birches, evening>에 단풍으로 물든 자작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다. 화면의 중앙에 무리지어 서 있는 자작나무는 저녁 무렵의 어스름과 대비되어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고, 나무둥치에 무언가 열중해 해가 지는 것도 모르는 듯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의 열중함이 금방이라도 해가 져 빛이 없어질 듯한 긴장감을 조금은 편하게 눌러주는 느낌이 든다. 루소는 파리의 살롱에 출품한 그의 작품들이 번번히 낙선되자 ‘프랑스의 섬’이라는 뜻의 ‘일 드 프랑스’ 주의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루소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는데 <자작나무 아래의 저녁>도 그 당시에 그려진 것으로 전원적인 바르비종의 풍경을 담고 있다.
핀란드의 민족음악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는 당시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의 독립과 애국심을 노래하는 음악 외에도, 숲과 나무 등 자연을 표현한 곡을 다수 작곡했다. 그중 작품 75번은 5개의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The Trees’라는 작품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각각의 곡에는 각기 다른 나무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 제4번이 ‘자작나무The Birch’로 2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이다. 푸른 자작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반짝거리는 여름 햇살이 떠올라, 여름산책길에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 지오노Jean Giono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도 자작나무가 등장한다. 나이든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가 프로방스 황무지에 심은 것은 도토리뿐만이 아니다. 프레데릭 백Frederic Back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것이 유명해져, 엘제아르가 도토리와 함께 심었던 다른 무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애니메이션에서 엘제아르가 심는 것은 도토리‘만’이지만, 원작소설 속에서 엘제아르는 도토리와 함께 자작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그가 이루어낸 숲에는 참나무와 자작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애니메이션 영상으로도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외에도 로버트 프로스트, 고은, 안도현 등 많은 시인들이 자작나무를 시의 소재로 사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종환 시인의 ‘자작나무’를 좋아해 추천하고 싶다.
겨울숲 여행
겨울숲을 만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 직접 마주한 자작나무숲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고고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낙엽이 떨어지고 난 가지들을 보고 있자니, 반복되는 선들의 엇갈림에 지리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가을을 버텨내고 겨울바람에 잔망스럽게 흔들리고 있는, 몇 안 남은 정수리의 낙엽들이 겨울숲에 남아있는 생生의 흔적이자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마치 하얀 피부에 주근깨가 박힌 소년의 곱슬머리칼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과 같았다. 허옇게 몸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한참 걸어다녔다. 내 발소리 외에 들리는 인기척이라곤 흑염소의 울음소리뿐이었다. 그 염소는 내가 자작나무가지를 주워들 때마다 그것을 지키기라도 하듯 맹렬하게 울어댔다.
겨울숲을 만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
비교적 평이한 트레킹이라 해도 눈 내린 겨울숲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안전한 겨울숲 여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을 꼭 확인하고 챙기도록 하자.
01 겨울숲 트레킹 혹은 등산에는 필수라 강조하고픈 아이젠 개인소장
02 열이 빠져나가기 쉬운 머리부분의 온도유지를 도와줄, 사소하지만 중요한 귀마개 겸용 헤어밴드 개인소장
03 길이 험하거나 눈이 쌓여 미끄러운 경우에 유용한 등산용 지팡이 (참고로 등산용 지팡이는 손에 쥐었을 때 팔이 90도 각도로 꺾이는 정도의 길이로 조절하는 것이 알맞다) MSR i 가격미정 i 호상사
04 발목을 보호하며 보온성과 통기성이 뛰어난 니트소재의 양말 솔메이트 i 2만8천원 i 플레이모우
05 발목까지 감싸주어 발목보호에 용이하며 밑창의 쿠션감이 좋은 트레킹화 아누 몬타라부츠 i 19만원 i 호상사
06 수납공간이 넉넉하고 허리를 잡아주어 안정적인 배낭 얼라이트 빅오크백 i 24만원 i 호상사
숲을 거닌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릴 적 다니던 유치원 마당의 놀이터 구석에는 흔히 개구멍이라고 불리는, 뒷산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따로 길이 나있지는 않았지만 종종 그곳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선 혼자서만 안다고 자부했던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래봤자 돌부리에 걸터앉아 나무그늘 아래의 작은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종종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것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는 산을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봄에는 냉이를 뽑아다가 집으로 가져가 잘 먹지도 않는 냉잇국을 끓여달라 조르기도 했고 여름에는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먹느라 손과 입 주변을 전부 검게 물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동네 뒷산에서 자란 내게도 겨울숲은 생경하여 정말 ‘여행’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아쉽게도 눈 내린 겨울의 자작나무숲은 아니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었다. 그리고 눈이 함빡 쌓인 올 겨울, 지나간 나의 한해를 보듬기 위해 다시 한번 자작나무숲으로 갈 계획이다.
글·사진 여수정 그림 박소언
장소 태백 구와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