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ctionary We Made

우리들의 느낌 사전

옆에 있는 아이에게 ‘더부룩하다’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해보자. ‘밥을 먹고 바로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그런 느낌이야.’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거기에 ‘앗, 저번에 동생 과자까지 다 먹어버렸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라고 덧붙일지 모른다. 박성우 작가는 아이들의 표현력을 자연스럽게 확대하기 위해 《아홉 살 느낌 사전》을 펴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시선에 엄마의 표현을 보태면 더 근사한 사전이 만들어진다.

잔잔해

움직임이 거의 없거나 소리가 조용하고 나지막하다

딸 박나윤 5세

그림 속 바다에 앞에 앉아있는 친구를 볼 때

친구가 아빠랑 같이 바다를 보고 있는 그림을 봤어요. 나도 아빠랑 같이 앉아 있으면 마음이 그래요. 아빠도 그렇겠죠? 내 생일에 부산 할머니네 집에 갔었는데, 거기는 아빠랑 가면 더 더 좋아요. 하늘이 하늘색이면 바다는 더 예뻐요!

 

엄마 이지윤 36세

아빠와 함께 있는 아이를 볼 때

나윤이는 차분한 아빠와 함께할 때 평온해져요.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지냈을 때 나윤이는 밀물 때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서 말라 있는 소라게들을 주웠어요. 서울 집에 돌아가면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서요. 이번 생일에는 꼭 아빠와 함께 제주에 다시 오겠다고 했죠. 잔잔한 바다가 아빠와 닮았다고 생각했나 봐요.

따끔해

바늘에 찔리거나 꼬집히는 것처럼 아프다

딸 이가현 8세

벌에 쏘였을 때

가족들이랑 바닷가에서 신나게 걸어가고 있는데 벌한테 쏘였어요. 너무 따가워서 눈물이 막 나고 무서웠는데 엄마가 벌침은 안 박혀서 다행이래요. 병원에 갔다 오느라 바다에도 못 가고 속상했어요. 왜 나만 벌에 쏘인 걸까요? 혹시 내가 꽃인 줄 착각했나? 난 움직이는 사람인데….

 

엄마 전민기 39세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을 때

아이 셋을 키우면서 ‘아이고 허리야’를 달고 사는데 이날은 둘째를 안아주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한의원에 갔어요. 침을 맞는데 어찌나 따끔하던지 눈물이 핑 돌았어요. 한의원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이들이 엄마도 침 맞을 때 무섭냐고 묻더라고요. 속으로 대답했어요. ‘엄마도 너희들처럼 주사도, 침도 무서워! 안 무서운 척하는 거지.’

부드러워

빳빳하거나 거칠지 않고 매끄럽고 연하다

아들 정초한 7세

회색 이불 위에 누웠을 때

저한테는 아기 때부터 가지고 있는 회색 이불이 있어요. 제가 유치원에서 열심히 놀다가 집에 오면 힘든 날이 있거든요? 그럴 때 회색 이불에 누우면 부드러워서 편하고 기분이 정말 좋아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준 회색 이불아, 고마워!”

 

엄마 박현수 37세

아이와 손을 잡고 유치원 갈 때

햇살 좋은 날, 아이와 유치원까지 걸어갔어요. 걸어가면서 아이와 손을 잡았는데 그 느낌이 참 부드러웠어요. 그럴 때마다 저도 초한이에게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소란스러워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아들 김의현 8세

엄마가 숙제하라고 잔소리 할 때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숙제하라고 막 잔소리를 해요. 티브이에서도 소리가 나는데 엄마도 말을 하니까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팠어요. 사실은요, 엄마가 잔소리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엄마 여승수 44세

가족 모두 한꺼번에 말할 때

아침에 아이가 밥을 먹다가 집 안을 돌아다니면 할머니와 아빠는 “빨리 밥 먹어라.”, “스스로 먹어라.”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해요. 그럴 때 정말 소란스러워요. 가족 회의를 해서 아침 시간에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고, 아침은 조용히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눈부셔

눈이 시릴 만큼 빛이 아주 밝다

딸 이지유 5세

아침에 눈 뜰 때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엄마가 아침마다 우리 방 창문에 달린 블라인드를 이렇게 넘겨 줘요.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저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요. 아, 조금만 더 잤으면 좋겠는데!

 

엄마 곽주영 39세

해 질 녘 아이가 바다에서 노는 모습을 볼 때

지난여름의 끝자락, 지유랑 바다로 놀러 갔어요. 지유는 물놀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특히 바다에서 파도타기 하는 걸 가장 좋아해요. 지는 해가 만드는 노을과 함께 바다에서 노는 아이 모습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저절로 ‘우리 아이에게는 제주에서 사는 게 축복이구나.’라고 중얼거리게 돼요.

INTERVIEW

박성우 | 《아홉 살 느낌 사전》 글작가, 시인

‘아홉 살 사전’ 시리즈는 사랑스럽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책 같아요. 어린이의 시선에서 단어의 뜻을 정의한다는 내용의 이 시리즈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2014년 봄에 아이들 마음에 관한 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어요. 마침 딸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때였는데, 예전에는 주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물었다면 그 무렵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해오던 차였어요. 이를테면 “아빠, 어이없는 게 뭐야?”“아빠, 과학이 뭐야?” 이런 식이었죠. 얼른 대답해주기 힘든 건 사전을 찾아 알려주기도 했는데 아이가 쉽게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이없다는 건, 밥을 먹으려고 식구들이 둘러앉았는데 취사 버튼이 안 눌려서 전기밥솥에 쌀이 그대로 있을 때의 마음이야. 막대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하는데 막대에 붙어 있는 아이스크림이 뚝 떨어질 때도 어이없다고 할 수 있지. 소풍 가서 먹으려고 김밥을 쌌는데 집에 김밥을 두고 소풍을 왔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어?”라고 눈에 보이듯이 얘기해주니까 금방 알아듣더라고요. 딸이 아홉 살이던 2015년에 이 시리즈의 첫 책인 《아홉 살 마음 사전》의 초고를 잡고는 점차 다듬고 보완하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 《아홉 살 함께 사전》, 《아홉 살 느낌 사전》, 《아홉 살 내 사전》을 순차적으로 썼고요.

 

‘마음’‘함께’‘느낌’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어른들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모를 때가 많은데 특히나 어린이는 어떤 감정이 들 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아요. 자기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모르기도 할 테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이걸 어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음’이라는 주제를 택했어요. ‘함께’라는 주제로 작업할 때는 아이들이 누군가와 쉽게 관계를 맺고 척척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어떤 대상이나 상태를 보고 오감의 느낌을 표현하는 걸 돕고 싶어서 ‘느낌’을 택했어요. 이런 식으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죠.

 

아홉 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이 책들의 기본 원고를 완성해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글을 쓰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 검사를 받는 식으로 원고를 진행했어요. 초고를 같이 읽으면서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은 뺐고요. 제가 단어를 제시하고 표현을 활용할 만한 상황을 말해주고 나면 아이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신나게 얘기했죠. 아이가 말한 에피소드를 적극적으로 정리해 넣었어요.

 

어린 시절에 감정 표현을 잘 하는 아이였나요?

어릴 땐 지금처럼 제 마음이나 생각을 다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다소 엉뚱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누나 셋 밑에서 나름 유순하게 자라면서 말수도 그리 많지는 않았고요. 다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어느 날 일기장 검사를 마친 선생님께서 저를 따로 남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갱지를 잔뜩 끼운 검정 파일을 손수 만들어주시면서, 앞으로는 동시나 동화 같은 걸 거기에 쓰라며 칭찬해주신 기억은 선명해요. “성우 너는 나중에 크면 시나 동화 같은 걸 쓰는 사람이 될 것 같다.”라는 말도요. 그러니까 표현력이 아주 떨어지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웃음).

 

본업은 시인이시잖아요. 아동문학 분야에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되신 건가요?

청소년기에도 숨어서 습작시 노트를 채워가기는 했지만, 시인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 되는 거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나중에야 용기를 내어 지금껏 시의 길을 걷고 있는 거죠. 아동문학 역시 제대로 하고 싶어서 따로 동시로 등단을 하기도 했어요. 가끔 우리는 외롭거나 사는 게 힘들 때 혼자서 동요를 흥얼거리기도 하잖아요. 어른이 되어 읽는 책의 내용은 곧 잊히고는 하지만, 유년에 경험한 동요나 동시, 소년소설 등은 평생 함께하니 더욱더 소중한 것 같아요.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작업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딸과 같이 놀거나 얘기하면서 동시집을 두 권이나 냈고, ‘아홉 살 사전’ 시리즈도 딸과 같이 쓴 거나 마찬가지예요. 한번은 어린이집에 다니던 딸이 다리가 아프다면서 업어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은 아빠가 업어주지만, 나중에 아빠 늙으면 규연이가 업어줘야 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래, 알았어. 근데 아빠, 아빠는 할머니 몇 번이나 업어줬어?” 하는 거예요. 좀 놀라기도 했고 뭔가 막 부끄러워지기도 했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이에게 배우는 게 많기도 하고 아이 덕에 마냥 행복하기도 해요.

 

책을 쓰면서 아이의 표현 방법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딸이 아홉 살 때였어요. 구구단을 외워야 해서 전 나름대로 아이를 도우려고 했는데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는 힘들게 서서 외우는데 아빠는 편하게 앉아서 검사한다고. 미안하고 민망해지더라고요. 저는 그런 마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제 경험처럼 아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아이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냥’이라는 말은 쓰지 않게 유도하기도 했어요.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왜’ 싫은지,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얘기하게 했어요. 어른들은 아이가 이유 없이 짜증 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가 짜증 낼 때는 분명 이유가 있거든요. 아프거나 힘들다는 신호이기도 하고요.

 

아이의 표현을 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궁금해요.

무엇보다 아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저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집 마음’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첫째는 ‘존중하는 마음’, 둘째는 ‘배려하는 마음’, 셋째는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딸은 벌써 커서 열세 살이 되었어요. 요새는 사춘기 준비기가 되어서 그런지 “노크하고 바로 들어올 거면 뭐 하러 노크해!”라고 말을 톡 쏠 때가 있어요. 그럼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아이가 그새 또 이렇게 많이 커서 자기만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구나.’ 또, 아이와 산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이와 이야기할 땐 말을 끊지 않고 무조건 끝까지 다 들어주고요. 책 읽을 때도 딸이 보는 책은 저도 꼭 보려고 하죠. 저희는 책 읽고 나서 서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여겨요. 딸 방에 놀러 가 종종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제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번갈아 들으면서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며 간극을 좁히기도 하죠.

 

이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나요?

‘아홉 살 사전’ 시리즈는 독서의 힘보다는 대화로서의 힘이 더 크면 좋겠어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나누면서 대화를 하는 책이요. 자기 마음을 당당하고 정확하게 얘기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소통하고, 자기 느낌을 예쁘고 자신 있게 표현하는 책. 언어의 폭과 생각의 폭과 상상력의 폭을 넓히면서 꿈을 키워가는 재미있고 신나는 책. 또, 공부하듯이 읽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 혼자 읽는 것보다는 가족이 같이 읽으면서 도란도란 유쾌한 시간을 많이 보내면 좋겠어요. 더 많이 존중해주고 더 많이 배려해주고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면서 즐겁고 행복하게요.

아홉 살 느낌 사전

글 박성우 | 그림 김효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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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자료 협조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