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A Decent Happiness On My Table
오다이라 가즈에의 책 《도쿄의 부엌》에는 “오이를 베어 먹더라도 가족이 웃으면서 먹는다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말이 나온다.권여선의 책 《오늘 뭐 먹지?》를 읽으면 당장 일어나 밥솥을 열고 싶어진다. 이 책들을 읽으며 나는 잠시 내 인생의 겸허한 행복을 찾는다.
나의 시어머니는 뭐든 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물건을 사들였다. 시어머니는 정리나 청소에도 전혀 소질이 없었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시어머니 집은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은 경악할 만큼 지저분했다. 내가 뭐라도 하나 버리려 하면 시어머니는 기겁을 했다. “놔둬라. 다 쓰는 거다.”시댁에서 돌아오면 나는 대리 충족이라도 하듯 우리 집 부엌을 쓸고 닦았다. 잘 쓰지 않는 그릇과 냄비는 과감히 버리고, 자주 쓰는 그릇 몇 개와 크기가 다른 냄비 네 개만 남겼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매 끼니 불편 없이 먹고 산다. 물건이 많지 않아 딱히 정리할 것도 없으니 설거지 후 눈에 보이는 곳들을 한 번씩 닦아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 집이 깨끗해진 건 다 시어머니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몇 달 전,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홀로 계신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우리는 시어머니의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시댁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슬픔 따위는 단번에 잊게 될 정도로 엄청났다(솔직히 화가 날 정도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온갖 그릇과 컵과 냄비가 계속해서 나왔다. 시어머니는 너덜너덜하고 지저분한 행주만 썼는데, 서랍 속에는 언제 샀는지 알 수도 없는 새 행주가 잔뜩 쌓여 있었다. 심지어 고장 난 지 몇 년은 된 전기밥솥이 보자기에 고이 싸인 채 침실 벽장 속에 들어 있기도 했다(아니 도대체 왜?). 냉장고 속 음식의 3분의 2는 썩거나 유통기한이 최소 몇 년은 지난 것들이었다. 엄청난 쓰레기들을 버리고 나니 좁아터지던 집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시댁에 가도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다이라 가즈에의 책 《도쿄의 부엌》에는 마치 나의 시어머니의 부엌 같은 부엌이 등장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시어머니와는 딱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시어머니가 그립다. 우리 사이에는 15년간 싸우고 화해하고 웃으면서 쌓인 정이 있다. 그런 정을 미운 정이라고 부른다지. 어수선한 부엌에 서 계시던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어머니가 끓이던 맛있는 미역국도. 절대로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그 진한 맛도. 그 사람이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책인 줄로만 알았던 《도쿄의 부엌》에는 ‘이런 부엌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하다 못해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마치 시어머니의 부엌처럼 멋지고 근사한 것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부엌의 사진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50여 개의 부엌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부엌이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늦은 저녁을 만들어 먹거나, 대충 아침을 만들어 후루룩 먹고 나가는 부엌이다. 좀 어수선해 보이지만 나름의 체계가 있는, 이게 최고는 아니지만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는 최선인, 그냥 그런 부엌들이다. 마치 인생 같은 부엌들이다.
동네 술친구들을 불러 밤마다 파티를 여는 독신남의 부엌, 아이를 원하지만 계속 실패 중인 젊은 부부의 부엌, 엄마가 돌아가신 집에서 홀로 음식을 만드는 여자의 부엌, 큰 병을 앓은 후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욕심내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 여자의 부엌, 벌판 위에 천막을 치고 불을 피워 요리를 하는 가난한 부부의 부엌. 한두 장의 사진과 지나가며 슬쩍 건네는 한마디 같은 그들의 인생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타인의 인생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각자의 인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이 부엌들은 내게 알려주는 것만 같다.
시어머니의 음식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명란젓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젓갈은 무조건 사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는 명란젓을 직접 담그셨다. 소금에 절인 질 좋은 명란을 큰 통으로 사 와서 고춧가루와 마늘과 생강과 아주 얇게 썬 무채 같은 것으로 양념을 했다. 적당히 매콤하고 적당히 짭짤한, 강하지 않은 양념이 내 입에 꼭 맞았다. 그 명란젓갈을 젓가락으로 터트려 부드러운 속을 발라내 따뜻한 밥에 얹어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그 명란젓은 사라졌다. 나의 시어머니와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사실 음식에 관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 못지않게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음식에 대한 문장들은 어쩐지 과하게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읽다 보면 김이 빠진다. 그런데 소설가 권여선이 쓴 이 책, 《오늘 뭐 먹지?》는 달랐다. 먹는 일은 별것 아니기도 하지만 동시에 참으로 심오한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쓴 글이었다. 무엇보다 읽다 보면 배가 고파졌다. 밥이, 집에서 만든 밥이 먹고 싶어졌다.
아마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식재료는 땡초일 것이다. 작고 단단하고 시퍼런 땡초. 매운맛을 폭발 직전까지 꼭꼭 눌러 담은 땡초. 나는 무서워서 곁에도 못 가는 땡초. 나는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매운 걸 먹으면 반대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와 달리 매운 음식, 뜨거운 음식,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가 권여선은 사실 어릴 때 편식이 심했다. 그런 그가 개고기에서 삭힌 홍어까지 못 먹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된 계기는 바로 소주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안주로 식도락을 배운 것이다.
스무 살 무렵 자취방이 생기면서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슈퍼에서 싸구려 식재료를 사 와 엄마가 해준 요리의 맛을 기억해 대충대충 만들었다. 지하방의 부엌 같지도 않은 부엌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요리하는 게 좋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요리가 별로 맛이 없거나 실패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고 이내 다음 끼에는 뭘 차려 먹을까, 생각한다. 그런 것이 즐겁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 재미있고, 그럴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아니, 요리를 귀찮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다. 그들의 집 부엌은 대개 온갖 물건이 잔뜩 쌓여 있어 요리를 향한 의지마저 꺾는다. 나는 그들이 요리에 취미를 좀 붙이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꼭 거창한 요리일 필요 없이, 밥과 빵, 면, 한두 가지의 찬만으로도 매일 자신을 아껴줄 수 있을 텐데, 하고. 타인에게 나를 아껴달라고 하는 대신에, 돈을 주고 아낌을 받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작고, 또 가장 근본적인 자립의 의지, 그러니까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라 믿기에.
그럼에도 나는 《도쿄의 부엌》 같은 책을 읽으면서 요리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존중받아 마땅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어머니의 부엌은 어수선했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장소였다고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남의 부엌을 염탐한다.
행복은 큰 데서가 아니라 작은 데서 온다. 그래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겸허한 행복이란 어떤 걸까. 그냥 행복이 아니라 겸허한 행복이라는 것은 뭘까.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 수고를 무릅쓰고 얻어낸 대수롭지 않은 것에서, 내 작은 식탁 위의 소박하고 반듯한 밥상 앞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나보다 앞서 산 사람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어떤 것을 내 손으로 구현한 데서 오는 뿌듯함일 것이다.
나는 이 ‘겸허한 행복’이라는 말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아서 피식 웃었다. 조만간 시어머니의 명란젓을 한번 담가봐야겠다.
《도쿄의 부엌》 오다이라 가즈에 | 앨리스
《오늘 뭐 먹지?》 권여선 | 한겨레출판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