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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
70년
역사의 시작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나라는 또 한 번의 전쟁으로 아픔을 겪고 제대로 된 삶을 영유하기가 힘들었다. 이는 식문화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다. 당시에는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가정에서 먹는 음식은 직접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장 또한 다르지 않았다. 많은 가정에서 장독대에 장을 담가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폐허 상태가 된 우리나라에서 이전처럼 직접 장을 담가 먹는 것은 불가능했고, 설사 장을 담근다고 해도 이웃들에게 나눠줄 여유란 없었다. 특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겐 장을 구하는 것이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난리 통 속에서 샘표는 사람들이 깨끗하고 건강한 장을 먹을 수 있도록 간장을 만들어서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판매가 녹록지 않았다. 장을 ‘사 먹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 먹는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우선 높여야 했다. 저급의 물건들이 판을 치고 있는 시장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고품질의 간장을 소개하기 위해 손수 간장병을 들고 다니면서 샘표의 간장을 알렸다.
가장 오래된 상표,
샘표
샘표는 현존하는 국내 등록 상표 중 가장 오래된 상표다. 초대 사장 박규회 씨가 ‘샘물처럼 솟아라’라는 의미를 담아 직접 지은 이름이다. 현재는 한글로 된 브랜드가 많이 있지만, 당시에는 한글 로고를 브랜드로 등록한다는 것이 파격적인 일이었다. 마케팅 기법도 남달랐다. 손수 견본 간장병을 들고 여러 시장을 돌아다니며 샘표의 간장을 알렸고, 동네 주부들에게 맛을 보여주면서 입소문을 타게 했다. 또 한 가지 파격적인 일은 ‘소비자카드제도’라는 획기적인 방식을 도입한 점이다. 고객 정보를 카드에 기재해두고 전화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신속하게 간장을 배달해줬다. 이렇게 소비자들의 신임을 얻으며 성장하게 된 샘표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간장에 대한
정직한 마음
국내 최초의 광고 노래가 바로 샘표 간장의 CM송이었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면 맛을 아는 샘표간장.’ 현재 50~70대의 우리 부모님 세대라면 다 아는 노래다. 당시에는 각종 대회의 응원가로 사용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간장’ 하면 샘표란 브랜드가 대명사처럼 떠오르게 된 것은 CM송의 위력도 있겠지만, 깨끗하고 건강한 장을 만드는 정직한 마음 그리고 ‘맛’ 때문이다.
간장 한 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한 방울의 간장도 흘리지 말고 아껴야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계화가 도입되어 예전처럼 손수 장을 담그진 않지만, 초기에 만들었던 방식을 그대로 도입한 간장에 담긴 정성과 수고스러움을 알게 되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우선 엄선한 깨끗한 콩을 일정 시간 물에 담가 불린 후 쪄내고, 준비한 밀과 찐 콩을 고르게 섞어 곰팡이를 접종해 메주를 만든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메주를 소금물과 적절하게 혼합해 6개월간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잘 숙성된 간장을 압착하여 얻은 생간장을 순간 살균·냉각시키고, 마지막으로 더 맑은 간장을 위해 한 번 더 여과하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간장이 탄생한다. 요즘 같은 대량생산시대에 간장 한 병을 만들기 위해서 복잡한 공정 과정을 준수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 간장은 음식 본래의 맛을 해치지 않고 잘 살려준다. 특유의 감칠맛이 도는 샘표 간장은 인위적인 맛을 내지 않는다. MSG 같은 첨가물을 넣지 않아서다. 사실 자극적인 첨가물을 넣어서 요리를 입맛에 맞추기는 쉽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먹거리를 가족에게 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샘표 간장이 할머니 세대부터 우리 세대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것은 장에 대한 진중한 마음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정직함 때문이다.
옛 방식으로
다시 태어난 된장
된장은 우리의 전통의 ‘맛’이다. 예부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식품인 전통 된장은 한국 음식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장이자 건강에도 효능이 좋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된장을 즐기지 않는다. 특유의 쿰쿰한 향이 나는 된장의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샘표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된장의 소중함과 그 맛을 지키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된장을 만들고 진짜 우리 된장의 맥을 잇기 위해서 고서와 전통 문헌 등에 나온 된장에 대한 기록부터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리고 전국 팔도의 된장 명인과 종가 등 백여 곳을 찾아다니며 메주와 된장을 수집하고 각 된장이 발효되는 환경을 정확히 알기 위해 그 지방의 공기와 물 등도 함께 조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된장 발효는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콩과 소금, 물 등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된장임에도 어떤 것은 멸치나 다시다 등을 넣은 듯한 맛이 나고 어떤 된장에서는 산나물의 향이 나기도 했다. 전국에서 가져온 된장과 메주에 들어있는 미생물을 분석하고, 그 미생물을 종균실에 보관하면서 온도나 산소공급량, 수분 등을 조절해가면서 실험을 계속했다. 수많은 연구의 결과로 드디어 된장 속 ‘발효과학’의 비밀을 찾아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된장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발효식품이다. 이를 대량생산화하여도 균일한 맛과 향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메주를 잘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다양한 시도 끝에 드디어 콩알 하나하나가 구수한 맛을 내도록 고초균을 띄우는 ‘콩알메주공법’을 개발해냈다. 메주를 짚으로 묶어 처마에 매다는 전통 방식처럼 볏짚 등 마른풀에 서식하는 고초균을 배양하여 콩알에 접종시켜 만드는 것이다. 또한, 콩을 절구에 찧어 메주를 만들던 옛 절구의 원리를 제조 공정에 적용해 전통의 맛을 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친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전통 된장의 맛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연두
현대인들은 자극적이고 익숙한 맛에 길들어 있다. 사실 사람들이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은 요리를 찾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건강한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연두는 과다한 양념이나 조미료의 맛이 아닌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주는 장이다. 하지만 아직 연두를 조미료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연두는 인공적이거나 화학적인 MSG를 첨가하지 않은, 말 그대로 ‘순식물성 에센스’와 같다. 샘표의 자산인 콩 발효연구의 집약체인 연두는 백 퍼센트 자연 발효시킨 콩 발효액과 국산 채소를 우린 물로 만들었다. 샘표는 왜 콩 발효액이 감칠맛을 더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콩에는 천연의 맛 성분인 주요아미노산이 주로 감칠맛을 낼 때 사용하는 소고기나 표고버섯보다 3배 이상 함유되어 있다. 또한, 소고기나 표고버섯보다 자체의 향과 맛이 두드러지지 않아 식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려주면서도 감칠맛을 더해주는 것이다.
세계적인 셰프들에게도 인정받은 연두는 간장의 색과 향을 덜어낸 새로운 형태의 ‘장’이다. 현재 연두는 ‘Jang Sauce’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샘표가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세계적인 ‘장 프로젝트’에서 스페인과 프랑스, 벨기에, 미국, 중국 등 해외의 유명 셰프들이 콩을 발효시킨 연두의 자연적이고 깊은 맛에 감동을 한 바 있다. ‘2013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1위를 차지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스페인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에서도 연두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데, 연두를 사용한 요리와 연두를 ‘Korean Jang Sauce’라고 설명한 메뉴판이 따로 있을 정도다.
샘표의 장들이
탄생하는 곳
1958년 샘표는 국내 최초로 장을 연구하기 위한 전문 연구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2013년 충북 오송에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립했다. 서울과 이천, 영동 등지에 있던 샘표의 분야별 연구소들을 통합하여 발효를 통해 건강한 우리의 맛을 연구하는 전문 기관을 만든 것이다. 백여 명의 연구원들이 매일 이곳에서 우리의 전통 장에 관해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발효연구중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구소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직원들의 행복과 창의성을 중심에 두고 자연친화와 재활용을 콘셉트로 여러 작가가 함께 참여하여 디자인했다.
01 기억을 기록하는 화분 by 장윤규
1969년 세워진 샘표의 창동공장 굴뚝은 3등분 되어 이천 공장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립할 때, ‘기억을 기록하는 화분’으로 다시 태어났다. 창동공장 시절의 추억과 의미가 담긴 빨간 벽돌로 만든 굴뚝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02 윝밭 by 한석현
신선함을 주제로 작업한 공간. 천장에는 채소 조형물을 이용해서 싱싱한 밭을 표현했고, 바로 아래 테이블에는 거울을 설치해 그 밭을 테이블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테이블에서 나온 모든 아이디어가 결국 건강한 채소나 먹거리로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03 Ferment by 김기철
메주를 띄워 발효시킬 때 사용하는 것이 제국틀이다. 1층 로비에 전시돼있는 제국틀은 창립 초기부터 사용해온 유물이다. 몇십 년 전부터 기계화를 도입해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것을 활용하여 스피커를 장착해 전시품으로 만들었다. 간장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듯한 물방울 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연구소 전체에 울린다.
04 Play Ground by 이달우
학교 운동장에 있던 스탠드가 좌석으로 탄생했고, 축구 게임 대가 회의 테이블로 변신했다. 연구원들의 ‘팀워크’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완성된 공간이다.
또 다른
공간들
충무로에 자리한 샘표 본사에도 색다른 공간이 있다. 샘표 장을 활용한 요리 연구와 식재료 연구가 이루어지는 지미원, 그리고 샘표 70년 역사를 담아놓은 작은 박물관 헤리티지 스페이스다.
지미원 연구소
본사에는 지미원 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요리 연구도 이루어지지만, 올해부터 식재료 자체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날은 고추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진 날이다. 많은 고추 종들을 모아서 고추의 역사와 각 고추의 특징들을 브리핑한 후, 모든 고추를 직접 맛보고 어떤 장에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 등을 논의했다.
헤리티지 스페이스
오래된 간장병, 그 당시 공장에서 입었던 빛바랜 작업복, 우리가 잘 몰랐던 샘표의 딸기잼. 진귀한 물건들을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샘표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글로벌
장 프로젝트
샘표는 2010년부터 한국의 ‘장’을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요리과학연구소인 ‘알리시아 연구소Alicia Foundation와 공동 연구를 통해 간장, 된장, 연두 등 샘표의 발효 장을 유럽의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법에 활용하여 약 백오십여 개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한국의 ‘장’을 사용하여 유럽의 다양한 요리를 더욱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외국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 장에 대해서 이해하고 요리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장과 식재의 궁합을 나타내는 ‘콘셉트 맵’을 만들어 세계의 셰프들에게 한국 장의 가능성과 활용성에 대해 알리고 있다.
한 사례로, 2012년에는 스페인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키케 다코스타Quique Dacosta와 프랑스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다비드 뒤땅David Toutain이 방한하여 한국의 식문화와 장에 대해서 더욱 깊은 연구를 진행한 바 있고, 스페인의 가장 큰 요리 행사인 마드리드 퓨전에 몇 년째 참가하여 샘표 장에 대한 인지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알리시아 연구소와 연계된 스페인의 암 전문 병원에서는 연두(Jang Sauce)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을 환자들에게 제공한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해야 하는 암 환자들은 항상 밍밍한 음식을 먹다가 순식물성 소스인 연두의 감칠맛이 들어간 요리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샘표는 단지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서 파는 기업이 아니다. 단순한 한식의 세계화를 넘어서 한국의 장과 발효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지향하는 브랜드다. 오래된 간장 브랜드라고만 생각했던 샘표의 우리 식문화 발전을 위한 꾸준한 연구 활동들이 앞으로 더욱 알려지기를 기원한다.
샘표
H. sempio.com
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