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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플랫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있다
20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어학연수, 교환학생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한국을 떠나 원어민들과의 수업으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킬 생각도 기뻤지만 그것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보고 눈동자 색이 다른 친구들을 사귀는 일이 더 기대되었다. 한참 2학기 기말고사 준비로 바쁠 시기, 어학연수지를 정해야 했지만 좀체 결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외국이라 한들 남들이 다 가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고, 영어 공부에 방해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다 유학원 실장님께 추천받은 곳이 ‘몰타’였다. 지도에서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엄청나게 확대하고 나서야 이탈리아 밑에 작은 섬이 보인다. 그곳이 몰타란다. 강화도 6분의 1 크기라는 것도 신기했지만 사진들을 보니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높지 않은 라임스톤 건물들이 노란빛 따스히 골목을 비추는, 여지껏 보아온 웅장하고 고딕풍의 다른 유럽 국가들과 또 다른 인상이 있다. 지중해라는 것도 어딘가 매력적이고. 결국 직항도 없는 그 멀고 작은 나라에 홍콩과 런던 두 번의 환승을 거쳐 도착하게 되었다.
긴 비행 시간 끝에 온 몰타는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 없이 온 탓이었을까, 여행이라기보다 6개월이라는 삶을 살아야 하는 몰타는 그제야 현실로 다가왔고, 얼마나 쉽지 않을지 예상조차 못한 채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내가 한심했다. 강한 몰티즈 억양을 구사하는 선생님은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 온 친구들 역시 영국식 영어가 친숙해서인지 익숙히 듣던 발음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서양 친구들 이야기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수는 줄어들고, 동양인이라는 자격지심만 커져가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향수는 지독해져 갔고, 상상 속 지중해 음식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영어 공부에 집중한다고 몇 있는 한국인도 멀리하니 수업을 마치고선 기숙사에 돌아와 시간만 때울 뿐이다. 남들은 외국에서 재밌게들 보내는 것 같던데 난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오기 전부터 기대하던 해변가 산책로는 고작 기숙사 5분 거리에 있지만 산책은 고사하고 나가는 것조차 싫었다. 누구보다 외향적이라 생각했던 내가 그렇게 그려왔던 몰타에 와서 혼자 이러고 있는 것이 싫었다.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소중한 6개월을 망칠 순 없었다. 그렇게 찾은 것이 ‘플랫 하우스’였다. 몰타에 3개월 이상 거주하기 위해 비자 신청을 준비하다가 알게 된 한국 언니로부터 곧 플랫하우스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아파트에 여러 명이서 쉐어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겐 낯설지만 외국에선 보편적이라고 했다. 2인 룸이라 룸메이트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간혹 성별도 섞이는 그런 플랫하우스에서 여러 국적의 친구들과 더불어 지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면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기숙사를 나와 플랫 열쇠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남은 나의 몰타 생활을 바꿔주었다.
처음엔 체코에서 온 커플과 스페인 친구가 있었고, 체코 커플이 간 이후에는 독일 친구, 마지막으로 프랑스 친구도 왔다. 플랫메이트들과 거실에서 각자 공부거리를 펴놓고 집중하기도 하고, 부엌에서 만나면 “뭐 만들고 있니? 오늘 수업은 어땠니?” 정다운 수다도 즐긴다. 친구들을 초대해 홈 파티를 열기라도 하면 밤늦게까지 음악과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아늑한 공간 아래에서 우리는 쉽게 마음을 열었고, 싫게만 느껴지던 몰타가 그제야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거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멀리 보이는 파란빛 지중해와 불어오는 해풍에 상쾌함이 몰려온다. 세인트 줄리안Saint Julian까지 걸어가는 해안가는 색색의 수영복과 하얀 물보라, 천연 풀장에서 까르르 웃는 얼굴들이 가득하다. 바다가 보이는 쪽 산책로는 항상 그늘 없이 뙤약볕이 내리쬐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 경치에 꿋꿋이 걷는다. 라임스톤으로 만들어진 교회도 지나고,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젤라토 가게도 지나고, 기다란 다리로 척척 할아버지를 앞장서는 얼룩개는 몰타임에도 오히려 보기 힘든 몰티즈보다 더욱 자주 보인다. 여름이 가장 아름답다는 몰타를 여름에 볼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처음엔 끔찍하게만 느껴지던 6개월의 시간이 어느덧 한 달밖에 채 남지 않았지만, 집처럼 포근한 곳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아마 플랫하우스로 돌아가는 이 산책로 위가 가장 그리울 것 같다.
몰타 여행 팁
몰타는 남부 유럽 지중해에 위치한 섬나라로, 대자연이 아름다운 고조Gozo, 에메랄드빛 블루라군Blue Lagoon이 아름다운 코미노Comino, CF 촬영지로 유명한 음디나Mdina 등 아름다운 풍경과 고고학적 유적이 풍부하다. 면적이 넓지 않아 넉넉히 3일 정도면 유명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다. 특히 슬리에마Sliema와 세인트 줄리안Saint Julian 사이의 해안로가 아름답다고 하니 꼭 걸어서 산책하기를 추천한다.
글 사진 이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