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네

독일주택 獨一酒択

‘혼자 술을 마신다.’라고 하면 괜스레 쓸쓸한 풍경이 떠오르지만, 느릿느릿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네.’ 라고 하면 어쩐지 좀 다른 기분이다. 물 내음이 풍기는 바위 위에서 신선놀음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 뜻을 한자로 옮겨 ‘독일주택’이라고 발음하면 풍경은 갑자기 혜화의 어느 골목길에 자리한 술집으로 옮겨진다.

홀로 마시는
술 한 잔을 위하여

다니구치 지로의 《선생님의 가방》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생님과 여자는 단골 술집에서 처음 만난다. 여러 번 마주쳐서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하고 있지만 먼저 말을 건네진 않는다. 오래 지나 말을 하게 된 이후의 상황도 매우 조심스럽다. 한 번씩 각자의 계산을 한 후에는 칼같이 더치페이하고,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지만 서로의 안주를 빼앗아 먹지도 않고 거리를 유지한다. 홀로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침범하지 않아야 하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물론 후에는 아니지만 말이다.)

독일주택은 ‘홀로 한잔의 술을 마시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독일주택의 대표는 할머니가 오랜 세월 살았던 주택을 처음 보고 고즈넉한 공간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을 떠올렸다. 사실 한옥을 고쳐 만든 곳이기 때문에 ‘독일’과 ‘주택’의 합성어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독일이라는 단어에서 자연스레 맥주가 떠올라서 오해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단골 분들은 거의 혼자 오셔서 바에 앉아요.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지금처럼 붐비는 곳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손님이 많아져서 단골손님들이 불만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변화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지금의 독일주택은 그가 처음 상상했던 모습에서 이미 많이 벗어나 있다고 했지만,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변화를 흥미롭게 관찰하는 쪽이었다.

사려 깊고
면밀한 공간

탁자에 앉아 공간을 둘러보면 다양한 사람이 눈에 띈다. 바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둘이면 꽉 차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묘한 공기를 내뿜는 남녀도 있다. 대문 양옆에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독방에서는 가끔 분수처럼 웃음이 터진다. 갑자기 손님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직원들의 군더더기 없는 서비스와 단정한 소품을 보면 자연스레 기분이 차분해진다. “사려 깊고 면밀한 서비스. 주방 칠판에 제가 적어놓은 문장이에요. 사람들이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술을 굳이 우리 가게에서 먹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위기를 고양하기 위해서 직원들이 섬세하게 신경 쓰고 있죠.” 전반적인 정서가 조용한 이 공간에 흥을 돋우는 것은 색색깔의 타일이다. 집은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바닥에 드러누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입식으로 바꾸는 큰 공사를 했다.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공사 전에 다녀왔던 바르셀로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오래된 건물 속에 새로운 느낌의 소재를 사용해 너무 예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 신경 썼어요. 한옥과 어울리는 가구와 조명은 찾을 수가 없어 직접 만들었고요. 틈틈이 배워둔 목공이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그는 오래 걸리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하고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제빙기 위치를 정하지 못해 일주일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그렇게 친구랑 둘이서 넉 달 동안 공사했다는 독일주택은 한번 궁둥이를 붙이고 앉으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오래 만들어서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 한 잔의 술을 놓고 혼자인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곳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맨정신이 마약 아니겠습니까.
술은 낮이든 밤이든 안 마시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주택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명1길 16-4
Tel 02 742 1933

독일주택에서 소개하는
네 가지 맥주

“직원들과 시음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맛있어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으니까요. 한 달에 한 번씩 메뉴를 바꾸고 있어요. 새로운 술들이 쉼 없이 수입되고 있어 낯선 술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술병은 아름다워야 하고요.”

01 블랙 몰츠 앤 바디 솔츠 Black Maltes&Body Salts, Black Imperial IPA

고급스러운 블랙 IPA와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블랜딩한 맥주. 깔끔한 목 넘김과 깊고 길게 남는 여운이 특징이다.


02 은하 고원 맥주 Ginga Kogen Beer, Hefe Weizen 

달달한 바나나, 정향, 고수 특유의 향이 어우러진 독일식 헤페바이젠. 효모를 여과하지 않은 탁한 밀맥주 이다.


03 사이 카기 손 Sai-Kaki-Son, Saison with Persimmon 

향긋한 과일 향과 알싸함이 어우러진 맥주에 감을 넣어 은은한 단맛을 더했다.


04 코르센동크 아그너스 Corsendonk Agnus, Abbey Tripel

황금색 빛과 부드러운 거품이 특징인 대용량 맥주. 사과, 배, 꿀, 허브 등의 은은한 향이 퍼지는 우아하고 온화한 수도원 맥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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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