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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NOT A PHOTOGRAPHER
혼자임을 잊기 위해 하는 일
I AM NOT A PHOTOGRAPHER
다들 어떨 때 외로움을 느끼고 그 마음을 어떻게 달래며 살아갈까? 생각해보다 내게도 물었다. 나는 외로울 때, 무엇을 했더라. 혼자인 나를 잊기 위해 하는 몇 가지 일을 떠올려봤다.
그 시절에는 내가
우주의 고아인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전농동의 옥탑방에 살았다. 중학생 때는 가족과 살았고,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에 살았기에 혼자 사는 일은 생애 처음이었다. 나는 혼자인 나를 어쩔 줄을 몰랐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하얗게 빛났고, 저녁을 먹으려고 1인용 식탁에 앉으면 밥이 행주처럼 씹혔다. 고향 집에서 챙겨온 오디오에 CD를 넣거나 라디오를 틀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그나마 나았다. 밤은 길었고 잠은 오지 않았기에 방에 틀어박혀 그렇게 몇 가지 일만을 반복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모두 멀리 살았는데, 그나마 가끔 보는 일도 괴로웠다. 그들과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혼자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졌기에 방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언젠가 허공에 대고 “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며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 날이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웠고, 외로움이 주는 우울을 감당할 줄 몰라 아팠던 것 같다. 지나고 있을 때는 그게 외로움인 줄 몰랐다. 엄마가 “선아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라고 말하면 수치스러워서 입을 막았다. 외로움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나 외로움을 갖고 산다는 걸 알았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내가 우주의 고아인 줄만 알았다.
그 우울했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게 외로움의 슬픈 면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여전히 그런 시간은 찾아오고 그때마다 두렵지만 그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진 않는다. 나와 혼자 있을 때, 내게 무엇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고, 보여줄지에 공을 들인 뒤로 잠을 얻고, 친구를 사귀었고, 비로소 나를 구했다. ‘혼자’가 은밀하고 사적일수록 ‘함께’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것들을 생각하다
나를 잊어버리고
여전히 외로움을 피하는 건 뜻대로 되지 않기에, 외로움이 찾아오면 하는 일이 몇 가지 생겼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외로움이 엄습하면 침대에 누워 멍하게 있다. 그러다 엉엉 울기도 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옥탑방에 살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사는데, 그가 같이 울어주어 조금 낫다. ‘내일은 밖에 나가 햇볕을 쬐자. 오늘은 일단 울자. 어쩔 수 없이 망한 밤이다.’ 생각하며 그렇게 둔다. 죽을 것 같지만 매번 죽지 않았고, 다음 날이 오면 왜였는지 잊기도 한다. 다음 날까지도 외로움이 이어진다면 그날은 밖으로 나선다.
햇볕이 잘 드는 어느 자리에 가 앉는다. 카페 같은 곳은 좋지 않다. 혼자 뭔가에 집중하거나 일행과 와서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되레 외로움이 부풀 때가 있다. 버스정류장, 공원, 길거리의 어느 계단 같은 곳에 앉는다. 거기에 앉아서 지나는 것들을 본다. 그들의 걸음이나 표정, 목소리 같은 것을 그저 바라본다. 지난가을에 자주 찾았던 곳은 어느 대학의 운동장이었다. 거기 앉아 있으면 농구나 축구를 하고, 어우러져 앉아 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나에 대한 생각은 내려놓고 그저 타인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거다. 꼭 사람인 건 아니다. 때로 새이기도 하고, 나뭇잎이기도 하고, 고양이나 굴러다니는 종이 한 장, 움직이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나’를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다른 모양을 관찰하고 있으면, 그것들을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는 틈에 나를 잊어버린다.
누군가의 움직임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물리적으로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더 깊게 찾아오곤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내 것과 같지 않거나 그와 같이 있는 즐거움을 알고 있지만,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찾아오는 외로움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여름, 가을을 지나 이번 겨울에 가까워질 때까지 나는 들떠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어디론가 빠르게 걸었다. 운이 좋아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어느 날, 내가 혼자 걷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가만히 멈췄다. 웅크리고 앉아 ‘바보같이 뭘 하는 거야.’ 하며 자신을 쥐어박았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아주 멀리에 그 친구가 보였다. 멀리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 친구는 나름의 속도로 걷고 있었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걷는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걸음을 재촉하거나 뛰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게 천천히 걸으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나는 혼자 앞장서서 걸어가며 “더 빨리 와!”라고 수없이 말했던 것 같다. 혼자 토라지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더 빨리 뛰어보기도 했다. 무릎을 모으고 앉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움직이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 지켜보기에 얼마나 지치는 일이었을까. 같은 시간 속에 살지만 저마다 필요한 시간이 다르다는 걸, 멈춰서야 알아차리곤 한다. 멀리 서 있는 그를 발견하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움직이면서 더 많은 것을 보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멈춰 서서 다른 이의 속도를 관찰하고 있으면 담아두고 싶은 장면이 생기기도 한다. 매 순간을 기록하진 않지만, 드물게 눈에 박히는 것은 사진으로 남긴다. 멈춰있기 때문에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주머니나 가방에서 작은 카메라를 꺼내 조심스레 셔터를 누른다. 더 멋지게 찍겠다고 뛰어가서 거리를 좁히거나 어디론가 가서 숨지 않는다. 그렇게 있을 때는 딱 그만큼의 거리로 마음을 흔들었던 일을 남겨둔다.
오늘도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2017년 11월 23일의 해가 졌고, 거리를 걷고, 농구를 하고, 버스에 오르고, 벤치에 앉아 졸거나, 기타를 연주하거나, 어느 섬에서 부지런히 일했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냈다. 내가 느낀 ‘하루’가 다른 이에게 같은 길이가 아니었을 거란 사실을 생각한다. 분주하게 지나갔던 나의 하루와 다르게 오늘 누군가는 아주 지루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을 거다. 같은 시간이 흐르지만 저마다 다르게 느끼고 있을 거고 그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오늘도 있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볼 생각이다. 그가 오면, 조심스레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 오지 않는다고 해도 기다리며 보낸 시간을 후회하거나 상대를 원망하진 않을 거다. 누군가의 움직임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외로움을 잠시 잊을 수 있었으니까.
천천히 봐야
이해할 수 있네
누구나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달랠 거다. 영화 <스모크>의 주인공은 담배 가게를 운영한다. 그는 13년 동안 매일 자신의 가게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어느 날, 단골이 계산대 옆에 놓인 그의 카메라를 발견한다.
“누가 카메라를 두고 갔군.”
“내 거야. 오랫동안 지닌 물건이지.”
“사진 찍는 줄은 몰랐네.”
“취미로 하는 거야. 5분 정도씩 날마다 찍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체부처럼 말이야.”
“계산대에서 돈만 만지는 사람은 아니었군.”
“남들이야 그렇게 보지만 내가 꼭 그럴 필요는 없지.”
“(그가 찍은 사진이 든 앨범을 보며) 사진이 모두 같군.”
“그래 똑같은 장소만 4000장이야. 7번가와 3번가의 모퉁이를 매일 오전 8시에 찍은 거지. 날씨야 어떻든 4000일 동안 찍었어. 매일 휴가 가는 기분으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내 작품이지. 평생의 작품인 셈이지.”
“놀랍네, 이해는 안 되지만. 이런 일을 한 동기는 뭔가?”
“글쎄, 그냥 떠올랐어. 내가 일하는 구역에서 세상의 일부분이지만 여기서도 매일 일이 생기지. 내 구역에 대한 기록이야.”
“압도당한 기분이야.”
“천천히 봐야 이해할 수 있네.”
“무슨 뜻이지?”
“너무 빨리 넘기는군. 사진을 거의 안 보고.”
“모두 똑같잖아?”
“똑같아 보이지만, 한 장 한 장 다 틀리지. 밝은 날 오전, 어두운 날 오전, 여름 햇볕, 가을 햇볕, 주말, 주중, 겨울 오버코트 입은 사람, 셔츠에 짧은 바지 입은 사람, 때론 똑같은 사람,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 같아질 때도 있고 똑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도 해. 지구는 태양 주기를 돌고 있고 햇볕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지.”
“천천히 하라고?”
“해볼 만해.”
“자네도 알듯이 내일 다음은 내일, 또 내일이야. 시간은 한 걸음씩 진행되지.”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