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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낮잠 추리극
허술하고 나른한 스릴러
에어비앤비 낮잠 추리극
이건 즐거운 추리극. 에어비앤비 집주인을 가늠하고 상상하는 이야기다. 방콕과 바르샤바의 조금 보잘것없는 두 명의 탐정을 소개한다.
에디터 김건태
방콕시 구파발 사람처럼
너그러운
AM 08:00
방콕에 대해서라면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긍정도 부정도 없는 무미건조한 상태. 그러니까 지난 10년간 매년 태국의 출입국 도장을 찍은 탓에 더 이상 방콕은 내게 아무런 기대도 없는 도시가 됐다. 여행자의 거리, 사원과 왕궁, 호텔, 수영장, 마사지, 각종 시장과 백화점, 클럽, 재즈바, 퇴폐적인 밤문화까지 모든 것이 식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휴가 때마다 방콕을 찾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스르지 못하는 관습과도 같은 거였다.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매일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곳에 대한 감상을 묻는다. 그럼 나는 최대한 거들먹거리지 않는 태도로 대답한다. “글쎄,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네.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실제로 기억이 잘 나지 않기도 했지만, 의욕 없는 태도로 그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대신 현지인의 집에 머물면 어떻겠냐고. 그러면서 자신이 머물던 집을 추천해주었다. 방콕 안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서울로 치자면 구파발 정도의 이미지를 갖는 동네였다. 카오산로드나 차이나타운, 일본인의 거리와는 확실히 다른, 진짜 태국 사람들의 골목에 그 집이 있었다. 진짜 태국 사람들의 골목이란 그러니까 심드렁한 표정의 큰 개가 골목에 누워 있고, 길 고양이는 누군가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돌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조그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태국 가수의 뽕짝 리듬을 따라 부르는 풍경. 어디선가 가져온 옷감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다림질을 하는 아저씨와 조그만 절구 가득 피쉬 소스를 넣고 쏨땀을 버무리는 아주머니, 그 흔한 세븐일레븐 편의점 하나 없는 그야말로 현지인만을 위한 거리를 말이다. 나는 철저한 이방인의 상태로 길을 조금 헤맨 끝에 내가 머물 집을 찾았다.
호스트의 이름은 통퐁Tongpong. 어쩐지 탁구가 떠오르는 이름을 발음하며 괜스레 라켓 휘두르는 시늉을 해본다. 이름만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 더 단서를 모아봐야겠다. 나는 우선 두 개의 단단한 철문을 열고(그는 겁이 많은 사람일까?) 집 안으로 들어간다. 붉은색 돌바닥과 체리색의 나무 골조가 조화롭다. 벽과 바닥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채로 무심하다. 이건 시간이 흘러 낡았다기보다는 낡은 물건을 비싸게 파는 골동품 같다. 집 안 곳곳에는 저마다 꼭 필요한 각도로 가구가 놓여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같은 브랜드가 없다. 심지어 먼지도 없다. 이를 통해 유추한 통퐁의 성격 하나, 그는 조합하기를 좋아하는 예술가 타입, 그리고 결벽증.
PM 02:00
집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아래층은 거실로, 위층은 침실로 사용하는데, 족히 서너 명은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침대가 두 개나 있다. 두 개의 침대를 모두 이용하고 싶어서, 나는 낮잠을 자기로 한다.
저녁 무렵 느지막이 일어나 골목을 나선다. 쏨땀과 팟타이, 맥주를 사서 들어온다. 소파에 파묻혀 맥주를 마시고, 태국인의 노래 ‘Doo Doo Doo’를 열창한다. 도마뱀 한 마리가 분홍색 벽에 붙어 가만히 있다. “괜찮아.” 해를 끼치지 않으니 도마뱀은 착하다. 맥주를 들이켜자 생각이 단순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바라보는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오늘 밤은 틀림없이 저 녀석과 함께 자겠구나. 호텔이었다면 클레임을 걸었겠지? 하지만 태국 사람 통퐁이 수없이 봤을 풍경이라고 생각하자 문득 마음이 편해진다. 창밖으로 낮에 봤던 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고양이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 나른한 풍경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통퐁의
집으로부터
짜뚜짝 주말시장 Chatuchak Weekend Market
짜뚜짝공원 근처에서 열리는 주말시장으로 태국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손꼽힌다. 만여 개 이상의 노점이 열리며, 구역별로 비슷한 물건을 모아 판다. 관광객과 여행자, 상인, 소매치기 등 방콕의 거의 모든 사람을 모아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시장이 워낙 넓어 같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A. Kamphaeng Phet 2 Rd, Khwaeng Chatuchak, Khet Chatuchak
H. chatuchakmarket.org
O. 토~일 09:00~18:00
방콕 현대미술관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
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다섯 개의 층으로 구성되며 설치미술, 회화, 사진, 기획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태국의 신화를 현대적 기법으로 재해석한 것이 흥미롭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있어 따로 시간을 내어 가기에는 소모적일 수 있다. 주변의 짜뚜짝 주말시장과 연계해서 방문하면 효율적이다.
A. 499 Kamphaeng Phet 6 Rd, Chatuchak, Khet Chatuchak
H. mocabangkok.com
O. 화~금 10:00~17:00, 토~일 11:00~18:00
시암 니라밋쇼 Siam Niramit Show
태국의 역사와 대서사시를 주제로 하는 버라이어티 뮤지컬이다. 2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에서 150명 연기자들의 화려한 연기를 보고 있자면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공연은 세 개의 막으로 구분하여 이뤄지며, 공연 전 디너뷔페와 사전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이용을 추천한다.
A. 19 Thiam Ruam Mit Rd, Khwaeng Huai Khwang, Khet Huai Khwang
H. siamniramit.com
O. 매일 20:00~21:20
에디터 이자연
바르샤바 밀실
낮잠 사건
AM 07:00
바르샤바 구시가로 진입하는 노비쉬비아트NowyŚwiat의 한 아파트. 지난밤 열두 시를 훌쩍 넘어 도착해 아침이 되어서야 집을 구석구석 들여다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을 한자리에서 지낸 듯 녹슨 자국이 선명한 건물 외벽과는 달리 내부는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있다. 타일 바닥의 찬 기운이 맨발에 그대로 느껴지고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어쩐지 초가을 같은 선선한 기운에 7월이 낯설게 느껴진다. 구석구석 눈을 돌리다 이곳의 주인을 생각한다. 집은 그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법.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말타Marta. 그녀의 이름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 외에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침대 위와 조명이 올려진 선반 위에 웰컴푸드로 초콜릿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그녀는 타인을 반기고 환대하는 데 익숙한 사람일 것이다. 돌돔구이나 어향가지가 아닌, 호불호가 적은 초콜릿을 두다니. 똑똑하군. 잘 먹어주겠어.
AM 10:00
집은 총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침실. 화장실과 욕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다. 주방 창밖으로는 신시가지로 향하는 길목이 보여 출근하는 폴란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나는 여름휴가를 왔는데 한창 일하러 떠나는 사람들을 보니 괜한 우월감이 느껴져서 우쭐해진다. 거실에는 작은 난롯불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거실부터 침실까지 크고 작은 식물들이 놓여 있다. 아마 그녀는 작은 생명에서 힘을 얻는 모양이다. 그런데 난롯불 장식 위의 작은 틈을 비집고 TV가 있다. 어떻게든 TV는 꼭 놓고 싶었나 보다. 여러 형태로 생명을 느끼는가 보지, 뭐! 집 구경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초콜릿도 먹으니 이제 다시 잠이 온다. 지난밤 모스크바에서 경유할 때 갑작스러운 추가 지연 때문에 무척 피곤했다. 품이 큰 이불을 덮으니 가슴팍이 무겁다. 기분 좋은 중압감. 마음이 편안해서 잠이 온다.
PM 01:00
개운하게 한잠 자고 일어났다. 창밖에서 비둘기들이 ‘부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자꾸 창문을 쪼는 바람에 무서워서 깨버렸다. 혹시 집으로 들어올까 봐 허겁지겁 창문을 닫고 근처 슈퍼마켓으로 장을 보러 나갔다. 훈제 소시지와 샐러드 재료를 사 왔다. 에어비앤비의 신나고 즐거운 장점은 누군가의 주방을 마음껏 빌릴 수 있다는 것. 작은 크기의 프라이팬을 꺼내 소시지와 토마토를 구웠다. 샐러드 재료를 착착 썰어서 치즈 가루도 뿌렸다. 하얀 그릇에 먹기 좋게 담고 귀여운 식탁에 예쁘게 올려두었다. SNS에 올릴려고 핸드폰으로 식탁에서 90도 각도로 쭈욱 들어 올려 찍었다. 멋진 항공샷 완성.
말타는 아무래도 요리를 좋아하는 모양인지 다양한 요리 도구와 기본양념을 갖고 있었다. 찻장 안을 구경하다가 안쪽 구석에 맛있는 시리얼과 뮤즐리가 잔뜩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무래도 내 손에 닿지 말라고 저 안으로 밀어 넣은 것 같았다. 괜히 서운하군. 그건 그렇고 이른 점심을 먹으니 또 졸립다.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지. 비가 내려서 그러나. 아니면 지난 비행을 못 견딜 정도로 몸이 곯았나. 아니, 저 침대가 정말 마약이야. 적당한 햇볕과 시원한 공기, 보드라운 이불 때문에 잠이 쏟아진다고. 아니면 아침에 먹은 초콜릿에 혹시 수면제가 들어 있는 거 아닐까. 모두 멈춰. 아무도 나갈 수 없어. 이건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밀실 낮잠 사건이다. 내 이름은 자연, 숙면이죠. 쿨.
말타의
집으로부터
슈퍼 살롱 Super Salon
구시가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독립 서점. 다양한 주제의 매거진과 예술, 디자인 서적이 구비되어 있다. 서점 주인장이 직접 선별한 셀렉션이라는데 내용이 무척 좋다. 투명 안경을 쓴 점원과 나눈 갑작스러운 수다도 기분이 좋다.
A. Chmielna 10, 00-020 Warszawa
T. +48 22 468 16 19
O. 11:00~19:00, 일요일 휴무
부우켕 프셰즈 비부우켕 Bułkę przez Bibułkę
바르샤바의 유명한 브런치 집. 점심에 가면 브런치에 5즈워티만 추가하면 카푸치노도 같이 즐길 수 있다. 1인이 먹기 충분한 양과 기분 좋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두 번 연속 방문하기도 했다. 오믈렛과 베이글을 추천한다.
A. Zgoda 3, 00-018 Warszawa
T. +48 730 285 522
O. 평일 7:30~23:00, 주말 9:00~22:00
바르샤바 국립미술관 Warsaw National Museum
큰 규모의 미술관으로 시대별 회화 작품과 현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휴게 공간이 잘 되어 있고 짐을 편히 맡길 수 있다. 구간마다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 질문할 수 있다. 화요일에는 무료로 운영된다.
A. Aleje Jerozolimskie 3, 00-495 Warszawa
T. +48 22 621 10 31
O. 10:00~18:00, 월요일 휴무
와지엔키 공원 Łazienki Park
매주 일요일마다 12시와 4시, 두 번의 쇼팽 공연이 열리는 곳. 쇼팽의 동상 앞으로 사람들이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앉아 고요히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오붓한 주말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돗자리를 가져가서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 채 연주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A. Łazienki Królewskie, al. Ujazdowskie, 00-001 Warszawa
T. +48 504 243 783
O. 매주 일요일 오후 12:00, 16:00
글·사진 김건태, 이자연
장소 협조 에어비앤비 www.airbn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