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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낙차
“이곳에서 산다면 어떨 거 같아?”
여행 중이라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동행인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이곳에서 산다면 어떨 거 같아?”
여행지를 격하게 좋아하거나 싫어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풍경을 만났을 때, 세상 어느 곳에나 만개한 지루함을 만났을 때 문뜩 슬퍼지며 묻게 되는 질문이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겠지.”라는 게 나한테 질문을 받은 동행인들의 주된 대답인데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 가끔 그 뻔한 사실에 나는 신경이 쓰인다. 나의 특별한 장소, 휴가 차 떠난 여행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의 별다르지 않은 삶을 엿보게 되면 어쩐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관광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자신의 삶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찰랑거리고 야자수의 넓은 잎사귀가 진한 그림자를 만드는 열대 지방에선 여행자들에게 그들의 일상을 내보이지 않는다. 여행자 길들이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능숙한 미소와 함께 익숙한 방식으로 여행자들을 환대한다. 그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살핌받는 사람, 환대받는 사람으로 길들게 되며 되도록 빨리 낯선 장소에 적응하려 한다. 여행자는 짐을 풀고 편한 각도의 의자에 누워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좋구나, 그래 나 이제 쉬러 왔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토록 기분 좋은 환대는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나를 반겨주고 아껴주는 그들이 시야에서 벗어나면 곧 만나게 될 이곳의 일상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차를 타고 나가면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도 그들의 진짜 삶을 곧 만날 수 있다. 한적한 도롯가에 드문드문 놓인 집들과 땅끝까지 뻗은 건물의 그림자. 정돈되지 않은 공터, 지루한 강아지들.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빈 땅이 많다. 환대로, 미소로, 파란 바다와 시원한 음료 등 무언가로 가득 차 있던 곳에서 벗어나 공허한 풍경을 마주하면 늘 가지고 다니는 나의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무척 심심하겠지? 그리고 무척 외롭겠지?’ 나는 종종 휴양지에 도착하기 전 그곳에서 경험하게 될 삶의 낙차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봐서 그런 걸지도. 나는 한적한 장소의 느낌을 두려워하거나 낯설어하는 것 같다. 한 번도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걸 부끄럽지 않게 말하는 것으로 나의 배경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밖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는 미국 사는 바보 같아 보일지도, 아니 인구 대부분이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까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서울 밖은 잘 모르는 바보로서, 나는 서울 바깥의 모습을 지리 시간에 배운 모습으로 가득 채웠다. 대구엔 사과가 유명하고, 청양은 고추가 유명하다. 단양은 마늘이 유명하다…. 차를 타고 순식간에 지나간 도시의 어느 모습은 도시에 대한 나의 빈약한 이해를 확신으로 전환시켜 주기도 했다. 정말로 단양에선 가로등이 마늘 모양이었고, 청양의 가로등은 고추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빠알간 고추 모양…. 대구는 단 한 번도 차를 타고도 지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사과와 분지 등으로 조합된 대구의 이미지는 쉽게 변할 일이 없었다.
대구의 심리적 거리는 미국의 어느 도시만큼이나 먼 곳이었다. 이를테면 포틀랜드나 휴스턴 같은. 나에게 포틀랜드는 《킨포크》 잡지 사진 같은 곳이고, 휴스턴은 로켓을 쏘는 곳이다. 그나마 지리 책에서 배운 도시는 팩트에 기반한 쓸 만한 내용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인터넷에서 배운 대구의 이미지는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는 것들뿐이었다. 날씨가 덥다고 하여 대프리카,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하여 고담 대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대구는 서울 및 6대 광역시 중 강력범죄 발생률이 가장 낮은 도시로 나타났다.) 내 주변 사람 중 대구에서 자란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떠드는 도시의 이미지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듯 굳이 자신이 살던 도시를 두둔하거나 미화하려 들지 않았다.
“어 대구 덥지, 더워…. 근데 곱창은 맛있어.”
대구에 곱창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도시로의 여행이란 무엇일까? 몇 년 전 공모전 심사 차 처음으로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로 떠나는 KTX 안에서 나는 휴양지에서의 환대와는 다른 좀더 무뚝뚝한 환영 방식을 상상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길거리에서 거기 서 있지 말고 비키라고 소리치는 상인과 엄청 맛있는 음식을 내주면서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식당 주인. 이런 장면들을 상상하며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는 이런 삶이 만연할 거라 생각했다. 이른바 ‘고담’이라는 별명이 붙은 거친 도시라면 충분히 그보다 더한 것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연한 것은 사실은 ‘로컬’ 병이다. 휴양지에서나 낯선 도시에서나 어디에서나 이른바 ‘로컬’의 모습을 한껏 기대하며 망가질 준비를 해보는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 가을날 KTX 동대구역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대구의 모습은 깔끔하고 현대적이었다. 현대적이라는 표현이 되려 올드해 보이지만, 그보다 적합한 표현은 찾을 수 없다. 힙하거나 핫하지 않았고, 굳이 서울과 비교하고 싶지 않았으니. 역 앞에 신세계백화점을 왼쪽으로 끼고 선형으로 난 큰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물론 서울과는 다른 풍경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것은 을지로와 강남이 다른 것만큼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깨끗하고 촌스럽지 않고 좋은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심사 장소까지는 버스로 네 정거장쯤 가야 하지만 걷는 기분이 좋아 그냥 그 거리를 걸어서 갔다.
로컬 체험을 해야 하니까 나는 서울에서 보지 못한 오래된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막창, 곱창… 잘 못 먹는 음식이라도 이곳에 왔으면 한 번씩 경험해 보는 게 좋지. 그러나 위장과 대장은 항상 대뇌보다 솔직한 정답을 내놓는다. 오늘처럼 시원한 날씨와 시원한 거리에서는 샐러드가 적합해 보였다. 마침 새로 오픈한 샐러드 가게가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 샐러드를 주문했다. 무인 단말기에 주문을 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서울에서도 샐러드를 먹겠다고 가게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임에도, 수많은 별명이 가리고 있던 도시임에도 대구에서 나는 어떠한 심리적인 낙차도 경험할 수 없었다. 도시로의 여행은 이른바 일상이라고 하는 것과 나를 분리시키지 않으며, 심지어는 나를 그들의 일상에 포함시켰다. 도시화는 서울만의 이야기는 아니라서 나는 이미 여러 곳에서 로컬이 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샐러드를 씹었다. 도시를 방문하며 그곳만의 지역색을 기대하는 것, 그곳에서 깜짝 놀랄 경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그건 열대 지방 휴양지에서 파라다이스를 찾는 것만큼 순진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특별하고 다른 것은 있겠지만 이제 그것들은 먼 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가게의 다른 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