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시금치가 좋아

그렇게까지 맛있는 건 아님.

“넌 가장 최근에 감동받은 일이 뭐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할말이 없었기 때문에 화젯거리를 찾아 던진 말이었다. 최근에 봤던 영화, 최근에 들었던 음악, 최근에 봤던 전시를 떠올리며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생각했다. 좋았던 영화, 좋았던 음악, 좋았던 전시는 많이 떠올랐는데 감동했다고 말하기엔 쉽지 않았다. 왜 감동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 대신 좋고 나쁨에 대한 이야기만 그렇게 많이 떠올랐을까? 평론가라도 되어버린 걸까? 별거 아닌 질문에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친구는 대화가 단절되는 것을 우려한 듯이 말했다.

“에이…. 감동받은 일이 없나 보네. 없으면 됐어–.”
“아니 있어. 시금치…!”
“시금치?”

난 문뜩 생각나는 것을 툭 던져 놓고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몹시 추운 날 아침, 집 앞 재래시장에서 시금치를 만났다. 붉은 흙이 묻은 상태로 커다란 소쿠리에 한 무더기 담겨 있었는데 아직 자기가 땅에서 뽑힌 줄 모르는 것처럼 싱싱해 보였다. 재래시장에 가는 일도 별로 없고, 가서 무언가를 사 오는 일도 별로 없었지만 그날은 시금치를 사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집 앞 재래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곳으로 새벽에 길 한복판에 장을 펴고 아침 일찍 장을 닫는다. 노점에서 펴는 장이라서 그런지 카드 결제는 되지 않고 계좌이체는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얼마 전 엄마한테 세뱃돈으로 받은 오만 원이 지갑에 있어 그 돈으로 시금치를 구입할 수 있었다. 오만 원 내면서 너무 조금 사긴 뭐해서 최소한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몇천 원어치 더 샀는데도 심각하게 양이 많았다. 한 손 가득 시금치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야 놔 봐 놔 봐….” 시금치가 소리 지를 것 같았다.

난데없이 시금치를 사게 된 이유는… 말 그대로 난데없이 산 거라서 정말 이유가 없지만, 그래서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시장에서 시금치가 나의 눈길을 끄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채소들 중에서도 도드라지는 생명력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잡초를 뽑아놓은 것처럼 아무 곳에나 올려놓은 이 풀 덩어리들은 마치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잉크가 뚝뚝 떨어질 것처럼 진한 색깔을 띠고 있었고, 잎사귀는 관리받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뻣뻣해 보였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랩에 싸인 식물, 나무에서 분리된 단정한 잎사귀들과는 달랐다. 어찌어찌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다른 식물들에게 “식물들아! 왜 다들 이렇게 풀 죽어 있어?”라고 말하며 혼자 시끄럽게 굴고 있었다. 시금치의 뿌리에서는 보라색 야생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시금치의 뿌리는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어릴 때부터 내가 먹어본 시금치에는 뿌리가 없었고 그래서 뿌리는 상상해 보지 못했는데, 뿌리를 즐기기 위한 고들빼기 같은 식물들처럼 통통하고 굵은 뿌리를 지니고 있었다. 싱크대 위에 시금치들을 올려놓으니 싱크대 절반이 가득 찼다. 마치 시장에서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사 온 사람처럼 시금치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이제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유튜브를 켜고 시금치 요리법을 찾아보다가 곧 유튜브의 다른 영상으로 관심이 옮겨붙었고, 시금치는 그날 싱크대 위에서 방치되었다. 그날 저녁인가, 시금치는 베란다로 옮겨졌다.

그렇게 이삼 일이 지나고 나는 시금치를 잊은 채로 지냈다. 그사이 영하권의 날씨가 이어졌고 주말이 되어 문뜩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시금치가 다시 발견되었다. “안녕–!” 어두운 노란 불빛 아래서 시금치는 밝게 인사했다. 좁고 추운 곳에 갇혀 있어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여전히 밝아 보였다. 시금치 때문인지 감자와 양파 등 주변의 다른 음식들이 괜히 피곤해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원래 시금치는 생명력이 강해서 냉해도 잘 입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유튜브를 켜고 유튜브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시금치를 씻으세요, 시금치에는 흙이 많으니까 뿌리를 잘라내고 사이사이를 잘 헹궈 주세요. ‘그래서 시금치의 뿌리를 맛보지 못했던 거군….’ 하지만 나는 뿌리를 먹어보고 싶어 잘라내지 않았다. 대신 더 깨끗하게 잎사귀 사이사이를 씻었다. 끓는 물에 시금치를 담그고 잠시 후에 꺼내어 맛을 보았다. 그리 오래 삶지 않았는데도 시금치는 음식으로 변해 있었다. 오! 바야흐로 식물이 음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시금치 색은 이전보다 더 진하게 변했고, 시금치를 끓인 물엔 초록색 염료가 남아 초록빛을 띠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드세던 시금치는 금세 부드러워졌고 뿌리에선 조금도 쓴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빵과 메추리알에 시금치를 곁들여 우걱우걱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마치 소처럼…. 뿌리를 제거하지 않은 탓인지 서너 번 작은 돌이 씹혔다. 참기름과 마늘을 넣기도 하고, 올리브 오일을 넣어 보기도 하고, 땅콩을 갈아 넣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시금치는 끝나지 않아 나머지는 냉장고에 처박아 두었다.

지독했던 점심이었지만 그 후로 나는 시금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금치가 별미가 되었다거나 시금치의 대단한 맛을 알아버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해맑은 시금치를 한가득 쌓아 놓고 매일 삶아 먹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시금치의 푸석푸석한 머리 스타일과 누렇게 변하더라도 여전히 빳빳한 잎사귀다. 마치 철물점에서 파는 포대처럼 붉은색 노끈에 대강 묶여서 팔리는 그 모습이다. 모래 속에 얕게 몸을 묻고 사는 못생긴 물고기가 연상되는 시금치라는 이름도 좋아한다. 팔뚝에 타투 하나 새기게 된다면 더벅머리 파란 시금치 하나 작게 그려 넣고 싶은 정도? 딱 그 정도로 시금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날의 시금치는 어딘가 감동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아름답지 않은 식물이 거친 풍파를 이기고 맛있는 음식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감동이었다고 말하기엔 평범하지 않은가? 그렇게 이야기하기엔 너무 아쉬워 무언가를 더 떠올려야 했다. 파란색에 가까운 초록색과 냄비에 남아 있던 연두색 물과 그것을 감싼 빨간 노끈 같은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시금치에 대한 감동을 전할 방법이 없어 혼자서 생각했다. ‘무언가를 더 설명할 수 없어서 감동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평가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전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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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