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하지 못하는 배들

행복하고 싶어요

“승재 씨 지금 책 많이 읽어둬요.”
“왜요?”
“나이 들면 글씨가 안 보여요.”
“허걱!”

한때는 젊은 건축가였고 지금도 여전히 젊은 건축가 축에 속하는 건축가 이진오 씨는 나에게 섬뜩한 조언을 남겼다. 아니 조언이 맞나? 예언이었나? 예언치고는 이뤄질 확률이 너무나 높다. 나중에는 책을 읽기 힘들어질 거라는 예언은. 그래서 어쩐지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치 “너는 이제 큰일 났다네~.”라고 놀리는 듯한 군대 선임의 표정이 그에게서 보였다. 분명히 그랬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앞으로 글씨가 보이지 않아 책을 읽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는 사실은 좀 경각심이 들었다. 나 비록 머리에 든 건 별로 없어도 세상엔 책이란 것이 있기에 내 머리 밖에 있는 지식들을 아예 남의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다. 아무튼 모든 지식은 인류의 것이고 나도 그 중 한 사람 아닌가. 그래서 이 모든 글을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것, 어쩌면 내 것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 머릿속에 든 얼마 안 되는 재료로만 평생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더 이상 내가 아는 것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앞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머지않아 바다를 잃게 될 국가, 더 이상 항해하지 못하는 배가 되는 것이었다. 시각이라는 감각이 시각 이상의 세계를 짊어지고 있구나 생각하였고, 나는 앞으로 눈을 소중히 다뤄야겠다고 생각하며 ‘루테인지아잔틴(눈 건강에 좋다는 영양제)’을 아침마다 먹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 앞으로 글씨를 읽을 수 있는 것도 10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을 상기하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가리는 게 많아진 건지. 어떤 책은 제목만 봐도 다 알 것 같았고(물론 착각이다.) 어떤 소설은 재밌어 보였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았다. 그 시간에 좀더 도움이 되는 글을 읽으면 어디서 아는 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책은 슬픔의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까지 펼쳐서는 안 될 것 같았고, 어떤 책은 완전 망한 다음에 읽으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책도 약처럼 처방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이 들었고 하얀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책을 처방해 주는 장면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우웩.

어쩌면 난 이미 눈이 멀어버려 책을 읽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이 책 저 책 고르지 못해 끝내 눈이 멀어버렸다고 생각해 버렸다. 아니면 눈이 아닌 다른 것이 멀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책을 읽지 않는 핑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시간 부족, 나태함, 스마트폰 중독 등의 이유로 몰아가는 건 너무나 가혹하며 재미없다. 세상 모든 갈등의 이유를 인간의 이기심 따위에서 찾는 것만큼 재미없다. 재밌는 것은 새로운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어쩌면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다른 감각, 예를 들면 시각 같은 중요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어서는 아닐까?

책을 읽는 데는 송충이의 털만큼이나 많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시각은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자. 나는 예전엔 그 외에 여러 가지 감각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믿는다. 허영심, 과잉된 자의식, 충분한 시간, 풍성한 미래… 뭐가 되었든 나는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었고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나 요즘은 수많은 감각 중에 무언가가 결여된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날 뜬금없이 시인(이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 요즘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았다. 시인(이었던) 친구는 자기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며 이젠 시인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다. “승재 씨 저는 이제 책 안 읽어요. 책을 읽으면….” 그리고 뭐라고 했던가. 정확한 말을 옮겨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그에게 이유를 들었을 때만큼 멋지게 이야기를 옮길 자신이 없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만큼이나 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많다. 세상에 어떤 일도 대충 해서는 안 되지만 세상 모든 일을 제대로 해서도 안 된다. 오우 쒯! 어쩌다 내가 이따위 쉰내 나는 소리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무튼 부끄럽지만 그건 사실이다. 모든 일을 제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효율과 안전의 문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책을 읽고 또 읽고 생각을 갈고 또 갈아 날카로운 생각을 갖게 되면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생각을 갖게 되는 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점점 날카롭게 갈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내 시인(이었던) 친구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너무 뾰족해서 더 이상은 서 있을 곳이 없다며, 그래서 책을 그만 읽고 글을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내가 이해한 바를 전하자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책을 읽도록 하는 감각 중에 몽상의 감각이 무뎌져 그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몽상가였고, 아마 지금도 잠꼬대 꽤나 하는 몽상가일 것이다. 나에겐 여전히 몽상의 기운이 충분한데 나는 왜 책을 읽지 않는 걸까? 어쩌면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난 생각보다 부끄럼이 많으니까. 한 명 한 명 사라져가는 몽상가들 사이에서 혼자 멀거니 서 있는 것이 부끄러워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 명 한 명 자리를 뜨는데 혼자 서 있는 것도 참 부끄러운 일이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68혁명이 지난 직후 축제에 취한 이들에게, 젊음에 취한 이들에게, 그 뜨거움에 취했던 이들에게 축제가 끝난 이후에 대한 당부를 남겼다. 부디 나이가 들어 소파에 앉아 편하게 맥주나 마시며 “우리는 젊었고,  그 시절은 아름다웠지.”라는 식으로 이 날들을 기억하지 말아 달라고. 오우, 그러나 모르는 소리…. 사람들 모두 떠나가고 텅 빈 광장에 서 있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운데, 누군가는 한때의 시절이라고 부르는 그 시절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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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