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그림책 읽는 법

좋은 그림책

여섯 살 자람이는 열 살인 형 아람이를 따라 독서교실에 와본 적이 있다. 그때 본 독서교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 건지, 나와 책에 대해 얘기하고 능숙하게 책을 고르는 형이 멋있어 보인 건지, 아니면 헤어질 때 받은 곰돌이 젤리가 마음에 든 건지 모르겠다. 자람이는 한동안 엄마를 졸랐다고 한다. “왜 형아만 독서교실에 가? 치사해. 나도 그림책 좋아하는데.” 

그런데 미안하게도 자람이는 독서교실에 올 수가 없다. 아람이 말대로 ‘글자를 쪼끔은 알아야’ 해서만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잘 읽어준다고 해도, 자람이 아버지만큼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나는 할머니처럼 자람이를 무릎에 앉힐 수도, 어머니처럼 어제 그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책을 읽을 수도 없다. 자람이는 나보다 친밀한 어른, 그러니까 양육자와 읽어야 한다. 그림책은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독서교실 수업에서 어린이 청소년에게 그림책을 자주 읽어준다. 하지만 이때의 그림책 읽기는 텍스트를 이해하고, 이야깃감을 찾고, 작가의 의도를 알아보는 연습을 위한 것이다. 유아가 가족의 품에서 독자로서 첫 발을 떼며 그림책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01

우리는 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줄까

흔히 ‘아이가 글자는 몰라도 그림은 이해하니까’ 그림책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림은 이해하기 쉬울까? 미술관에서 처음 보는 그림을 감상한다고 생각해보자.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림만 보아서는 큰 감흥을 얻기가 어렵다. 물론 그림의 크기와 색감, 분위기에 감명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만일 거기에 간결하면서도 의미가 풍부한 말로 그림을 안내하는 글이 있다면 어떨까? 설명을 읽고 나서 다시 그림을 보면 훨씬 감동적일 것이다. 

옆에서 누군가가 다정다감하게 그림을 설명해주고 홀로 감상할 시간까지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감상하는 그 순간이 특별해질 것이다. 아이가 그림책을 보는 순간에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림책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부모와 아이가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02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그렇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는 시간은 부모에게도 즐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보기에도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제목과 표지에서 독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노력한 그림책이 좋다. 물고 물리는 생태계의 순환을 다룬 그림책 《누가 누구를 먹나》는 판형이 시원스럽고 바탕색이 강렬한 빨강이라 눈길을 끈다.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그림도 제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즐거운 그림책이 좋다. 《곰 사냥을 떠나자》에 “곰 잡으러 간단다. 큰 곰 잡으러 간단다. 정말 날씨도 좋구나! 우린 하나도 안 무서워.”라는 후렴이 없었으면 세계적인 스테디셀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제작에 공들인 그림책이 좋다. 출간되자마자 편집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화제가 된 《수박 수영장》은 사각형을 유지하면서도 책 한 권을 수박인 것처럼 만들었다. 면지는 초록색, 옆면은 빨간색으로 연출했다. 속표지와 판권 곳곳에 수박씨를 그려 넣은 유머가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영리한 그림책이 좋다. 《사라지는 동물 친구들》은 화려한 그림 속에 멸종 위기 동물들을 숨겨 놓은 그림책이다. 독자는 빈틈없이 아름답게 그려진 수풀, 바다, 땅속을 감상하면서 숨은그림찾기를 한다. 구호 한 번 없이 자연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게 하는 멋진 기획이다.

03

여러 갈래 길로
다가가자

그림책은 물리적인 매체다. TV나 스마트기기와 달리 우리가 책꽂이에서 꺼내고, 펼치고, 소리 내어 읽고, 책장을 넘기고, 때로 돌아가고, 책장을 덮은 다음, 다시 책꽂이에 꽂아야 한다. 아이와 그림책을 읽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일이다. 번거로운 일이고, 그래서 즐거운 일이다. 종이책의 물성을 대체할 전자책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그림만 있는 책을 읽어보자. 《파도야 놀자》에는 글자가 없다. 글자를 모르는 어린이는 스스로 대사를 만들어가며 시끄럽게 읽는다. 글자를 아는 어린이는 조용히, ‘글자가 없음’을 즐기며 읽는다. 

글자만 있는 책을 읽어보자. 《그림 없는 책》은 글자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책이다. 알록달록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글자들이 꼭 그림처럼 보이는데, 읽어보면 우스운 말들이기 때문이다. “펑 퍼어즈먼 펑덩이”처럼! 

사진과 일러스트가 결합한 그림책을 읽어보자. 《나르와 눈사람》은 우즈베키스탄 옛이야기를 텍스트 삼아 한국 작가가 콜라주로 완성한 세련된 그림책이다. 정진호는 사려 깊은 그림책 《위를 봐요!》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 상을 받으며 데뷔한 작가다. 세상에는 좋은 그림책이 정말로 많다. ‘필수’로, ‘단계별’ ‘영역별’로 떼야 하는 전집 그림책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04

어떻게 읽어줄까

아이와 그림책을 읽을 때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듯이 읽는 것이 좋다. 과장하지 않아도 된다. 적힌 내용에 따라 높낮이와 크기, 속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높이 올라갔어요’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걸었어요’를 빠른 속도로 읽을 사람은 없다. 

요령보다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침묵을 포함시킬 것. 장을 넘길 때는 물론이고 행간에도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림책을 읽는 중 ‘정지’는 독자를 진정시키거나 반대로 긴장시킨다. 둘 다 좋은 효과다. 또 이런 침묵의 순간에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다음은 끝까지 읽어줄 것. 어떤 모험이라도 끝이 있는 법이다. 마무리가 잘 되어야 책과 즐겁게 헤어질 수 있다. 좋은 그림책은 여운을 즐기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면지까지 읽어야 하는 그림책도 있다. 거장 존 버닝햄의 《비밀 파티》는 아이들이 고양이를 따라가서 밤새 신나게 놀다 오는 이야기다. 앞면지에도 뒷면지에도 고양이가 문을 통과하는 그림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앞면지의 고양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고양이, 뒷면지의 고양이는 밖으로 나가는 고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험은 끝났고,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05

다 읽고 나서
무엇을 할까

‘독후 활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림을 따라 그리고, 뒷이야기를 이어가는 정도로 충분하다. 읽은 책을 남에게 소개해주는 것도 좋다. 책을 소중히 여겨 제자리에 잘 꽂아두는 것도 좋은 독후 활동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재미있었다면 서점에서 구입하자. 소장의 기쁨도 누릴 수 있고,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며 좋은 책이 계속 출판되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 때로는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과감히 새로운 책을 사서 보자. 나만의 새 책을 펼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기대해보자. 

자람이는 결국 독서교실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내)고 말았다. 수업은 아니었지만 책을 실컷 구경하고 선생님의 책 소개도 듣고 신중하게 읽을 책을 골랐다. 들릴 듯 말 듯 “나는 나무를 좋아하는데…” 하기에 나무와 관련된 책들을 잔뜩 보여주었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덕분에 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고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인가 하면,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좋은 책이다. 그림책도 좋지만 독자를 보자. 아이를, 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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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