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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희 — 더블실린더 삭스샵
형형색색 예쁜 양말을 서랍장 가득 들이기는 했으나 정작 ‘걷는 감각’에는 무심했던 내가 처음으로 양말 신은 감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리듬으로 걸음을 이끄는 힘이 양말에서 비롯된다는 오수희 대표의 믿음. 그 믿음에 자연스레 스며든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꼭 맞는 양말을 선물할 때 “당신의 하루에 가장 가깝게 관심을 두고 싶다.”는 마음을 담게 될 것 같다.
오늘 빨간 양말을 신으셨네요. 색감이 정말 예뻐요.
다 해지고 구멍도 났는데, 여전히 신고 다닐 만큼 아끼는 양말이에요. 캐시미어로 만든 제품이라 가격은 9만 원대로 꽤 높은 편이죠. 캐시미어가 본래 비싼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었을 때 느낌이 달라요. 구름을 가볍게 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요.
어머, 구름을 얹은 느낌이요?
네, 정말요! 제가 신은 이 양말은 ‘니시구치 쿠츠시타Nishiguchi Kutsushita’라는 일본의 양말 브랜드 제품인데요. 예전에도 다양한 양말을 신어봤지만, 이 양말을 처음 신었을 때 ‘발에 닿는 감촉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을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소재의 양말이에요. 가격대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모두가 한 번쯤은 나를 위해 신어봤으면 할 정도로요.
대표님의 서랍장은 어떤 양말들로 채워져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많은 분들이 제가 양말 가게를 운영하니까 양말을 꽤 많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웃음). 저는 의외로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필요하지 않은 건 굳이 모아두진 않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질감의 양말들만 몇 가지 소장하고 있어요. 여름에는 리넨 소재 양말 몇 켤레, 겨울에는 울 소재 양말 몇 켤레, 그리고 부드러운 고급 면사로 된 코튼 양말과 도톰해서 통기성이 좋은 양말 정도예요. 그래서 제 양말 서랍장이 엄청 화려하거나 다양하지는 않아요. 대신 한 번 신으면 꽤 오래 신죠. 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오늘 착장에는 이 정도면 되겠다.’, ‘오늘은 많이 걸을 것 같으니까 바닥에 쿠션이 도톰하게 들어간 양말을 신어야겠다.’ 하는 식으로 기준을 두고 몇 가지만 갖춰두는 편이에요.
그렇게 ‘나만의 양말 고르는 기준’이 생긴 시점은 언제였어요?
10년 전쯤에 친구가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양말 하나를 선물해 줬어요. 그땐 제가 특별히 양말에 관심이 있거나 민감하게 생각하던 편은 아니었는데 신어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꽤 오래 신었죠. 그 당시에는 제가 30대 초반이라 발이 불편하다는 걸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양말에 따라 피로감이 다르다는 걸 크게 느낀 적이 있어요. 제가 손님들에게도 자주 말하는 에피소드인데요. 코로나 때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늘 양말을 신고 있었어요. 그런데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발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평소엔 신발이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원인이 양말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 좋은 신발을 신어도 발이 피곤했던 이유가 양말 때문이었구나 싶었죠. 이전에 친구가 선물로 준 양말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 뒤로 좋은 소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도 일본에서 양말을 직구해 신어봤고요.
직구해 신었던 양말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일본 제품들은 소재와 짜임이 정말 다양했어요. 사이즈 구분도 세밀하고요. 우리는 보통 사계절 내내 면 양말로 버티잖아요. 우리가 그동안 양말을 너무 가성비로만 생각해 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구조나 소재, 짜임 같은 걸 하나씩 체감하며 익혀갔죠. 여러 양말을 신다 보니 저한테 가장 편안한 건 ‘더블실린더’라는 기계로 짠 양말이더라고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립 조직’ 이라는 세로 골지 짜임으로 되어 있어서 신축성이 뛰어났어요. 발을 부드럽게 감싸주면서도 가볍게 늘어나니까 훨씬 편했고요.
양말 만드는 기계는 크게 더블실린더와 싱글실린더로 나뉜다고 알고 있어요. 둘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두 방식은 양말의 구조와 짜임에서 차이가 생겨요. 더블실린더로 만든 양말은 글씨나 그림 같은 디자인 표현은 어렵지만, 골조직과 편직 방식이 다양해 착용감이 훨씬 편안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신축성과 밀착감이 좋아서 발에 자연스럽게 감기죠.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이해도와 감각이 중요해요. 반면 싱글실린더는 다양한 그림이나 문양, 글씨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편직 방식에는 한계가 있어요. 두 방식을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어요. 양말 상단이 접혀 있다면 싱글실린더, 접힘 없이 마감되어 있다면 더블실린더로 만든 양말이에요. 한국에는 ‘갑종’이라 불리는 더블실린더 기계가 먼저 도입되었는데요. 예전에는 이 방식으로 양말을 많이 만들었지만 생산 효율이 낮고 공정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점차 컴퓨터화된 싱글실린더 방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대부분 ‘을종’이라 불리는 싱글실린더 방식 위주로 많이 생산되다 보니까 더블실린더 기계를 취급하는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 계기로 더블실린더 양말을 모은 가게를 열게 된 거예요?
처음부터 양말 가게를 운영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졌을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어떤 형태로든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퇴사를 결정했어요. 그때는 스타트업 앱 서비스가 한창 붐이던 시기라 저도 그 물결 속에서 식물 관련 앱을 만들어봤고요.
식물 앱이요?
네(웃음). 코로나 시기엔 모두가 식집사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초보 식집사들의 고민은 늘 비슷했어요. 식물이 자꾸 죽고, 분갈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식물 키우는 사람과 전문가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구상했죠. 분갈이를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 있으면 재밌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였어요. 정부 지원 사업에도 선정돼 실제로 개발까지 했지만 막상 완성하고 보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없더라고요. 식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가치로 전할 만큼의 애정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결국 제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트렌드를 좇은 프로젝트였던 거예요. 잠시 쉬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를 고민했죠. 그러다 보니 제 일상에서 늘 불편했던 게 발과 관련된 문제더라고요. 답답해서 양말을 벗고 싶어진다든가, 작은 자극에도 피로감을 느낀다든가 하는 불편함이요. 저만 그런 게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발과 관련된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죠. 처음엔 ‘발을 씻자’라는 제품처럼 발 세정제를 떠올렸어요. 외출하고 돌아와서 그걸로 발을 씻으면 개운하고 편하잖아요. 그런데 쓰다 보면 거품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품을 거꾸로 뒤집어도 거품이 잘 분사되는 풋 샴푸를 직접 제작했어요. 그다음엔 메인 제품인 양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공장들을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아, 원래는 직접 양말을 생산하려 하셨군요? 과정이 쉽지 않았겠는데요.
네, 양말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공장도 찾아다니고 아카데미도 수강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가 구상한 양말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고,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죠. 그 일을 겪으면서 세상에는 이미 완성도 높은 제품이 많은데 굳이 제가 새롭게 만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보다는 좋은 양말을 선별해 소개하고 그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방향을 바꾸기로 하고 작년 4월, 지금의 더블실린더 삭스샵을 열었고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양말’은 어떤 거예요?
양말을 신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발이 편안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편안함의 기준은 결국 좋은 소재에서 시작되는데요. 저는 천연 소재 함유량이 높은 양말을 고르려 해요. 여름엔 리넨이나 헴프처럼 질감이 거칠고 통기성이 좋은 마 소재가 시원하고 상쾌하죠. 겨울엔 울이나 알파카, 캐시미어처럼 털에 공기층이 있는 소재가 보온은 되면서도 답답하지 않게 감싸줘요. 계절에 맞는 천연 소재 양말을 신으면 발이 훨씬 편안해요. 그리고 짜임도 중요한데요. 일반적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양말은 오밀조밀하고 얇게 짜여 있는데, 발에 열이 많거나 답답함을 쉽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런 짜임이 열을 막아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져요. 신축성이 충분한 짜임의 양말을 신으면 훨씬 덜 답답해요. 한국에서는 얇은 양말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실제로 도톰한 양말일수록 통기성이 더 좋아요. 제가 직접 양말을 보여드리면서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네, 너무 좋죠!
(몇 가지 양말을 직접 가져온 뒤) 아까 설명해 드린 것처럼 싱글실린더로 제작한 양말은 이렇게 윗단에 고무가 짱짱하게 들어가고 바디에 조직감이 없어요. 양말에서 조직이라는 건 이런 신축성을 말하는 건데, 얘는 조직감이 부족해서 신축성이 떨어져요. 재밌는 게 많은 사람들이 양말을 볼 때 만져보고 짱짱하냐를 많이 따지거든요. 그런데 고무가 짱짱하면 혈액 순환을 방해하고 양말 몸체 부분에 조직감이 없으니까 답답해요. 게다가 세탁을 몇 번 거치면 고무가 늘어나서 흘러내리고, 결국 못 신는 양말이 되기도 하죠. 반면 짜임이 있는 더블실린더 양말은 조직이 발목을 가볍게 잡아줘서 압박감이 별로 없어요. 양말 몸체에서 잡아주기 때문에 쉽게 풀리거나 늘어나지도 않고요. 그래서 이런 양말을 신으면 훨씬 편안함이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대표님과 양말 취향이 비슷할 것 같은데요(웃음). 사람마다 선호하는 발의 느낌이 모두 다르겠죠?
그럼요. 저희 가게에 싱글실린더 제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너무 두꺼운 양말은 안 맞는 분도 계시고요. 그래서 “사장님, 여기서 가장 좋은 양말이 뭐예요?”라고 손님들이 종종 물어보시곤 하는데 사실 그런 건 없어요. 사람마다 발이 다르고, 선호하는 감각도 다르니까요. 게다가 라이프스타일이나 그날 걷는 정도에 따라서도 좋은 양말은 달라지죠. 저희 매장에는 발을 씻고 직접 양말을 신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요. 구비된 양말을 하나씩 신어보면 사람마다 제일 좋다고 느끼는 게 모두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결국 하나의 ‘좋은 양말’이라는 건 없는 거죠.
결국 양말을 고르는 일은 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이네요. 평소 잘 신경 쓰지 않던 발의 모양과 감각, 취향에 집중하면서요.
맞아요. 걷는 순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발바닥으로 지면을 느끼게 되잖아요. 그 감각의 중심엔 양말의 촉감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불편하면 몸도 쉽게 피로해지고요. 그래서 내가 어떤 감각을 좋아하는지 알고 난 뒤에 내 발에 맞는 양말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훨씬 편하고 기분 좋아질 수 있어요. 그렇게 나에게 맞는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나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선물을 목적으로 구매하시는 분도 많나요?
네, 선물용으로도 많이 구매하세요. 그러면 받으실 분의 연령대나 취향, 예산 등을 여쭤보고 몇 가지를 제안해 드려요. 예전에 한 남성분께서 제가 추천한 양말을 선물했는데 본인이 여태까지 ‘센스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가 처음으로 그 말을 들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씀 듣고 기분이 좋으셔서 몇 번 더 구매하시기도 했고, 저도 덩달아 기뻤던 적이 있어요.
대표님께서 양말에 진심이라는 손님들 후기가 많았는데 정말이었어요(웃음). 오늘 나눈 대화 덕분에 앞으로 제가 신을 양말 소재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도 있을까요?
제가 말이 너무 많았던 건 아닌지 걱정이에요(웃음). 가게를 운영하면서 처음 생각한 것은 ‘좋은 소재의 양말을 즐기는 사람의 수를 많이 늘리자.’였거든요. 일차적으로는 양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확산시키는 것, 그게 된다면 한국 양말 생산 시스템이나 문화도 조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시장은 소비자가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지금 한국 양말 시장은 저가 중심으로 돌아가서 퀄리티도 그 수준에 맞춘 제품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양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기에 더 투자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런 브랜드도 생기고 생산 과정에서 연구 개발도 활발해지겠죠. 이런 문화적 변화가 생기는 것이 제 큰 비전이에요. 아, 그리고 이번 달 말에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할 계획이 있어요.
어디로 이사하세요?
지금 이 가게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에요. 현재 공간은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었는데, 손님들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하나씩 새로운 양말을 들이다 보니 이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가짓수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옮기기로 했어요. 새 공간에서는 양말을 정갈하게 전시하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도록 설계할 계획이에요. 지금은 손님이 오면 제가 하나씩 설명해 드리는데, 사람이 몰리면 모든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최대한 많은 분들이 양말의 가치를 제대로 경험하도록 안내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새로운 공간에도 꼭 가볼게요. 그땐 발도 씻고 양말도 직접 신어보고요(웃음).
네, 좋습니다(웃음)!
Nishiguchi Kutsushita, Cotton Cashemere Walk Socks | 2만 6천 원
“워크삭스라는 이름처럼 발등과 발목은 얇고, 발바닥에는 캐시미어가 들어 있어 쿠션감을 느낄 수 있어요. 발에 땀이 나도 뽀송하고, 내딛을 때 감촉이 정말 좋으니 오래 걷거나 서서 일하는 분께 선물해 보세요.”
Souki, Horn | 3만 2천 원
“겨울철 항상 추천하는 울 양말이에요. 울이 90퍼센트 이상 함유되어 있어 도톰하지만 답답하거나 덥지 않고, 포근하면서 발이 숨 쉬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French Bull, Hippo Room Cover
| 4만 6천 원
“울 60퍼센트, 코튼 40퍼센트의 수면 양말입니다. 시중의 수면 양말은 합성섬유로 제작된 게 많아 땀이 식으면서 오히려 발이 차가워질 수 있는데, 이 제품은 보일러를 덜 틀어도 따뜻할 정도로 보온성이 좋아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