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가 그리워지는 순간

Ordinary Days in Praha

2011년 7월. 친구 두 명과 함께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카를 교Charles Bridge를 걸었다. 프라하의 연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날 맞이하는 듯한 착각을 받은 그곳은 낭만의 도시 프라하Praha였다. 

2013년 3월. 기록적인 폭설로 기차가 5시간이나 연착되어 고생하며 도착한 두 번째 프라하는 ‘Gloomy’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하얗게 얼어붙고 사람들은 무뚝뚝한 걸음걸이로 각자 길을 재촉했다. 체코식 족발인 콜레뇨koleno마저 맛있다는 소문이 무색하게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로 나를 맞이했다. 어차피 이제 올 일 없는 도시니 한껏 우울하게 동유럽의 감성을 즐겨주마, 하고 걸었던 두 번째 프라하는 그렇게 기억 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2013년 7월에 나는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두 번의 여행자를 거쳐 이제 프라하의 생활자이자 장기 투숙 여행자가 된 것이다. 나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2년 동안 일하고 체코 프라하의 직장으로 이직해 그곳에서 2년을 더 일했다. 프라하는 부다페스트에서 버스나 기차로 6시간 정도 걸리는, 마음 내킬 때마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친숙하고 가까운 옆 동네였고, 얼마 후 나의 동네였던 것이다.

프라하는 어딜 가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내가 살던 집은 프라하의 최고 번화가이자 관광지가 몰려있는 프라하 1구역과 2구역 사이에 있었다. 집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블타바Vlatava 강 사이로 프라하의 상징인 카를 교가 보일 정도니 서울로 치자면 63빌딩이 보이는 한강 근처에 살았던 것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강가 근처의 집세가 비싼 건 똑같았지만, 비싼 집세를 감수하고 이곳에 집을 얻은 이유는 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 트램을 타고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도시 중심가에 거처를 마련한 것은 권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는데, 외국에 있어도 야근이 잦은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여기가 체코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로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생활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만 4년을 프라하에서 근무하고 한국으로의 귀임을 기다리던 상사는 귀임 확정을 받고 난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 처음으로 프라하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일이 많고 늘 긴장 속에 살았으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을까. 그러면서 나에게도 무조건 많이 돌아다니기를 신신당부하며 그는 프라하를 떠나갔다. 그 이야기가 결정타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슬슬 자칭 동네 여행자로서 주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화창한 주말엔 장 보러 가다가 늘 눈여겨보던 핑크와 연두색의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한 카페 아망디네Café Amandine에서 자몽 주스와 에그베네딕트를 먹는다. 나만을 위해 예쁘게 세팅된 식탁을 보며 천천히 공들여 포크질을 한다. 다 먹은 후에는 간식으로 먹을 케이크를 사러 트램을 타고 구시가 광장에 인접한 베이크 숍Bake Shop으로 간다. 프라하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 케이크를 판다고 단언할 수 있는 곳이다. 일부러 찾아가서 먹을 가치가 있을 만큼 맛있다. 어느 날은 프라하에 있는 큐비즘 건축물을 보러 다닌다. 집 근처여서 슈퍼에 갈 때마다 보던 댄싱 하우스Dancing house도 대담한 설계에 감탄하며 요리조리 뜯어보고,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일부러 화약탑 근처 ‘검은 마돈나의 집’이라 불리는 큐비즘 건물 2층에 있는 카페 오리엔트Grand café orient에 간다. 관광지라 이곳의 커피는 비싸지만 한국의 80년대 다방을 연상케 하는 구수한 분위기와 웨이터 할아버지의 친절한 서비스가 있다.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독서 등의 소일을 하고 있자면 웨이터가 다가와 읽던 책장에 카페 스탬프를 찍어주고 방문 기념 사인을 남겨주며 카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이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게 되면 비싼 커피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동네 여행이라는 것은 익숙한 곳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멋진 장소를 발굴한다는 개척자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딱히 한 건 없지만 그래도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는 보람이 있는 행위. 아직 프라하를 떠올리면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프라하에서 나의 주말은 이런 식이었다.

어느 여름날에는 프라하 근교에 있는 관광지인 카를슈테인 성Karlstejn Castle에 가려고 친구 페트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카를 4세의 명상을 위해서 세워진 성이라는데, 숲 속에 있고 예쁜 성인데도 단기간으로 오는 여행자들은 잘 방문하지 않아 현지인이 많이 가는 곳

이라고 하더라.”

“민희, 너 참 운 좋다. 그 성에 여자 입장이 허용된 지 얼마 안 됐어.”

“진짜? 원래 여자들은 못 들어가는 성이었어?”

“그렇다니까. 아무튼 잘됐다. 다녀오고 사람들한테 자랑하는 거 잊지 말고.”

알고 보니 옛날에는 성이 완공되고 나서 왕의 명상만을 위해 여자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왕이 어찌 독수공방을 견딜 수 있으랴. 얼마 지나지 않아 왕비와 여자들의 입성이 허용되고 지금은 당연히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 친구는 나를 놀리느라 체코 역사까지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모든 체코인이 이렇지는 않을 테지만 그들은 대부분 가벼운 조크를 날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냉소적으로 빈정대는 유머를 잘 구사했다. 하지만 이런 냉소적인 유머 후에는 반드시 본인이 알고 있는 범위에 한해서는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가령 내가 플젠Plzen에 있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 공장에 가고 싶다고 하자 ‘힘들게 가지 말고 그냥 슈퍼에서 사 마셔.’라고 한마디 날린 다음, 직접 인터넷까지 뒤져가며 가는 방법이며 플젠의 명소 등을 알아봐 주는 식이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가 싶어 기분이 나빴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냥 말버릇이었다. 그 후로는 나도 동화되어 똑같은 말투를 쓰고 있었다. 유쾌한 체코의 동료 덕분에 어려운 체코어 해석이나 현지인의 맛집 정보 등을 손쉽게 받아 즐거운 나날을 지나올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오랜만에 한국의 생활자가 되니 모든 것이 새롭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보금자리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 나한테 새로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좋다거나 싫다는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지금의 새로움이 좋다가도 이내 안정을 바라고, 안정적으로 될라 치면 다시 또 새로움이 주는 흥분과 생경함을 원한다. 서울로 돌아온 봄에는 마음껏 새로움을 즐겼다. 이제 나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 생활의 권태를 느낄 때쯤이면 프라하에서 살던 대로 서울에서도 동네 여행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다니며 하루하루를 즐기는 그런 여행자 말이다.

서울에서 오래 산 친구가 서울 곳곳에 있는 맛있는 음식점을 추천해주었다. 서울살이 이제 겨우 석 달 차인 나는 현지인의 정보라며 열심히 받아 적었다. 가볼 만한 곳이 생겼다며 좋아하던 그때 문득 프라하에 있는 무뚝뚝하지만 정성을 들여 정보를 찾아주던 체코 친구들이 떠올랐다. 프라하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베이크 숍

Bake Shop

Kozí 918/1, 110 00 Praha 1-Staré Město

프라하에서 제일 맛있는 치즈 케이크를 파는 베이커리 카페. 디저트는 물론 간단한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어서 자주 들른 곳이다.

필스너 우르겔 브류어리

Pilsner Urquell Brewery

U Prazdroje 7, 304 97 Plzeň

필터링되기 전의 신선한 필스너를 시음할 수 있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내부 관광이 가능하므로, 미리 시간을 알아보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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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박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