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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를 품은 건축
빈 자리를 품은 건축
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세상의 모든 창은 누군가 살다간 흔적을 담고 있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이야기하는 일은, 그가 살다간 집의 창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니다, 두 이야기는 다르다. 그가 살다간 집의 창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은 떠난 그와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품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까. 세상의 모든 창은 슬픔을 예정한 건축양식이라고.”
그녀의 이야기
가장 잘 아는 건축물
건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유서 깊은 건축물이나, 현대의 기발한 건물을 만드는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다. 빅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피사의 사탑이나 피라미드 등.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한 세계의 유명 건축물, 그리고 그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들. 이런 연상 작용에는 실상 고유명사로서의 무미건조한 이름만 나열될 뿐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자주 접해서, 한 번 가보지 않고도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만, 과연 우리는 그것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건축은 건물을 쌓아 올리는 행위를 의미하고, 따라서 건물을 설계하거나 축조하는 일에 직접 가담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건축은 완성된 건물의 형태로만 실감나게 존재한다(물론 현대의 도시는 매일 매 순간 건물을 짓고 부수는 일을 반복하며, 현재진행형인 건축의 형태를 항상 전시하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내게도 건축을 상상하는 일은 지금껏 내가 경험한 건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건물은 이 세계 어딘가에 휘황찬란하게 존재하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이다. 노트북과 커피 한 잔과 자잘한 소지품을 올려둘 수 있는 내 몫의 테이블, 이것과 똑같이 생긴 테이블이 여러 개 놓인 이 카페와 같은 곳이야말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물의 실체다.
최소한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라고 했으나,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건물은 내 일상이 꾸려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각자에게 건물은 집과 직장, 학교와 은행, 카페와 편의점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취하기 위해 오가는 동선에 배치된 장소들의 묶음이다. 건물은 저마다가 건축한 일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건물은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채우고 쌓고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 장소화된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도 저마다 자신의 삶을 건축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에 시간을 쓰는 일이 곧 방을 만들고 복도를 잇고 출입문과 창문을 내는 일과 같다는 상상은 카페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서도 일종의 자유를 누리게 한다. 이 글이 곧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이어지므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종종 찾던 게 계기가 되어 언젠가부터는 여유가 생기면 가볼 만한 미술관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작품 관람도 즐겁긴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미술관 자체에 매료돼 있다. 모든 미술관이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가본 미술관의 대부분은 건물 가운데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ㅁ자 모양을 한 것이다. 이런 공간은 통유리로 감싸여 있어서 건물의 모든 층에서 바깥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마치 ‘공간’ 자체를 전시하는 느낌도 주는데, 나는 그게 참 좋았다. 미술관이라는 건물의 용도상, 내부에 창이 없는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야 하므로 건물 안에 빛이 들게 하려면 그 방식이 유용하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 가운데, 유리로 둘러싸인 가장 밝은, 말하자면 ‘허공의 방’이 딱 하나 놓여 있다. 그건 마치 미술관의 심장 같다.
그곳에는 물이 얕게 고여 있거나, 빛을 반사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인상을 주는 소재로 만든 작품이 놓여 있거나, 간혹 돌과 식물, 때로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최소한의 빛과 소리로만 채워진 내부에서 ‘관람’하는 그 외부는 유리로 차단된 동시에 안팎을 통하게 한다. 그곳은 빛이 모든 것을 통하게 하는 매개라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장소가 되어, 여기서 ‘보는 것’에 대한 색다른 경험과 영감을 얻은 관람객이라면 관람실 안의 조명이 안내하는 바를 좀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만난 작품들과 비로소 소통하게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김중혁의 소설에서 건물이나 건물에 관한 소재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적어도 그의 소설을 따라 읽은 독자라면 그 소설 속 인물들이야말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라고 불릴 만한, 현실을 현실로 유지하게 하는 어떤 예민한 테두리를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에 인용한 단편뿐만 아니라, 같은 작품집에 실린 <유리의 도시>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층 건물의 거대한 유리창이 추락해서 길을 걷던 무고한 시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소설에 관해서는 좀더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나 ‘유리’라는 소재다. 도시의 모든 건물에 장착되어,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게 어디에나 있는 유리는 순진하게 건물의 안팎을 통하게 하며 미지의 장소란 없다고 말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이루는 그 가장자리는 사소한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산산조각 나버린다.
저는 늘 계단을 이용합니다. 오층이든 십층이든 언제나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계단을 밟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저는 늘 층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봅니다. 표지판은 층과 층 사이에 있습니다. 일층과 이층 사이, 이층과 삼층 사이, 삼층과 사층 사이……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하 일층과 일층 사이, 일층과 이층, 이층과 삼층, 층과 층 사이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하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누군가 저의 직업을 물어본다면 저는 자랑스럽게 슬래시 매니저Slash Manager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얘기하시길 바랍니다.
– 김중혁, <1F/B1> 중에서
이 소설은 ‘건물관리자’의 관점에서 쓰인다.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 그 건물들의 건물관리자들은 누구보다도 그 건물 자체를 잘 이해하는 존재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누군가는 이렇게 거꾸로도 생각해보게 된다. 건물관리자는 건물을 통제하고, 크고 작은 건물들은 한 도시를 이루고, 그렇다면 어떤 거대한 도시도 결국 건물관리자에 의해 통제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런 상상은 현실적으로 ‘없는 사람’ 취급받기 일쑤인 관리자들의 처지를 생각할 때 지극한 역설이 되지만, 때로는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과 말이 현실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인용한 부분에서 건물관리자는 자신의 처지를 ‘슬래시 매니저’에 비유한다. 현실적으로는 없는 곳이지만, 현실을 현실로 공고히 지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리에 그들은 있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를 슬래시에 있게 해서, 현실 역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건축물도, 그 누구의 현실에도 없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기에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
달빛이 창을 두드리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박용래, <월훈月暈> 중에서
내가 처음 살던 집에는 유리창이 없었다. 대신 창호지를 바른 문과 창문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와 방을 같이 썼다. 할머니랑 같이 살다 보니 생활하는 시간대도 할머니와 같았다. 10시 이전에 잠이 들어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났다. 그 방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여럿인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호박씨다. 늦가을쯤의 할머니는 내가 새벽에 잠이 깨 무엇을 할 줄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방 한편에 말려놓은 호박씨를 깨물어 알맹이를 빼서 내 입에 넣어주시고는 했다. 어린 나는 그것을 받아먹으며 달면서도 고소한 아침을 맞았다. 얼마 전 우연히 호프집에서 안주로 나온 호박씨를 먹다가 갑자기 아홉 살 가을 무렵의 새벽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할머니가 내 옆에 누워 호박씨를 받아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찡해진 코끝을 잡고 아홉 살짜리의 표정을 지었던가.
또 생각나는 것은 푸른빛이다. 창호지에 스며드는 여명의 빛은 묘했다. 봄과 여름 사이 빛이 스밀 때면 창호지가 팽팽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 소리가 아침이 오는 소리라고 여겼고 녹색이 오는 소리라고도 생각했다. 아침이 되어 문을 열면 정말 녹색의 식물들이 마당 한쪽에 쑥쑥 올라와 있었다. 창호지를 뜯어 입에 물면 푸른 잎의 맛이 날 것도 같았다. 여름이면 푸른 창호에는 종종 비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화선지에 지나는 묵처럼 짧게 방문에 비추었다. 달그림자를 비추던 날도 있었던가. 그런 기억은 없다. 대신에 나는 창호지에 비치던 할머니의 그림자를 기억한다.
마실을 다녀오던 밤의 할머니의 그림자는 어느 때보다 크고 따뜻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밤이 깊기 전에 돌아와서 나를 안심시켜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할머니를 붙잡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밤도 있었다. 그 방은 할머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살던 방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두 계절이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얼마 전 부모님이 이사한 새 아파트에 놀러 간 날 샷시의 유리창을 손으로 두드려보다가 할머니와 살던 그 방의 창호지를 손으로 두드려본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다. 유리창의 둔탁한 음은 창호지의 청명한 음과 참 달랐다. 창호지가 빛뿐 아니라 소리를 다루는 건축 자재였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나는 <월훈>을 쓴 박용래 시인이 달무리를 말하기 전에 숨겨놓은 구절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아마도 시인이 달의 그림자보다 먼저 느낀 것은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기 달이 스미고 있었을 것이다. 창호지를 쓰는 시절, 달빛이 문을 두드린다는 말이 단지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실제 사실에 가깝지 않았을까.
슬픔의 건축술
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 신용목, <공터에서 먼 창> 중에서
지금 살고 있는 빌라 단지에 이사 온 지 3년쯤 되었다. 겨울밤을 제외하면 저녁 시간에 아내와 산책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집 안의 빛을 쏟아내거나 밤의 어둠을 찍어내는 유리창들에 유독 눈이 갔다. 저녁밥 냄새가 솔솔 흘러나오는 불빛도 있었고, 어딘가 차가운 빛을 발산하는 집도 있었다. 당연히 불이 꺼진 집도 있었는데, 어떤 집은 늘 빛이 없어 어둠이 그곳에 들어와 박혀 있다고 상상한 적도 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구가 있다. 단지를 돌다 그 친구네 집 창이 보이면 올라가 문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한 순간도 많았다. 고민만 하다 그 친구네 집 베란다에 널린 빨래 중에 바지가 몇 개이고 수건이 몇 개인지만 세다 집으로 향하는 날엔 꿈속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그 친구의 특기 중 하나는 돌 쌓기다. 몇 년 전 여름 우리 집과 그 친구네 집이 같이 제주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친구는 해변에 닿을 때면 늘 검은 현무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키보다 높이 돌을 쌓아 보이고는 자신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 줄 본인도 처음 알았다며 흰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음 지었다. 나는 그 기술이 친구와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돌탑이 그의 시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자신보다 커다란 사람의 모습을 시 속에 새겨넣는 일은 시인으로서 그가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 커다란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의 모습을 하고 찾아왔다. 어느 때는 그의 아버지가 시에 드러날 때도 있었고, 또 어느 때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시 속에 보일 때도 있었다. 때때로 자기 몫의 삶을 열과 성을 다해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커다란 노을의 형상으로 그려질 때도 있었다. 무거운 것을 균형을 맞추어 차곡차곡 쌓는 일이 유행이 지난 일처럼 취급받을 때도 그는 흔들림 없이 그 일을 자신이 꼭 해내야만 하는 일처럼 했다.
친구는 지금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지난 계절에 천장이 높고 다락이 있는 예쁜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농반진반으로 왜 나를 이 동네에 이사 오게 해놓고 멀리 도망갔느냐고 따져 물은 적이 있다. 몇 번을 웃어넘기며 답을 회피하던 그가 어느 날 늦은 술자리에서 슬며시 속내를 비췄다. 그 집은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에 투병 생활을 하시는 동안 살다간 곳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가끔씩 잠이 깰 때면 아버지 생각이 부쩍 났다고도 했다. 십 년 전쯤 세상을 뜬 아버지가 어느 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집 밖으로 나가실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던가.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 그가 불면증으로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던 것이 기억났다.
세상의 모든 창은 누군가 살다간 흔적을 담고 있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이야기하는 일은, 그가 살다간 집의 창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니다, 두 이야기는 다르다. 그가 살다간 집의 창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은 떠난 그와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품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까. 세상의 모든 창은 슬픔을 예정한 건축양식이라고.
글 김나영, 송종원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