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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오 홀리데이
홀리데이, 오 홀리데이
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휴일은 때때로 붉은 피를 흘리며 찾아와, 누군가의 삶이 전쟁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내가 증명하고 싶은 것은 붉은 피를 흘리는 삶이 분명 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그녀의 이야기
휴, 일들
일상적인 일들을 잠시 중단해도 되는 날. 지금까지 내게 휴일은 그런 날로 여겨졌다. ‘잠시 중단해도 되는’이라는 수식은 애써 생각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니까 내게 휴일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잠시 쉬어도 돼.’라고 허락해주는 날인 셈이다. 쉼에도 허락이 필요하다니. 허락을 받아야만 비로소 쉴 수 있다니.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에는 무조건 고분고분하던 나였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늘 어떤 종류의 허락과 승인에 나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내맡기며 살아왔다는 것은 평소에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하지만 시간강사인데다 청탁을 받고 원고를 쓰는 일종의 프리랜서로 살아온 지난 십여 년간의 내 삶을 반추해보면, 자유라는 권리를 완전히 망각한 채로 지낸 건 또 아니다.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학생 신분을 벗어나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이후로 나는 오히려 내 자유를 탕진하는 데 골몰해왔다. 애초에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어서 웬만한 작업은 한꺼번에 몰아서 하느라 며칠 밤을 연달아 새기 일쑤였고, 그렇게 일을 마치고 나면 연이어 며칠은 딱히 하는 일도 없이 보냈다.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책을 읽지도 않고, 끼니도 제때 챙기지 않았다. 마감 기간에는 그렇게 재밌던 드라마도 시큰둥하게 여겨졌다. 그때는 자유와 평화가 넘쳐서 탈일 지경이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모이면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다. ‘주말이 있는 삶을 갖고 싶다.’ 마감일이 있을 뿐 그 일을 매일 얼마큼씩 해내야 하는지는 스스로 정하고 지켜야 하는 프리랜서에게 직장인처럼 정시에 출퇴근하고(물론 칼퇴는 모든 직장인의 꿈이라지만) 빨간 날 만큼은 일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삶은 꿈이다. 말 그대로 바람인 동시에 허상인 것이다. 다이어리의 모든 칸을 빼곡하게 메운 일거리를 자세히 뜯어보면 몇 개의 마감을 미루느라 수정된 일정이 차고 넘칠 뿐이고, 그러다 보면 달력의 요일 표시는 무색하게 여겨진다. 휴일이 넘쳐나지만 정작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없다고 느끼는 삶. 어쩌면 모두에게 공평한 휴일이라는 개념은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일구어 나가는 삶의 형태와 일상의 세부에 따라서 쉼의 형태와 내용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상한 일상이 뱉어 놓은
휴일의 표정
여기, 또 다른 형태의 휴일이 있다. 십사 년 전에 가족 소풍을 갔다가 사고로 여덟 살짜리 딸아이를 잃어버린 부부는 오랜만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다소 즉흥적으로(함께 귀가하던 길에 남편에게 말도 없이 불쑥 여행사로 들어가 상담을 받은 아내의 돌발 행동이 여행을 계획하게 했을 것이므로) 시작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오래전부터 계획된(아이의 죽음 이후 부부는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가득한 일상적 세계에서 내내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므로) 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부는 일상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떠나오기 전 일상적인 퇴근길에서도 그랬고, 여행지의 낯선 거리에서도 부부는 자주 서로를 놓치고 더듬거리며 상대를 찾는 일을 반복한다. 깊은 산속 계곡에 여전히 수습되지 않은 채로 떠돌고 있을 가족의 소품 역시 부부가 여전히 그날 그 자리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쯤이면 소설의 독자는 그들이 애써 손을 잡고 길을 가고 있다는 것, 맞잡은 손과 손 사이에 까마득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그들 사이에 해소되지 못할 무언가가 가로놓여 있고, 그런 이유로 그들은 십사 년째 부부라는 이름의 일상적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것도.
일상으로 돌아온 적 없기에 이 부부의 소풍은 끝나지 않는다. 이 비일상적인 일상의 지속은 오랜만의 여행도 휴일의 여유와 안식과 즐거움과 게으름으로 채우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이미 항상 일상 바깥에 내던져진 사람들이므로, 일상을 떠날 수도 돌아올 수도 없이, 다만 끝내고 싶은 휴일의 미로 안에서 길을 잃은 채로 있다.
내가 그걸 챙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는 말했다
그 밖에 내가 뭘 더 부탁한 게 있어? 그거 챙기라고…… 가방에 넣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거 잊지 말라고…… 그냥 그거 하나…… 가방에 다 있잖아. 당신 칫솔, 화장품, 사탕…… 다 있는데 왜 그건 없냐…… 우리 내일 비행기 타야 돼…… 그런데 여권도 영수증도 없어…… 내가 이걸 다 설명해야 해 사람들한테…… 그런데 괜찮을 거라니…… 당신은 괜찮지 걱정이 없지 내가 다 하니까…… 당신은 잘 먹고 잘 자고…… 어디서든…… 호텔에서든 비행기에서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렇게 비위가 좋냐 그렇게 멀쩡하게…… 괜찮을 거라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쉬워 모든 게……
그는 문득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서글픈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울화가 치밀어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대신, 그렇게 보지 말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식으로 보지 마. 사람 빤히 관찰하지 마. 너는 아무 잘못 없는데 내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 황정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중에서
부부의 여정은 곧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길이다. 마치 바퀴가 고장 난 여행 가방을 잘 수습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길고 고단했던 그들의 휴일도 잘 마무리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럽에서 탄 마지막 열차에서 그들은 여권과 항공 예약권과 현금 등이 든 작은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황망한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들 사이에서 지워진 작은 가방 하나 때문에 어쩌면 14년을 묵힌 원망과 질책,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과 자기 학대를 말과 침묵과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쏟아낸다. 기차는 계속 낯선 풍경 속을 달린다.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내려야 하는 역에 당도했을 때 그는 짐을 챙겨 앞서 내리지만, 그녀는 뒤따라 내리지 않는다. 열차 계단 가운데에 가만히 서서 다만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 위로 열차의 둔중한 문이 닫힌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고 ‘다른 종류의 휴일’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물음이 이들의 일상과 여정 모두를 압도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휴일은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내를 싣고 떠난 기차를 따라 허둥지둥 뛰어가던 그는 역무원을 발견하곤 숨까지 헐떡이며 더듬더듬 ‘아내를 잃어버렸다.’고 애원하듯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무엇을 찾으러 떠난지도 모르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 것만 같은 이 여정은 어쩌면 불온한 일상에서는 제대로 된 안식마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자주 일상을 수습하기 위해 휴가를 떠난다. 하지만 휴일은 일상의 평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야기
어느 날 아침엔 음계가
약간 바뀌어 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등이 아팠다. 담이 든 것 같았다. 몸을 억지로 늘여도 보고 폼롤러에 등을 대고 굴려보기도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몸이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내 몸에 누군가 다른 생명이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침실에는 아내가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어제도 늦게까지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인터넷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검색하다가 잠이 들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등을 조금 두드려 달라고 하면 좋겠지만 그녀의 깊은 잠을 깨울 수는 없었다. 대신에 언젠가 걷는 일이 몸의 근육 전체를 풀어주는 데 좋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볼 마음이었다. 집을 나서는 나의 등 뒤에 누군가 올라탄 기분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발가락 사이에 부리를 넣었다 뺐다 넣었다를 시계추같이 반복한다. 그의 발가락 옆에서 「무제 Ⅱ」 라는 그의 이름을 보았다. 끄덕끄덕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 잔디를 손바닥으로 쓸면서 한 여자가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느리게 움직일 때마다 풀들은 순순히 몸의 방향을 바꿨다. 그녀가 하는 생각을 알 수 없었다.
– 김행숙, <조각공원> 중에서
공원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누군가 버려두고 간 과자 봉지를 쪼아대고 있었다. 걷는 일을 잊은 채 벤치에 앉아 그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정말, 끄덕끄덕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성치 않은 발을 가진 비둘기들이 많았다. 저마다 발에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등이 아픈 비둘기도 있을까. 비둘기가 하는 생각을 알 수는 없었다. 대신 비둘기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햇살이 등을 토닥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이끌어 내 삶의 방향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 방향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함께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엔 / 음계가 약간 바뀌어 있다. // 하나씩 풀었다 하나씩 당긴다. / 비뚤어진 것은 줄 하나였을 뿐인데, / 다 잘못되었다는 듯이.
– 하재연, <놀이동산> 중에서
하나의 생각을 깊이 하게 될 때가 한 번 호흡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어보았다. 생각 한 번, 호흡 한 번. 나는 비로소 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생각의 세포와 몸의 세포가 재배열을 이루고, 생각의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계단이 끊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마음이 점점 비뚤어진다. 이게 아닌데, 이것이 아니었는데, 하며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시간이, 이를 외면하며 내 삶이 더 가짜가 될 것만 같은 힘겨운 시간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삶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지난겨울에 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친구는 술잔을 앞에 두고 자신의 속내를 슬며시 털어놓았다. ‘당분간 소망은 하나뿐이야. 쉬지 않고 쉬는 것.’ 친구와 헤어진 후 한동안 귓가에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쉬지 않고 쉬는 것! 나에게 그 말을 건네준 친구는 돌아오는 비행기편을 정하지 않은 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 친구가 조금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사정을 나에게 전해들은 아내는 그 친구가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종종 아내의 말을 통해 나의 공감 능력을 반성하게 되곤 한다. 그런데 아내는 지난밤에 어떤 여행지를 검색했을까. 부부동반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누군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맞장구를 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내를 보며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아내는 언제 저렇게 풍성한 여행 정보를 수집한 걸까. 그녀와 나는 아직 한 번도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에 함께 오른 적이 없다.
휴일이 오면 가자고 했다. // 휴일은 오고 있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너는 오고 있지 않았다. 네가 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채로 오고 있는 휴일과 오고 있지 않는 너 사이로 // 풀이 자랐다. 풀이 자라는 걸 알려면 풀을 안 보면 된다. 다음 날엔 바람이 불었다. 풀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알게 된 것을 // 모르지 않는 네가 // 왔다가 갔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지 않았고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휴일이 오는 동안
– 임승유, <휴일> 중에서
고개를 들어 허공에 시선을 두자 등이 다시 아팠다. 아무도 없는 허공이 이 공원의 주인인 듯,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무엇을 기다렸고 무엇을 소망하는 날들을 보냈나,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기다리는 것들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기다리는 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부끄러운 속된 근심만 자라고, 그러면서 등이 조금씩 무거워진 것은 아닐까. 내 등이 내 삶의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넘어 얼굴이 점점 아파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삶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무감했던 일상은 어느 날 구멍 난 하루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담이 든 등 때문일 수도 있고, 비둘기 발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잘못 조율된 악기 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휴일은 그렇게 작은 시그널을 통해 막무가내로 찾아와 우리의 삶을 중단시킨다. 그러고는 내 삶이 그것이 지나온 이전의 모습과 동일하지 않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나에게 휴일은 달력에 표시된 붉은 색의 날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 삶이 붉은 피를 흘리며 상처를 드러낸 어느 날이다.
글 김나영, 송종원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