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친 책, 그 속에서 헤엄을

김보희 — 터틀넥프레스

출판 편집자 김보희는 19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뛰어들었다. 그 세계의 주인공은 책을 좋아해 목이 조금 굽은 거북이.
느린 듯 보이지만 책이라는 바다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빠르고 자유롭게 수영하는
존재다. 김보희 대표는 1인 출판사 ‘터틀넥프레스Turtleneck Press’라는 이름으로
거북목들의 ‘책 친구’가 되어, 그들이 몰랐던 바다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한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바다는 함께 배울 거리로 가득한 늘 푸른 세계다.

더운 여름날 만났네요. 평소 연남동을 자주 찾으신다기에 이 동네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요즘은 미팅이 있을 때나 친구들 만나러 연남동에 종종 와요. 터틀넥프레스를 시작하기 전, 제가 다니던 회사들이 이 동네에 몰려 있어서 그런지 정이 많이 들었죠. 오늘 우리가 만난 공간 근처도 예전 직장 동료들과 점심 먹고 즐겁게 산책하던 길이에요. 

 

오늘 찾은 카페 ‘미mi’는 작년 문을 열었어요. 터틀넥프레스로 분주하던 시기라 이곳은 처음 방문하셨겠네요. 

맞아요. 저는 어떤 공간이든 들어서면 책장부터 살펴보는데, 이곳에서는 주인장의 취향이 바로 느껴졌어요. 내부도 방 세 개로 재밌게 나뉘어 있고, 채광도 좋아서 누군가의 거실에 온 듯한 기분이에요. 커피도 맛있네요.

미mi
A.서울 마포구 동교로51길 133-1 1층

터틀넥프레스도 참여했던 서울국제도서전이 얼마 전 막을 내렸죠. 행사 마치고 어떻게 지내셨어요? 

사실 최근까지도 영혼이 여전히 행사장에 있는 기분이었어요(웃음). 도서전은 회사 다닐 때도 여러 번 나가 봤지만, 그땐 동료들이 함께하니까 물건 정리만 하면 금방 끝났어요. 그런데 올해는 1인 출판사로 참여하다 보니, 물건 정리는 물론이고 정산, 재고 파악, 도움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까지 전부 혼자 해야 했죠. 이번 주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다음 할 일들을 시작했어요.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기분이라, 요즘은 일상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혼자 감당할 몫이 많은데 힘차게 나아가시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저는 열심인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얼마 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수도원에 다녀왔어요. 거길 방문하는 게 퇴사 후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제야 갔어요. 좋아하는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이 설계한 건물이 있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수도원 내에 가톨릭용품점인 성물방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일상》이란 책을 샀어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요. “일상은 꿀도 타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은 채 견뎌내야 한다.” 싫으면서도 끄덕이게 되죠. (웃음) 또 하나는 “담박하고 성실하게 받아들여진 일상”이란 표현이었어요. 이런 글도 있네요. “일은 그런대로 즐거운 것이긴 하지만 아주 잘 맞진 않을 것이다.” 

 

(웃음) 흥미로운 책이네요. 이번 도서전에서는 신간 두 권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죠?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 2: WALKS》가 나왔어요. 사업일기 1권은 ‘BEGINS’라는 부제로 올해 초 발행되었는데, 터틀넥프레스 창업을 준비하면서 제가 쓴 기록을 모은 책이에요. 이번에 나온 2권은 2년 차 브랜드로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작년은 독자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해라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를 담아 부제로 ‘COMES’를 붙일까 하다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걷고 있다는 의미로 ‘WALKS’라고 지었죠. 이 시리즈는 매년 도서전마다 내는 게 목표예요. 

 

헉, 부스 준비만으로 분주할 텐데 가능할까요? 

정말 힘들겠지만 저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어요. 터틀넥프레스의 한 해 기록을 정리할 수 있고, 이 책이 저처럼 혼자 일하는 분들에게도 가닿아 응원이 된다는 피드백을 받으니 꾸준히 내야겠다 싶었어요. 오래 살아남겠다는 의지이기도 해요(웃음). 

 

응원하며 지켜볼게요. 또 다른 신간 《거북목편지》도 소개해 주세요. 

작년 1월부터 독자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터틀넥은 거북목이란 뜻이니까 매주 목요일에 발송하고, 지난 레터는 다시 볼 수 없게 해뒀어요. 계속 쌓인다는 인상을 주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만 주고받는 쪽지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전 레터도 읽고 싶다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나서 이걸 한 해의 기록으로 묶으면 좋겠다 싶었고, 결국 1년간 보낸 편지 49통을 책으로 엮었어요.

터틀넥은 거북목, 재밌어요. 브랜드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건지 궁금해지네요. 

2023년 시작한 터틀넥프레스는 책 때문에, 책을 좋아해서 거북목이 된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예요. 친하게 지내는 《AROUND》 연재 필진 한수희 작가님, 전 직장 동료 ‘민 선배님’과 모인 자리에서, “출판사 이름을 정해보자. 책 만드는 사람들 특징이 뭘까?”라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목 디스크, 협착증 같은 단어들이 오가다가 ‘거북목’이 나왔고 그때 민 선배가 툭, “그럼 터틀넥?” 하고 던졌어요. 셋이 까르르 웃었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그것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더라고요. 

 

누구를 위해, 어떤 책을 만드는지도 들려주실래요? 

제가 그려본 터틀넥프레스의 독자는,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을 때 책부터 찾는 사람이에요. 그런 분들에게 터틀넥프레스는 친구 같은 존재로서 ‘함께 배우고 싶은 것’을 책으로 만들어요. 배움의 영역은 ‘삶’ 그리고 ‘일’이죠. 삶에 관한 책은 에세이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일에 관한 책은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 《에디토리얼 씽킹》, 《인터뷰하는 법》을 예로 꼽을 수 있겠네요. 언젠간 ‘앎’에 관해서도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앎에 관한 책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주제는 교양부터 역사, 인생에서 필요한 기술처럼 다양할 거예요. 제가 ‘거북목 멤버’라고 부르는 독자들에게 뉴스레터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을 물었는데 1위가 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이었어요. 이건 삶과 일은 아닌, 실용적인 앎의 영역에 속하겠죠. 그러고 보니 책에서 정보를 얻는 우리 독자들은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겠더라고요. 꼭 책으로 만들지 않아도 거북목 멤버들과 함께 배울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이 주제를 다뤄보고 싶어요. 

 

함께 배운다는 표현이 새로워요. 저에겐 책이 함께 배운다기보다는 깨달음을 주거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존재로 익숙해서요. 

가르침, 깨달음은 개인에게 주어져요. 하지만 저는 터틀넥프레스가 독자들과 무언가를 같이,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을 나누고 싶어요. 지식의 공급자가 아니라 친구로서요.

 

이 키워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함께 배움’은 나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말이에요. 브랜드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다양한 워크숍, 강점 테스트, 책으로 저를 들여다봤는데, 그 중심에 ‘협업’과 ‘배움’이라는 키워드가 있더라고요. 돌아보면 대학 시절, 친구들과 독립영화를 만들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각자 역할에 충실하게 임한 다음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희열이 좋았죠. 책을 만들면서도 가장 즐거운 순간은 협업이었어요. 작가님과 나누는 한 시간이 책 한 권만큼 소중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갈 브랜드도 책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 배워가는 방향으로 정해졌어요. 

책을 통한 배움은 어떤 효용이 있나요? 

영상과 달리 나만의 속도로 즐길 수 있어요. 물론 영상도 배속을 하거나 느리게 재생할 수도 있죠. 하지만 문장은 나의 눈이 머문 곳에 똑같이 머물러 있잖아요.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눈을 두고 싶은 만큼, 내 리듬대로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거북이가 주인공인 브랜드 세계관도 만드셨잖아요. 대표님께 그 이야길 직접 듣고 싶었어요. 

사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나면 괜히 혼자 부끄러워지곤 해요(웃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살면서 어떤 고민이나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 해답을 독서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그런 모습이 느리다고 말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독서를 하냐고 물어요. 하지만 저는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가 오히려 훨씬 더 빠르고 자유롭게, 마음껏 유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모습이 꼭 거북이 같았어요. 거북이는 육지에서는 느릿하지만, 바다에만 들어가면 누구보다 유연하고 멋지게 헤엄치거든요. 거북이에게 바다가 있다면, 우리에겐 책이 있는 거예요. 그 바닷속에서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듯, 책 속에서도 책 친구들이 함께 헤엄치고 있다는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이 멋진 이야기예요. 브랜드 스토리를 정립하고, 마침내 첫 책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이 나왔을 땐 어떠셨어요? 

‘큰일 났네’, 싶었어요. 물류 창고에 책이 쌓인 걸 보고 나서야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실감했죠.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어요. 혼자 영업도 마케팅도 해야 하고, 세금계산서도 발행하고, 장부까지 직접 써야 했거든요. 전에 출판사에 편집자로 재직하던 때와 달리, 마케팅이나 세무회계 전문가 없이 모든 걸 혼자 해본 거예요. 이제는 일에 익숙해졌지만 새 책이 나올 때면 다가올 일들이 여전히 무서워요(웃음).

 

 터틀넥프레스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최혜진 작가님의 《에디토리얼 씽킹》일 거예요. 2023년 출간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죠. 

독자들이 이 책으로 우리 브랜드를 알게 된 경우가 많아요. 작가님이 보내주신 프롤로그를 처음 읽었을 때 이건 모두가 원하는 책이 될 거라고 확신했지만, 이렇게까지 응원받을 줄은 몰랐어요. 본격적으로 광고한 적이 없는데 종종 누군가 SNS에서 이 책을 추천하면서 입소문을 타요. 저도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처음 해봤어요. 

 

대표님은 편집까지 도맡고 있는데, 제작에서 늘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건 뭐였어요? 

오래전부터 편지 쓰듯 책을 만들어요. 받는 사람이 정해진 편지처럼, 책도 누군가는 반드시 읽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만드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작가님께 집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드릴 때도 제 개인적인 의견보다 독자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죠. 저는 페이지에 숨어 있는 편집자이자 우체부가 되어 책이라는 편지로 작가와 독자를 매끄럽게 연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협업할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도 궁금해요. 

친구가 친구를 만나게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작가가 나의 친구인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요. 그래서 작가님을 깊이 알게 된 후에 함께 책을 만들어요. 우리 거북목 멤버들과 오래오래 같이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제가 먼저 찾아 나서죠. 어떤 선배가 전에 편집자마다 편집론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엔 무수히 많은 스타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큰 용기가 됐어요. 수익성이 뛰어난 책을 만드는 편집자도 있지만, 제가 하는 역할은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터틀넥프레스가 꼭 그 작가님과 협업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고 독자에게 소개하죠. 다른 출판사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책이라면 제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그걸로 잘 먹고 잘 사는 거, 해보고 싶어요(웃음).

그래도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내가 만들고 싶은 책과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가고 있나요? 

저는 19년 동안 상업 출판 편집자로 일했기에 손익분기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어요. 회사를 운영하려면, 1인 출판이든 더 큰 조직이든 지속 가능해야 하잖아요. 구성원도 작가님도 각자의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상업성을 배제하고 출판을 할 수는 없어요. 물론 의미만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의 작은 규모로선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돈만 좇는 건 아니에요. 책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들을 담고 싶죠. 다행히 지금까지는 어떤 분 표현대로라면 ‘안타’를 꾸준히 쳐 왔고, 그 안타 덕분에 출판사를 유지하고 있어요. 홈런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편집자로 오래 직장 생활을 하셨는데,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회사에서 1년 출간 계획을 세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나의 1년을 회사가 정하지?’, ‘내 한 해는 몇 권의 책으로 결정되는구나.’ 그래서 스스로 꾸리는 삶은 어떨지 궁금해졌죠. 정말 사랑하는 동료들과 안정된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전만큼 즐겁지 않았고요. 그 무렵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드라마도 보고 일기도 쓰면서 출근 전 취미 생활을 했는데요. 새벽 산책을 하는데 자꾸 ‘판을 흔들어야 한다.’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 말이 내 일을 흔들어야 한다는 뜻처럼 느껴졌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됐죠. 저는 그걸 퇴사가 아니라 졸업이라고 표현해요. 그 브랜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고, 많이 배웠거든요. 가고 싶은 다른 회사도 딱히 없었던 상황이라, 그 출판사뿐 아니라 회사 생활에서도 졸업한 셈이죠. 

 

홀로서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좋은 점도 많을 거고요. 

출퇴근 안 해도 돼서 좋아요(웃음). 어떻게 19년이나 했나 싶어요. 가장 두려운 건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거예요. 목격자가 있어야 일의 이유도 만들고 설득도 하는데, 저는 판단과 실행이 빠른 사람이라 자꾸 무언가를 그냥 시도해 버려요. 그래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계속 물어요. 나를 제어하면서, 나를 데리고 같이 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자신과의 대화가 끊이질 않겠어요. 

그래서 사업일기 외에도 대화 일기를 써요. 자기 전 일기장에 질문이나 이야깃거리를 써놓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대답해 봐요.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쓰지 않으면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요즘은 터틀넥프레스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나에게 질문해요. 그리고 지금의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는지, 마치 영점 조정하듯 계속 묻죠. 

 

처음 해보는 일이 많을 텐데, 실수한 적은 없으세요? 

너무 많죠. 지하철 반대로 타는 일은 다반사고, 작가님 만나러 가다 가방 끈이 지하철 문에 껴서 늦은 적도 있어요. 키링을 잘못 만들어서 저 혼자 50개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요. 부산에 있는 서점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데 경남 진주에 도착한 적도 있네요. 다행히 약속 시간은 지켰는데 땀에 절어서 서점에 도착했죠. 매일 에피소드가 끊이질 않아요. 

 

이제 커다란 질문을 드릴게요. 책은 왜 존재해야 할까요? 

이 질문 정말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민해 보려고 일기를 썼는데…. (가방 속에서 일기를 꺼내며) 잠깐 보여드릴게요. 그림도 그렸거든요(웃음). 먼저 인간은 왜 이렇게 연약한 종이에 자신이 평생 연구한 것, 나의 이야기, 심지어 우주의 비밀까지 담는지 생각해 봤어요. 본질적인 욕구 때문일 거예요. 나를 표현하고 싶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 그 욕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책은 존재할 거예요. 책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도구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터틀넥프레스의 책은 왜 존재해야 할까요? 

에디터님도 가끔 이런 생각 들지 않으세요? ‘서점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데, 내가 굳이 또 만들어야 할까.’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고민을 할 텐데요. 그럼에도 계속 만드는 이유는 질문을 조금만 바꾸면 분명해져요. ‘내 책이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라고요. 독자들은 터틀넥프레스에 이끌려 함께 바다를 헤엄치며,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세계를 마주해요. 그곳에서 만난 장면과 터틀넥프레스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 여정은 가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 책이 꼭 존재해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세상엔 좋은 책이 많으니까요. 그래도 같이 떠나면 더 재미있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대표님은 평소 책을 어떻게 읽으세요? 

극단적 병렬 독서를 해요(웃음). 열 권 가까이 돌려 읽기도 하고, 소설, 에세이, 인문, 경제경영, 자기계발 등등 분야도 가리지 않고 좋아해요. 꽤 오래전부터 ‘밑미’라는 플랫폼에서 독서하며 밑줄 그었던 문장을 손글씨로 필사하고 멤버들과 인증하는 리추얼을 하고 있어요. 문장 옆에는 날짜를 꼭 써요. 나에게 와닿은 구절을 옮겨 적기 때문에, 필사한 문장으로 그때의 나를 알 수 있거든요. 필사가 모여서 나만의 일기가 되는 거예요. 

 

독자로서 읽기와 편집자로서 읽기 방식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독자로서는 책에 댓글을 많이 달고, 밑줄도 그어요. 하지만 편집자로서 원고를 볼 때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잘 전할지 계속 고민하기 때문에 머리의 온도가 높아져요. 저는 편집자로서 책을 분석하고 공부도 하는데요. 목차부터 표지까지 독자로서 이 책으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재밌어요. 레퍼런스가 될 만한 도서는 독자로서 읽는 책과 구분해서 서가에 보관하죠. 편집자에게 책만큼 좋은 공부 자료도 없다고 생각해요. 

 

터틀넥프레스의 세계관에서 책을 ‘바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이 바다의 풍요로움을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금 내 안에 떠오른 질문에 힌트를 줄 수 있는 책부터 읽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책이라는 바다에 발을 살짝 담갔다면, 그다음엔 용기 내어 첨벙 들어가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보는 거예요. 그 속에서 내 생각을 마음껏 펼치다 보면 이미 헤엄치고 있던 또 다른 존재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들과 교류하면서 차츰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게 되죠. 어느새 외출할 때 가방에 책 한 권이 없으면 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일단 책에 한번 시원하게 첨벙 빠져서 마음껏 헤엄쳐 보길 권하고 싶어요.

Open My Ocean

“서점 직원들을 만나서 터틀넥프레스를 소개할 때마다 브랜드 세계관을 길게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애슝 작가님의 도움으로 영상을 만들어 보여드렸더니, 다들 재밌어해 주셨죠. 이제 어딘가에서 터틀넥프레스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자리에 있는 분들과 꼭 함께 시청해요.”

©터틀넥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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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강현욱 장소 협조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