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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한 주제와 목적 아래 식탁을 차리는 네 사람을 만났다. 음식을 통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아내며 타인과 연결되는 법을 전하는 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낯선 이를 불러 모은다. 후암동삼층집 진민섭부터 커뮤니티 메이커 다와, 아워플래닛의 장민영·김태윤과 생활기술전수자 정다정까지. 이들이 일으킨 기분 좋은 내음에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식탁 앞에 마주 앉은 네 사람이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실어 보내자, 비로소 특별한 한 끼가 완성되었다.
진민섭
후암동삼층집
입춘에는 겨우내 얼어붙은 공기에 훈기가 돌고, 봄비가 내리는 곡우에는 가벼운 비가 땅을 적신다. 계절의 변화는 이토록 미묘하고 정확한 것이라서, 작물은 계절의 시침을 바라보며 적절한 시기에 나고 자란다. ‘후암동삼층집’으로 활동하는 진민섭은 재료가 가장 맛있을 때를 기다려 제철 요리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다. 영상과 책, 이제는 공간으로 계절 생활의 풍요로움을 알리는 그의 사계는 즐거움으로 빼곡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철 식재료 이야기를 전하는 후암동삼층집에 들어오게 됐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직접 고른 색으로 페인트칠하고 꾸민 공간이에요. 다양한 계절처럼 다채로운 색과 오브제들로 계절감을 담으려고 했죠.
정성을 들인 만큼 곳곳에 눈길이 가요. 민섭 씨는 “계절의 맛을 따라가다 보면 한 해가 지루할 틈이 없다.”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활동하고 있죠. 제철 요리를 즐기느라 바쁜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어요.
집에 들어오면서 보셨을 텐데, 여기 ‘술장’이 있어요. 봄에는 금귤, 여름에는 청귤, 가을엔 무화과, 겨울엔 유자. 이렇게 철에 맞는 과일이나 채소로 술 담그는 걸 좋아해요. 술장에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거죠. 달마다 무얼 먹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요(웃음).
우와, 때에 맞는 음식을 찾고 만들다 보면 사계를 풍성히 느낄 수밖에 없겠는걸요?
그렇죠. 사람들은 보통 계절 변화를 옷으로 느껴요. 겨울이 되면 ‘패딩을 입어야겠다.’, 봄이 되면 ‘트렌치코트를 꺼내볼까?’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저는 계절을 음식으로 알아채기 때문에 한 철을 좀더 촘촘히 느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같은 봄이라도 3월 초에는 땅두릅이나 냉이가 나오고, 꽃이 피는 완연한 봄에는 아스파라거스나 완두콩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봄도 초봄, 봄과 여름 사이, 늦봄처럼 세밀하게 느낄 수 있어요.
봄 안에도 이렇게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니! 제철 음식에는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된 거예요?
요리를 업으로 삼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F&B 관련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는 정도만 생각했죠. 그런 회사에 가려면 기본 요리 지식을 터득해 놓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SK 뉴스쿨’이라는 1년 과정의 요리 학교에 다녔는데요. 힘들게 요리를 배워보니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일하게 된 곳이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권숙수’였군요.
맞아요. 권숙수 같은 한식 파인다이닝은 계절 작물이 정말 중요한 주제이고, 계절마다 메뉴가 완전히 바뀌어요. 그때 전국에서 공수한 귀한 식재료를 경험하고, 산지에 직접 가보면서 알게 됐어요. 계절마다 이렇게 재료가 다르구나. 이렇게나 다양한 재료를 느끼는 게 즐거운 일이구나. 그 경험이 지금 후암동삼층집의 발판이 된 거예요.
요리사로서의 경험을 뒤로하고, 지금은 푸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죠. 후암동삼층집이라는 이름으로 내디딘 첫걸음,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레스토랑을 지나 여러 F&B 회사를 거쳤는데, 다니던 회사가 조금 안 맞았어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주변에서 유튜브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평소에 금귤 정과도 만들고 레몬 술도 담그는 제 일상이 특이해 보였나 봐요. 가벼운 마음으로 2주 만에 이름도 짓고 콘셉트도 다듬어서, 첫 콘텐츠로 ‘금귤 정과’를 찍었죠.
금귤 정과 콘텐츠는 SNS에서 큰 화제가 되었잖아요. 처음으로 올린 건데, 상당히 놀랐을 것 같아요.
후암동삼층집 소개도 없이 올린 게시물이었는데, 반응이 빵 터진 거예요.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낑깡(금귤의 일본식 명칭)’을 먹은 추억을 건드려줬다는 반응도 있었고, 영상미가 좋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이런 콘텐츠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역시 제철 먹거리가 주는 즐거움이겠죠.
계절에 진심이 되면서부터는 좀더 충만히 살아가는 느낌을 받아요. 때에 맞는 재료로 담근 술이 술장에 꽉 차 있는 걸 보면 계절의 선물을 가득 안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또 오감을 깨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봄에 냉이 뿌리를 손질하면 강한 향을 맡게 돼요.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게 요리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좀더 보고, 맡고, 맛보며 오감을 깨우는 경험이 계절을, 그리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 활동을 통해서 삶의 즐거움을 하나 더 늘릴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1년 전에는 레시피 북 《오늘 이 계절을 사랑해!》를 출간했어요. 제철 요리를 소개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요?
무조건 계절의 재료가 중심이 되는 레시피를 구성해요. 재료의 맛을 살리는 게 중요하지, 엄청 많은 향신료가 필요하거나 주재료보다 부재료가 돋보이지 않도록 했어요. 메뉴를 보면 어떤 재료로 만든 건지 명확히 드러나게 하는 걸 목표로 했죠.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온 후암동삼층집이라, 앞으로의 계획도 기대가 돼요.
3월 중순에 조식당 ‘마다밀Madameal’을 열어요. 마다밀은 계절마다 꼭 먹어야 하는 재료로 요리한다는 뜻이에요. 가게를 하고 싶어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차에, 매거진 《Achim》에서 후암동에 ‘아침 프로비전Achim Provision’이라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조식당을 맡아 운영해달라는 제안이 왔어요.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죠. 지나다니면서 늘 예쁘다고 생각한 건물에 식당을 낸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마다밀에서는 어떤 음식을 선보이려 해요?
제철 재료가 주인공인 계절 플레이트 일곱 가지를 선보일 거예요. 손님이 그중 다섯 가지를 고르면 음식을 접시에 예쁘게 담아 빵, 커피와 함께 드려요. 이게 ‘마다밀’이라는 메뉴고요. 오픈샌드위치 ‘마다 토스트’ 그리고 아침에 먹으면 좋을 ‘마다 요거트’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주말에도 여니 꼭 오세요(웃음).
요리법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넣어 볶아요. 손질한 냉이를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볶다가 생크림, 미림, 된장을 넣고 풀어줘요. 생크림이 끓으면 밥과 섞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페퍼론치노를 넣어주세요.
추천하는 사람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시도하길 바라요. 냉이를 더 친숙하게 느끼고, 근사한 접시가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어요.
다와
커뮤니티 메이커
첫 시작은 대학 전공 수업에서 손뜨개를 배우면서였다. 뜨개가 주는 행복에 빠져든 다와는 ‘니터Knitter’가 되어, 볕이 잘 드는 후암동 자락에서 보드라운 편물을 뜨며 살아간다. 뜨개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던 다와는 긴밀히 연결되는 ‘클로즈니트 클럽Close-Knit Club’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취미가 구심점이 되었지만, 모임에 빠지지 않는 건 맛있는 식사. 바삐 손을 움직인 니터들은 오늘도 다와의 집에서 먹고 마시며 함께 추억을 엮는다.
집이 정말 예뻐요. 여기는 뜨개 모임 클로즈니트 클럽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죠?
맞아요. 세상에는 뜨개 클래스가 정말 많은데, 어떻게 하면 나만의 색을 가진 클래스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다 시작했어요. 이름은 친구가 추천한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의 영제 ‘Close-Knit’에서 따왔고요. 뜻이 궁금해 찾아봤는데, ‘긴밀하게 엮이다’라는 거예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모임에서는 차와 간식을 먹고 마시면서 먼저 어색함을 풀어요. 그리고 네 시간 정도 뜨개질을 하다가 식사하고 헤어져요.
수강이 끝나면 곧장 헤어지는 보통 클래스와 달리, 식사 시간이 있다는 점이 새로워요.
이런 형식을 갖추게 된 데는 제가 가진 추억 때문이기도 해요. 베를린에 갔을 때였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연휴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집에서 밀크티도 끓여 마시고, 떡국도 해 먹으면서 같이 뜨개질했어요. (포토그래퍼 혜정을 가리키며) 저 친구 집이었죠.
잠깐만요…. 베를린에 사는 그 친구가 혜정 작가님이라고요?
네(웃음). (혜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추운 겨울날 아늑한 집에 모여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피곤하면 자고…. 그런 편안한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이걸 한국에 가서도 해봐야겠다 싶었죠. 함께 먹는 데서 오는 따뜻한 무언가가 있잖아요. 우리나라엔 밥정이라는 말도 있고요. 뜨개 모임의 첫인상이 제겐 이런 모습이어서 클로즈니트 클럽에서도 자연스럽게 밥을 먹게 된 거예요.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식사하면서 어색함은 없는지 궁금해요.
차 마시고 뜨개질하면서 이미 분위기가 살짝 풀어져 있는 상태라, 밥 먹을 땐 오히려 편안하게 대화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뜬 부분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어떤 부분에서 힘들었는지 이야기도 하고요. 제가 진행을 하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껴 있는 듯한 느낌으로 있어요. 처음에 어디서 오셨는지 정도만 물으면 오신 분들끼리 관계가 형성되거든요. 물 흘러가듯 두는 거예요.
이야기만 들어도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여긴 참여자가 직접 채식 요리를 가져와야 한다면서요?
네. 클로즈니트 클럽을 시작할 때 채식 중이었는데, 갈 식당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곳만은 모두에게 열려 있길 원했어요. 만약 그냥 도시락 싸 오기가 규칙이었다면 사람들이 피자, 치킨처럼 간편한 음식을 가져올 것 같았죠. 저는 평소 그런 식생활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내가 뭘 먹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가져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원래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얻어갈 수도 있겠어요.
평소에 잘 먹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접해보니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맞네, 이것도 비건 음식이지.”라며 채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 온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죠.
평소 지향하는 식생활에 대해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살아 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냉동식품이나 너무 많이 가공되어 죽어 있는 음식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가끔 당겨서 먹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그게 일상식이 되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달까요(웃음).
운영하는 모임으로 ‘뜨개는 핑계고’를 줄인 ‘뜨계고’도 있잖아요. 뜨개를 핑계로 먹고 마시는 자리라는 점이 재밌게 다가왔어요.
클로즈니트 클럽을 처음 시작했을 땐 제가 직접 요리를 했어요. 당시 차 내릴 준비에 수업 준비도 하고, 밥도 차려서 설거지까지 하려니 너무 힘든 거예요.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지금처럼 포트럭Potluck으로 바꿨지만요. 저와 오시는 분들 모두 부담을 덜고, 가볍게 와서 맛있는 걸 먹으며 뜨개질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가장 최근에 있던 뜨계고에서는 무얼 했어요?
설날에 함께 모여 떡국을 먹었어요. 이번 연휴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는데, 막상 오랫동안 혼자 있으면 사람이 또 심심하잖아요(웃음). 명절 분위기 내면서 떡국 끓여 먹어보려고 급하게 참여자를 모집했어요. 제가 떡국을 내어드리고, 오시는 분들에겐 간식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때 간식을 진짜 많이 먹은 기억이 나네요. 한국 사람들 1인분 싸 오라고 하면 꼭 2인분씩 가져오거든요(웃음). 되게 재밌었어요, 그날도.
뜨계고는 설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휴일에 주로 열리나 봐요.
크리스마스 때는 같이 뜨개질할 친구를 초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럴 거면 모임이 나을 것 같아서 사람들도 모았죠. 케이크도 사 오고 와인도 마셨는데 정말 좋았어요. 혼자서 먹는 것보다 나눠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요. 특별한 날에 즐거운 경험을 준 것 같아서 저도 기분 좋았죠. 그 기억에 벌써 크리스마스에만 세 번이나 모였네요.
자리마다 음식이 빠지질 않네요. 다와 씨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져요.
사람이 가장 빠르게, 원초적으로 기분이 좋아질 방법은 맛있고 달콤한 걸 먹는 게 아닐까요? 음식은 저를 쉽게 기분 좋게 하는 존재예요. 어떤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기억하진 못 해도 같이 먹은 맛있는 음식 하나는 계속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클로즈니트 클럽에서도 맛있는 걸 먹어요. 같이 먹으니 또 즐겁고요.
클로즈니트 클럽에 문 두드리고 싶은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찾아오면 좋을까요?
편안한 마음이요. 뜨개와 함께하는 따뜻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분이라면, 친구 집에 놀러 오는 마음으로 즐기다 가길 바랄게요(웃음).
요리법
채소를 물에 넣고 연두나 쯔유로 취향껏 간을 맞춰요. 여기에 떡과 김가루를 넣으면 맛있는 떡국이 돼요.
추천하는 사람
쌓여가는 채소를 처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추천해요. 활용법을 모르는 재료도 쉽게 요리할 수 있어요.
장민영·김태윤
아워플래닛
동식물이 사라지고, 바다가 뜨거워지는 일이 언제부터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 여겨진 걸까? 지속가능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our planEAT’은 단절된 자연과 사람, 지역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매개는 다름 아닌 음식. 장민영 대표, 김태윤 셰프의 식탁에는 이 땅의 생명을 극진히 아끼는 진심이, 지구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마음이 넘쳐흐른다.
행사 준비가 한창이에요. 오늘 여기 옥인동 아워플래닛의 공간에서 행사가 열린다죠.
민영 지역에서 직접 공수해 요리하거나 어머님들이 만든 반찬을 선보이는 자리예요. 오늘은 연화도의 삿갓조개 간장 조림, 비금도의 거북손 초무침 같은 반찬이 준비되어 있네요. 용기를 가져오면 포장해갈 수 있어요. 저녁에는 다이닝이 있는데요. 이 반찬을 다 차려놓고 제가 모니터를 보면서 각각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를 설명한 뒤, 김태윤 셰프의 요리를 함께 맛본답니다.
아워플래닛은 어떤 곳인가요?
민영 아워플래닛은 지구를 위해 계획한 한 끼가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우리가 먹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발생량은 총량의 3분의 1에 육박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잘 몰라요. 저희는 지구를 위한 맛있는 식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리고, 각자의 매일을 바꿔가길 권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다루는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친환경과는 다른 것 같아요.
태윤 저희가 전하는 지속가능성은 끊어지거나 희미해지는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핵심이에요. 지금은 도시 생활로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서 사람들이 자연 보호를 남 일처럼 멀게 느껴요. 자연과 가까이 산다면 환경을 망가뜨리며 살지는 않을 텐데요. 오늘 소개하는 반찬도 국내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먹어왔지만 생소한 것이 많죠. 이런 반찬 문화가 끊어진다면 전통도 사라질 거예요.
민영 친환경, 로컬, 채식, 동물복지, 제로 푸드 웨이스트, 종 다양성 모두가 관계의 회복에 포함돼요. 이것과 관련한 문제들은 모두 자연과 사람,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지역의 단절에서 오니까요. 저희는 지역의 다양한 식재료에 관심을 갖는 일이 지속가능성과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거예요.
두 분의 삶이 어떻게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진 거예요?
민영 전에는 한국 전통 음식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공부한 음식을 다 먹어볼 수 있을까 해서 요리 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팀에 작가로 들어가게 됐죠. 그 이후로 꾸준히 음식에 관심을 갖다가 태윤 셰프를 만났어요.
태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요리사인데요(웃음). 요리를 하다 보니 재료의 기원이 궁금해지더군요. 산지에 직접 찾아가 농부를 만나 환경이나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기른 생산물이 좋은 맛을 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요리사는 그 사실을 전하는 전달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요. 압구정동에서 운영한 레스토랑 ‘이타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모토로 활동을 했다가, 함께 아워플래닛을 만들었죠.
아까 말씀해 주신 키워드 중 ‘종 다양성’이 있었는데, 좀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태윤 생태계를 큰 거미줄이라고 한다면 종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거미줄이 잘려 나가겠죠. 처음엔 어느 정도는 지탱이 되다가 결국 완전히 무너질 거예요. 사람들이 늘 먹던 감자 한 종이 병으로 완전히 사라지면 거기에 담긴 문화도 없어지고, 연관된 경제 활동도 연쇄적인 피해를 입어요.
다양한 종을 소비하는 것이 지구와 인간 모두에게 중요한 일인 거네요.
태윤 종 다양성은 풍성한 취향을 위해서도 중요해요. 양식당에서 와인을 고를 때 어떤 날은 묵직한 레드를, 어떤 날은 발랄한 화이트를 먹고 싶잖아요. 쌀도, 콩도, 감자도. 그렇게 자기 취향이 생기는 만큼 미식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미식가는 다양한 맛을 알고 있고, 내가 먹고 싶은 맛을 적재적소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거든요. 다양한 종은 다양한 생산자를 뜻하기 때문에, 지역 생산자를 응원하면서도 인기 작물로 재배가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 소비자들은 유행하는 식재료를 무조건 좇아가기보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어요.
민영 그렇죠. 또 일상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로컬의, 계절의 것을 먹는 겁니다. 로컬 식재료는 운송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거든요. 또 제철 식재료는 시설 재배를 배제할 수 있고요.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자주 채식하기를 권해요. 육식을 한다면 유기 축산이나 동물복지처럼 지속가능한 축산 방법으로 기른 고기를 먹어야 하죠.
지구를 지키는 방법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네요.
태윤 지속가능성을 위한 삶은 편리와 타성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그 삶은 불편을 감수할 일이 굉장히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모든 프로그램을 할 때 무얼 하지 말라는 방법론보다 ‘나무 심으러 갑시다.’처럼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해요. 그리고 재밌게 나무를 심으면, 미션은 성공한 거죠.
어서 제 식탁 풍경을 바꾸고 싶어져요. 해보자는 방식으로 접근하니 마음도 가볍고요.
태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뭐든 해야 해요. 작은 노력이 모이면 큰 효과가 나오니까요. 아직은 아까 말한 거미줄의 탄성이 그래도 남아 있는 상태라고 믿어요. 그냥 포기해 버리면 다 절멸하는 거니까요. 누구든 뭐라도 뛰어들어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고 봐요.
아워플래닛은 앞으로 어떤 발걸음을 이어갈 계획인가요?
태윤 생산지나 자연을 찾아가는 필드트립을 진행해보려 하는데요. 국내는 물론 국외도 준비하고 있어요.
민영 이 공간은 많은 경험을 하기에 한정적이지만, 필드트립에서는 진짜 생산자와 자연을 만날 수 있어요. 누가 키웠는지 알면 재료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마법이 있거든요. 재료에 조금 흠집이 났어도 실제로 농부가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배려 같은 게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요리법
살짝 데운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마른 멸치를 볶아주세요. 다진 양파를 넣고 볶다가, 다진 고추를 넣고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다시마 육수를 부어요. 끓으면 간장으로 간을 하고, 밥을 넣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 먹어요.
추천하는 사람
인스턴트 식품이나 충만하지 못한 식사로 속이 허전한 사람에게 추천해요. 온반의 따뜻한 기운이 금세 몸에 감돌 거예요. 고추지릉장을 밥이나 국수에 비벼 먹어도 맛있어요.
정다정
생활기술전수자
빛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아침, 정다정의 부엌에는 포근한 향이 번진다. 향의 근원은 오븐에서 따끈하게 구워지는 빵. 일상을 지키고 위로하기 위해 굽기 시작한 베이글은 이제 다른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도구가 되어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한다. 음식은 삶의 작은 단서라고 믿는 다정이 빚은 베이글에서 오늘도 뭉근한 온기와,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오전부터 따뜻한 베이글을 준비해 주셨어요. 향이 정말 좋은데요?
식기 전에 한번 먹어보세요(웃음). 뜨끈하고 폭신할 때 먹어야 맛있는데 조금 가라앉았네요.
와, 파는 거랑은 다른 건강하고 담백한 맛이에요. 다정 씨의 아침 풍경은 이렇게 달큰한 빵이 함께죠?
맞아요. 특별한 향이 없는 아침 공기에 빵 내음이 점점 풀어질 때 행복해요. 베이글을 구우면 따뜻해진 공기를 느끼면서 몸도 풀어지는 느낌이고요. 베이글을 맛보면서 ‘오늘 잘 됐구나.’ 생각하면 기분도 좋아요. 그 마음으로 하루를 여는 거죠.
포근한 풍경을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져요. 베이글은 언제부터 구운 거예요?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가 직장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취업 준비를 할 때였어요. 그전에도 한 번 퇴사하고 힘들게 재취업을 준비한 시간이 있던 터라,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을 기준을 고민했죠. 하루의 끝을 잘 맺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준이요. 그러던 차에 저녁에 반죽하고 아침에 굽는 베이글 강의를 접했는데요. 베이글의 시간에 리듬을 맞춘다면 제 삶이 낙담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이력서를 써야 하니까 일어나야 해.’가 ‘베이글을 구워야 하니까 일어나야 해.’가 된다면요. 다른 건 다 안 돼도 빵이라는 결과물이 늘 있으니 작은 위로가 될 것 같기도 했어요.
직장을 다니는 지금까지 빵을 굽는 걸 보면 베이글이 좋은 영향을 주고 있나 봐요.
취업이 오래 걸릴 거라 예상하고 만든 루틴이었는데, 생각보다 취업은 빨리했어요(웃음). 베이글을 굽는 데는 저녁에 반죽하는 30분, 냉장고에 두는 여덟 시간, 꺼내서 휴지하는 한 시간, 데치고 굽는 30분, 총 열 시간이 필요해요. 그 열 시간을 지키려면 회사에서 일을 잘 마무리하고 와야 하죠. 바빠지면 베이글을 못 굽는 날이 많아지고요. 베이글이 내가 지금 삶을 괜찮게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된 거예요. (일어나 잔을 꺼내 오며) 혹시 또우장 드셔보셨어요?
안 먹어봤어요! (잔을 받아 마셔본다.) 우와, 너무 맛있어요….
맛있죠? 대만 아침 식사 또우장은 우리나라 콩물 같은 거예요. 저는 이런 게 너무 좋아요. 이왕이면 좀더 만들어서 맛있는 걸 같이 맛있다고 하는 거요. 맛있다는 경험을 자주 하면 행복해지고, 삶을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최근에 회사에 빵을 구워 갔는데 동료가 하는 말이, 빵 때문에 회의실 공기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 말이 되게 좋더라고요. 오자마자 바쁘게 컴퓨터 앞에 앉는 것보다 “맛있다”, “오늘 하루 잘 보낼 것 같아.” 이런 말을 하고 각자 일을 하는 게 좋아요.
회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일하고 계시죠. 마르쉐에서는 어떤 일을 하세요?
토종 작물이 모이는 토종장이나 다양한 밀을 만나는 햇밀장처럼 주제가 있는 시장을 기획해요. 최근엔 바다장을 준비했어요. 마르쉐 출점팀이자 비건 디저트숍 ‘홀썸’과 함께 해조류로 만든 디저트클럽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우뭇가사리로 푸딩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작은 아이디어를 던졌는데 셰프님이 완성도 있게 구현해 주시고, 먹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전한 기분이라 재밌었어요.
요즘은 베이글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신다면서요?
최근에 연 워크숍은 작년에 검정밀을 판매하는 농부님을 만나면서 시작됐어요. 검정밀은 재배량에 비해 수요가 적어 고민이던 차, 주변에서 비슷한 아리흑밀을 짓는다고 해 재배를 포기하시려 했대요. 이야기를 듣고 힘을 보태고 싶어 워크숍을 열고 참가비를 밀로 교환해드렸어요. 이렇게 제가 만드는 모임 방향은 좋아하는 것을 나누기 위함보다는 연대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위로하던 베이글이 연대의 도구가 되었네요. 사람들과 교류할 때 지키는 원칙도 있다면서요?
베이글이나 제가 가진 생활 기술을 가능하면 돈으로 교환하지 않으려고 해요. 생활 기술은 일상에서 반복하면서 능숙해진 기술이라 생각해요. 전문 베이커도 아닌 저의 평범한 기술과 베이글 하나에 값을 매기는 것은, 제가 베이글을 만드는 의도와는 다른 것 같아요. 계절별 베이글을 만들면서 종종 이건 누가 좋아하겠다 싶어 만든 후 나눠먹는데, 가격을 정해버리면 친구들보단 단가가 떠오를 것 같아요. 지금처럼 넉넉하게 좋은 재료도 못 사용하고요.
그럼 그냥 나눠 가지는 건가요?
물물교환을 해요. 생강청이나 장식품 같은 걸 교환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조개껍질을 줬어요. 가격을 매기지 않으니까 그냥 재밌다고 해야 할까요? 삶의 관계가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시간이겠어요. 베이글을 만들 때 여러 밀을 섞기도 한다던데, 밀마다 맛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건 직접 맛봐야 해요. (밀을 종류별로 손에 덜어주며) 마르쉐에서 햇밀장 프로젝트팀으로 참여해 다양한 밀을 경험하게 됐어요. 우리 밀 중 가장 잘 알려진 앉은키밀은 질감도 고와요. 검정밀은 색이 검고 질감이 다르죠? 예전엔 신맛이 살짝 느껴졌는데, 이것저것 먹어서 지금은 아무 맛이 안 느껴지네요(웃음). 마지막은 김천참밀. 어때요?
이게 좀더 단맛이 나는데요?
그렇죠? 이 농부님이 기른 밀은 유독 달아요. 밀마다 맛 차이가 안 나면 어떡하지 했는데 느껴져서 다행이에요.
삶에서 음식이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다정 씨에게 음식은 어떤 존재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음식은 삶의 작은 단서 같아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단서, 이야기가 끊임없이 시작되는 단서요. 누군가 마르쉐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가 물으면, 저는 이야기라고 답할 것 같아요. 여긴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쫓아가는 곳이고, 그 이야기로 기획된 것들이 다른 곳과 다름을 만들어낸다 여겨져요. 음식도 제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예요. 베이글로 의도치 않은 교환이나 만남이 이뤄지길 바라요.
요리법
콩물과 이스트를 섞어 주세요. 이스트에 밥을 준다는 마음으로 설탕을 풀고 올리브 오일을 섞은 다음, 검정밀과 앉은키밀을 6 대 4 비율로 블렌딩해 반죽해 주세요. 반죽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소금과 호박고지를 넣어 동그랗게 빚고 구워 주세요.
추천하는 사람
호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분들이 시도하면 좋아요. 얇게 말린 호박을 구웠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