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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WN YARD
오키나와 나하공항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차로 이동하면 야가지섬에 닿는다. 거기서 긴 다리를 하나 건너면 코우리섬이다. “하이라이트입니다!” 오래전에 이 섬에 와본 적이 있다던 친구가 코우리 대교를 앞에 두고 말했다. 바다 위로 떠 있는 긴 다리를 지나는 동안 차창 밖은 온통 하늘색이 된다. 조깅하는 속도로 자동차를 몰아도 뒤에서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출발한 곳이 어디였든 새로운 기분을 주는 구간. 다리를 건너 섬의 왼쪽으로 5분만 더 가면 바다 쪽으로 향해 지어져 있는 숙소 ‘야운 야드YAWN YARD Kouri Island’가 있다.
코우리 섬의 호텔 야운 야드는 일본 전역의 블루보틀과 협업을 통해 잘 알려진 스키마타 아키텍츠Schemata Architects 대표 나가사카 조Nagasaka Jo가 설계한 새로운 프로젝트다.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 주는 ‘마당Yard’을 중심으로 설계된 여덟 개의 공간이 바다 쪽으로 열려 있으며, 각 객실에는 작은 수영장과 오키나와식 다다미가 깔린 거실, 침대 공간, 야외 식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 일본 남쪽은 아열대 기후로 이웃 섬에서는 노지에서 커피를 재배할 수도 있는 환경이다. 사계절 기후를 모두 가진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열린 형태의 주거 공간이 코우리섬에 있는 이유다. 섬을 알아가고 호응하기 위한 장소로 야운 야드에서는 마당을 강조한다. 바다 쪽으로는 활짝 열려 있지만 건축적으로는 안으로 품어진 형태의 아늑한 마당. 여느 숙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티브이나 오디오 시스템 대신 여러 개의 커다란 창문과 자꾸만 나와서 앉아 있게 만드는 아름다운 야외 가구들을 디자인했다. 음식 먹기, 밤 수영하며 별 보기 등도 모두 마당에서 이루어진다. “마당에서 바라볼 수 있는 ‘얀바루’를 구경하세요.” 얀바루는 깊숙한 곳과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 숙소 주변의 풍부한 자연환경을 뜻한다.
숙소 안을 채우는 것들에서도 섬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 기와에서 영향을 받은 붉은색 테이블과 오키나와 북부 지방의 숲에서 자라는 이라즈 나무로 만든 의자들은 현지 디자인 회사인 루프트Luft와 오키나와의 장인들이 제작을 맡았다. 현관을 지나 거실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커다란 석회암 카운터도 오키나와의 일부다. “이 돌은 문을 통과할 수 없는 크기였기 때문에 먼저 자리 잡은 후에 주변 건축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야운 야드의 안내자 후루타 씨가 말했다. 독특한 류쿠(오키나와의 옛이름) 석회암의 표면을 손으로 만져 보면 아늑한 숙소와는 또 다른 섬의 거친 피부를 상상해 볼 수가 있다. 후루타 씨는 단단한 석회암 위에 차와 다과를 올려 놓고 우리의 도착을 반겨 주었다.
아주 먼 곳으로 이동했는데도 집에서 지내는 것과 비슷한 환경에 놓일 때가 있다. 다양한 문화가 빠르게 섞여 구분이 어려워지고 또 스스로도 익숙한 환경을 지키는 일이 쉬워졌으니까 말이다. 여행을 가서도 내가 입던 옷을 입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언어로만 말하고 또 내가 자주 먹던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다니다 보면, 편리함과 함께 의문스러운 헛헛함도 느끼게 된다. ‘빈 몸으로 찾아오면 좋았을걸.’ 야운 야드에서의 나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여분의 옷이나 신발 없이 그리고 무얼 해야겠다는 계획 없이 와서 이들이 제안하는 것을 충실하게 따라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일본식 관내복을 입고서 쉬고 있으면 하루 두 번 식사가 제공된다. 섬 주변에서 구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먹으며 눈으로는 그게 어떤 계절에 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읽는다. 낮엔 바다 수영을 하고, 아침엔 온수 목욕을, 저녁엔 작은 수영장에 둥둥 떠서 내내 물을 즐긴다. 주변엔 바다와 숲, 폭이 좁은 길뿐이니 숙소에 놓인 작은 종이 지도 한 장만으로도 꼼꼼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코우리섬은 둘레가 6킬로미터 정도로 한 바퀴를 다 도는 데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충분한 곳. 코우리 대교가 있는 남쪽으로는 몇몇 상점과 기념품점 그리고 작은 해변이 있다. 객실 내부에는 오키나와에서 생산된 위스키와 럼, 진과 맥주 등이 큐레이션 돼 있으니 남쪽을 산책하며 사 온 과일이나 음식을 이에 곁들이는 시간도 즐길 수가 있다. 섬의 북쪽은 남쪽에 비해 한적하다. 가로등이 드문 북서쪽 해변에서는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멍하니 구경할 수 있다. ‘섬에서는 섬을 경험한다.’ 작은 섬을 여행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쁨 아닐까. 수많은 루트 중에 무얼 골라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섬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 식으로도 좋은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지나온 곳들, 잠시 멈춰서 시간을 보냈던 곳을 머릿속에서 조합하면 나만의 지도 한 장을 그릴 수 있는데, 그 지도는 숙소에서 그려준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작은 글씨와 간단한 드로잉으로 채워진 리플릿.
숙소와 그 주변에 관한 정보의 대부분을 얻을 수 있다.
조식으로는 수제 햄 샌드위치, 이웃 섬의 소금을 곁들인 연어구이와 주먹밥, 찻물로 끓인 죽과 제철 비건 반찬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코우리섬을 기준으로 70킬로미터 이내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는 점이 특징.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 보면 이어진 물이 보인다. 욕조에서 작은 수영장으로 그리고 멀리 바다까지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어진다. 객실 안쪽에서 바다 쪽으로 문을 하나씩 열고 나가면 수영장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근 채로 난간에 기대어 있으면 마치 내가 섬의 일부가 된 것만 같다. 시원한 바람도 피부에 그대로 닿는다. 야운 야드에 머무는 동안 가장 자주 느끼는 기분이 바로 이러한 연결감이다. ‘반쯤 열려 있는 곳.’ 숙소 소개 글에서는 마당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언젠가 핀란드를 여행할 때 친구에게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왜 우산을 쓰지 않아?” 비가 자주 내리던 시기에 좀처럼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러자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왜 비를 받아들이지 않아?” 물론 젖는 게 싫은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햇살이나 바람처럼 빗방울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는 충분히 되었다. 당연하게 막고만 지내는 것들이 몇 가지 더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야운 야드에서 지내는 일은 우산을 잠시 접어보는 듯한 종류의 경험이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침실은 아늑했고 음식은 달았다. 따뜻한 물과 밤의 조명도 두 배로 아늑했고 말이다.
에디터 전진우
사진 전진우, 타이키 후카오Taiki Fuc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