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빛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는 청춘을 보통 30대까지로 정의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이제 청춘의 끝자락에 서있다. 한국 나이로는 이제 마흔인데, 아마 공자나 다치바나 다카시는 만으로 나이를 셌을 테니까 이제 나는 서른아홉인 것이다. 내가 방황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겨우 1년 남았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기분이다. 청춘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종종 청춘을 말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을 읽는다. 자기계발서도, 성공처세서도 아니지만 읽고 나면 안심이 되고 희망이 부풀어 오르는 이 책들을.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를 알게 된 것은 예전 직장의 상사 덕분이었다. 그는 내가 기자로 있던 잡지의 편집장이었는데, 20대 중반의 철딱서니 없던 나에게는 엄청 늙고 고리타분한 아저씨처럼 보였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는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었다. 세상에, 20대들에게 지금의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이제야 알겠다. 충격이다.). 어느 날 그가 지금은 소설가가 된 내 앞자리의 선배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훔쳐 들은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지知의 거장’이라는 거창한 별칭까지 얻은 일본의 저널리스트로, 여러 권의 훌륭한 르포르타주를 썼다. 그의 관심사는 무척 다양해서 전 일본 수상의 범법 행위, 공산당, 암, 우주, 임사 체험, 뇌까지, 그야말로 한계 없이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취재했다. 나의 직장 상사가 다치바나 다카시에게서 높이 사는 부분은 그의 철저한 조사 방식이었다. 그는 어떤 주제, 어떤 인물이건 취재 일정이 잡히면 그에 해당되는 모든 책과 자료를 샅샅이 훑어 거의 전문가에 가까운 완벽한 자세로 무장한다. 그렇게 그가 사들인 엄청난 양의 책 무게를 아파트 바닥이 지탱하지 못하자 건물 하나를 사들여 아예 개인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은 70대가 된 다치바나 다카시가 모교인 도쿄대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꾸린 ‘다치바나 다카시 세미나’라는 모임을 통해 기획하고 만든 책이다. 대학생들이 각 분야의 명사를 찾아가 ‘스무 살’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거기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스무 살에 대한 강의, 그리고 대학생들이 직접 쓴 스무 살에 대한 글을 더해 총 세 개의 장으로 엮었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배우 릴리 프랭키부터 디자이너 하라 켄야, 소설가 히라노 케이치로,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와 카피라이터 이토이 시게사토까지 바다 건너에서도 유명한 이들이다. 세상에는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인터뷰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무척 즐겁게 읽었다.

반대로 《청춘표류》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직접 만난 무명의 직업인들의 이야기다. 칠기 장인, 나이프 제작자, 원숭이 조련사, 정육 기술자, 사진작가, 자전거 프레임 빌더, 매사냥꾼, 소믈리에, 요리사, 염직가, 레코딩 엔지니어인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그쪽’ 세계에서는 꽤 인정받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자신의 인생에 확신을 갖지 못하며, 적은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표현에 따르면 ‘스스로 대담한 선택을 하고 이제까지 살아온 사람들’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들에게서 깨달은 자의 말이 아니라, 망설임과 방황에 대해서 들으려 한다. 세상의 상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무덤까지 일직선 코스를 향해 달리는 인생이 아니라, 망설이고 방황하는 인생에 대해서, 청춘이라는 것에 대해서 들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론이란 카페나 술집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인생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인생론은 말보다는 실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생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대로 하나의 인생론이 되어버리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중에서 

자기계발이나 성공처세의 가장 큰 맹점은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려 한다는 점이다. 사실 자기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내 경우엔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당장 한 끼만 굶으려 해도 살기가 싫어지고 세상과 운명을 원망하게 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세상 사람의 대부분이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었겠지, 흥! 최선을 다해도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 성공의 길은 요원해지는데,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는 노력에 더해 직관과 경험과 통찰, 그리고 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기계발이나 성공처세를 비웃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이 나이쯤이면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불혹不惑의 나이에는 정말로 불안과 의심이 없어진다면 좋으련만, 지금껏 잘못 살아온 탓인지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를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장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과 《청춘표류》를 빼내어 읽는다. 스무 살도 아니지만, 청춘도 아니지만 말이다. 

더 가난했으면 좋겠어요. 토마토를 물도 주지 않고 바싹 메마른 곳에 심으면 열매가 잔뜩 열리죠. 이처럼 인간도 척박한 환경에 놓였을 때 본래의 자질을 꽃 피우잖아요. 모두들 선천적으로 매우 풍부한 자원을 갖고 태어났지만 여유로운 환경 탓에 잘 발현되지 않고 있어요. 가난해지면 반드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거예요. (중략)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그보다 득이 될 만한 것을 해두려는 생각은 옳지 못해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참고 했는데 그걸 죽을 때까지 사용하지 못한다면 정말 쓸모없잖아요. ‘하고 싶은 것’이라면 사용도 못하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도 “재미있었어!”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우치다 타츠루,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중에서 

<청춘표류>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만난 나이프 제작자 후루카와 시로는 제자가 되겠다며 찾아온 젊은이들에게 칼을 갈아보라고 시킨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 몇 년 노력해서 칼을 곧게 갈 수 있으면 그때 다시 찾아오라고 하죠. 그러면 모두 싫은 내색을 하더군요. 요새는 다 기계로 갈면 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요. 그게 그렇지 않아요. 금속공예에서는 칼을 가는 것이 모든 테크닉의 기초예요. 정말로 칼을 잘 갈 수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보시면 돼요. 진정한 평면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그만큼의 기술이 생기고 동시에 진정한 평면을 알아보는 눈도 가질 수 있거든요.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솜씨가 좋아지면 보는 눈도 좋아진다는 것. 솜씨가 미숙할 때는 더 이상의 평면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솜씨가 점점 좋아지면 더 완전한 평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솜씨가 좋아질수록 스스로의 솜씨를 엄격하게 바라볼 수가 있고 미크론 단위로 사물이 보여요. 그 점이 중요해요.” 

–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중에서

그러고 보면 《청춘표류》 속의 청춘들은 우치다 타츠루가 했던 말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 일을 하게 되었는데 하다 보니 그 일을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다 보니 더 잘하게 되고 싶어진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인생이 마냥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돈도 못 벌면서 왜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하나 싶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 수 없어서 그렇게 사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청춘은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속 성공한 나이 든 이들이 스무 살에게 건네는 조언과도 맞아떨어진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평범하게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철학서를 읽지 않아도, 하루하루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게 바로 철학이에요. 병에 걸려도, 다쳐서 장애를 얻어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셔도, 자식에게 배신을 당해도, 부부 사이가 나빠져도, 그런 상황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즐겁게 살지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난해한 철학서가 술술 이해되기 시작할 거예요. 잘 풀리지 않는 일을 꾹 참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면 매우 활용도가 높은 도구가 손에 들어와요.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장하지 않아요.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 속에서 그걸 어떻게 기분 좋게 극복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동안 사람은 성장하게 돼요. 

– 우치다 타츠루,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중에서 

이 책들은 당장 어떻게 해야 성공하거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들이 마음에 든다. 이 책들은 그저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데, 바로 그것이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분별하는 것, 불필요한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내가 바라고 꿈꾸던 길을 향해 차분히 걸어가는 것, 그럴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을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되찾는 것이다.

이 글의 초반에 썼던 나의 직장 상사는 내게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아마 그 상사는 그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권위적이지 않은 권위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과시적이지 않은 정의로움은 또 어떤 것이고,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배웠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평생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건 그가 말로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것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그와 함께 몇 년을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지휘자이며 리코더를 고안한 사람이기도 한 무라카타 치유키는 이렇게 조언했다. 

요즘에는 돌아서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죠. 모두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라며 두려워해요. 실패하거나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너무 안전한 것만 지향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시대는 머지않아 끝날 테니까 하고 싶은 걸 할 때는 시간을 잊고 열중하도록 하세요. 돌아서 가는 길이 반드시 먼 길은 아니에요. 물론 순조롭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죠.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을 바라지 말고, 실패나 고독도 맛보도록 하세요. 실패나 고독,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라는 정신 상태를 갖도록 하세요. 어느 것 하나가 잘못된다 해도 무너지지 말고 더 힘을 내서 자신을 걸고,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 뛰어들도록 하세요. 

– 무라카타 치유키,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중에서 

아,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라니, 나는 왜 이렇게 꼰대 같은 이야기가 좋은 걸까. 이런 구닥다리 설교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지만 내게는 종종 이런 설교가 필요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살아 있는 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정직하게 살고 싶으니까. 어떤 사람이 되든 아무것도 되지 못하든,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마음속의 빛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누가 알아주건 몰라주건, 청춘이고 싶으니까.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실패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대담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무모하게 살았을 뿐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대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청춘을 제대로 산 것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중에서

스무 살, 젊은이에게 고함
다치바나 다카시ㅣ말글빛냄ㅣ462쪽

다치바나 다카시와 도쿄대 다치바나 다카시 세미나 팀은 스무 살을 맞이한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책으로 담았다.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의 그들은 어떤 고민을 나누고 있을까. 젊음이 무기지만 아직은 사회적 회복력이 더딘 그네들의 이야기다.

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ㅣ예문ㅣ287쪽

사진작가, 원숭이 조련사, 매사냥꾼, 프레임 빌더 등 이름부터 생소한 다양한 직업군의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담았다. 각자가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이 힘겹게 견뎌낸 방황과 실패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잠시 자기만의 시간에 표류한 이들,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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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