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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 엣 린넨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의 바늘들
한동안 손목시계가 사고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다, ‘메탈엣린넨’이라는 브랜드의 시계를 우연히 발견했다. 마음에 들어 단숨에 주문하기를 누르려는데, 간단한 클릭으로 구매가 끝나지 않았다. ‘이니셜로 새기고 싶은 글자, 밴드 색상, 손목 사이즈…’같은 평소에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고민하며 답을 채워 넣고 주문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내가 주문한 사항들에 관해 확인하며 시계를 둘러싼 얘기를 했다. 전화를 끊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물건을 산 적이 있었나?
메탈엣린넨Metal et Linnen의 이름 뜻이 뭔가요?
불어로 된 이름인데 직역하면 ‘메탈과 리넨’이라는 뜻이에요. 저희가 시계를 만들 때, 즐겨 쓰는 소재가 ‘메탈’과 ‘리넨’이라 두 가지를 합쳐서 만든 브랜드명이에요. 메탈이 주는 차가움과 리넨이 주는 따듯함의 묘한 어울림이 있어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된 소재를 합쳐 하나의 시계로 만드는 걸 즐겁게 생각하고요.
메탈이 시계에 사용되는 것은 알겠는데, 리넨을 재료로 사용하는 게 보편적인가요?
아니요. 마직류인 리넨을 시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보통은 가죽을 사용하죠. 저희는 새로운 소재로 실험적인 놀이를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리넨이란 소재를 시계에 써봤다가, 뜻밖에 잘 어울려서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리넨에 자수를 놓는다던가, 그런 실험을 해보는 게 좋아요. 꼭 리넨과 메탈로만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소재로 재미있게 시계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저희의 모습을 축약한 브랜드 이름이에요.
언제부터 시계를 만들기 시작하신 건가요?
2008년에 일본에서 주얼리디자인을 공부했어요. 그때 수공예시계를 처음 접하고 제작방법을 배워 만들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메탈엣린넨이란 브랜드로 시작한 건 2011년 1월이고요. 시계 케이스, 밴드 재료, 무브먼트Movement(시계가 작동하도록 하는 내부장치) 같은 부품들을 제대로 준비해서 시작하려다 보니 조금 늦어졌어요.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주로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거든요. 긴 시간 동안 꼼꼼하게 준비했어요.
주얼리디자인에 속하는 다른 분야가 많을 텐데, 특별히 시계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시계제작에는 저희가 흥미를 느끼는 요소가 고루 갖춰져 있어요. 만들기 전에 그림으로 그려봐야 하고, 스케치를 바탕으로 만들어 나가죠. 그걸로 끝이 아니라 무브먼트를 넣음으로써 시계가 움직이게 되잖아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매번 이 과정을 거칠 때마다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을 해요. 멈춰있는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 멋지잖아요. 만든 후에도 팔려서 제 손에서 벗어나면 그만인 게 아니라 주인이 된 사람의 시간이 덧붙여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계가 되는 모든 과정이 즐겁게 느껴져요.
친구들이 함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세 사람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습작으로 만들었던 시계와 다른 작가들의 시계를 몇 개 들고 왔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수공예시계를 제작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변 친구들에게 이 시계들을 보여주자 신기하게 봤죠. 그때 시계를 봤던 친구 중, 팬시 디자인을 하던 친구(김유미)와 웹 디자인을 하던 친구(이윤영)가 시계에 유독 관심을 가졌어요. 마음도 잘 맞는 친구들이었기에 ‘우리 같이 시계 한 번 만들어볼까?’라고 던진 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친구들이 함께 모여 노는 게 아니라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감정이 오갈 것 같아요.
저희는 ‘친구’라고 말하지만, 나이 차도 나고 일종의 선후배이기도 해요. 한 사람이 시계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었고 그걸 나머지 두 사람에게 가르쳐줘야 했으니까요. 처음엔 가르쳐준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건 배우는 게 더 많더라고요. 기술을 갖고 있고 그걸 전달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울 점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전공하지 않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독특한 시계를 만드는 후배를 보고 있으면 ‘얜 천재인가’ 싶기도 하고요. 서로 얼굴 보고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바로 옆에 있으니 쑥스럽네요(웃음).
일하다 보면, 같이 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아요?
셋 다 성격이 일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해요. 누구 하나가 “나 이번에 휴가 내고 여행 가려고” 하면, “그래? 가라!” 해놓고 뒤돌아서면 나머지 둘은 배가 아픈 거예요. ‘너만 놀러 가? 우리도 간다!’해서 다 같이 가게 문 닫고 쉬고 그러죠. 출퇴근도 서로 시간을 정해두고 압박하기보다는 누군가 늦게 나오면, 알아서 할 몫은 더 남아서 하고 가면 되니까. 그런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아요. 날씨 좋고 기분 좋으면 같이 택시 타고 동네를 벗어나서 놀다 오기도 하고요.
시계에서도 그런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일이 힘들 때가 있지 않나요.
저희가 즐기고 좋아하는 작업을 하는지라 힘들다 말하긴 어렵고요. 굳이 힘든 점을 찾아보자면, 카피요. 최근, 저희가 만든 시계를 조잡하게 카피해서 판매하는 업체들이 늘어가고 있어요. 저희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만들어낸 시계인데, 기계로 조잡하게 찍어내서 판매되고 있는 시계들을 보면 힘들 때가 있죠. 아무리 비슷한 느낌으로 가공을 하고 똑같이 디자인을 따라 해도 손으로 만들어낸 시계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무조건 같은 모양인데 더 싸니까, 그걸 구매하는 분들이 많으면 속상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앞으로 저희가 풀어내야 할 숙제인 거 같아요. ‘아무도 못 따라 하도록 만들겠어!’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요.
시계 외관은 따라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계를 주문하고 받아보는 과정에도 오는 감동이랄까. 그런 건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여기에 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희에게 시계를 중심에 둔 ‘소통’은 정말 중요해요. 단적인 예로는 주문하고 결제한 후에 손목사이즈를 기재 안 해주시면 밴드제작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밴드도 그런데 하물며 시계 자체는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마련이에요. 밴드 색도 골라야 하고, 시계에 새길 이니셜도 확인해야 하고 모든 게 다 소통이 필요한 요소들이죠. 철자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되니까 일단 주문이 들어오면, 꼼꼼히 확인하고 제작해야 해요. 다른 요구사항들도 점검하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죠. 그러다 보면, 구매자분들의 이야기도 알게 되고 자연스레 그런 점에 마음을 쏟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의 시계를 만드는데 얼만큼의 시간이 걸리나요.
보통 3~4일 정도 걸려요. 100퍼센트 커스텀Kustom(고객의 요구에 맞게 제작하는 맞춤 서비스)의 경우는 디자인 의뢰부터 결정까지의 시간을 제외한 순수제작기간만 일주일 정도 걸리고요.
그렇게 정성껏 만든 메탈엣린넨의 시계만이 가지는 장점이 있을까요.
가장 큰 차별점은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구매자가 선택하는 요소들이 다 달라서 같은 제품은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이겠죠. 저희 공방에 와서 구매하시면, 직접 눈으로 다양한 재료를 보고 고르실 수 있고 원하시면 이니셜도 직접 새기실 수 있어요. 그리고 착용할수록 빛이 바래 더 예쁜 시계가 만들어져요. 이건 사용하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죠. 저희가 만들어 드리는 게 아니라, 시계의 주인이 직접 시간의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점인 것 같아요.
독특한 시계가 많아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계획에 의해서 차근차근 만드는 시계들도 있지만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얻어요. 텔레비전 보다가, 영화 보다가, 식사하다, 이야기 나누다가…. 불현듯 ‘이렇게 만들어볼까? 이걸 만들어 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하나의 시계가 완성되죠.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있었을까요?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 그레이트 블루 홀The Great Blue Hole을 보고 그 형상을 모티브로 만든 ‘블루 홀’이라는 시계를 제작했어요. 문자판에 최대한 블루 홀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여러 작업을 해보았는데, 그 시간 동안 더 독특한 시계를 만들 기회를 얻어요. 그리고 사람모양을 시계 본체에 붙여 만든 ‘토크토크’란 시계가 있거든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듯 대화를 하는 자세를 한 모양이에요. 이 시계를 보는 분마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이라던가, 싸우고 있다던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셔서 제작 후에 또 다른 이야기를 갖게 되는 시계도 있는 것 같아요.
시계를 주문한 손님 중에 기억에 남는 분 있나요?
해외사이트에서도 판매하고 있어서 외국 고객이 꽤 있는데요. 몇 달 전 딸에게 저희 시계 중 ‘피피(곰모양의 시계)’를 선물한 분이 있었어요. 따님 머리카락 색이 더티 블론드Dirty Blonde고 속눈썹도 추가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어요. 더티 블론드가 무슨 색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수정된 이미지를 손 그림으로 그리고 색을 입혀 보내드렸어요. 딸의 머리 색과 같은 색을 확인받은 후에야 시계를 만들 수 있었죠.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나중에 시계를 받아보고‘딸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고 감사 메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또 다른 한 분은 산 지 얼마 안 된 시계를 키우는 강아지가 물어뜯어 밴드가 다 망가졌다며 증거사진(?)과 함께 밴드 수리를 의뢰했어요. ‘너는 이 메일을 보며 웃고 있겠지만, 시계 주인인 우리 애는 지금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하고 있어.’라는 메일에 웃으면서 시계를 수리해드리기로 한 적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공방에서 수업도 진행하던데, 어떤 수업이 있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저희가 진행하는 수업은 하루짜리 수업인데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시계를 본인이 직접 만든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소수정예라(최대 4명) 혼자 오셔도 되고요. 커플끼리 와서 두 분 만의 조용한 수업도 가능하세요. 수강신청은 매장을 방문해 상담 후 신청하셔도 되고요. 저희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가능해요.
앞으로 메탈엣린넨의 꿈이 있다면?
가격을 듣고 무조건 비싸다고만 하고, 값싼 카피제품과 비교를 하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앞으로 손의 가치를 조금 더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분야의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더욱 새롭고 재미있는 시계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어떤 분야든 다요.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서로 즐겁게 성장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시계를 만드는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만드는 분이 ‘시계 뒷면에 가장 좋아하는 말을 직접 새겨보세요.’라고 했다. 잠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물건에 새길 정도로 내게 중요한 말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늘 마음에만 담고 있던 말을 신중하게 새겼다. 그렇게 완성된 시계를 차고 다닌 후, 없던 습관이 생겼다. 틈만 나면 시계를 풀러 뒷면을 본다. 내 손으로 새긴 글자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정말 내 삶이 그 말을 따라 흐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같은 말은 어쩐지 물린다고 생각했는데, 오로지 나를 위한 물건이 하나쯤 있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메탈엣린넨이 만든
시계들
그녀들이 만든 매력적인 시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여섯 가지를 골라보았다. 각 제품마다 얽혀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시계를 주문하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01. 폰스템푸스 Fonstempus
‘시간의 우물’이라는 의미의 시계로 문자판의 숫자 하나하나를 톱으로 컷팅하여 제작했다. 손으로 만든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계.
02. 로모더블유 LomoW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시계로 부드러운 직사각형 모양이 매력적이다. 심플한 디자인으로 매일 착용하는 시계로 적합하다.
03. 피피 Pipi
귀여운 곰모양 케이스와 함께 한 땀씩 직접 자수를 놓아 제작한 정성이 가득한 시계다. 어린아이들에게 생애 첫 시계로 선물해주면 좋아할 제품.
04. 타임홀 Timehole
푸른 바닷물로 가득 찬 동굴이나 지형인 블루홀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시계. 문자판의 인덱스를 여러 가지 표현으로 제작해 특별함이 있다.
05. 나만의 시계 Make It Yourself
시계 케이스, 문자판, 용두(시계조절장치), 바늘, 밴드까지 하나씩 골라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시계. 시계의 뒤편에 원하는 문구를 직접 각인할 수 있다.
06. 톡톡 TalkTalk
시계 위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고 갈 수 있다. 커플끼리 하나씩 나눠 가져도 좋을 만한 독특한 시계다.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