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
유독 기다려지는 계절이었다. 매정하게 쪼아대던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는 만큼 신선한 가을 공기가 채워졌다. 둥그렇게 무르익어 가는 달 아래, 서로 안부를 나눌 만남의 시간이 찾아온다. 어김없이 마중 나온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그 장면에 다정을 더한다.
일상을 휘젓는 여름의 기색이 얼마나 대단했던가. 시작과 끝이라는 순리를 거스른 채 영원히 머무를까 겁을 집어먹기도 했다. 그러나 자연은 흐르는 법.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으며 끝내 가을에 당도했다. 이 계절의 밤은 구름이 풍성하게 내려앉은 낮만큼이나 아름답다. 고요히 흐르는 별빛 아래에서, 애정을 나누는 이들은 머리 위 달처럼 둥그렇게 앉는다.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를 살아온 각자의 빛이 모이는 이맘때, 가을 밤하늘은 여태껏 보지 못한 희망으로 가득 찬다. 서로의 빛을 보듬으며 우리는 그 천연색으로 유유히 물들어 갈 테다.
풍요를 나누게 될 가을의 문턱, 이솝 하비스트 캠페인은 우리나라 명절인 추석을 환영하며 곱게 가다듬은 마음을 건넨다. ‘오래된 매듭의 무늬(2020)’를 시작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2021)’, ‘두드림 끝에 맞이한 결실(2022)’, ‘마음을 적어 건네는 계절(2023)’, ‘시간의 흔적을 따라(2024)’까지, 매해 추석을 맞이하는 우리보다 한 걸음 먼저 마중 나온 이솝은 섬세한 캠페인과 물성으로 우리 손에 다정을 쥐여주었다. 하비스트 캠페인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하는데, 올해는 자개 공예품을 선보이는 황삼용 작가와 함께다. 먼저 ‘자개’란 한국 전통 공예인 칠기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가공한 조개껍질을 이르는 말이다. 조개껍질은 바닷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며 고유한 빛을 머금게 되는데, 유물로 추측하건대 통일신라 시대부터 그것을 사람의 손으로 건져 올려 세밀하게 깎고 조각내고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1976년부터 형형색색 빛이 이루는 세계에 뛰어든 황삼용 작가는 자개를 1밀리미터 미만의 직선 형태로 가늘게 썰어 모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을 주로 선보인다. 이외에 실톱이나 가위 등으로 자개를 오려내는 ‘주름질’ 등 여러 기법이 있지만, 특히 끊음질은 모든 과정에 수작업으로 임해야 하며 작은 조각들로 큰 형상을 이루기에 공예가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으면서도 정교함과 인내심을 요한다.
자개의 빛은 보는 시선마다 다르고, 놓인 자리마다 다르다. 수백수천 개, 때로는 그 이상의 조각이 모여 고유의 빛을 완성하는 자개 공예품은 서로 다름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아름다움을 이룬다. 추석도 이와 닮지 않았는가. 다른 구석이 엿보이는 사람들과 각기 흩어져 있던 소중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안부를 나누고 남은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한다. 그 안에서 의미 있는 것은 서로의 같고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모양새로 어우러져 주고받는 마음뿐이다. 시간과 우연의 결실로 탄생한 자개의 아름다움에서 저마다 특유한 성질을 끌어안는 추석의 너그러움이 엿보이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 아닐까.
최인호
자유로이 반짝이는 자개를 보면 꼭 선선한 가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다. 이따금 서늘하게 느껴지기까지 해 옷깃을 다시 여밀 때도 있지만, 조금의 물기도 없는 하늘이라면 무수한 별들의 반짝임과 마주할 수 있으니 충분히 좋다. 밤하늘을 우리네 삶이라 칭한다면 콕콕 박힌 별들은 인연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언젠가부터 우리 마음에 박힌 ‘인연’은 거리를 좁히다가도 멀어지고, 빛을 강하게 뿜어내거나 또는 은은하게만 머무니까. 끝내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자리에는 필시 다른 인연이 찾아오곤 한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선명하기에 이맘때 하늘이 아름답듯, 우리네 삶도 연결된 이들 사이의 빛으로 더욱 수려해지리라 기대한다. 우리의 문학과 예술을 예찬하는 이솝은 그 의미를 곱씹으며 한 작가의 문장을 떠올렸다.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썼으며 짙은 감수성이 묻어나는 문장들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최인호 작가의 것이다.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 작은 반짝임이 커다란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믿는 것, 그게 바로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귀중한 기쁨이라 부르고 싶다.
올해 하비스트 캠페인이 진행되는 9월 15일부터 10일 26일까지 이솝 가로수길과 삼청 스토어에서는 황삼용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다양한 입체 사물에 자개를 붙여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이루는데, 특히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공예의 소재로 활용한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을 본뜬 ‘물방울’ 시리즈와 모난 데 없이 매끈한 모양새가 영롱한 ‘조약돌’ 시리즈가 바로 그 예다. 캠페인 기간 내내 바다가 만든 우연의 빛, 묵묵히 쌓아 올린 한 사람의 노력이 만나 이룬 결실을 목격할 수 있다. 틈 없이 붙여진 자개들이 저마다 빛을 간직하면서도 하나로서의 조화를 보여주는 순간,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예술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나아가 캠페인 기간 동안 이솝의 모든 스토어에서 제공되는 하비스트 선물 포장 보자기에는 최인호 작가의 《인연》 속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 구절을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다 보면 나를 빛나게 만들어준 고마운 얼굴들이 마음속에 달과 별의 모양새를 빌려 동동 떠오를 것만 같다. 먼저 공간에 흐르는 찬란한 빛에 감탄했다면, 다음으로는 그 순간의 감동을 꼭 닮은 물성들로 마음에 정성을 더하자. 그 모든 것이 은은하게 물들어 갈 가을밤, 이솝과 하비스트 캠페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윤기 나고도 사려 깊은 선물이다.
선생님은 친형님이신 황의용 작가를 따라 자개를 매만지는 세계로 들어오게 되셨다고요.
열일곱 살쯤이었을 텐데… 그러니까 1976년 7월 26일, 부산에 자리한 형님의 공방에서 처음 자개 공예라는 기술을 접하고 배우게 되었어요. 50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직 날짜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날을 ‘아버지로부터 해방’된 날이라고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무척 엄하고 매서우신 분이었거든요. 그 탓에 형님은 저보다도 어린 나이에 독립해서 고생 끝에 나전칠기 기술을 배웠어요. 그때는 보통 여러 사람이 담당을 나눠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했어요. ‘칠부(자개를 붙이기 전에 작업물에 칠하는 역할)’인 형님 곁으로 가 ‘자개부(자개를 캐고 절삭해 붙일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역할)’로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기나긴 걸음의 시작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인 거네요.
당시에는 기술을 알아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던 시기니까요. 예를 들어 목공소나 대장간, 철공소, 양복점 같은 곳 알죠. 컴퓨터를 쓰는 일이 대부분인 요즘과는 다를 거예요. 70년대는 ‘자개장롱’을 비롯해 나전칠기 제품이 인기가 많아서 기술을 다루는 이가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수요도, 기술자도 크게 줄어들었죠. 저는 자개 공예를 천직으로 여기고 서울로 올라가 본격적인 작업을 선보인 거예요.
공예를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임하셨지요.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난생처음 형님의 손에서 완성된 작업물을 보고 제가 물었어요. 이거 사람이 한 게 맞냐고, 너무나 아름다운데 사람 손으로 가능한 일이 맞냐고요. 다른 일에는 금방 싫증을 내던 제가 자개 공예만큼은 아직도 재미있어요. 그래서 종일 이어지는 작업에도 모든 잡념이 사라질 정도로 집중할 수 있고요. 하나가 완성될 때까지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크기에,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께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인내심이 있느냐예요. 그것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해주고요(웃음). 처음에는 자개가 날 갖고 노는 것처럼 말을 안 들어도 꾸준히 연마하고 인내한다면 잘할 수 있어요.
작업의 주요 소재인 자개를 활용하는 기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자개 중에서도 ‘색패’라 말하는 전복 껍질을 주로 쓰고, 부분적으로 ‘백패’ 소라 껍질을 써요.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조개는 크기가 손바닥보다 작은 반면에 대만, 멕시코,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캐낸 조개는 크기도 무척 크고 저마다 빛깔도 색다르죠. 또 기법에는 절삭, 주름질, 패각, 조각 등이 있는데, 저는 얇고 가는 조각을 칼끝으로 눌러 끊어 붙이는 끊음질을 즐겨 씁니다.
끊음질 기법을 즐겨 쓰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끊음질은 도안이 없어요. 작가의 머릿속에서 실낱 같은 조각을 이어 붙여 모양을 만드니까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묘미가 있죠. 이 기술이라면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만들 수 있다고나 할까요. 또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이 나뉘듯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기법이 쓰일 때도 있는데요. 흔히들 보았을 학이 그려진 장롱은 도안이 있으니 절삭 기법이 주연이라면, 끊음질은 조연이 되어 그 바탕의 풀이나 바다의 결을 표현하곤 하죠. 주연만 있다고 작품이 빛나던가요. 섬세하고 창의적인 끊음질이 있기에 작품에 빛이 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간 선보이신 ‘물방울’, ‘조약돌’ 시리즈로 미루어 보면 작업의 영감이 자연에서 비롯하는 듯해요.
‘물방울’은 시골에 살던 어릴 적, 눈뜨면 소를 몰고 산이나 들로 다니던 때의 기억으로 만들었어요. 풀 위에 맺힌 아침 이슬에 조금씩 물방울이 더해져 떨어지기 직전이 되면 햇빛이 비쳐 보석처럼 반짝이는 장면을 볼 수 있거든요. 그 물방울 하나를 아름다운 자개의 빛으로 상상해 냈죠. ‘조약돌’ 역시 홍천강에서 동그랗고 예쁜 돌멩이들을 발견해서 작품으로 이어진 거고요. 예술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자연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어요. 여름 소낙비에 떨어지는 잎이나 산허리에 두른 안개, 겨울에 만나는 설경처럼, 자연이야말로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예술이에요.
자연에 대한 존중, 작업을 향한 집념은 이솝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요. 매년 우리 명절 한가위를 맞이하여 진행되는 이솝의 하비스트 캠페인에 협업 제의를 받으셨는데, 어떠셨나요?
사실 저는 텔레비전도 안 보고 매일 작업실에만 머무르니 잘 모르는 이름이라 수강생들에게 물어봤어요(웃음). 하나같이 다들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여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라고 하더라고요. 캠페인에서는 한국 전통 예술과 공예에 관심을 기울인다고도 하길래 기쁜 마음으로 힘을 더하기로 한 거죠.
선생님은 곧 다가올 추석을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예부터 전해져 오는 추석, 그러니까 한가위는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며 풍요로운 마음을 나누는 명절이잖아요. 바쁜 농부들이 한숨 돌리는 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평일이나 휴일 가리지 않고 매일 이곳에 출근해서 작업에 몰두해요. 작업실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거든요.
오는 10월 26일까지 이솝 가로수길과 삼청 스토어에서 선생님 작품이 전시돼요. 보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아마도 내 작품을 아는 사람도 있을 테고, 처음 마주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한때 사양길로 들어서던 나전칠기가 현대 문화와 결합하면서 다시 또 주목받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롭고 흥미롭게 봐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영롱한 자개의 빛을 감상하면서 뜻깊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명절을 보내시길 바라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윤동길 진행 정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