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앞의 짧은 담화

민음사

책장 앞의 짧은 담화

민음사

책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책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얼까, 하다가 아마 그건 단연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으로
통하는 길

‘민음사民音社’는 말 그대로 백성의 올곧은 소리를 담는다는 정신을 의미한다. 1966년, 박맹호 선생은 청진동 옥탑방의 작은 사무실에서 민음사를 열며 책을 통한 정의로운 사회를 꿈꿨다. 책들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튼튼한 고리가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집물 출간과 방문 판매가 중심이던 출판 시장에 민음사는 《세계시인선》, 《오늘의 시인 총서》, 《오늘의 작가 총서》 등 획기적인 단행본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세계 시인선》의 경우, 최초로 가로쓰기를 도입하면서 한글세대의 등장을 촉진했다는 호평도 받았다. 거칠고 어려운 세상에서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데에도 부단히 애를 썼다. 그중에서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 문학상’을 통해 이문열, 하일지, 조성기, 장정일, 장강명, 황인찬 등의 작가를 조명하기도 했다. 

민음사는 단순히 사람들이 소화하기 쉽고 즐거움만 주는 도서만을 좇지 않았다. 시대 정신과 사회상을 반영하여 독서가 곧 고민으로 이어지도록 도모한 것이다. 민음사의 책임감이 논픽션 도서 발간과 함께 한국의 현재를 진단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형형색색 다른 색깔과 네모반듯한 디자인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주제의 작품을 유려한 번역으로 이끌어 나갔다. 지금도 민음사에서는 ‘릿터 나잇’, ‘페미 데이’ 등 도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책으로 형성된 담론을 독서를 끝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층 발전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작가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건 어떤 ‘마음’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 흥미로운 생각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의 고달픔과 설움이 희망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 그러니 온 세계를 평화롭게 유지하고 싶었던 다양한 마음이 모여서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 마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던히 고민하고 글을 읽고 교정을 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될 때까지 그 뒤편에 선 이들에게 질문을 건네고 싶었다. 여덟 명의 편집자와 그들이 만든 여덟 권의 책. 독자가 아니고, 작가가 아니고, 편집자에게 묻는 질문이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계나는 한국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고, 한국에서 죽지 않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어디까지 가야 할까.

| 편집자 박혜진

소설 안에서 가장 공감한 대목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계나가 하는 말이에요. 한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진짜 이유가 여기서 드러나요. 한국에는 없고 호주에는 있는 것.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 호주라고 천국은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 삶을 불행하게 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어서 많이 공감했어요.

《한국이 싫어서》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어요. 왠지 조금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죠. 만약 편집자님이 주인공 ‘계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계나는 한국을 떠나면서 가족, 연인, 회사와 이별해요. 그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와 결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계나는 그저 장소를 이동한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공간과 자신을 둘러싼 시간, 즉 존재 전체를 바꾸는 선택을 한 거예요. 이건 엄청나게 큰 선택인데요, 계나처럼 여기서 더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만족하며 작은 행복을 찾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긴 도전이 되겠지만 계나처럼 할 거예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요?

3년 차 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머무르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의 갈등이잖아요. 계나는 한국을 떠나지만 계나의 질문이 한국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 속해 있는 이곳을 떠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머물러야 한다면 왜 머물러야 하는가, 스스로 질문해볼 수 있는 책이 될 거예요.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자기만의 세상에서 꿈을 그리며 나래를 펼치던 그 수많은 소녀는 어딜 갔을까. 그리고 그 질문을 그대로 껴안은 지영이가 우리 곁으로 온다.

| 편집자 박혜진

이 소설 덕분에 새로운 생각의 지점이나 흐름이 파생되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여성이 지영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편집자님의 모습이 가장 투영되었던 부분은 어떤 지점이었나요?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 김지영 씨의 2세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요. 제가 정확히 그 또래여서겠죠? “가족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라는 부분에서 제가 못 한 말을 누가 대신해주는 것처럼 시원했어요.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특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심지어 대통령도 읽었다고 했어요. 한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만들어지는 건강한 파장이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멋지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중심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어때요?

책을 낸다는 행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책을 낸다는 게 몇 그램짜리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일, 수년에 걸쳐 지속할 어떤 시간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면 좀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긴장하게 돼요. 《82년생 김지영》이 사람들 속으로 쭉쭉 뻗어 들어가는 걸 보면서 그런 긴장감이 늘었어요. 편집자로서는 긴장감만큼 좋은 기분도 없을 거예요. 

책 한 권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듣는다면, 어떤 답변을 하고 싶은가요?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책을 읽은 한 사람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재미있게도, 세상은 그 한 사람에 의해서 바뀌기도 하죠.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을 읽은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바꿔 놓았다고 하면, 질문에 대한 먼 대답이 될까요?

《안녕 돈키호테》
박웅현 지음

모든 이들에게 숙제가 주어졌다.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돈키호테력力’을 찾는 것. 창의력은 열한 조각으로 나뉘어 4부로 구성되었다. 이제부터 자유롭고 유쾌한 시도를 마주하게 된다.

| 편집자 양희정

《안녕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力’이라는 말이 등장해요. 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천재들 신화에 익숙한 우리 머릿속에 창의력 하면 막연히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기막힌 아이디어 내지는 예술적 성취 같은 것들이 떠올라요. 하지만 창의력은 특정 천재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중요한 점은 그걸 어떻게 갈고 닦아 드러내는가 하는 거죠. 같은 아이디어도 누구는 공상으로 그치고 누구는 그걸 실행해 내는데, 그게 바로 실행력입니다. 같은 신념을 가졌더라도 누구는 중도에 포기하고 누구는 끝까지 반복 시도해서 결국 성공시키는데, 그게 바로 끈기예요. 바로 이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겁니다. ‘TBWA 0’팀과의 기획 회의 때 가장 공감한 부분이었는데, 《안녕 돈키호테》에서 박웅현 선생님이 그 부분을 ‘돈키호테력(力)’이라는 말로 설명하셨죠.

책 표지도 심상치 않아요. 책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눈길을 끕니다. 이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TBWA 식구들이 일하는 방식에서 협업이 눈에 띄는데, 그게 또 하나의 ‘돈키호테력’이었어요. 민음사도 함께 일하면서 이 점을 배우려고 노력했는데, 북디자인도 그런 협업의 결과예요. 편집부에서는 낯선 오브제를 통해 강렬한 의미 전달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나눴고, 북디자이너는 저자들의 성격에 맞게 광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페인 아티스트 하비에르 하엔Javier Jaen을 찾아 소개해 주었죠. TBWA 식구들이 ‘전망대’라는 뜻으로 말한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시야’라든가 ‘함께 생각을 모으는 상자’의 의미를 읽어낸 것 같아요. 

편집자라는 일도, 창의력이 보통 필요한 직업이 아닐 수가 없죠. 편집자님은 생각의 환기를 위해서 보통 어떤 활동을 하나요?

오랫동안 편집자로서 글을 많이 보다 보니 결국 인격과 작품이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재차 깨닫곤 해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깊이 있는 작가,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저술가, 지식 추구뿐 아니라 휴머니즘을 고민하는 인문학자를 만나려고 노력해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에너지가 곧 내 생각의 방향이 되고 기획의 결과물이 되기 때문이죠. 그것은 직접 만남이 될 수도 있고 영화나 책을 통한 간접 만남이 될 수도 있어요. 가치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 인문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의견을 듣고, 미술관에서 예술가들이 예민한 촉수로 느낀 사회 변화를 읽어 보려고 노력하고, 스트라빈스키를 들으면서 혁신의 필요성을 고민하기도 해요. 보고 듣고 읽은 것이 곧 우리의 생각과 인격을 이루니까요.

《릿터》
민음사 편집부

읽고 쓰는 ‘릿lit한’ 이들을 위한 문예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모두가 읽고 생각하고 나눌 것이다.

| 편집자 서효인

우리 사회 안에서 문학을 통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는 것이 물론 필요하지만, 사실 출판계에서 문예지는 조금 주춤했던 경향이 있었죠.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이겨내고 《릿터》가 시작된 계기가 궁금해요.

민음사는 《릿터》 이전에 《세계의 문학》 이라는 계간 문예지를 내고 있었어요. 그것도 무려 40년 동안 말이지요.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예지들도 못지않은 역사를 자랑하고는 합니다. 그만큼 긴 시간, 문예지가 한국문학, 인문학, 예술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공헌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출판환경의 변화, 독자 성향의 변화,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예지도 변신이 필요했죠. 그 고민의 결과가 《릿터》고요. 이전의 문예지보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나고 싶었어요. 독자의 일상과 고민, 작가의 존재와 태도를 더 넓고 빠르게 잇는 수단이 되고 싶어서 문예지의 완전한 개편을 시도어요. 출판 시장도 어렵지만, 잡지는 더욱 어려움이 많다고 하죠? 사실이에요. 하지만 대단한 수익을 내지 않더라도, 민음사의 콘텐츠와 한국문학의 최신 작품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에, 투자에 인색하지는 않아요. 좋은 문학을 담는 멋진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릿터》가 시작된 계기인 것 같아요.

《릿터》를 통해 독자들과 교감을 많이 나누었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나 피드백은 무엇인가요?

최근 많이 알려지고 있는 유료 독서 모임 ‘트레바리’를 통해서 직접 독자들을 대면하고 있어요.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힘을 얻고 있어요. 《릿터》를 통해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작가의 팬이 되었다거나, 리뷰 등의 코너에서 소개된 책을 읽고, 다른 책까지 찾아 읽었다는 피드백이 가장 좋아요. 《릿터》는 무엇보다 읽는 사람을 위한, 읽기 공동체를 원하는 잡지이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릿터》가 어떤 기능을 하기를 바라시나요?

거창하게 목표보다는 한 호 한 호 최선을 다해 만들다 보면, 문학과 출판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해보다는 혐오가, 배려보다는 폭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사회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가 어제보다 더 많은 소설과 시를 읽는 내일을 보낸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 믿고 있어요. 그 과정에 《릿터》가 있으면 좋겠고요.

《눈 먼 암살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사랑과 욕망, 희생과 배반에 대한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진다. 어느 여인의 비극적인 삶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가온다.

| 편집자 박여영

많은 사람들이 문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문학을 접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문학을 통해서 무언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이 얻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신 문학은 아름다움과 현실의 생생한, 혹은 독특한 재현을 통해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당장 우리가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독감 예방주사를 맞듯 훗날 우리가 겪게 될 일들에서 판단을 내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가 생각이 들어요.

저자 ‘마가렛 애트우드’의 순간의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방식이 무척 좋아요. 편집자님은 그녀의 글 안에서 어떤 지점이 좋았는지, 궁금합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아름다운 글을 쓰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뚜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소재에 접근하는 작가예요. 그리고 그것을 명확한 방향으로 세련되게 써내죠. 순간순간의 묘사도 기가 막히지만, 장편 소설의 가장 핵심인 구조를 세우는 능력이 단연코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가장 좋았던 문장을 말씀해 주세요.

“죽은 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모른 체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결혼이라는 소설》
제프리 유제니 지음

결혼은 가장 멀고도 낯선 경험처럼 들리다가도, 마음속에 붕 뜬 환상이나 낭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결혼의 말간 민낯을 볼 때, 우리는 어떤 표현을 짓게 될까.

| 편집자 허주미

해외문학팀에 소속되어 있으시죠.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읽고 싶고 만들고 싶은 작품이 대중적으로도 받아들여질 만큼의 공감 요소가 있는지를 살펴봐요. 아무래도 외국문학 전공이라 ‘문학성이 있다.’라고 생각할 만한 작품은 오히려 쉽게 고를 수가 있는데, 그 작품이 한국 독자에게 어떻게 소개되어야 하고 어떤 재미와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면 어려워지거든요.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작가의 매력과 성장 가능성이 크다면, 진부하지 않은 소재 혹은 흔한 소재라도 새롭게 접근하는 이야기라면 관심을 두고 찾아봐요. 아무래도 가슴을 치는 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2015년에 소개된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어요. 2차 대전 배경의 이야기이지만 눈먼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을 통해 아주 낯설고 감동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거든요. 아름다운 문체는 말할 것도 없고요. 게다가 계약 후 번역 작업 중에 퓰리처상까지 타게 됐으니, 엄청 행복했죠.

결혼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한 책으로 꼽히기도 해요. 결혼이라는 ‘환상’ 과 조금 상충하는 맥락이 있어요. 어떤 의도가 숨겨진 걸까요?

이 작품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인문대, 특히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땅에 살짝 떨어져 둥둥 떠다니는 그들이 흔히 현실 생활에서 보이는 특징들―사회생활 부적응, 사랑에 대한 과도한 믿음, 존재에 대한 불안, 극단적인 관계 맺음― 같은 것들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묘사되고요. 그런데 이들이 겁도 없이 ‘결혼’을 한 거예요. 제인 오스틴이나 헨리 제임스 같은 서양 전통 소설에 보면 여주인공은 항상 사랑을 찾아 나서고, 결국엔 재산과 교양을 고루 갖춘 남편감을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요. 어쩌면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디즈니 스토리와 다른 바 없죠. 그렇지만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해진 지 꽤 됐어요. 결혼이라는 게 정말 허황한 소설이 된 거죠(그래서 제목도 《결혼이라는 소설》이고요). 결혼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소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스토리가 가능할지, 과연 결혼 없이 소설이라는 게 가능은 할지…….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전통 소설에 대해 바치는 오마주 같은 느낌이에요. 불가능하고 위험해진 결혼, 그런데 여전히 유효한 제도로서의 ‘결혼’에 대한 오마주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요?

남녀 관계, 연애 이야기에 관심 가진 모든 젊은이와 결혼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기어코 해냈고 해내며 사는 기혼자들, 그리고 비혼주의자까지, 그러니까 정말 모든 사람이 읽어도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책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현실적인 캠퍼스 연애 소설이에요. 대학 졸업 후에 자리를 잡지 못해 고군분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해 인도와 유럽 등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도 있고요. 주인공인 매들린과 레너드의 사랑이 어떻게 되는지 꼭 봐야 해요. 만약 다 읽으셨으면 저랑 같이 엄청난 수다를 떨 수도 있을 거예요(웃음).

《딥워크》
칼 뉴포트 지음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완수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 깊이 일하는 것은 결국 깊은 휴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 편집자 김윤지

일의 효율성을 바로잡기 위한 좋은 지침서 같아요. 하지만 마성의 오후 세 시를 이겨내기는 영 힘들죠. 편집자님은 가장 졸린 오후 세 시를 어떻게 이겨내는 편인가요?

마성의 오후 시간! 졸음을 억지로 참는 건 역효과만 나는 것 같아요. 자괴감만 들고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잠깐 바람을 쐬어요. 여기서 비타민D도 합성하고 신선한 공기도 들이마시면서 잠깐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요. 어떤 자극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해요. 《딥 워크》에 나오는 실험인데,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한쪽은 도심지를, 다른 한쪽은 숲길을 걷게 한 후에 암기 테스트를 했대요. 테스트 결과 숲길을 걸은 사람들의 점수가 20퍼센트나 높았다고 해요. 주의력과 집중력은 한정돼 있는데, 혼잡한 도심지를 걸은 사람들은 차와 신호등, 표지판을 살펴보고, 인파를 헤쳐 나가느라 주의력을 소모한 거죠. 잠깐의 무자극 시간이 집중력과 효율성도 높여주니까요.

이 책을 바탕으로 직접 실천하거나, 그러려고 염두에 두는 부분도 있나요?

스마트폰과 SNS 때문에 산만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이 책을 편집하게 되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뜨끔했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죠. 제 업무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실행해볼 만한 조언이 많이 나오지만 특히 SNS 사용에 대해 도움을 받았어요. 책에서는 SNS를 끊으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데, 저는 독자들이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나, 저희 책에 어떤 코멘트를 해주시나 궁금해서 아무래도 완전히 그만두지는 못하고, 대신 스마트폰에서 SNS 앱을 지우는 (나름) 강수를 두었죠. 스마트폰에 SNS 알람이 뜨면 확인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되곤 하잖아요. 무시하려고 해도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신경이 쓰이지요. 앱을 지우고 PC에서만 접속하니 알람이 치고 들어오지 않아 좋아요. 아직은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어요(웃음).

일과 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아직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는 직장인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일과 생활의 균형 잡기, 어려운 일이에요. 내가 하는 일에 따라, 맡은 업무에 따라, 직급에 따라 균형점도, 그 균형을 찾아 나가는 방법도 계속 달라지니까요. 평생의 과제 같은 거예요. 저 역시 과제를 앞서 받았을 뿐 함께 답을 찾아가는 직장인입니다만, 감히 당부드린다면, 점검의 시간을 종종 가지는 게 좋겠어요.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인지, 이 일의 핵심적인 부분과 사소한 부분은 무엇인지, 그래서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자문해보세요. ‘딥 워크’를 하기 위해선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에 공을 들이고 무엇에 힘을 뺄지 숙고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요. 집중이 단지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 지음

아이의 첫 관계 맺음은 가족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를 위한 건강한 생각 주머니를 선물할 수 있을까.

| 편집자 허주미

제 주변의 ‘엄마’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가볍고 얇아서 읽기에 부담 없어 보이지만 아직은 페미니즘을 낯설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죠. 이 책을 읽을 때 독자들이 어떻게 소화하면 좋을까요?

원고를 검토하자마자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 있거나 젠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주변의 사람들이었어요. 임신했거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제 중고등학교 동창들이나, 결혼에 대해 고민 중인 여동생, 아니면 자라는 내내 남동생과 차별하지 말라며 항의 모드였던 딸인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희 엄마도 그렇고요. 대부분 차별이 너무 깊이 체화된 채 ‘페미니즘’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저 불편하고 골치 아프고 괜히 트집 잡는 무언가 같아, 하고 생각하잖아요. 아디치에의 글은 성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정하고 편안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말과 글에 압박 당하거나 불편해지지 않고 “그동안 미처 생각 못 했는데, 모두 당연한 말 같고 공감 가!” 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 ‘아, 이렇게 사소한 일상의 명제와 선택에서부터 페미니즘이 시작하는구나.’라고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요즘에 가장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지요.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다룬 도서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말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인쇄 매체의 기록과 전파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굉장한 영향력을 갖진 것 같아요. 과거엔 여성의 평등이 아니라, 인종의 평등을 외쳤죠. 그때도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흑백 상관없이 모든 인종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죠. 올해 들어 페미니즘 도서가 이슈가 된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그것에 대해 논의가 가능할 만큼 성숙해진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아직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편견과 선입견이 수없이 많잖아요. 무감해서 못 보고 지나치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왜 사회가 그렇게 되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좋을지 스스로 사유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런 도서들을 더 읽고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지 디자인이 앙증맞고 귀여워서 눈에 잘 띄어요. 디자인을 선택한 계기도 궁금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원고를 보자마자 한국어판으로 냈을 때의 모양과 타깃 독자가 구체적으로 그려졌는데, 그때 생각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제로퍼제로’의 진솔 작가님이에요.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편지를 쓴 아디치에의 따뜻하고 진솔한 문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동안 민음사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표지 작업을 쭉 하셨는데, 개인 작업으로 《마더 앤 도터》, 《파더 앤 도터》라는 작품집도 냈던 터라 이 책의 콘셉트에 대해 깊이 이해하시리라 생각했고요. 내외부의 협업이 잘되어서 텍스트와 일러스트가 잘 어울리는 책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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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