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여행

태국 구석구석 숨은 책방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여행

어릴 때부터 늘 책과 함께했던 나는 책이 있는 공간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방콕에 살며 한국 책을 자주 접하지 못하기에 활자에 대한 욕심은 더욱 커져서, 한국에 들르면 가장 먼저 챙기는 짐들 역시 책이다. 여행을 떠나도 동네 서점이 보이면 꼭 한 번씩 둘러보고, 이름난 서점 몇 군데는 따로 여행지 리스트에 표시해 둘 정도다. 지난 4년간 방콕 생활을 하며 마음의 위안을 받는 책방과 도서관도 몇 군데 생겼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여행객들로 늘 북적이고 바쁜 도시인 방콕이지만 책이 있는 곳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책 들어오는 날

서너 살짜리 아이가 하도 조용해서 뭐 하고 있나 방문을 열어보면 혼자 방에 앉아서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글을 읽는 걸 몰랐었는데, 어느 날 엄마 등에 업혀가다가 길거리의 간판 읽는 것을 옆집 아주머니가 보고, “어머, 애가 글을 읽나 봐요.”라고 해서 한글을 깨친 것을 알았다고. 나는 어릴 때부터 불면증이 심했다. 잠 못 드는 고통은 겪어본 사람들만 안다. 원래 우리 가족은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이 드는데 가족들 중에 유독 나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잠들어도 금세 깨버리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런 내게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올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 있던 책들을 밤이 새도록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책을 읽어도 불면증은 그대로였다. 대신 나는 그때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집에 있던 책들을 서너 번씩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많은 양의 독서를 했다. 그 양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새 책보다는 동네 헌책방에서 책을 사주셨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나를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데려갔다. 그 당시 청계천은 상당히 지저분한 동네였는데 다리를 따라서 헌책방이 수백 개가 모여 있었고, 서점 안이고 바깥이고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쌓여있었다.

엄마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르 라고 했다. 아마도 청계천의 헌책방은 동네 헌책방보다도 값이 훨씬 더 쌌던 것 같다. 나는 신이 나서 책을 골랐고, 그 책들은 밤이 되어야 집으로 배달되는데 양이 거의 한 트럭은 되었던 것 같다. 그다음부터는 일 년에 한두 번 꼭 책이 들어오는 날이 생겼다. 다 읽은 책 중에 아끼던 책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시 헌책방에 되팔았고, 책방에서 고른 책들은 집으로 배달되어 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 때에는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나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이든 실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든 책에는 작가의 사상과 생각이 깊숙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어릴 때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고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나 역시 책에 빠져 작가의 생각에 설득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만큼 책을 고르는 일은 중요하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기보다는 서점에 오랜 시간 머물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태국 구석구석에
숨은 빛나는 책방들

친구들이 방콕에 놀러오면 꼭 데려가는 몇몇 장소들이 있는데 지금 소개할 책방들이 바로 그곳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장소이며, 독서에 관심이 없더라도 흥미를 끌만한 서적들이 많다. 체인화 된 큰 서점들이 아닌, ‘책방’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장소들. 태국 곳곳에 숨어 보석처럼 빛나는 곳들이다.

01. 닐슨 헤이즈 도서관
Neilson Hays Library

Neilson Hays Library, 195
Surawong Rd, Bangkok, Thailand
neilsonhayslibrary.com
Tue-Sun 9:30am-5pm

약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도서관은 건립 당시에 ‘작은 왕궁’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영국식으로 건축된 도서관과 온실 같은 모습의 카페가 마주보고 있다. 도서관에는 2만 권이 넘는 영문 장서가 보관되어 있는데, 묵직하게 열리는 문, 바닥 장식과 책장은 모두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요즘 도서관은 바코드로 책들을 관리하지만 이곳은 아직도 수기로 책들을 관리하고 있다. 덕분에 책 표지를 열면 책을 빌려간 이들의 이름이 쭉 적혀있어, 유서 깊은 도서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도서관 한쪽에는 작은 갤러리도 마련되어 있다. 멤버십 서비스에 가입해야 입장이 가능하지만 잠시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입구에 있는 기부함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입장이 가능하다.

02. TCDC도서관
Thailand Creative and Design Center

Emporium department store 6F
tcdc.or.th
Tue~Sun 10:30am~9:00pm

디자인을 전공한 내가 가장 놀란 곳은 ‘TCDC 도서관’이었다. 엠포리움 백화점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하는 이곳은 일 년 내내 다양한 전시회와 워크숍이 열리는 전시관과 디자이너를 위해 마련된 도서관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품들이 판매되는 디자인 숍이 있다. 그중에서도 디자인 도서관은 디자인 전 분야를 아우르는 방대한 전문 서적이 천장까지 이어진 책꽂이에 가득 채워져 있으며, 독특한 소파들이 창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편안한 자세로(심지어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보통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유료 회원으로 등록을 해야 하지만 여권을 소지한 여행객은 1회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전시관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관람이 가능하다.

03. 북 스미스
The Book Smith

11 Nimmanahaeminda Rd,
Between Soi 1 & Soi 3
April-September 10:30am-20:30pm
October-March 10:00am-21:30pm

북 스미스는 방콕이 아닌 치앙마이에 위치하고 있다. 주로 수입 잡지와 사진집 등을 구입할 수 있다. 《킨포크》가 대형 서점에서 판매되기 전부터 이곳은 《시리얼》, 《프랭키》, 《모노클》 등 해외에서 발행된 잡지를 수입했고, 태국 내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사진집과 아트북들을 소개해왔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서점의 고요하고 단정한 분위기도 한몫하는데, 마치 서점이 아닌 도서관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한쪽에는 세일 박스가 마련되어 있어 오래된 책이나 흠이 있는 책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이곳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세일 박스에 쌓여있는 책을 뒤적거리곤 한다.

04. 캔디드 북스 앤 카페
Candide Books and Cafe

The Jam Factory, 41/1 Charoen
Nakhon Road Khlong San,
everyday 11am-8pm

클롱산Khlongsan에 위치한 ‘잼 팩토리Jam Factory’ 내에는 갤러리와 서점, 카페, 레스토랑, 건축 사무실 등이 모여 있다. 이곳은 오래된 잼 공장을 태국의 건축가인 ‘두앙그릿 분낙Duangrit Bunnag’이 개조하여 만든 공간이다. 서점의 크기는 작지만 메이저 출판물과 함께 작은 독립출판물들도 함께 취급하고 있어서 태국에서 출간되는 독특한 책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만나볼 수 있다. 주로 대형서점에 없는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사진집이나 일러스트북은 태국어를 몰라도 구입할 만하다. 갤러리에서 정기적으로 무료 전시회가 열리며 한 달에 한 번 정원에서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도 열린다.

05. 패스포트 북숍
Passport Bookshop

523 Prasumeru Rd., Bowornnivej,
Pranakorn
Tue-Sun 10:30am-7pm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늘 시끌벅적한 카오산 로드에서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한적한 올드 타운이 있다. ‘패스포트 북숍Passport Bookshop’은 자칫 빈티지 자전거에 실려 있는 헌책을 보지 못한다면 입구를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은 서점이다. 주로 태국 및 동남아시아 지역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여행, 인테리어, 아트북 등을 취급하고 있어 그저 눈으로 넘겨보아도 좋을 책들이다. 몇몇 책에는 주인이 직접 손 글씨로 추천사를 적어두었다. 벽면 가득 여행자들이 보내온 엽서들이 장식되어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이 서점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층에는 작은 갤러리가 있으며, 1층보다 좀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태국에서 구입하면
좋을 책들

태국어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구입해도 괜찮을 책들을 몇 권 추천한다.

01. Once ubon a time
몇 달 전 태국 친구들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날마다 올라오던 사진들이 있었다. 태국의 할아버지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킨포크를 보고, 셀카봉으로 동네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 마치 무언가 유행을 하면 우르르 몰려드는 방콕의 힙스터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뻔뻔한 할아버지의 연기력은 과연 방콕커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그때의 사진들이 사진집으로 출간되었다. ‘Once upon a time’이 아닌 ‘Once ubon a time’인 것으로 보아 우본ubon 지역에서 촬영된 사진인 듯하다.

02. Secret in the woods
《별이 빛나는 밤Starry Starry Night》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지미 리아오Jimmy Liao’는 ‘동양의 상뻬Jean Jacques Sempe’라고도 불릴 만큼 상상력이 가득한 이야기와 환상적인 그림을 선보이는 대만의 동화작가이다. 그는 태국에서도 매우 인기가 높아 그의 책들 대부분은 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Secret in the woods》는 ‘숲 속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섬세한 펜선과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국에도 동화책으로 출간되었지만, 태국어판은 일러스트북으로 출간되어 소장할 가치가 있다.

03. Gluta story
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길거리 개. ‘글루타Gluta’ 역시 각종 병에 노출되어있는 길거리 개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의 주인을 만나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개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한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 출간했다. 마지막 장에 찍힌 개 발자국 사인을 보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04. Let me eat bread : ด้วยรักและขนมปัง
메인 코스로 먹을 수 있는 30가지의 빵 요리를 소개한 책이다. 레시피가 태국어로 되어있어 읽을 수는 없어도 귀여운 일러스트로 조리과정을 담아내 어렵지 않게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구입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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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