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방앗간의 진화

연남방앗간

참기름 방앗간의 진화

연남방앗간

연남동의 많은 상점들은 저마다 특별해서 때때로 더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라는 흔하디 흔한 콘셉트에 질려버린 사람에게마저, 이곳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오래된 건축이 가진 역사성, 그리고 그곳을 채우는 기획의 힘. 그들은 지금 방앗간의 상상력으로 한 도시 전체를 움직이려 한다.

Interview
어반플레이 대표 홍주석

연남방앗간을 언급하기에 앞서 어반플레이 이야기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반플레이는 어떤 그룹인가요?
어반플레이는 도시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 미디어예요. 도시재생 스타트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전국의 로컬 플레이어의 콘텐츠를 모아서 알리는 역할을 해요. 대중적인 영향력을 창출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찾아서 알리고, 한데 묶어서 지역에 뿌리내리고 활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죠.

일반적으로 미디어라 함은 매체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연남방앗간처럼 공간을 미디어로 한데 묶는 게 조금 생소했어요.
저희는 미디어 채널을 네 개로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웹 기반 온라인 매체, 인쇄 매체, 그리고 공간도 하나의 미디어로 보는 거예요. 가령 한 달 방문객 수가 만 명이라고 한다면 이 공간은 만 명에게 노출되는 미디어인 셈이죠. 지역의 창작자와 장인들을 알리는 공간 미디어로 작동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도시 역시 커다란 미디어로 작동할 수 있겠죠. 대표적인 도시 미디어 사례로 ‘연희 걷다’ 프로젝트를 들 수 있겠네요.

‘연희 걷다’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올해로 4년째 진행 중인 로컬 프로젝트예요. 연희동의 소규모 갤러리나 카페, 소상공인의 공간을 모아, 일정 기간 동안 문화 프로그램과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연희동을 대표하는 사러가 마트와 피터팬 제과점도 함께 참여하게 됐어요. 

한 동네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걸 선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네요.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갤러리 세 개를 연결해서 진행했는데, 그 후에 작가분들의 자발적 도움으로 더욱 풍성해지게 됐어요. 지금까지는 아티스트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였다면 올해부터는 조금 더 소상공인의 콘텐츠를 강화하려고 해요.

다시 연남방앗간으로 돌아와 볼게요. 이름이 직관적인데,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동네에서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해석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아는 동네 프로젝트’라고 해서 매거진과 온라인 미디어를 주로 활용하는데, 그 연장선상으로 공간을 활용한 첫 번째 프로젝트예요. 옛날 방앗간은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주로 했어요. 바로 그런 기능을 재해석해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고자 시작하게 됐죠. 이름 그대로 장인들과 협업한 고퀄리티의 참기름을 판매하기도 하고, 참기름을 기반으로 하는 메뉴 개발을 함께 진행해요.

첫 번째로 방앗간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꼭 방앗간이어야 했던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의 상징성이 있었어요. 세탁소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것보다는 자연스럽잖아요. 처음에는 목욕탕도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죠(웃음).

기획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에 자리 잡게 됐나요?
어반플레이가 콘텐츠 기업이다 보니 콘텐츠를 먼저 수립하고 공간을 찾으려 했어요. 가능하면 동네에 유명한 방앗간이 없는 곳으로 선택했는데, 운이 좋게도 이곳의 원래 주인분이 저희 취지에 공감해주셔서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죠. 마침 전통 시장 도슨트이자 참기름 소믈리에였던 분이 합류해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참기름이라는 방앗간 본연의 목적 외에 사랑방 기능을 위해 어떤 콘텐츠를 활용하나요?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해 그들이 대중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했어요. 연남동의 특성상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과거 소비와 유통의 공간에서 경험의 공간으로 바뀌는 형태를 제안하는 작업이에요.

전시 공간이라고 하지만 입장료가 없어요.
사실 입장료를 따로 받는 게 맞아요. 하지만 유료 입장에 거부감이 있는 손님들도 있어서 카페 기능을 추가해 입장료를 대신하도록 유도하고 있죠.

예술가와 대중, 그리고 소상공인과의 연결이라는 시도 안에 ‘공생’이라는 키워드가 있다고요.
소규모 콘텐츠는 단지 그 자체만으로는 프랜차이즈나 대기업 자본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연대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죠. 우리가 그 무대를 만들어줄 테니 함께 살아남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연대와 공생 안에는 분명한 시사점이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공적인 마음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건 추상적인 대답이 될 것 같아요.
좋은 지적인데요. 사실 저희가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동네가 너무 시끄러워지는 것도 원치 않아요. 첫째는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것에 휘말리지 않고 먹고살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당장은 동네가 더 유명해지는 게 먼저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기획자가 우대받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에요. 건설사 공급 개발 중심의 도시가 아니라 콘텐츠 중심의 도시로 만드는 거죠.

아무래도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지역이 번성하며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에 대한 대안이 있다면요?
우선 건물주를 탓하는 건 제일 안 좋은 일 같아요. 세입자 역시 건물주가 신뢰할 수 있게끔 공간을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우리나라 정서상 세입자와 건물주 간 커뮤니케이션이 없거든요. 그들 역시 시세대로 받고 싶을 거 아니겠어요. 정부 대책은 월세를 못 올리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게 궁극적인 대책은 될 수 없을 것 같고요. 크게는 좋은 콘텐츠를 통해 건물주의 마인드를 바뀌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죠. 당장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전체적인 공간 가치를 높이도록 하는 거예요.

신뢰를 받는 공간. 그럼 이곳 연남방앗간의 공간적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연남방앗간은 40년 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한 곳이에요. 그야말로 아우라가 느껴지는 공간이죠. 전등부터 시작해서 나무 에어컨, 자개장, 벽지, 문 등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꼭 필요한 부분에만 손을 댔어요. 공간 자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각각의 방을 20~30명의 창작자가 번갈아 가며 자신의 공간처럼 꾸미고 전시한다는 데 있겠죠. 공예작가, 가구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책의 저자, 푸드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창작자가 모여들 수 있는 공간이에요.

공간적 아우라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요소가 있었던 건가요?
연남동 철길 근처에 단독주택으로 남아 있는 곳이 얼마 없어요. 얼마 안 되는 잘 보존된 집이었죠. 집주인이 바뀌면 계속 무언가가 덧붙여지면서 공간이 조잡해질 텐데, 오래 사신 분이 소중하게 공간을 다룬 느낌이 강했어요. 자개장, 책장, 항아리 등도 다 받아서 사용했고요. 일부러 느낌을 내기 위해 인테리어 요소를 넣은 게 아니라 거의 있는 그대로를 활용해서 더 큰 아우라가 느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오래된 공간 특유의 더께가 느껴져요.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게 시간의 흔적, 그게 곧 아우라 같아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가지고 있는 집이죠.

겉에서 보기에 이곳은 그냥 지나칠 법한 건물이에요. 외부로 난 창이 없고, 정원을 지나 커다란 검은 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고즈넉한 실내가 드러나거든요.
수장고를 여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뭘 하는 공간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따로 안내문을 붙여놨죠. 들어오다 보면 한쪽에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기본적으로 카페가 아니라 문화 공간이라는 걸 시사하려고 했어요.

무려 아홉 개의 포스터가 있더라고요.
방별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프로듀서가 있어요. 축제와 콘텐츠, 도시 인사이트 등 강점이 다른 친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재미있는 기획이 많이 나와요. 하지만 그만큼 색깔이 강해서 내부에서는 대화가 어렵기도 하고요(웃음).

카페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곳만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나요?
방앗간의 특성을 살려 참깨를 이용한 메뉴를 새롭게 개발했어요. 대표적으로는 참깨 라테와 참깨 아이스크림을 들 수 있는데요. 흑임자와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위에 참기름과 참깨를 뿌려서 내고 있어요. ‘단짠단짠’의 정석이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방앗간 토크’나 ‘방앗간 식탁’ 같은 커뮤니티를 위한 이벤트를 열 계획이 있어요. 식음료 전문 스타트업을 위한 토크가 될 거고, 살롱 느낌의 공간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남방앗간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섯 개의 공간

01 누군가의 미술관 | B1

지하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 전시장으로 사용한다. 층고가 낮아서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며, 영상 자료실과 아카이브 전시실 등 다양한 전시가 가능하도록 꾸몄다.

02 누군가의 식탁 | 1F

좋은 먹거리 위주의 큐레이션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테이블 양옆으로 마주한 거울이 식탁을 무한하게 늘리는 효과를 준다. SNS용 사진을 찍기 위한 포인트 공간.

03 누군가의 작업실: 예술가 | 1F

집주인 할머니의 오래된 자개장을 받아 공간을 꾸몄다. 오래된 자개장의 받침을 테이블로 쓰고, 문을 떼어 천장 구조물로 설치했다. 자개장 안의 작품들 역시 예술가의 작업물이다.

04 중앙 계단 | 1F/2F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나무 계단이다. 2층 천장까지 시원하게 솟은 층고가 인상적이다. 이벤트가 열리면 2층 계단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계단 옆쪽 주철 장식이 특히 매력적이다.

05 누군가의 책방 | 2F

누구나 자신만의 서점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공간이다. 주제에 맞는 책을 팝업 전시를 하거나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낙서가 새겨진 벽지를 그대로 두어 시간성을 살렸다.

06 누군가의 작업실: 디자이너 | 2F

6개월에 한 번 꼴로 새로운 디자이너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현재는 빌라 레코드의 가구와 무니포스트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계절별로 콘셉트에 맞는 작가를 선정해 전시할 계획이다. 작품의 QR코드를 찍으면 작품 구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연남방앗간
A.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29길 34
H. instagram.com/yeonnambangagan
T. 010 8287 8510
O. 화~금 12:00~21:00, 토~일 12:00~22: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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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