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행복하고 싶어요

그때는 아무튼 무언가 하고 싶었다. 가진 건 없고 이뤄 놓은 것도 없고 단지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만 있던 때였다.

앰프와 스피커, 여러 음원 출력 장치가 모여 있는 것을 옛날에는 전축이라고 불렀고, 조금 세련된 말로는 오디오라고 했다. 그때는 유행에 따라 집집마다 비슷한 물건을 사들이곤 했는데, 한때 오디오를 사는 게 유행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에도 큰 오디오가 자리 잡게 되었지만, 실제로 집 안에 음악이 흐르는 건 몇 번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차피 쓰지 않는 걸 송두리째 뽑아 내 방으로 옮겨 놓았는데, 그러다가 몇 번인가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가 제자리로 갖다 놓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꼬인 선을 풀고, 선을 뽑고, 무거운 걸 들었다 내렸다, 그 한심한 짓을 몇 번인가 반복했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거면서!) 

그러다 결국 오디오는 내 방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그건 내가 쟁취한 성과가 아니었다. 이미 오디오를 장만하는 유행이 아파트 단지를 한차례 훑고 지나가고 난 후였다. 오디오는 내 방을 꽉 채웠고, 오래된 가구나 다른 중요한 물건이 원래 오디오가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컴퓨터는 물론 작은 게임기도 없었던 나에게 오디오는 유일한 놀잇감이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몸을 뒹굴며 넘어지듯 바닥에 누웠다. 그게 놀이라면 놀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독수리 발톱 모양으로 만들어 플레이 버튼과 레코드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그 자세는 어찌나 정확해졌는지 나중엔 버튼을 쳐다보지 않고도 녹음 버튼을 누를 정도였다. 찰칵 소리가 나면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녹음이 시작되었다. 녹음된 파일은 완전한 음원은 될 수 없었다. 음질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방송 시간 때문에 중간에 노래가 끊기는 일이 많았다. 영어 노래는 대부분 제목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디제이가 노래 제목을 너무 빨리 말해서 제목을 모르는 채로 듣는 노래가 태반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접하게 되는 수단은 라디오 혹은 텔레비전뿐이었다. “이거 한번 들어볼래?” “이거 한번 해볼래?”라며 뾰족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사람은 나에게 없었다. 듣다가 좋으면 그게 뭔지 찾아봐야 할 텐데 어디서 찾아봐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디제잉이라는 것을 보았는데, 흔치 않게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 같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내 오디오에 있는 것과 비슷했다. 무거운 오디오 맨 위에 놓인 LP 플레이어. 그 위에 LP 음반을 올리고 앞뒤로 움직이면 삐끼삐끼 소리가 나는 것을 보았다. LP 플레이어 위에 음반을 올린 뒤 디제잉을 따라 해보았다. 힙합 음반은 없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조용필 음반을 사용했다. LP 판에 손을 얹고 손을 앞으로 뒤로 움직여 봤는데, 경쾌한 소리는 나지 않고 청바지 찢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혹시 음반이 문제인가 싶어 다른 음반으로 바꿔서 시도해 보았다. 그렇게 집에 있는 모든 음반에 기스가 생겼고 LP 플레이어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집에서는 듣지도 않으니….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생각하며 조용히 LP 플레이어 뚜껑을 닫았다.

신촌 기차역에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하는 곳, 지금은 밀리오레 건물이 텅 빈 채로 서 있는 그곳엔 예전부터 발걸음이 뜸했던 장소가 있다. 이른바 토끼굴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차로는 지날 수 없고 사람들만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진 터널이다. 지금은 스프레이 벽화로 가득 차 있는 그곳에 나는 스프레이를 들고 섰던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때는 아무튼 무언가 하고 싶었다. 가진 건 없고 이룬 것도 없고 단지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만 있던 때였다.

그라피티를 하기 위해 우선 철물점으로 가 스프레이를 구입했다. 그림을 그릴 거라고 하니 철물점 아저씨는 무척 대단한 사람 보듯 신기해하며 스프레이를 건넸다. 우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곳엔 한글로 ‘락카칠’이라고 적힌 것들밖에 없었다. 훔친 자전거 칠하는 데 사용할 것 같은. 겨우 이런 걸로 그라피티를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것밖에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촌스러운 락카통을 가방에 넣고 친구랑 토끼굴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에서 그라피티를 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그곳엔 별로 그려진 것이 없었다. 그곳에선 진짜 그라피티를 하는 사람을 만날 것 같지 않았다. 진짜인 그들 옆에서 락카칠하며 주눅 들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어두운 터널에서 스프레이를 뿜는 소리는 정말 예술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거의 90퍼센트는 내 길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벽과 마주 서서 스프레이를 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던 친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자기만의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한 통을 거의 다 쓰도록 스프레이를 뿌려도 벽에선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친구가 “야 이거 이상하지 않냐?”라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치? 이상한 거 맞지?”라고 이야기했다. 벽에서는 아주 연한 색의 변화만 느껴질 뿐 그 외에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콘크리트 벽이 색깔을 모두 흡수해 버린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보통 그라피티는 색이 칠해진 벽 위에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는 우리는 스프레이 탓을 했다. “역시 이런 스프레이로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점점 말수는 줄어들었고 우리는 터덜터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야 하는 게 좀 웃기면서도 서글펐다. 커다란 오디오와 학생용 책상이 전부인 방.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큰 거품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 미끈거림조차 남지 않은 방을 바라보며, 난 또 뭐가 될 수 있을까 잠시 상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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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