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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노래 속에서 건축 찾기
주위를 눈 여겨 보는 일
영화, 책, 노래 속에서 건축 찾기
건축물을 찾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누군가는 건축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집 구조를 바꿔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주변에서 건축을 찾는다. 나는 영화, 책, 노래 속에서 건축을 찾았다.
MOVIE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ㅣ2014
“빛나는 이 두 형제는 어디서 왔기에 일순간 단합하여 창밖에 별이 총총한 하늘을 지나는가. 하나는 동쪽에서, 하나는 서쪽에서….”
1927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세계 최고 부호인 마담 D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녀간 이후 의문의 살인을 당하고 만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집안의 가보인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인 구스타브에게 남긴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던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는 구스타브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한 기상천외한 모험을 시작한다.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동안 형형색색 화려한 호텔의 모습을 감상하는 건 큰 기쁨이다. 구석구석 작은 소품까지 손이 닿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영화에서 눈을 떼기가 영 어렵다. 분홍빛, 보랏빛 세상으로 가득한 호텔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면 어느 곳에 있을 법한 비밀스러운 호텔을 계속해서 상상하게 된다.
로맨틱 홀리데이
낸시 마이어스ㅣ2006
“송년을 여기서 못 보낼 이유가 없어요. 데이트 신청은 아니었지만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이제 우리 데이트해요. 당신만 좋다면.”
LA에서 잘 나가는 영화 예고편 제작사 사장인 아만다와 영국의 작은 오두막에서 살며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아이리스는 우연히 ‘홈 익스체인지Home Exchange’ 휴가에 대해서 알게 된다. 모르는 사람과 일정 기간 동안 집을 바꿔 생활하는 것이다. LA의 호화스러운 집과 영국의 고요하고 아늑한 오두막 집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서로 다른 삶의 패턴을 가늠할 수 있다. 특정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휴가가 어떻게 다른지는 결국 그 공간의 차이에서 오기도 한다. 장작불 앞에서 코코아에 마시멜로우를 넣어 먹고, 시원한 수영장에서 원하는 때 언제든 수영을 하는 다른 삶이 거기에 있다.
아가씨
박찬욱ㅣ2016
“얘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쿵쾅거리면서 제가 화났다는 걸 표시 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한숨쉬고, 백작하고 마주칠 때마다 숙희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 싫어요.’”
히데코는 어릴 적 부모를 잃은 뒤 후견인인 이모부의 엄격한 보호 아래서 살아간다.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 숙희가 찾아오면서 그들의 관계에는 낯설고도 애틋한 감정이 솟아난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큼 히데코의 방과 숙희가 향하는 장소, 서로 마주보는 공간까지 주변과 소품이 시대상을 잘 말해준다. 히데코가 이모부의 폭력 아래 음란서적을 낭독하던 서재 또한 백작들이 히데코의 낭독을 감상할 수 있는 관전형 구조로 되어 있어 히데코가 오랜 시간 남성에게 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물 간 서사와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적 배경을 곳곳에서 찾아내게 된다.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ㅣ1997
“그는 나를 구하고 내 영혼의 자유를 구했어요.”
우연한 기회로 타이타닉호 티켓을 얻은 잭은 1등실에 승선한 로즈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진실하고 솔직한 사랑을 꿈꾸던 그녀 또한 잭과 함께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자유롭고 편안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배 안에서 시작해서 배 안에서 끝이 나는 영화인 만큼 온통 선상의 모습만 보인다. 푸른 바다 위에서 하늘을 나는 듯한 제스처를 하며 서로를 느끼는 장면은 잭과 로즈 모두 온갖 속박과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배 안에서도 계층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고급스러운 가구와 호화로운 조명이 가득한 1등실과 달리 아래층은 비좁고, 시끄럽고, 어둡다.
MUSIC
피아노 맨
빌리 조엘ㅣ피아노 맨
“He says, Son, can you play me a memory? I’m not really sure how it goes. But it’s sad and it’s sweet and I knew it complete when I wore a younger man’s clothes.(그가 말했지. “젊은이, 내 기억을 연주해줄 수 있겠나? 사실 기억은 잘 안 나네. 조금 더 젊을 적엔 생생히 알고 있었는데. 참 슬프고 달콤한 일이지.)”
빌리 조엘의 단호하고도 애절한 목소리를 들으면, 술집 안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사연을 조용히 듣고 있을 어느 피아노 맨이 떠오른다. 그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피아노로 사람들을 위로했을 조용하고 어두운 술집 말이다. 크고 작은, 서로 다른 방향의 상처가 곳곳에 묻어났을.
소녀와 가로등
장덕ㅣ골든앨범
“창밖에 가로등불은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괜시리 슬퍼지는 이밤에 창 밖 한 가로등만이 소녀를 달래주네요, 조용한 이밤에. 슬픔에 지친 소녀를 살며시 달래주네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건축물이 하나씩 등장한다.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더라도 감정을 이끌어내거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소녀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밤중에 홀로 서 있는 가로등 같은. ‘소녀와 가로등’ 속에 등장하는 가로등은 소녀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유일한 매개체다. 노래 안에 등장하는 건축물로 서사의 이해가 더 쉬워진다.
광화문에서
규현ㅣ광화문에서
“오늘 여긴 그 때처럼 아름다우니 괜히 바보처럼 이 자리에 서 있는 거야. 비가 내리면 흠뻑 젖으며 오지 않는 너를 기다려. 나는 행복했어. 광화문 이 길을 다시 한번 뒤돌아 봐. 네가 서 있을까 봐.”
광화문엔 다양한 이야기가 모여든다. 각자 다른 사정을 광화문에 가면 두고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광화문엔 많은 건축물이 있다. 알록달록한 고깔 모양의 조형물, 청계천과 긴 다리, 키가 높고 낮은 건물들, 오래된 미술관과 고궁과 같은. 다른 길이의 시간을 보낸 것들이 한데 모여있으니 오묘한 분위기가 맴돈다. 지나간 시간에게 안녕을 고할 수 있을까. 아마 광화문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부디.
시티 오브 스타
라이언 고슬링ㅣ라라랜드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City of stars, there’s so much that I can’t see. Who knows I felt it from the first embrace I shared with you. That now, our dreams, They’ve finally come true.(별들의 도시, 당신은 나를 위해 빛나고 있나요? 별들의 도시, 제가 볼 수 없는 게 무척 많죠. 당신과의 첫 포옹에서 그걸 느꼈다는 걸 누가 알까요? 바로 지금, 우리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고 있어요.)”
도시 자체를 건축으로 볼 수 있다면, 라라랜드의 환상적인 야경은 좀처럼 잊히지가 않는다. 영화 내내,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라라랜드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광이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BOOK
괭이부리말 아이들
김중미ㅣ창작과비평사
“괭이부리말은 어디선가 떠밀려 온 사람들의 마을이 되었다. 오게 된 까닭은 모두 달랐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서로 형제처럼 지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갔다.”
쌍둥이인 숙자와 숙희 자매를 중심으로 가난과 결핍이 곳곳으로 퍼져나간 달동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누군가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는 치료비가 없어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술주정꾼인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사고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세상의 불운을 모두 모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 속에 희미하게나마 비치는 희망과 연민, 사랑과 다독임을 서로 나눈다. ‘괭이부리말’은 ‘괭이부리마을’이라고 인천 만석동의 달동네를 부르던 별칭이기도 하다. 소설 속 마을과 동네의 운치, 허름하지만 정겨운 전경을 상상하면서 읽으면 더 마음에 와 닿는 장면이 많을 것이다.
모모
미하엘 엔데ㅣ비룡소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중략)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린 소녀 모모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간 도둑들에게 맞서 도둑맞은 시간을 인간에게 찾아주려는 모모.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회색 사나이들이 조용히 지배하는 곳에서 어디서 왔는지 모를, 모모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모모는 타인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풍요로운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한다. 모모가 휘젓고 다니는 도심의 모습과 회색 사나이들이 오가는 공간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덧 이탈리아의 이름 모르는 곳에 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조용히 다가온다.
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ㅣ밝은세상
‘고독을 가까이 하면 두 가지 이익이 따른다. 하나는 자기 자신만 상대하면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기욤 뮈소의 스릴러 《파리의 아파트》. 전직 형사 매들린과 극작가 가스파르는 어쩔 수 없이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원치 않은 동거를 하게 된다. 천재 화가 숀 로렌츠가 살던 집에는 여전히 그의 습관과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집의 법적 상속인은 그들에게 화가의 납치된 아들과 사망 직전 그가 그린 석 점의 그림이 사라진 이야기를 전한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속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안에서 나누는 대화, 그곳에 남겨진 화가의 사연을 유추해가는 재미도 크다.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면서 유일한 증거이기도 한 공간. 그 공간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다빈치 코드
댄 브라운ㅣ문학수첩
“레이경 오직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만이 성배를 찾아냅니다. 당신이 내게 그걸 가르쳐 주었지요.”
루브르 박물관장 소니에르의 살해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암호해독관인 소피는 할아버지 소니에르가 자신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암호를 남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피가 종교기호학자 랭던과 함께 다빈치의 그림에 담긴 암호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동안, 기독교에 묻혀진 암흑의 역사가 하나둘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교묘하게 숨겨진 암호는 유럽의 성당과 성채를 넘나들면서 이어지고, 그 주변으로 뒤얽힌 진실공방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에게 친근하고 가까운 작품들과 건축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 수많은 배경과 장소가 흩어졌다 사라진다.
에디터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