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새긴 경쾌한 사랑

고우리·이방글 ㅡ 레디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니 전주로 주섬주섬 챙겨 갔던 질문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두 사람이 말간 얼굴로 조심스럽게 전한 답변을 하나씩 곱씹어봤다. 어떤 대답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이내 뜬금없는 결심으로 다다랐다. 오늘 밤에는 아끼는 펜을 꺼내 내 엉성한 마음을 적어 누군가에게 전해야겠다고. 그들이 내게 들려주고 간, 편지 위에 새겨온 경쾌한 사랑 이야기 덕분이다.

서툰 마음을 꺼내 애정으로 빚은 글

편지를 매개로 활동하는 레디터의 고우리 디자이너와 이방글 기획자.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마음’이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결국 편지 쓰기는 서툰 마음을 꺼내어 애정으로 빚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익은 마음이 부끄러워 몇 번을 지우고, 쓰던 편지지를 구기고 빈 종이를 다시 채우며, 그래서 사랑의 흔적이 잉크 자국처럼 번져 있던 그들의 사적인 편지 이야기.

어제 저랑 문자 나누면서 긴장된다고 말씀했죠(웃음). 잠은 푹 주무셨어요? 

방글 네, 잠은 잘 잤어요(웃음). 저희가 인터뷰를 많이 해본 것도 아니고 직접 대면하는 걸 좀 부끄러워해서 걱정되더라고요. 어제저녁에 둘이 통화하면서 “내일 어떡하지.” 했거든요. 

우리 그래도 “우리가 말 잘 못해도 에디터님이 알아서 예쁘게 다듬어주실 거다.” 하서 안심시켰는데 사실 저도 많이 긴장했어요(웃음). 

 

부담 없이 편하게 얘기 나눠 봐요. 먼저, 오늘 만난 이 카페 ‘하우스먼트’부터 소개해 주실래요? 통창 너머 풍경이 참 멋지네요. 

방글 저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계절마다 달라져요. 사계절 변화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죠. 물론 커피와 디저트도 훌륭하고요. 전주에서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인기 많은 카페는 흔치 않은데, 주말이면 자리 잡기가 어려울 만큼 북적여요. 저희가 사는 동네에서는 조금 멀지만 계절마다 꼭 한 번은 들르려고 해요. 좋아하는 공간이라 오늘 이곳에서 뵙자고 했어요.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마전들로 67, 201호

전주에서도 완산구는 유독 더 한가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방글 저는 전주가 복잡한 듯하면서도 또 안 복잡해서 좋아요. 물론 서울에 비하면 한없이 한가로운 동네지만, 이 안에서 살다 보면 가끔 복잡하게 느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금세 고요해져요. 또 전주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감성이 묻어나는 개인 카페가 더 많은 것도 매력이고요. 

우리 맞아요. 도시 규모에 비해 독립 서점도 많고, 핸드 드립을 직접 하는 개인 카페도 곳곳에 있죠. 

 

덕분에 근사한 공간을 알게 되었네요. 두 분도 전주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면서요. 

방글 저희는 첫 직장에서 만났어요. 그때도 저는 기획자, 우리 씨는 디자이너였는데 서로 결이 잘 맞았는지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즐거웠죠. 책이나 문구, 커피 같은 관심사도 비슷했고요. 퇴사 후에도 언니 동생처럼 인연을 이어왔어요. 그러다가 코로나 시기에 청년 지원 사업을 계기로 ‘레디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로 관계가 조금 삭막해진 시기에 사람들을 어떻게 더 가깝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편지’를 매개로 팀을 꾸리게 된 거죠. 그 기획에 함께해 달라고 우리 씨에게 부탁했어요. 

 

우리 씨는 그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요? 

우리 좋았어요. 저희 둘 다 직접 만들어낸, 손에 잡히는 결과물에 대한 갈망이 있었거든요.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개인 작업보단 클라이언트 작업을 주로 하게 되잖아요.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며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어요. 

 

편지라는 소재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우리 편지에는 쓴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담기고, 받는 사람도 그걸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방글 맞아요. 편지는 ‘진짜 마음’을 담아야만 쓸 수 있는 글이잖아요. 진심이 안 담기면 한 줄도 이어가기 어렵죠.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손으로 정성껏 글을 써 내려간다는 사실이 울림을 줘요. 메신저나 말로는 불필요한 말이 섞이거나 의도와 다르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편지에는 그런 마음들이 좀더 진지하고 다정하게 담기는 것 같아요. 저희에게 편지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진심을 꺼내어 상대방과 더 깊이 연결되게 해주는 도구랄까요.

 

그 다정한 도구를 언제부터 즐겨 쓰게 됐는지 궁금해져요. 두 분은 어린 시절에도 편지와 가까웠어요? 

우리 네, 어릴 때부터 카드를 꾸미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방글 저도 초등학생 때부터 편지 쓰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카드를 써서 친구들 집에 보내곤 했죠. 당시엔 크리스마스실이 유행이라 열심히 실을 붙이고 꾸미기도 했고요. 아, 저 충북 옥천에 사는 친구와 서울에서 지내는 언니랑 펜팔도 주고받았어요. 

 

펜팔이요! 어떤 편지를 주고받았나요? 

방글 예전에는 잡지에서 직접 펜팔 친구를 모집했거든요. 주소와 자신의 취향을 올려놓으면 관심 있는 사람이 편지를 보내오는 방식이었어요. 저는 당시 H.O.T. 팬이었는데, H.O.T.를 좋아하는 언니와 펜팔을 시작했죠. 저는 초등학생, 그 언니는 고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오빠가 너무 멋있다.’ 같은 팬심 가득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인형이나 H.O.T. 굿즈를 선물로 받기도 했어요.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죠. 

우리 H.O.T. 펜팔이었어(웃음)? 

 

우리 씨는 처음 아는 사실인가 봐요(웃음). 

우리 펜팔을 했다는 건 알았는데 H.O.T. 팬이랑 주고받은 건 처음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도 중·고등학생 때 동방신기를 좋아해서 팬카페에서 만난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네요. 

 

레디터의 시초는 덕심에서 비롯됐군요(웃음). 

방글 역시 진심으로 좋아해야 뭐든 할 수 있다니까요. 

 

편지를 통하면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도 감정을 주고받으며 돈독해질 수 있으니까요. 두 분은 서로 손편지도 자주 써요? 

우리 네, 자주 써요. 막상 만나면 깔깔 웃으며 수다 떠느라 하지 못한 말들이 많거든요. 저는 늘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의 마음으로 써요. 편지를 쓸 때면 항상 고마운 마음 뒤로 미안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언니가 주는 애정에 비해 제가 부족한 것 같고,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마음이 늘 따라와서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은 고마운 마음보다 더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 맞아요.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쉽게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유독 편지로만 하게 되더라고요. 말로 하기엔 왠지 부끄러운 감정이라서요. 

 

그런 부끄러운 감정까지 적어낼 수 있을 만큼, 왜 우리는 편지 앞에서 더 솔직해지고 용감해지는 걸까요? 

방글 즉흥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말을 전할지, 어떻게 표현할지 충분히 고민하고 다듬는 시간이 주어지잖아요. 또 상대의 즉각적인 반응을 볼 수 없는 도구이기에 쓰는 동안은 온전히 제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는 꺼내지 못한 고백이나 고마움, 미안함을 담아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또 한편으론 수신인이 다수가 아닌 특정한 대상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 대상이 나 자신이든 다른 친밀한 누군가이든, 나와 그 대상 사이만의 이야기니까 굳이 꾸밀 필요도 없고, 공개될 일도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솔직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솔직함이 듬뿍 담긴,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다면요? 

우리 남편과 결혼하기 전, 남편이 먼저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자고 제안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얼굴을 봤지만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속마음이나, 한 달을 돌이켜보며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을 담았죠. 지금 다시 꺼내 보면 부끄럽고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심해서 써준 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늘 고마웠고 또 받고 싶고 기다려지기도 했어요. 요즘엔 안 쓰고 있긴 한데요(웃음). 지금은 주로 기념일에만 쓰고 있어서 그때의 편지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고요. 

방글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라면 편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아무 날도 아닌데 이유도 없이 불쑥 건네받은 편지는 울림이 크더라고요.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같은, 계획되지 않은 진심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을 때 감동이 더 크게 오더라고요. 제가 수요일 아침마다 함께 산책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불쑥 편지를 건넸어요. 편지지를 보니 저희가 함께 걸었던 산책로와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 편지지를 보자마자 저한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죠. 아, 혹시 몰라서 그걸 오늘 가지고 왔어요.

 

아, 정말 다정한 마음이네요. 같이 한번 볼까요?

편지로 그리는 자화상

잘 쓴 편지라는 건 없지만 누구나 편지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품고 있다. 레디터는 편지 쓰기 초심자를 위한 리추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참가자가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글로 속마음을 적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쉽게 흘려보내던 감정들을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편지를 통해 마주한 내 얼굴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요즘 시대에 직접 쓰는 편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방글 요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챗 지피티처럼 AI와 대화하는 분들도 많아졌죠. 그래서 오히려 편지가 갖는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AI가 정교해도 잉크 냄새가 배어 있는 종이의 질감이나 손 글씨에 담긴 감정까지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거든요. 손 글씨는 쓰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줘요. 기분이 좋을 때는 획이 힘차고 또박또박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는 글씨체가 흐트러지기도 하죠. 편지는 이런 불완전하지만 온전한 사람의 흔적을 담아내요.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변해도 사람만이 가진 아날로그적 온기를 대신할 수 없다는 걸 편지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불완전하므로 온전하다는 말에 공감해요. 레디터는 그 서툰 감정을 담아내는 방법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죠. 좀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우리 저희는 편지가 사라지지 않길 바랐고,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편지가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편하게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편지 쓰기 리추얼 프로그램은 자기 자신에게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에요. 우선 편지를 보낼 대상을 정한 뒤, 그 대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요. 생각나는 단어들을 검열하지 않고 적어 내려가면서 지금 자신의 감정 상태를 확인하고 마인드맵처럼 점차 넓혀가며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에요. 

 

수신인이 누구든 글을 쓰는 나의 감정에 먼저 집중해 보는 거군요. 

우리 맞아요. 타인도 좋지만 한 번쯤은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면 좋겠어요. 내 고민이나 감정을 활자로 꺼내어 있는 그대로 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경험이,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해주더라고요. 나에게 편지를 쓰면 온전히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거든요. 평소에는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는지 곱씹지 않으면 쉬이 흘려보내기 마련이니까요. 

방글 많은 분이 편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시는데요. 저희는 그 막연한 두려움과 막막함을 조금만 덜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막상 쓰기 시작하면 어렵지 않거든요. 저희는 그런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죠. 

 

편지 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안내하고 싶었어요? 

방글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늘 완벽해 보이려고 노력하잖아요.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 더 애쓰고요. 하지만 편지는 그런 부담을 내려놓고,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맞춤법이 조금 틀려도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진심이니까요. 완벽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연습이 될 수 있어요. 그 서툰 솔직함이 오히려 관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참여자들에게 받았던 의견 중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다면요? 

우리 대부분 손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웃음). 그만큼 잊고 있던 감각을 깨워줘서 고맙다는 말과 다시 편지를 써 봐야겠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리추얼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시끌벅적했어요. 그런데 점점 몰입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적어낸 편지를 보니 생각도 깊고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편지에는 그들만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담겨 있었고, 아이들이 진지하게 편지를 읽고 소감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어요. 

 

자기 자신에게 쓰기를 권유하시는 이유를 얼핏 알 것 같아요. 두 분이 생각하는 편지의 효용은 무엇인가요? 

우리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껴지지만, 나한테 편지를 쓰면서 내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잖아요.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편지도 여전히 저한테 남아 있어서 당시의 우리가 주고받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기도 하고요. 또 어떤 대상에게 편지를 쓸 때는 그 사람과의 추억이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죠. 

 

오늘 서로 마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분명 이 자리에서는 하지 못한 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헤어지고 나서 저에게 편지를 써 주신다면,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될까요? 

우리 일단 레디터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을 쓸 것 같고요. 그리고 저희 둘이 말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씀도요(웃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편지를 쓸 땐 늘 고마움 뒤에 미안함이 따라오는군요(웃음). 

우리 하하, 맞아요.

전주로 편지 쓰러 떠나볼까요

레디터의 눈길이 머문 전주의 명소. 고요히 시선을 두면 누군가가 떠오르고
이내 피어오른 마음을 적고 싶어지는 도시의 숨은 풍경들.

1. 포근한 분위기를 잔향처럼 남기는 곳

건지산과 오송제

세상과 살짝 멀어진 듯 다른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 들 거예요. 나무가 촘촘하다 못해 빽빽하게 이어진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폭신한 흙길 위를 맨발로 걸을 수도 있답니다. 곳곳에 앉을 자리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도 좋고 남녀노소 편히 앉아 있는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요. 걷다 보면 숲속의 나무와 풀, 꽃 사이로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의자들이 하나둘 나타나는데요. 사실 그냥 놓인 건 하나도 없지요. 이곳을 찾으신다면 소박한 도시락과 물, 그리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챙겨 오셔도 좋겠어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그늘에 앉아 시름을 내려놓고 바람이 부는 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보세요.

A.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2. 우아한 균형을 유지하며 흔들흔들 걷는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

낮게 드리운 이팝나무 향이 코끝에 스며드는 곳이에요. 혹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헨의 노래 ‘흔들흔들’을 함께 들어보세요. 하얀 꽃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을 배경으로 철길 위를 아슬아슬 걷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멀리서 보면 곧게 걸어가는 듯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삶의 무게에 흔들려 이쪽저쪽 곡선을 그리며 걷고 있겠지요.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을 따라 걸으면 복합문화공간 팔복예술공장이 나타나요. 낡은 카세트 공장의 흔적과 자연 풍경, 다양한 전시를 모두 볼 수 있어 오래 머물며 천천히 느껴보고 싶은 공간이에요.

A.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구렛들1길

3. 각자의 일을 무심히 해내는 사람들

고물자 골목

타인의 삶을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는 오래된 골목과 시장을 거니는 것이지요. 고물자 골목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의 구호물자와 청바지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어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곳이에요. 텅 빈 마당엔 평상이 있거나 빨래가 널려 있고, 마구잡이로 물건들이 쌓여 있기도 해요. 화분에 꽃과 식물을 기르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 공간도 볼 수 있답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거닐다 보면 각자의 삶을 무심하고 또 성실하게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일상의 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48

4. 어떤 시절을 담고 있는 작고 큰 추억들

동문예술거리

전주읍성의 옛 동문 자리에서 시작된 동문예술거리는 2012년 예술거리로 지정되어 전시장과 공연장, 갤러리가 모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어요. 매년 축제가 열리고 한옥마을과도 가까워 전주의 대표 예술 명소로 사랑받고 있죠. 거리를 걷다 중고 책방을 만나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세요. 뜻밖의 보물을 발견할지도 몰라요. 오래된 책들 사이에는 이곳의 시간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답니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건 화려하고 큰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절을 품은 작은 추억과 일상의 순간들이라고 믿고 있어요.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일대

Book —《여행, 단어의 발견 – Jeonju》 레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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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 장소 협조 하우스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