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손에 쥐어질 순간을 위해

“피아노 건반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공룡이 리모컨 말을 안 듣고 크앙크앙 울어요.” 진료 접수 카드가 붙은 장난감과 치료받고 다시 태어난 장난감이 가득 쌓인 이곳.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는 안경을 코끝에 걸친 지긋한 박사님들이 이따금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노동요 삼아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수백 가지의 물건에 담긴 수백 가지의 사연이 살뜰한 손길을 거쳐 다시금 작고 보드라운 손에 쥐어질 순간을 기대하며.

종착지에서 만난 새로운 출발선

키니스 장난감 병원은 공학 교수로 35년간 재직하다 2011년 정년으로 퇴임한 김종일 이사장이 설립한 비영리 봉사단체다. 뜻을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과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 아이들에게 다시 선물하고 있다. ‘키니스Kinis’라는 이름은 ‘아이kid’의 ki, ‘실버silver’의 si를 거꾸로 한 is, 그리고 두 세대의 공존을 뜻하는 ‘and’의 n을 더해 만들었다. 아이와 노인이 연결되는 곳, 장난감으로 세대가 이어지는 병원이다. 이곳에서는 6개월 이상 봉사한 봉사자에게 장난감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서로를 ‘박사님’이라 부른다. 열두 명의 박사님 평균 나이는 70세를 훌쩍 넘는다. 젊은 시절의 생업을 마친 뒤, 삶의 다음 장으로 걸음을 옮긴 이들이 모여 있다.

“정년 퇴임이라는 건, 내가 늘 가던 곳을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는 일이에요. 저처럼 대학교수였던 사람들은 ‘교수실’이라고 자기 방이 있잖아요. 그 방문을 다시 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키니스 장난감 병원을 세운 이유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거창한 대의가 있어서 시작한 봉사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여전히 어딘가 갈 곳이 있고, 내 재능의 일부를 사회에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큰 기쁨을 느껴요.”

첫 추억을 선물하는 병원

병원으로 들어오는 장난감 상자는 하루 열에서 열다섯 박스. 한 상자에 장난감이 두 개씩은 들어 있으니 하루에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이상을 고치는 셈이다. 연간으로는 평균 만 개 이상의 장난감을 치료한다. 이 장난감이 다시 아이들의 손에 쥐어질 순간을 상상하며 오늘도 박사님들은 작업장에 앉아 드라이버를 든다. 그저 장난감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처음 갖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되살려 선물하는 일이다.

“우리는 장난감이라는 걸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잖아요. 병원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건,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울다가도 장난감을 주면 눈물을 뚝 그치죠. 아이들에게 큰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는 건 확실해요. 장난감은 아이들이 갖는 최초의 자기 것이거든요. 이 물건에 애착이 있으니 병원에도 보내지 않겠어요? 그러니 장난감 수리는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아이들에겐 소중한 것을 되찾게 해주는 일인 거예요.”

내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

박사님들이 처음부터 ‘박사님’이었던 것은 아니다. 병원을 설립하고 몇 개월 동안은 머리를 맞대어 함께 장난감을 부수고 분해하고 조립하며 기술을 익혔다. 장난감 병원이 세워진 지 15년이 지난 지금은 인천 주안점, 인천 서구점, 수원점 세 곳의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그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에게 교육도 진행한다. 김종일 이사장의 요즘 고민은 장난감 병원을 이어받아 운영할 후임자를 찾는 일이다.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장난감은 계속 필요할 테니, 병원 문을 열어두고 이 봉사가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는 문을 닫을 수 없는 일이 된 거예요. 그러니 제 뒤를 이을 사람을 찾아야죠. 여기에서 봉사하려면 한 가지는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바로 ‘봉사하겠다는 마음’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봉사는 단순해요. 남는 시간에 잠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내고, 때로는 개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조차 감수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처음 병원을 시작할 때 발생하는 모든 비용과 장비, 장소 마련까지 제 사비로 감당했어요. 또 병원을 운영하며 스스로 지키기로 한 약속이 하나 있는데요. 봉사하러 오신 분들의 점심을 사드리는 것이에요. 감사한 분들에게 점심 한 끼 정도는 제공해야 마땅하니까요. 이 약속을 지키는 게 처음엔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지만요(웃음).”

세상에 장난감 없는 아이가 없도록

키니스 장난감 병원은 단순히 장난감을 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증받은 장난감을 필요한 가정이나 아동 시설에 다시 전하고 있다. 새 장난감뿐 아니라, 아이가 금세 싫증을 내거나 훌쩍 자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중고 장난감도 포함된다. 박사님들은 기증받은 물건을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안전과 기능을 확인한 뒤 유치원, 어린이집, 보육원, 어린이 재활병원, 지자체나 복지 단체 등에 전달한다. 병원이 품은 작은 꿈 중 하나는 ‘장난감 없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해보니 장난감에도 빈익빈부익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곳은 넘치지만, 어떤 곳은 물려받아야 할 만큼 부족하죠. 아이들은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게 정서적으로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게 누리지 못합니다. 여기서는 저희가 보관 중인 장난감을 가져가거나, 고장 난 것을 고쳐주기도 하니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아이들에게 기쁨을 선물할 수 있어요. 저희에게 기증해 주시겠다는 분이 나타나면 마다하지 않고 모두 받아요.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장난감이 부족한 아이가 없도록, 계속해서 고치고 선물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예요.”

 

김기성 박사

방금 공처럼 생긴 장난감을 고치시던데 무슨 문제로 고장이 난 거예요?

전원 공급 쪽 선 문제더라고요. 안쪽에 배터리가 연결되는 선이 끊어져서 그걸 고치고 있었어요.

 

박사님 세대에는 장난감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텐데, 요즘 장난감은 참 다양하죠?

그렇죠. 특이한 장난감도 많아요. 사실 장난감이 간단한 것 같아도 모든 기술의 집합체거든요. 이전에는 소리 나고 불빛 나는 정도만 있었을 텐데, 요즘에는 굴러가고 뒤집히고 완전히 로봇 같아요. 요새 아이들도 너무 간단한 건 싫어하지. 눈이 높아져서(웃음).

 

박사님께서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정년 퇴임하신 뒤에 봉사하고 계신 것으로 알아요.

맞아요. 김종일 이사장과는 대학 동기고, 퇴임도 같은 시기에 했어요. 이사장에게 장난감 병원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시작했죠. 저는 조선 공학 교수였기 때문에 배나 선박 구조처럼 큰 규모의 공학 문제를 다뤘어요. 하는 일이 아예 달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는데 오랜 경험을 쌓다 보니 점점 알게 되더라고요. 봉사를 하면서 새로운 것도 계속 배우게 되고요. 누구나 오시면 다 배우실 수 있어요. 물론 전자 문제나 전기 회로처럼 전문적인 부분은 어려울 수 있지만, 많이 해보면 ‘이 장난감은 어떤 문제겠다’ 하는 감이 생기더라고요.

 

이곳에서는 전문적으로 맡은 장난감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던데요. 박사님은 주로 어떤 수리를 담당하세요?

저는 주로 쉬운 거를 맡아요(웃음). 불빛이 나오거나 소리가 나거나 굴러가는 정도의 쉬운 장난감이요.

 

좀 더 신경 써서 수리하는 장난감도 있나요?

장애아를 키우는 보호자의 장난감 수리 의뢰가 들어오면 특별히 신경 써서 살펴봐요. 그런 분들이 방문하거나 택배를 보내시면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어려서부터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애착이 생겨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 그 장난감만 찾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무리 더 좋은 장난감을 줘도 자기가 가지고 놀던 것을 원하는 거죠. 그 장난감이 고장 났을 때 고쳐주면 좋은데, 끝까지 고쳐지지 않을 때는 미안하고 안타깝죠.

 

봉사를 하시면서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박사님들과 얘기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좋아요. 무엇보다 고장 난 걸 다시 작동하게 했을 때 큰 보람을 느끼죠. 아이들이 다시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 기쁘고요. 사실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을 위한 일이에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훨씬 더 만족스럽죠. 몇 개월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저희 병원이 소개된 후, 장난감 수리 의뢰가 크게 늘었어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보시면 돼요. 예전에는 장난감이 밀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밀릴 정도니까요.

 

찾는 분이 많아지면서 힘들진 않으세요?어쩔 수 없지요.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웃음). 언제까지 이 봉사를 할지는 모르지만, 계속해 보려고 해요.

김성진 박사

이곳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원래는 화학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공장이나 산업 시설을 설계하는 일도 했고, 나중에는 제조업체 기술부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조금 특이하게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죠.

 

미국이요? 언제쯤 가셨어요?

한 30년 전에요. 그곳에서 작게 사업을 하다가 귀국한 지 3년 정도 됐어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노후를 편히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1년은 아내와 함께 체육센터 다니면서 피트니스나 수영, 요가를 하고, 집에 와서는 점심 먹고 쉬고, 저녁에는 취미생활이나 산책을 하며 지냈어요. 그렇게 살려고 온 건데, 막상 계속 그런 생활만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일을 꾸준히 해오셨다 보니 더 그랬겠어요.

맞아요. 사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봉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제가 할 수 있는 봉사가 뭘까 찾아봤죠.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 키니스 장난감 병원을 알게 됐어요. 얘기를 듣고 이사장님께 “저도 일 좀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올해 1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아직 1년이 조금 안 됐어요. 예전에 하던 일과 조금 관련된 부분도 있고, 잘 모르는 건 옆에 계신 박사님들께 배우면서 하나씩 익히면서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손으로 만들거나 고치는 게 익숙하셨어요?

미국에서는 대부분 개인 주택에서 살고, 인건비가 정말 비싸요. 뭐 하나 고치려 해도 비용이 많이 들죠. 그래서 집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수리비가 100만 원 정도 든다면, 공구를 20-30만 원 주고 사서 내가 직접 고치는 식이죠. 그러면 돈도 절약되고 공구가 생기니 나중에도 활용할 수 있잖아요. 집 안의 여러 문제들을 직접 손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익숙해지고 숙달됐죠.

 

요즘에는 어떤 장난감을 주로 수리하고 계세요?

특히 마우스 고장이 많아요. 마우스가 작동하지 않거나 USB 연결부가 헐거워지는 경우도 있고요. 애들이 선이 있는 마우스를 자꾸 끌고 돌아다니나 봐요(웃음).

 

봉사를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예전에 비눗방울이 나오는 물총이 고장 나서 들어온 적이 있어요. 아이가 그 장난감을 많이 아꼈던 모양이에요. 다른 곳에 수리를 맡겨 봤지만 결국 고칠 수 없었대요. 그래서 ‘더 이상 안 되면 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여기 가져오신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걸 고쳐드렸죠.

 

와, 정말 뿌듯하셨겠네요.

그럼요.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니까 정말 좋아요. 고장 난 장난감을 택배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보호자와 아이가 직접 와서 맡기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면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저희는 절대 사양하지만 그럴 때도 기분이 좋고 뿌듯하죠.

원덕희 박사

여기에는 같은 모빌들이 쌓여 있네요?

동일한 모델인데 전국 각지에서 온 모빌이에요.

 

요즘 인기 있는 제품인가 봐요.

그런 것 같아요. 병원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장난감이 모빌이에요. 들어오는 장난감을 보면 아이 연령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거든요. 모빌은 신생아 때부터 뒤집거나 기어다니기 시작할 무렵까지 사용하죠. 오래돼서 고장 나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형을 아이가 잡아당겨서 망가뜨리기도 해요. 저는 주로 모빌 수리를 맡고 있는데, 가장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인만큼 최대한 빨리 고치려고 해요. 그러니까 제 팬이 전국에 11만 명쯤 되는 셈이죠.

 

11만 명이요?

우리나라 신생아가 1년에 약 23만 명 정도 된대요. 모빌은 보통 생후 6개월까지 보니까 절반 정도 잡으면 11만 명쯤 돼요. 그 아이들이 다 제 팬인 거죠(웃음).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팬층이에요(웃음).

그래서 퇴근하다가도 모빌이 들어오면 얼른 고쳐서 보내주려고 해요. 그 시기 부모님들은 하루 종일 아이 곁에 있어야 하잖아요. 모빌이라도 돌아가야 잠시나마 설거지도 하고, 숨 돌릴 수 있으니까요. 제가 고치는 장난감들의 통계를 내고 있는데요. 월별로, 연도별로 모빌이 몇 개 들어왔고 그 모빌 중에 몇 개를 고쳤는지 계산해요. 1년에 제가 고친 게 780개쯤 되나 봐요.

 

모빌 전문의가 맞으시군요(웃음)! 하루에 적어도 두 개씩 모빌만 손보신 셈이네요. 봉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어요?

이사장님 친구 되시는 분과 제가 함께 근무했었는데, 그분 소개로 오게 됐어요. 처음 왔을 때는 제가 제일 막내니까 힘든 일을 맡는 거예요(웃음). 청소도 하고, 택배 관련 업무도 같이 하면서요. 어느새 6개월이 지나고, 장난감 수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힘은 들지만 고친 장난감이 다시 작동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 정말 커요.

 

원래 박사님께서는 교직 생활을 하셨다고요.

맞아요. 공업계 고등학교에서 전기과 교사로 36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은퇴했어요. 처음부터 교직에 대한 꿈이 있어서 교사가 된 건 아니었어요. 취직이 어려우니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이었죠. 정년을 맞이하고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언젠가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와서 큰 병원에 갔더니 방광암이 발견되었어요. 1년 사이에 수술을 세 차례나 했죠. 수술할 때마다 며칠씩 입원해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니까 너무 심심한 거예요. 머릿속으로는 ‘아, 언제 가서 모빌 고치지.’ 생각만 맴돌고요. 그래서 퇴원한 바로 다음 날 와서 장난감을 고쳤어요. 퇴원하고 며칠은 쉬어야 한다는데 바로 장난감 병원으로 나오니 아내가 저한테 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박사님에게는 이 일이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시는 내내 표정에서 활력이 느껴져요.

저희 인터넷 카페 후기 게시판에 ‘고맙다’고 달아준 댓글들을 보면 굉장히 흐뭇해요. 특히 치료 과정이 어려운 장난감을 붙들고 고민하다가 원인을 찾아내 결국 작동하게 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할 수 없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못하더라도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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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