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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는 ― 상강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나의 마음은 다양한 색으로 물드는 나무가 가득 찬 빽빽한 숲 같다. 노란 빛으로만 물든 산을 본 적이 없다. 붉은 잎으로만 채워진 산을 본 적도 없다. 여러 빛깔이 섞인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단풍 덕분에 아름다운 산을 본다. 그리고 그렇게 물들었던 잎들도 모두 흙의 빛깔로 변하여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다.
빈 화면에 아직 나도, 타인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은 여전히 막막하다. 쓰고 싶은 이야기까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을 때는 긴 한숨으로 방안이 꽉 차버려 창을 열지 않으면 공간이 터질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쓰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막막해하면서도 우선 쓴다. 이야기를 머금고 숨 쉬는 시간과 이야기를 뱉어내는 시간, 그러다가 쏟아져 버린 이야기들을 주워 담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야기는 누군가 자신의 언어를 만나러 와 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쓰다 보면 쓰게 된다는 말인데, 이번에는 다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게 있는데 왜 이렇게 아득하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절기 상강은 ‘서리가 내린다.’라는 뜻이다. 하얀 이슬을 볼 수 있는 백로와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를 지나 이제는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붙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때가 되었다. 공기가 서늘해져서 더운물로 차를 내리고 열린 창가에 앉아 있으면 찻물의 더운 숨이 눈에 보인다. 국화가 만개하는 늦가을에는 국화차를 주로 마시는데, 노란 잎이 따뜻한 물 속에서 풀어지면 달큰하고 향긋한 맛이 난다. 모든 초목이 서리를 맞으며 낙엽이 되거나 시들어 가는 때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국화꽃의 맛은 명랑하고 다정하다. 찬 공기 속에서도 활짝 웃는 힘이 거기에 있다는 듯이. 잘 우러난 찻물을 동그랗고 묵직한 잔에 담아 마시면서 밖을 보니 하늘이 맑다. 가을 운동회를 수식하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단번에 떠오르는 풍경, 가을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른 계절과 마찬가지로 절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다. 상강은 입동을 앞두고 만나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데, 단풍이 여기저기에서 절정인 때라 색채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지금이다.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틀어둔 텔레비전 뉴스에서 각 지역 단풍의 시작과 절정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 한 주간, 우리들은 각자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혹은 어딘가 가을 색이 가득한 곳으로 가서 단풍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집 앞에 강이 흐르지만, 서울로 이사와 꽤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는 산이 마을을 안아주는 모양이었다. 이른 아침 집에서 나왔을 때 어깨를 움츠리며 손으로 팔꿈치를 어루만질 무렵이면 버스 정류장에서는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을 볼 수 있었다. 이르게 물든 노란 잎들과 더디게 물드는 중인 붉은 잎들, 계속 초록빛인 나무들까지 이리저리 뒤섞인 모습을 볼 때면 하나의 나무가 꼭 하나의 사람처럼 보였다. ‘각자의 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세계가 저렇게 아름답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양한 색으로 물든 산이 여러 모습을 가진 나, 단 한 사람으로도 보인다. 좋아하는 노란 빛의 나,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붉은 빛의 나, 편안하고 느긋한 날의 녹색 빛 나도 있다. 나는 하나의 나무이기도 하고,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는 숲이기도, 커다란 산이기도 한 것 같다.
공기가 차가워졌다. 계절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어둠처럼 삶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고, 불현듯 퍼져가는 아침의 빛처럼 순식간에 밀려온다. 매일 들여다보면 바람과 새와 계절의 이동 경로가 보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땐 달라져 버린 온도에 놀라며 분주한 마음이 되어버린다. 지난 한 주에는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느라 나무를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매일 지켜보지 않으면 분명 무언가를 놓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에 빠져 걷는 동안 ‘주변’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걷는다. 아침에 일어나 환기하려는데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찬 바람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겨울옷 꺼내고 옷장 정리할 때가 왔네, 혼잣말하고는 도톰한 양말을 꺼내어 신고 신발에 발을 꿰어 넣는다. 밖으로 나와 강가를 향해 몇 걸음 걸으면 키가 큰 나무들이 오래된 마음을 안고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흔들리다가 색이 변하고, 또 흔들리다가 땅에 떨어진 수많은 잎. 색이 달라지고, 결국 땅으로 돌아온 나뭇잎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나뭇잎은 무엇을 기억하며 여기에 도착했을까. 발끝에 닿는 잎을 가만히 서서 한참 바라보며 그들에게 묻는다.
거기에는 눈의 기억과 바람의 기억, 뜨거운 빛의 기억과 어둠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 용기가 있다. 다시 시작될 것을 신뢰하고 있기에 뿌리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 모든 날이 그대로 완전하고 완벽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지만 비가 많이 와서, 혹은 뜨거운 햇살이 견디기 어려워서 부족하다 여겨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아직 붉게 물들지 못했는데도 떨어진 잎들이 있다. 때가 되면 있어야 할 곳에 지금 모습 그대로 돌아와 다음 해를 준비하는 나무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어떤 사람에게 나는 참 따뜻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또 냉정한 사람이다. 이런 인상을 만드는 것은 나이기도 하고, 관계를 맺는 타인이 살아온 삶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 곁에서 나는 한없이 순하고, 어떤 사람 곁에서는 몹시 딱딱하다. 어릴 때의 나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하는 존재 곁에서 머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곁에서 내가 자꾸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을 땐 헤어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러기도 했다. “우리 서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의 곁으로 가자. 너의 곁에서는 내가 자꾸만 작고 좁고 뾰족한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했는데, 이제 와 돌아보면 작고 좁고 뾰족한 나도 나였는데, 그런 나를 보게 하는 그가 불편했다. 마주하는 얼굴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의 얼굴을 본다. 거기에는 유독 의연해지지 않는 표정들도 있다. 나에게서 드러나는 감정 중 부정적인 것, 그중에서도 특별히 더욱 품에 안기 싫은 것들. 그걸 보게 하는 사건이나 마주하게 하는 관계가 등장하면, 이제 서로에게서 멀어지자는 서툰 말 대신 ‘아직 알아보아야 할 내가 남았구나.’ 속으로 이야기한다. 나의 마음은 다양한 색으로 물드는 나무가 가득 찬 빽빽한 숲 같다. 노란 빛으로만 물든 산을 본 적이 없다. 붉은 잎으로만 채워진 산을 본 적도 없다. 여러 빛깔이 섞인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단풍 덕분에 아름다운 산을 본다. 그리고 그렇게 물들었던 잎들도 모두 흙의 빛깔로 변하여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다.
하나의 나뭇잎은 나무 전체가 아니지만 하나 안에는 전체가 있기도 하다. 몸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 하나와 마음으로 생겨나는 표정 하나에는 모든 계절이 담겨있다. 눈물과 기쁨, 두려움과 환희가 모두 그곳에 있고, 막막함과 가득 찬 설렘, 사랑과 이별의 기억이 복잡하게 뒤엉켜 이 순간의 눈빛과 표정, 말이 되었다. 밀어냈던 것과 끌어당긴 것의 합이 지금이라면 이제는 다른 선택으로 미래의 나를 새롭게 조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품에 안으면 알록달록하게 단풍이 든 산과 같아질 것 같아 어떤 것도 밀어내고 싶지 않다. 만나기 싫었던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 어쩔 수 없이 드러낸 눈빛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 삶의 역사를 통해 내가 지을 수밖에 없었던 눈과 입의 모양들,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 밀어낸 역사가 만들어 낸 삶의 풍경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겨울을 앞두고는 서둘러 단언하지 않고 보류의 서랍에 많은 것을 넣어두기로 한다. 사실 꽤 오랫동안 그 서랍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거워지고 싶지 않아서 밀어내거나, 가위로 싹둑 오려내듯 마음을 잘라버리고는 가벼운 척 한 해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보류의 서랍이 보물처럼 느껴진다. 그 서랍이 꼭 가능성의 서랍처럼 여겨져서 그걸 품에 안고 숨을 쉬면 앞으로의 날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보류’라는 것은 어쨌든 시작은 해본 것들이라 아득하기만 하지도, 성급해지지도 않고 그럭저럭 그윽한 눈빛이 된다. 아직 붉게 물들지도 못했는데 땅에 떨어진 나뭇잎은 봄의 기억을 가진 다른 나뭇잎과 함께 나무의 밑동을 다정하게 덮으며 추운 계절을 준비한다. 나도 보류의 서랍을 안고 겨울로 걸어가 보고 싶다. 추운 날이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서랍을 열어 지금 느끼는 막막함과 불편함, 어려움의 이유를 알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올 테니까. 밀어냄의 역사를 쌓는 대신 기억하며 떨어지고, 기억하며 다시 피어나는 안아줌의 역사를 만들고 싶다. 낙엽들이 나무뿌리를 다정하게 안아주듯 지금 마주한 다양한 얼굴의 기억으로 마음 뿌리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상강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라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며 목화를 따서 실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이불도 지었다는데, 지금의 내가 만드는 모든 빛깔을 사랑하는 일이 따뜻함이 남다른 목화솜 이불처럼 나를 감싸줄 것이라 믿고 있다.
마무리는 언제나 시작을 위한 가장 좋은 준비의 시간. 그 시간을 조심히 다루면서 동시에 사랑한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이 지나고 나면 입동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 해내지 못한 많은 것들과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마음들을 오목하게 두 손 모아 담고 사뿐하게 걸어간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잊혀도 괜찮은 몇 가지는 날아갈 테고, 남아야 할 것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하기를 바라면 찬바람이 반갑다.
상강의 글을 쓰기 어려웠던 것은 모든 것을 품에 안기가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였다. 아직 작은 내가 큰 품으로 안을 준비를 하느라 그토록 버거웠구나,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채로 알 수 없는 것을 그대로 품에 안아버리는 일이 어려웠구나. 그래, 해보지 않은 일이었으니 어려울 만도 하지. 이제야 아득하게 어두웠던 마음의 시간이 이해된다. 쓰다 보니 쓰게 되었고, 쓰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러니 계속 쓰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안고 간다. 겨울로.
상강(霜降) : 24절기 중 열여덟 번째로, 기온이 낮아서 서리가 내리며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