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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내려 보리를 덮어주는 ― 대설
AROUND Series | 절기 따라 걷기
스물네 번의 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쓰다듬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록한다.
겨울은 기회의 시간이다. 긴 어둠 속에서 경험 후에 남겨진 것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마음에 되새기는 동안, 기억의 언어가 다르게 표현되는 멋진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 대설에 내리는 큰 눈처럼 모아둔 씨앗이 추위에 살아남도록 보호하는 마음으로, 쌓여가는 눈이 만든 물처럼 다음을 살게 하리라며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억을 꺼내어 본다.
“그때 어떤 표정을 지었어?” 어린 조카에게 물었던 날, 나의 첫 조카는 곧장 답하지 못하고 한참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모, 잘 기억이 안 나. 근데 엄청 재밌었어.”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첫 일기를 쓰던 날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글자를 배우고 쓰는 첫 일기. 처음이라는 것은 어른이든 아이든 우선 막막한 것인지 조카는 숙제를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울상을 한 채 방에 들어가 버렸고, 마침 함께 집에 있던 나에게 언니는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일기만큼은 꽤 오랜 경력자니까 “물론이지!” 씩씩하게 답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조카에게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 물었다. 체육 시간에 했던 풍선 피구를 쓰겠다고 말하더니 대뜸, 선생님이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들, 그러니까 일기의 규율 같은 것을 내게 설명했다. “‘나는’, ‘오늘’ 이런 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공책을 내려다보니 ‘나는’, ‘오늘’을 썼다가 지운 흔적이 보였다. 하지 말라고 한 것들, 규칙에 발이 묶여 한 발자국도 걷기 어려워하는 안쓰러운 얼굴. 그 얼굴 곁에 가만히 앉아 같이 공책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조용히 함께 있다 보니, 글이 잘 안 써질 때마다 자주 산책하러 나가던 날들이 떠올랐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어서 공책은 그만 들여다보고 산책하듯 먼 곳을 보며 이야기 나눴다. 그날의 하늘은 어떤 색이었는지, 곁에 있던 친구 이름은 무엇인지, 자신에게로 풍선이 날아올 때 마음은 뜨거워졌는지 캄캄해졌는지, 다가온 풍선을 칠 때 손의 감촉은 어땠는지를 슬쩍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매번 아득한 눈빛을 하다가 결국 모두 대답했다. 그 내용을 글자로 남겨두고 밤을 맞이한 그날이 여전히 내 안에 남겨져 있다.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될 아이가 그날을 여전히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 언젠가 아이가 찾아와 “이모, 있잖아.”하며 새로운 막막함에 대해 꺼내두는 날에 말해주겠다고 생각한다. 그날을 위해 종종 떠올려본다.
선물 받았던 대봉시가 하나하나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깊은 자리로 천천히 들어왔다. 대설은 첫눈이 내려 겨울이 완연해졌음을 알리는 ‘소설’과 밤이 가장 긴 ‘동지’ 사이, 큰 눈이 내리는 날이다. 소설 이후가 되니 그때까지 익지 않았던 감들은 붉은빛이 선명해지고, 겉면이 모두 투명해졌다. 조심스럽게 엄지로 살짝 밀듯 눌러보며 맛을 가늠하다가 싱크대로 가져간다. 차가운 물에 가볍게 씻어내고, 칼로 반을 자르면 달콤할 것이 분명한 과육이 세상에 드러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 오래된 그릇에 담아 테이블로 가져오는 동안 여러 기억을 떠올린다. 먼 곳에서 가져온 감을 꺼내 선물하던 사람의 모습과 그릇의 긴 역사 같은 것을 생각하며 매일같이 다 익은 감들을 부랴부랴 삼켰다.
여러 가지를 기억한다. 가끔은 노력도 한다.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하나가 떠오르면 그 무렵이 언제지? 그때 그런 일도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면 포도알 같은 기억들이 하나의 포도송이가 되어 기억의 바구니에 담긴다. 기억하는 동안 모든 것은 살아있고, 남은 기억은 다가오는 날들 중 언젠가에 꽃 피우고 열매 맺게 될 씨앗 같다. 기억과 함께 지내는 동안 기억의 고리들은 점점 더 여러 곳에 걸쳐져서 더 이상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하는데, 그럼 좋은 씨앗을 듬뿍 갈무리해 둔 농부처럼 든든한 마음이 된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기억을 잊는 것이 더 슬프다. 물건은 사라져도 기억을 남기지만, 기억이 사라지면 한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니까. 정말 ‘없는’ 기분이 되니까. 그러나 물건도 기억도 모두 언젠가는 잃기도, 잊기도 할 것이다. 영원할 수 없으니 오늘 한번 더 기억하기로 한다. 기억은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 품에 안도록 도와주고, 슬픔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직은 잊고 싶은 기억이 없다. 아팠던 때도 실수해서 숨고 싶었던 순간도 잊는다면, 그 덕분에 알아본 것까지 놓칠 것 같아서 기억하고 싶다.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생이 준 굉장한 기회이고 축복이다. 알아보고 나면 그게 나의 나약함에 대한 것이든 강함에 대한 것이든, 긴장이든 유연함이든 모두 생의 남은 순간을 위한 좋은 재료로 사용된다.
봤던 영화를 또 보고, 인상 깊었던 책을 다시 읽고,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를 한 번 더 보는 것은 여전히 좋다. <코러스>, <쇼생크 탈출>, <컨택트>, <인터스텔라>, <다가오는 것들>. 보고 또 보았던 영화의 목록이다. 다시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학생에게 감정이입을 하던 내가 선생님에게 몰입하는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때는 같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감각된다. 그 순간, 그 찰나에 눈이 밝아진다. ‘내게 각인된 순간들을 다시 보면 어떨까? 다시 기억을 만지작거리면서 뒷면을 쓰다듬어 보면 어떨까? 그러다가 아주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되면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생각은 영화와 책을 다시 보는 경험에서 출발했다. 여러 해 반복해 보는 동안 현실 경험 또한 재인식, 재배치, 재해석될 때 새로운 알아봄이 생겨난다는 것, 이해되지 않을 것 같던 어떤 마음의 풍경이 문득 이해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관점을 바꾸고 거리를 바꿔보는 일은 확실히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그렇게 폭이 넓어지면서 기억이 새롭게 새겨지는 일은 어두운 땅속에서 씨앗이 딱딱한 조각으로 말라 죽지 않도록 이 무렵 내리는 대설 같다. 대설에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 해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그건 땅에 소복하게 쌓이는 눈이 이불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따뜻한 겨울빛에 눈이 녹으면 그게 땅속으로 스며들어 씨앗을 살리는 생명수가 되기도 하고, 쌓인 눈이 냉해를 막도록 땅을 보호해 준다. 씨앗은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씨앗과도 같은 나의 기억들도 어쩌면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좋은 씨앗을 갈무리해 두어도 이렇듯 날씨의 도움을 받아야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는 사실이 무력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씨앗은 땅속에서 고요하게 씨앗의 시간을 살고 있다. 오늘의 날씨가 주는 만큼의 영향을 받으며 영글어간다. 언젠가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줄기가 올라가겠지만 벌써 싹 틔울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오늘의 날씨를 경험할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
대설은 모든 절기 중 가장 해가 일찍 지는 시기다. 밤이 가장 긴 것은 동지이지만 해가 가장 일찍 지는 때는 동지가 아니라 대설 무렵. 평소보다 이르게 찾아오는 어둠의 시간 동안 씨앗은 땅속에서 어둠과 추위를, 계절의 매서움과 도움을, 한낮의 빛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경험할 것이다. 쌓인 눈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여름의 분주함과 가을의 풍성함이 지나간 텅 빈 자리, 나 역시 여러 기회를 경험하는 중이다. 물을 마실 기회, 숨 쉴 기회, 집으로 돌아갈 기회, 돌아보며 숨 고를 기회, 눈을 오래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눈물을 닦아낼 기회가 주어졌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모든 것을 경험하는 때는 지금 이 순간뿐. 커다란 사건을 마주할 때, 의미 있어 보이는 일을 할 때, 수업에서 마주하는 수련자들의 오늘을 가만히 지켜볼 때,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대화를 할 때. 그럴 때면 생에서 우리가 만나 소중한 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 축복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느껴진다. 모든 게 단 한 번뿐이라는 진실을 두 손 오목하게 모아 정성스럽게 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과를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상의 여백에 별 대단하지 않은 것을 채우며 삶을 그저 어딘가로 흘려보내는 느낌이 들 때는 ‘일기일회’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만다.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인데도. 오늘 아침, 혼자 가볍게 인요가 수련을 하다가 빈칸의 시간 앞에서 그것을 자주 ‘기회’로 여기지 못하고, ‘기회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분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더 정돈된 나로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쉬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무언가를 준비하기보다 그저 오늘이 내게 경험하게 하는 것을 만날 기회, 여백의 기회, 지나간 것과 다가오는 것 사이에서 눈을 씻어낼 기회, 기억을 소화하고 다시 배치할 기회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겨울은 기회의 시간이다. 긴 어둠 속에서 경험 후에 남겨진 것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마음에 되새기는 동안, 기억의 언어가 다르게 표현되는 멋진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 대설에 내리는 큰 눈처럼 모아둔 씨앗이 추위에 살아남도록 보호하는 마음으로, 쌓여가는 눈이 만든 물처럼 다음을 살게 하리라며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억을 꺼내어 본다. 옛날에는 대설 무렵에 메주를 쑤었다고 한다. 콩을 푹 삶아 찧고, 네모 모양의 덩어리를 만들어 말리고 나면 나중에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이 되어 배를 불려주었다. 기억을 바라보는 기회의 겨울 동안 느긋하게 메주를 쑤는 사람의 마음을 초대한다.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으나 우선 메주를 쑤고 기다리는 순하고 밝은 마음.
내게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 대신, 내게 찾아온 것에 대한 ‘감각과 감사’를 택한다. 다시 기억하기의 여정은 종종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쓰다가 속상해하는 나에 대한 발견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알아봄과 감사로 마무리된다. 멀리 걷느라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나의 두 발을 잊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두 발은 나를 잊은 적이 없다. 나의 두 손도 마찬가지다. 추운 겨울의 밤에는 삶이 내게 주고, 한 번도 앗아가지 않았던 것에 대한 기억을 소중하게 꺼내본다. 잃어버리기 전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점점 무거워지는 나를, 점점 많은 욕심을 내는 나를, 삶이 말없이 받아주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날이 많다. 고마움을 잊으면 당연해지고, 당연해지면 어떤 날에는 바라는 것만 남는데 기억하는 일은 고마움을 삶에 오래 두는 경험이다. 두 발이 나를 잊은 적이 없듯 나도 두 발을 기억하며 땅에 내려놓거나 먼 허공을 향해 뻗는다. 내게 찾아온 수많은 일이 나를 잊은 적 없듯 나도 빛과 어둠으로 얼룩져 만들어진 풍경을 기억하며 내려가고 올라가고 멀리 간다.
언젠가 첫 조카에게 말해줄 것이다. 첫 일기를 쓰던 아이의 아득했던 표정을, 그 시간을 건너와 이렇게 수많은 단어로 표현하는 아이의 성장을, 그리고 그렇게 차근차근 보낸 시간의 커다란 힘에 대해서. 그리 말해주려고 기억하는 동안 기억은 나 또한 넓어지게 하고 위로할 것이라는 걸 안다. 순환의 여정 속에서 중요한 기회를 매번 누린다. 무엇 하나만을 위한 게 아니고, 어느 하나도 다른 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게 없다. 각각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으나 스스로를 일으키며 서 있다. 아름답게 쌓여가는 대설의 눈처럼 기억을 다시 살피며 씨앗들에게 단단한 빛을 찾아준다.
*대설(大雪) : 24절기 중 스물한 번째로,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의미이며 해가 일찍 지는 시기다.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