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동물의 숲에 살고 있습니다

오지은 — 작가·뮤지션

게임 ‘동물의 숲’에선 지나가는 주민에게 손쉽게 안부를 묻는다. 주머니를 기꺼이 펼쳐 보이며 가지고 있는 것들을 선뜻 건넨다. 빵, 과일, 생선…. 필요한 게 있을 땐 ‘그거’ 가지고 있느냐고 넌지시 묻기도 한다. 지은은 전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도 만나면 가방을 열어 책을 건네는 환대가 있다는 것을, 만나서 반갑다며 복숭아를 쥐여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지은은 긴 시간 발목에 달려 있던 추들을, 어쩐지 전주로 와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한다. 마음이 좋아져서 전주로 온 건지, 전주로 와서 마음이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간결한 보폭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걸음이 한결 굳세고 산뜻하다. 처음 밟는 땅을 걷고 있는 지은은 준비가 되면 이따금 이야기하겠지, “저, 공연합니다. 전주에서요.” 하고. 전라북도 ‘동물의 숲’에서, 간간이 초대장이 도착할 테다.

앞으로 제 모든 북토크, 공연의 첫 회는 될 수 있으면 
전주에서 하려고 해요. 제 공연만이라도 전주 사람들이 먼저 보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요.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공연을 보러
서울로 가잖아요. 그 거점을 전주로 옮겨보면 어떨까 싶은 거죠.

서신동에서 차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지은 씨. 서울에서, 파주에서, 그리고 이번엔 전주에서 만나게 됐어요. 제 중요한 시기마다 《AROUND》와 만나게 되네요.

전주에 저를 떠올려 주어서 기뻐요. 제가 생각하는 전주는 ‘이쪽’인데, 여기서 만나게 되어 정말 좋아요.

 

‘이쪽’이라 함은….

제 구분이 맞는지 확신은 없지만 전주를 신시가지, 구시가지로 나누어 부르고 있어요. 신시가지가 전북도청이 있는 쪽이라면 구시가지는 객사가 있는 쪽이에요. 객사는 완산구 고사동 부근으로, 신시가지가 개발되기 전엔 서울의 명동처럼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해요. 지금은 구시가지로 불리고 있지만요.

 

지은 씨는 전주에서도 중앙에 위치한 서신동에서 지내고 있죠. 어떤 동네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교통의 요충지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동네에 비해 저희 동네는 내세울 게 없어요(웃음). 완전한 주거 지역이어서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보니 교통을 앞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전주천을 끼고 있는 서신동은 “어디를 가든 15분.”이라는 표어가 있는 동네예요. 전주역을 가도, 전북대를 가도, 객사를 가도, 전북도청을 가도 전부 15 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죠. 사실 저는 이런 ‘엣지 없음’을 가장 원했어요.

 

이유가 있어요?

생활 공간이 저한테 엣지 있는 말을 하는 게 버거워서요. 가장 핫한 브랜드, 가장 핫한 맛집, 가장 핫한 디저트 …. 그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 제가 왜 거기에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어요. 저한테 핫하다는 건,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제가 차분하게 머무는 데서 오는 것일 거예요. 서신동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면, 여기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유년기의 원형이 남아 있어요. 복도식 아파트가 있고, 학교가 있어서 술집이 들어올 수 없고, 대학 주변으로 젊은 사람들이 적당히 오가고, 집값이 합리적이고, 평범한 가게에서 수준급의 커피와 빵과 밥을 만날 수 있는 곳이죠. 좀 다른 이야기인데 전주에선 맛있지 않으면 식당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동네에 하나씩 있는 보통 김밥집에서 신동진쌀을 쓰고, 단무지는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거든요. 계절에 따라 다른 채소를 넣어 그 시기에 가장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 이런 동네에서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있어요. 그게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반은 농담이지만, 예전부터 무리에서 저만 예술가인 게 마음이 편했어요(웃음). 물론 제가 모를 뿐 이곳에도 예술가가 우글우글 살고 계실 수도 있지만요.

 

전주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걸로 알아요. 어느 매체에서 “소거법을 거치며 전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죠.

처음 이사를 결심하곤 많은 도시를 후보로 두었어요. 우선 서울과 수도권은 가장 먼저 제외했고, 경상도는 엄마와 이모들이 살기 때문에 제외했죠. 남은 곳 중 가장 마음이 간 데가 강원도여서 어느 겨울에 속초 한달살이를 하게 됐어요. 근데, 지내다 보니 여름엔 외지인이 몰려들고 겨울엔 모두 빠져나간다는 게 버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속초와 비슷하지만 속초보다는 관광객이 적고 현지인이 많은 고성에 가게 됐는데, 고성은 바다의 기운이 확실히 고요하더라고요. 그 바다가 제 음기를 증폭시킬 게 분명해 보였죠. 그런 곳에서 1년 정도 머물면 끝내주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음기에 휩싸였을 때 저 자신이 어떻게 될지 잘 아니까 꺼려지더라고요. 결국 강원도는 제외하게 됐어요. 그러다 ‘전주천’에 관해 듣게 됐죠. 여행자로서는 알 수 없는 생활자만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주천을 보러 갔다가 ‘여기다!’ 싶어서 천변이 보이는 집을 구해 월세살이를 시작했어요. 주변으로 높은 빌딩이나 왁자지껄한 번화가가 없고, 탁 트인 시야로 사람들이 사는 집과 천변이, 또 하늘과 산이 보이는 곳이라는 게 첫눈에 마음에 들었어요.

홍대 쪽에서 살 때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아가, 파주에 살 때는 작가로서의 자아가 도드라졌을 텐데, 지금은 직업인보다는 생활자 오지은으로서의 자아가 조금 더 힘이 있는 상태일 것 같아요.

의외로 반대예요. 오히려 동네에서 받는 무언의 압박이나 긴장이 없어서 ‘다음엔 어떤 작업을 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지내요. 홍대 부근에서 살 때는 현재를 살기에 급급했고, 파주에서는 좋은 의미로 관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10년가량 음악을 해오면서 너무 많은 일을 겪었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끔찍한 말도 많이 들었고, 그 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 원래 있던 우울증이 훨씬 더 심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마음을 파주에서 많이 달랠 수 있었죠. 홍대에선 힘껏 발산하고 파주에선 한없이 가라앉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가족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살아갈 도시를 다시 탐색하게 된 건데요. 사람들은 신변에 변화가 있을 때, 혹은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 좋아하는 나라나 도시에 가서 한달살기를 하잖아요. 저는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꼭 수도권에 있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주로 오게 된 건데, 지금 저는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전주에 살아서 좋아진 건지 좋아진 상태에서 전주에 온 건지, 그건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제 안의 시야가 또렷해져서 ‘내가 뭘 해야 되겠다.’랑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인식하게 됐어요.

 

그게 어떤 의미예요?

예전엔 뭘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아?’ 하는 생각이 컸어요. 누군가에게 들은 나쁜 말들을 쉬지 않고 생각했죠. 누군가는 내가 노래하는 걸 보며 포르노 배우처럼 노래한다고 하겠지, 내 음악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겠지, 작업물이 구리다고 하겠지…. 음악 작업을 할 때면 이런 계열의 끔찍한 생각이 PTSD처럼 떠오르곤 했는데 전주에 오고 나니 하나씩 정리가 되더라고요. 굉장히 깨끗한 책상을 갖게 된 느낌이에요.

 

깨끗한 책상이라면….

실제 제 책상은 엄청 더럽지만(웃음) 제 마음의 책상이 깨끗해진 거죠. 그 덕에 지금 저는 진짜 ‘생활자’처럼 살고 있어요. 일상도 잘 살피고, 작업에 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 동네에 완전히 녹아든 것처럼 지내고 있죠. 한번은 문화센터로 수채화를 배우러 갔는데요. 제가 거기서 막내더라고요. 제 바로 위가 65세(웃음). 요즘은 수영도 다니고 있는데, 잘 안 올라가는 할머니 수영복도 대신 올려드리고 마음 편히 수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전주가 좋고 서울은 나쁘고, 전주 사람들은 착하고 서울 사람은 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건 당연히 아니에요. 뭐랄까…. 도시 분위기가 저랑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꼭 끝의 끝까지 간 동화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그런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게 신기할 때도 있어요. 도시 분위기 덕분에 마음가짐도 많이 바뀌었고요.

 

마음 건강도 좋아졌고요?

스스로 좋다고 말할 정도로 아주 좋아요. 작업과 저 사이 관계가 편해졌거든요. 예전엔 작업을, 특히 음악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생각이 ‘죽고 싶다.’였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는데 전주에서 만난 상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음악을 하면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음악 작업을 생각하면 정신이 저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는 것 같다고요. 안 돼, 그쪽으로 가지 마, 거기 가면 너 죽어, 하고 말렸던 거예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어요. 저는 음악을 하면서 상처받은 걸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해 왔다는 걸요.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소위 ‘인디’라고 말하는 신에서 잘 풀린 편이에요. 아직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때 직접 실물 앨범을 만들고, 공연 때마다 가지고 다니면서 팔고…. 누군가는 저를 ‘이것저것 다 하는 애’라며 비꼬기도 했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활동을 안 해도 계속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절망하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혼자선 버티기 힘드니까 계속 정신과 약을 먹으며 견뎠어요. 약을 먹은 지는 오래됐지만 심리 상담을 받은 건 불과 2-3년 전부터인데요. 전주에 와서는 새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 나갔는데, 스무 번 남짓 만나면서 제 마음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이를테면, 상담소 주차장 아저씨랑 가까워진 것도 변화 중 하나예요. 처음엔 쌀쌀맞다고 느낀 분인데 자주 오가다 보니 나중엔 제가 주차할 자리도 만들어 줄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죠. 아마 예전의 저라면 제 고통이 너무 크니까 그런 배려와 다정함을 볼 여유조차 없었을 거예요. 전주에 오고 나서, 상담을 종결하면서 뭔가… 정화되었어요. 사실 정화라는 말을 쓰는 게 좀 낯간지러워서 ‘퇴마’라고 돌려 얘기하곤 하는데요(웃음). 저는 전주에 살면서 확실하게 정화되었어요. 전주에 온 이후로 저 자신과의 관계가 깔끔해졌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지금 지은 씨 마음에서 가장 달라진 게 뭐라고 생각해요?

저 이런 말 처음 해보는데, 발화하고 나서 제 기분이 어떨지 저도 너무 궁금해요.

 

아아… 뭐죠?

이젠 제가 잘한다는 걸 알아요. 음악도, 글쓰기도요.

 

세상에. 너무 좋아요.

저는 한 번도 제가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터놓고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얘길 들은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옛날엔 ‘저 언니 왜 저래.’ 하고 생각했대요. 음악도 꾸준히 하고 있고, 사람들이 계속 좋아해 주고, 공연 영상 보면 너무 잘하고, 집 사진만 봐도 끝내주고, 강아지랑 고양이마저 귀엽고…. 근데 계속 자괴감을 느끼니까요. 근데요, 다른 사람 눈엔 제가 좋아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저를 욕할 100만 가지 방법을 아는 ‘내면의 악플러’ 씨가 계속 끔찍한 메시지를 보내왔거든요. 네가 더 잘했어야지, 사람들이 7만 7천 원을 내고 공연을 보러 왔는데 당연히 잘해야지, 하고요. 올림픽 다이빙 종목을 보면 가끔 그런 선수 있잖아요. 기술을 하나도 못 하고 툭 떨어져 버리는 선수. 매번 그런 기분이었어요. 망했어요, 떨어지세요, 죽으세요, 마음에서 계속 그런 소리가 들렸어요. 근데 지금은 제가 뭘 잘하고 뭘 못했는지가 명확히 보여요. 그리고 제가 한 일이 누군가에겐 의미가 있다는 걸 명쾌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최상의 결과를 내면 누군가한테 가치가 있다, 오케이. 나는 이걸 얼추 20년 가까이 했다, 오케이. 나는 잘한다, 오케이.

 

내면의 악플러 때문에 좌절하던 순간에도 지은 씨를 잡아준 건 무엇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는 공주’라는 프레임은 환상이라고 봐요. 제 주변 여자들은 그 누구보다 강하거든요. 무거운 악기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돌쇠처럼 일하는 여자 뮤지션들이 그렇고요, 제가 존경하는 여자 동료 작가들, 선배 작가들, 그리고 책방을 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여자 사장님들이 그래요. 훌륭한 직업인들이죠. 허세 하나 없이 담담하게 가치를 좇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저한테는 큰 힘이었어요. 특히 전주에 와서는 그런 강인함으로 공간을 운영해 나가는 여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덕에 어떤 책방을, 카페를, 바를 더 사랑하게 됐고요. 전주에 놀러 온 동료 뮤지션을 데리고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을 때 “공간이 편안한데 커피를 진짜 예리하게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 일처럼 기뻐요. 그럴 때면 자부심을 느끼면서 “너는 곧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 6천 원 주고 커피를 사 마셔라.” 하고 ‘스웩’을 부리게 되죠(웃음).

 

살아간다는 건 이웃과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주변 사람들과는 어때요?

얼마 전에 전주에서 세이수미, 김뜻돌, 불고기디스코가 공연을 한다길래 보러 갔거든요. 저한테는 공연장이 일터이기 때문에 일부러 가는 일은 잘 없는데, 이것도 저한테 생긴 큰 변화 중 하나예요. 근데 그 공연장에 제가 아는 이웃이 다 모여 계시더라고요. 주로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들인데 공연장에서 만나니까 더 반가웠어요. 전주 사람들이 어떤 분위기냐면, 그러니까 게임 ‘동물의 숲’ 주민들 같아요. 가방에 있던 책도 나눠 주시고, 주머니 속 복숭아도 건네주시고(웃음). 정말 ‘동물의 숲’처럼, 제가 복숭아를 받아 왔다니까요!

 

지은 씨 표정에서 행복이 보이는 것 같아요(웃음). 앞서 전주천이 보이는 집에서 월세살이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얼마 전에 그 집을 사셨다고요.

그 집은 원래 집주인이 20여 년 동안 살아온 집인데요. 어느 날 집주인이 집을 팔게 되었다고, 집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큰 고민 없이 “그래요? 그럼 제가 살게요.” 그랬어요. 저는 전주천이 보이는 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 만족스러워요. 서울과 비교하면 집값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는데, 저도 이런 짓은 처음 해봐요(웃음).

 

어떤 점이 특히 좋았어요?

약간 가려진, 슬쩍 천변 뷰 아파트인데도 천이 충분히 보인다는 게 좋고, 그 너머로 산이 보이는 것도 좋아요.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 보이고, 고분도 보이죠. 저희 집에서 보이는 고분은 170년대에 만들어진 곳인데요. AD 170년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보다도 전이잖아요. 게다가 고분 너머로 전주 이씨 무덤이 쫙 펼쳐져 있는데 거기가 정말 양지바른 곳이거든요. 조선 최고의 셀럽 이성계가 태어난 곳이 전주가 맞구나 싶고(웃음). 2천여 년 전부터 ‘여기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동네라는 게 좋았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서울 콤플렉스, 수도 콤플렉스가 없을 수밖에 없던 도시인 거예요.

전주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좀더 들어 보고 싶어요. 오늘은 몇 시에 하루를 시작하셨어요? 

지난 주말엔 ‘오지은서영호’로 공연을 했어요. 워낙 오래 활동을 안 한 팀이라 예전의 저라면 공연은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전주에 오니까 확실히 음악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정규 4집 작업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도 들고…. 공연을 마음먹고 나니 첫 공연은 무조건 전주에서 해야겠다 싶었어요. 공연하고 나서 좀비처럼 하루를 보내고 나니까 오늘이 밝았는데요. 인터뷰 시각을 착각해서 하마터면 늦을 뻔했어요(웃음). 보통은 아침 10시면 일어나는데 오늘은 겨우 눈을 떠선 부랴부랴 하루를 시작했죠.

 

안 그래도 공연하고 휴식도 없이 인터뷰가 괜찮을까 싶었어요.

옛날에는 공연하고 나면 죽을 정도로 피곤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피곤해도 죽을 것 같진 않아요. 데뷔했을 때에 비해 20킬로 정도 살이 붙은 덕인지 체력도 훨씬 좋아졌어요. 이전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그때 저는 홍대 한가운데서 지내면서 뭔가를 발산하는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먹는데도 왜 살이 안 찌냐고 물으면 ‘내 뱃속엔 몸만 한 회충이 있다.’는 식의 위악적인 농담을 던지면서 외적으로든, 작업으로든 뭔가를 발산하고자 했죠. 근데 어느 순간 안 그래도 되지 않나 싶더라고요. 음악은 악기랑 제가 하는 거고, 글은 컴퓨터랑 제가 쓰는 건데 위악을 부려서 뭐 하나 싶어졌어요. 이번 주는 공연을 막 마친 시기니까 쉬엄쉬엄 보내면서 주간지 마감을 해보려고 해요. 지금은 그간의 바쁨으로 집에 패악질을 부려둔 수준이라 청소도 해야 하고요(웃음). 구례에서 작업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구례요?

저희 집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이동하면 구례에 닿는데요, 구례는 뒷산이 지리산인 동네예요. 너무너무 잘생긴 지리산이 그저 뒷산인 곳이죠. 지리산이 보이는 숙소에 머물면 아주 넓은 품에 폭 안기는 느낌이 들어요. 집중이 필요할 때, 좋은 기운을 흡수하고 싶을 때 종종 찾고 있죠. 아무도 없는 캠핑하면 작은 불도 커 보이고, 조그마한 풀벌레 소리도 엄청나게 크게 들리면서 감각이 깨어나잖아요. 저는 그런 느낌을 구례에서 받곤 해요. 구례에서 작업할 때도 생활자처럼 지내는데요. 2천 원만 내면 체육회관 수영장에서, 무려 통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수영장에서, 할머니·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수영할 수가 있어요. 역시나 창 너머로 지리산이 크게 보이고요. 저는 지금 전라도를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중이에요.

 

상상만 해도 아름답네요. 지리산의 품에서 하는 수영이라니….

반려견 ‘흑당이’랑 즉흥적으로 변산 해수욕장에 가서 놀다 오는 것도 좋아해요. 변산반도도 차로 한 시간이면 가는 데다가, 고속도로가 아니라 논밭 뷰이기 때문에 하늘과 밭 색깔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확 좋아지거든요. 저는 지금 제 삶이 제가 동경해 온 미국 여성 작가 에세이에서 나오던 이야기 같아요. 대체로 그들은 뉴욕이 아닌 변두리에 살며 어느 호숫가에서 카약을 타고 개랑 한 시간씩 숲을 걷곤 하는데, 그 멋진 걸 제가 사는 데서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누군가는 마포 래미안에서, 반포 자이에서 사는 게 최고 목표겠지만 저는 전주 구시가지의 두 글자 아파트에 사는 게 좋아요. 현대, 장미 같은 이름을 가진 곳들이요. 그런 곳에 살면서 수영장에 다니고, 이렇게 훌쩍 구례나 변산을 다니는 거. 게다가 서울을 오가기에도 편해요. 전주역에서 용산역까지 KTX로 1시간 40분이거든요. 파주에서 강남 가는 것보다 전주에서 용산 가는 게 쉬워요. 제 세계관에선 지금의 제가 끝판왕이에요(웃음).

 

지은 씨는 일적으로도 전주를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선보인 오지은서영호 공연도 전주에서 시작했고, 앞으로 공연은 되도록 전주에서 먼저 하고 싶다고 하셨죠. 

서울에는, 홍대에는 수 개의 라이브 클럽이 있고 매일 공연이 열리지만 전주는 달라요. 지금은 씨앗을 심어야 하는 시기라고 봐요. 싹이 틀지 확신할 순 없지만 제가 할 수 있을 때 뭐라도 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요. 누군가는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근데, 저한테는 그냥 의식이에요. 앞으로 제 모든 북토크, 공연의 첫 회는 될 수 있으면 전주에서 하려고 해요. 제 공연만이라도 전주 사람들이 먼저 보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더 빨리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전주로 오시겠죠.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공연을 보러 서울로 갔잖아요. 그 거점을 전주로 옮겨보면 어떨까 싶은 거죠.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확실히 문화·예술 인프라는 서울에 훨씬 더 집중되어 있죠. 

서울은 누군가가 숟가락을 들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으라 하면서 떠먹여 줘서 이미 배가 불러 있는 곳이라면, 전주는 누군가가 숟가락을 들고 있으면 “대박! 나 먹어볼래!” 하는 분위기예요. 워낙 자원이 없고, 수요도, 인프라도 적으니까요. 그러니까 여기 남아 문화·예술계를 이끌어가는 이들에겐 어떤 결심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그들 생각을 100퍼센트 알 순 없지만, 서울에서 일할 수도 있고, 전주에서 문화·예술 일이 아닌 걸로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팍팍한 와중에도 여기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잖아요. 전주는 서울에 비하면 문화·예술 향유자의 비중도 적어서 이쪽 일로는 떼돈을 벌 순 없거든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으니 노력도 엄청나게 해야 하고요. 그럼에도 여기를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건, 제 오해일지라도 대단한 결심이었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전주의 가게 사장님들이 저를 환대해 주실 때 자주 생각해요. ‘나 지금 전주에서 아주 사치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요.

좋아하는 책방의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은 씨가 좋아하는 책방 세 군데를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기로 했죠. 휴무일인데도 지은 씨 인터뷰라고 하니 흔쾌히 문을 열어 주시고, 호방하게 비밀번호를 건네주신 책방지기들에게 한결같은 다정함을 느꼈어요. 가장 먼저 방문한 ‘물결서사’ 소개부터 들어볼까요? 

아, 정말 잘 말하고 싶네요. 물결서사는 책이 아주 적은 책방이에요. 서가에 서면 꽂혀 있는 모든 책을 볼 수 있는데요. 책이 적고 한눈에 보이는 덕에 큐레이션이 아주 잘된 전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분위기는 또 유하고 부드럽죠. 이 서점은 임주아 시인이라는, 굉장히 서글서글한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공간이에요. 물결서사가 있는 동네는 원래 ‘선미촌’이라고 하는 성매매 업소가 모여 군락을 이룬 곳이었어요. 전북 곳곳에서 성매매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드나들던 성매매 집결지였는데, 선미촌의 시대가 끝나자 유흥업소에 다른 역할을 입히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이 공간은 물결서사라는 이름으로 책방이 된 거고요. 물결서사는 작고 오래된 2층 건물인데요. 1층은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한쪽엔 작은 서재가, 한쪽엔 빙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죠. 테이블이 있는 쪽에선 책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해요. 그리고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시 공간이 나오는데, 같이 올라가 보실래요.

물결서사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9-6
O. 화-토요일 12:00-19:00, 일·월요일 휴무

 

계단이 정말 좁고 높아요. 왠지 해리 포터에 나올 것 같아요. 다 올라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웃음).

2층엔 북토크를 했거나, 혹은 할 예정인 작가의 공간이 꾸려져 있어요. 누구나 오갈 수 있는데,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공간으로 느낄 수 있는 구성이죠. 마치 아늑한 다락 같지 않나요? 날 선 전시 공간이 아니라 푸근하고 따듯하게 공간을 채우는 게 물결서사의 특징이라고 봐요. 지금은 김지승 작가 전시가 진행 중인데요, 곧 함께 북토크가 예정된 작가여서 더욱 반갑네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방을 그대로 옮겨둔 콘셉트라 들었는데… 지승 씨는 진짜 아름답게도 해놓고 작업하네요. 제 책상은 엉망진창인데(웃음). 지금은 이렇게 아늑한 공간이지만 한때는 성매매하는 데 쓰였거나, 성매매하는 여성이 쉬는 공간이었겠죠. 저는 이런 공간을 문화·예술적으로 활용하는 흐름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사장님들은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아요. 의도를 알리고 내세우기보단 ‘앞으로 이곳에서 책방을 어떻게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하죠.. 이런 특징은 제가 아무리 말로 해도 다 전해지지 않을 거예요. 직접 와서 보고 느껴야만 와닿을 가치거든요. 

 

수요가 많지 않음에도 지속되는 이유,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당사자가 아니라 섣불리 얘기할 순 없지만 제가 보기엔 허세가 없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1-2년 하고 마는 일이라면 허세가 끼어들 수 있거든요. 근데 10년 이상 끌어가다 보면 그 영역에서 훌륭한 생활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의 평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본질을 집중할까를 더 고민하는 거죠.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야 유지가 되는 곳에서는 허세가 큰 도움이 안 돼요. 저는 그런 데서 오는 강인함을 아주 좋아해요. 유행을 좇는 게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세상은 힙한 문화와 평범한 문화로 양분되는 게 아니고 중간에 수많은 것이 있어야 건강하게 굴러가는 거잖아요. 저마다의 가치가 있겠죠. 다만,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런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공간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좋아하게 되면서 왜 서울 인력에만 매달려야 하나, 지방에도 이토록 좋은 자원이 있는데, 싶을 때가 많아요.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지역 기반 행사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얼마 전에 제1회 ‘움직임성평등영화제’에 초청받게 됐는데요, 세종에서 처음 선보이는 영화제인데 GV를 맡아줄 수 있겠느냔 연락을 받았어요. ‘칸영화제’에서 라 시네프 부문 1등상을 수상해서 화제인 〈첫여름〉(2025) GV로, 허가영 감독님이랑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될 예정이에요. 제가 세종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초청받은 건 전주에 살고 있는 덕이라고 생각해요. ‘움직임성평등영화제’가 서울에서 열렸다면 가장 먼저 이다혜 기자나 셀럽 맷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세종시는 충남이니까 ‘가까운 전북에 오지은이 있다!’ 하고 저를 찾아준 거죠. 저는 이런 흐름이 무척 긍정적이라고 봐요. 문화·예술 인력이 서울에만 집중돼 있는 환경이 이제는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요.

 

정신없이 대화하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부랴부랴 두 번째 책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책방토닥토닥’은 휴무일인데도 지은 씨가 온다니까 흔쾌히 문을 열어 주셨어요. 책방지기들의 사랑을 한데 받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책방토닥토닥은 ‘토닥’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앞서 전주 가게들엔 허세가 없다고, 본질에 집중하는 강인함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토닥은 그런 강인함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공간이에요. 토닥은 1호기, 2호기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데, 처음 이곳을 알게 됐을 땐 책방 이름만 보고 감성적인 공간을 떠올렸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사회주의 좌파 서점인 거예요(웃음). 저기 보세요, 공간 곳곳에 적힌 표어가 딱 봐도 사회주의 서체 아닌가요? 끓어오르는, 그러면서도 담담한 글자들. 이 공간엔 다양한 책을 큐레이션 해두었지만 사회과학 서적이 특히 살벌하게 배치돼 있어요. 하루는 책방에 갔더니 사장님 두 분이 머리를 빡빡 민 채 인사하시더라고요. 어찌 된 일이냐 물으니 새만금 신공항 반대 시위에 다녀왔는데 누군가 머리를 밀어야 한다고 해서 “밀겠습니다!” 하셨대요. 그런 분들이 운영해 나가는 공간인데, 또 책에는 엄청나게 진심이죠. 어느 정도냐면 토닥에선 간단한 마실 거리도 팔고 있거든요. 근데 얼마 전엔 감명 깊게 읽은 책 주인공이 집중할 때 마시는 차를 구했다, 지금 내릴 거다, 하시는 거예요. 찬쉐의 《격정세계》에 나오는 차인데요. 어떻게 안 마셔요. 제발 팔아달라고, 4천 원만 받아달라고 사정했죠(웃음). 토닥에 가면, 이분들 이야기로 에세이 두세 편은 쓸 수 있겠다 생각할 때가 많아요. 엄청 강인한 분들이지만 귀여운 면도 있어서 갈 때마다 에너지를 얻고 있죠. 전주시 자랑 중 하나인 ‘책쿵20’에 어쩌다 오류가 나면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게 왜 안 되지? 이게 왜 안 돼!” 할 때 특히 귀엽다고 느껴요(웃음). 

책방토닥토닥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53 남부시장청년몰 2층
O. 화-일요일 12:00-20:00, 월요일 휴무

아, 드디어 책쿵20 이야기가 나왔네요. 전주시의 가장 멋진 시스템! 

제가 참 사랑하는 제도예요. 공식적인 정보로 소개하자면 “읽을수록 쌓이고, 읽을수록 아끼는 전주책사랑 포인트”라고 이야기하는 제도인데요. 독서 문화를 확산하고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과의 가격 경쟁에 밀려 어려움을 겪는 지역 서점의 경영 안정을 돕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에요. 열두 개 전주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가 한 권당 50포인트씩 적립되니까, 책도 읽고 포인트도 받는 쏠쏠한 시스템이죠.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연계된 동네 서점에서 책을 샀을 때 무려 20퍼센트나 할인된다는 점이에요. 온누리 상품권을 사용하면 10퍼센트가 추가로 할인돼서 책 한 권을 사더라도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요. 


‘왜 나는 전주 시민 아니지?’ 생각할 정도로 부러운 제도예요. 아, 이번에 알게 됐는데 전주가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이 가장 많은 도시더라고요. 

맞아요. 전주는 책의 도시예요. 근데 아무도 그렇다고 얘기하질 않아요. 그냥 우리끼리 좋은 것들을 향유하면서 만족해하고 있죠(웃음). 도서관이 가장 많은 것과 더불어 서점도 곳곳에 정말 많아요. 저는 문화에 관심 있는 30- 40대 여성이 얼마나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요가원과 독립 서점 개수라고 생각해요. 이 지표가 제가 살 곳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는데요. 독립 서점과 도서관이 이렇게나 많은데, 책쿵20이랑 여러 할인 제도를 결합하여 책을 20-40%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다니! 개인이나 사립 단체의 활동이 아니라, 시에서 만든 제도라는 게 얼마나 좋아요. 합법적인 방법으로 저렴하게 책을 살 수 있는 게 전주 시민의 특권인데 동네방네 소문도 안 내는 도시. 남들은 알든가 말든가, 그게 전주예요(웃음). 음식도 그래요. 너무 좋은 재료로 진짜 맛있는 음식을 하는 데가 보통인데 좀처럼 자랑하는 법이 없죠. 오늘 점심에 뭐 드셨어요? 


‘베테랑칼국수’요. 저 그런 칼국수 처음 먹어봐요. 깜짝 놀랐어요. 

베테랑! 국물이 눅진하니 맛있죠? 근데 전주 사람들은요, 베테랑이 맛있네, 뭐가 유명하네 얘기하고 다니지를 않아요. 이미 ‘현대옥’은 전주콩나물국밥으로 너무 유명한 집이잖아요.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 진출했는데도 전주 사람들은 그걸 드러내서 뿌듯해하질 않죠. 저는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보내서 부산의 리듬도 잘 알고 있는데요. 부산 사람들은 “야, 우리 이거 끝내준다, 마. 딴 데는 없다.” 하는 분위기라면 전주는 “현대옥? 늦게까지 하니까 거기 가는 거지~.” 하는 식이에요. 근데 먹어보면 끝장나게 맛있는 거죠(웃음). 또 하나 이 지역의 특징이 있다면 굉장히 잘 참고 기다려 준다는 거예요. 저는 운전면허를 전주에서 땄는데, 초보 운전이라 어설픈 게 많은데도 경적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을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대구에 갔더니… 운전하는 20여 분 동안 ‘빵’ 소리를 다섯 번은 듣게 되더라고요(웃음). 


운전하시면서 ‘마이카노래방’ 시리즈를 SNS에 업로드하고 있잖아요. 그 영상에서도 경적이나 차량 소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전주가 그렇다니까요(웃음). 마이카노래방 시리즈를 시작한 것도 제겐 참 큰 변화예요. 저는 음악을 진짜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 어떡하지, 저 사람이 저렇게 잘하는데 내가 왜 음악을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제가 굳이 음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저 사람 음악 들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작업해 나가는 걸 욕심이라 여긴 거죠. ‘비틀스 앨범과 내 앨범 금액이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때도 많았는데요. 그런 생각으로 모든 음악 활동을 잔뜩 긴장한 채, 날이 선 채로 해왔는데, 차 안에서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어서 공개한다는 건 저를 옭아매던 추에서 벗어났다는 방증이라고 봐요. 게다가 마이카노래방이 계속될 수 있도록 경적 한 번 울리지 않는 도시라니!

벌써 대화 나눈 지 여섯 시간에 접어들고 있어요. 책방 영업이 끝났는데도 문을 열어주신 마지막 장소는 ‘잘익은언어들’인데요. 건물이 번듯하고 깔끔해서 새로운 세계에 당도한 기분이에요. 

단독 건물에 공간도 널찍하고, 서가가 깔끔하고 잘 정돈돼 있는 곳이죠.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여긴 정말 ‘쌔끈’해요. 층고도 높고 굉장히 번듯하죠. 이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무례하게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분이 하는 서점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사장님이 뒤뜰에서 고추를 돌보고 계신 걸 봤어요. 그때 거리감이 확 좁혀지더라고요. 물결서사나 토닥이 서울로 따지자면 홍대 인디 문화의 연장선 같은 곳이라면, 잘익은언어들은 오롯한 전주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어요. 물결서사나 토닥에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오갈 확률이 높지만, 잘익은언어들은 저를 모르는 전주 사람들이 오가는 세계예요. 저는 새로운 곳에서 대단히 멋진 것들을 만나게 되죠. 

잘익은언어들
A. 전북 전주시 덕진구 거북바우로 68-1, 1층
O. 매일 13:00-18:00

탁 트인 느낌이 들어요. 2층엔 카페도 있나 봐요. 

거기도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웃음). ‘해류’라는 카페인데 커피 맛도 분위기도 좋아서 자주 들러요. 제가 붙인 이름인데, ‘작가를 위한 격리석’에 자주 앉곤 하죠. 다른 자리와는 동떨어진 1인석으로 글이 잘 안 써질 때 찾고는 해요. 바로 앞 벽에 나 있는 창을 통해 맞은편에서 나부끼는 빨래들도 볼 수 있는 자리인데, 할머니가 빨래를 걷어 가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어요.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여행하면서 훔쳐보곤 하던 장면에 생활자로 들어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돼요. 만일 지금 제 모습을 20대 오지은이 본다면 ‘깨달은 척, 좋은 척하는 나이 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때의 저는 서울을 사랑하고 싶었고, 서울이랑 잘 지내고 싶었거든요. 서울도 저를 사랑하는 것 같았고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요, 제 본질은 그 바깥 세계에 있던 거예요.

 

그 ‘바깥 세계’에서 예술가로서 어떤 일들을 이루고 싶어요?

전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계열 종사자가 “오지은은 너무 많이 불렀어.”라고 생각하는 날이 왔으면 싶어요. 여기서 너무 뻔한 사람이 되기까지 하는 거.

 

‘전주국제영화제’가 이미 2년 연속 지은 씨를 찾고 있잖아요. 삶의 터전을 옮기자마자 전주 주요 행사에 함께하게 됐는데 목표를 이루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하게 된 계기도 재미있어요(웃음). SNS에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가 내가 전주에 산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페미니즘 영화와 음악 영화에 특화된 사람이란 걸 알아주면 좋겠다.” 같은 이야기를 올렸거든요. 근데 “GV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는 메시지가 왔어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가 맡은 GV는 꽤 수위가 높은 페미니즘 영화였는데요. 저는 그 ‘미친 여자 주인공’의 서사가 얼마나 아름답게 구성된 예술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영화의 형식, 구조를 이야기하는 제너럴한 GV는 누군가가 훌륭하게 해주실 테니까 저는 치우친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서, 전주와 호흡을 맞춰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전주에서 문화·예술이 설 곳이 생길 수 있도록 지은 씨만의 행보를 계속 이어갈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일들을 꿈꾸고 있어요?

저는 언젠가 쟁쟁한 여성 뮤지션들을 모아 페스티벌을 열고 싶은데요. 서울문화재단보다는 전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기가 수월할 테고, MBC보다 전주 MBC가 도와줄 확률이 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전주에 살게 되면서 문화·예술의 거점을 지방으로 넓힐 방법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지방에서 열리는 공연도 대부분 서울에서 먼저 시작한 공연 포맷을 그대로 옮길 뿐이잖아요. 저는 전주에서 공연 포맷을 만들어서 서울로, 또 다른 지방으로 옮기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무조건 지방으로 가야 한다, 전주가 절대 선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서울과 격차가 크다는 걸 알리고, 보완해 나가고 싶어요.

 

시도로 끝나지 않고 순환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요?

공간, 예술가, 향유자가 반드시 있어야 해요. 전주에 ‘더 뮤지션’이라는 공연장이 있는데요. 브로콜리너마저, 페퍼톤스 같은 친구들이 전주 공연을 한 곳인데, 2층이거든요. 서울 라이브 클럽은 대부분 지하니까 지상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뮤지션에게 엄청난 일이에요. 이번에 오지은서영호로 공연한 ‘로컬공판장 모이장’도 대단해요. 전주남부시장과 나란히 있는 곳이어서 공연장 옆은 방앗간이고, 그 옆에선 생선을 판단 말이에요. 근데 모이장에는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어요. 저는 전주의 그런 공간들을 충분히 활용해 보고 싶어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동료들도 더 많이 초대하고 싶고요. 지자체 내에도 문화·예술 분야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텐데, 나서서 뭔가 해보고자 하는 예술가가 지역 내에 있다면 서로에게 좋겠죠. 그게 가능해진다면, 아카이빙하고 알리는 게 중요해질 거예요. 잘하고 싶어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곳에서 희로애락을 겪어나갈 텐데, 마지막으로 이런 상상을 해볼게요. 30년 뒤 전주시가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데요, 문화·예술 파트에서 지은 씨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대요. 어떤 기록을 남길 것 같아요? 

“전주를 기반으로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뮤지션 오지은. 40대 초반에 전주에 내려왔다. 커리어 중 가장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앨범 [○○○○]과 책 《○○○○○○》을 전주에서 썼다. 지금은 ○○동에서 살아가고 있다.” 

 

30년 뒤에도 전주에서 살아가는 오지은을 꿈꾸고 있군요?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만일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땐 허니문을 끝내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상태겠죠(웃음).

나름의 질서로 꾸려진 서가를 거닐다 맘에 드는 책들을 골라 카운터로 가지고 갔더니 지은 씨가 한달음에 달려와 ‘책쿵20’으로 결제한다. 기만 원어치의 책이 부담 없는 금액으로 확 줄어든다. 와, 즐거워. 마지막 책방에서의 대화를 마치고 나왔을 때, 골똘한 얼굴로 “무얼 먹여 보낼지 고민이에요.” 하던 그는 식당 한 곳을 권하면서 전화로 영업하는지 확인하라고 당부한다. 전주는 영업시간과 관계없이 일찍 문을 닫는 가게가 태반이라면서. 지은 씨, 정말 전주인이구나…. 영업은 끝났지만 들어와도 좋다던 사장님의 환대, 곧이어 차려진 고등어와 게장 백반. 동네 밥집 투어 1박만 하고 갈까, 탐욕이 밀려오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서울행 KTX에 올랐다. 기꺼이 전주로 공연을 보러 오겠지, KTX를 조금 더 자주 타게 되겠지, 어렴풋이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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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