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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삶의 보물상자
미국 유학 생활을 준비하며 짐을 싸던 날, 엄마는 내게 앞으로 살게 될 기숙사 방 커튼이 어떤 재질이냐고 물었다. 웬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싶어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수록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집’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커튼을 챙겨가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들과 사진 몇 장을 챙겼다. 낯선 기숙사에서 뜬눈으로 보낸 첫날 밤, 어렴풋이 깨달았다. 집은 하드웨어인 ‘House’ 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Home’ 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재택근무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문득 나의 ‘집’을 너무 방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타인이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갔는지 아는 것이 너무 쉽고, 취미와 취향이 계급이 되는 시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좋아 보이는 것과 멋지다는 것을 찾아다니며 바쁘게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사는 ‘집’을 가꾸는 법을 잊어버리곤 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밥을 해 먹고 휴식을 취하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 나의 삶이 지어지는 집.
오피스에서 근무했을 때는 쉬는 시간이 생기면 일단 바깥으로 나가거나, 소셜 미디어를 탐닉했다. 아름답고 섬세한 옷, 좋은 자동차의 곡선들, 그리고 세련된 가구로 가득 찬 공간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사각형 이미지 속 타인의 삶을 탐닉하는 일은 늘 짜릿했다. 그 흥분도 잠시, 앱을 닫고 현실로 돌아오면 허무해질 때가 있었다. 환상 속의 타인과 현실 속의 나 사이의 괴리는 종종 사람을 힘 빠지게 하니까.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진 요즘에는 다른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볕이 노란색으로 바뀌는 오후 3시가 되면 집 안 곳곳을 돌본다. 이번 주에는 읽지 않는 책들을 정리했고, 이제껏 앉아서 휴식할 시간이 없었던 라운지 체어에 발을 쭉 뻗고 앉아 햇빛을 쐬며 음악을 들었다. 또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구매한 그림과 모빌들의 먼지를 닦고, 프레임을 바꿔 재배치해보았다. 어느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고, 초점이 현재 나의 삶으로 향했다.
살고 있는 공간을 정성스럽게 돌보다 보면 삶에 대한 애착이 자연스럽게 차오른다. 내가 짓고 싶은 삶의 규칙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정량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들을 꾸준히 할 것. 무조건 새롭고 세련된 것보다는 기억과 이야기가 쌓여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할 것. 공식화된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대로 외면과 내면을 가꿀 것. 나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자꾸 스스로를 리마인드하며 완벽하진 않지만 내가 찾은 삶의 보석들로 집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집은 삶의 보물상자’ 라고 했듯이.
나는 금전적인 윤택함을 사랑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들이 궁금하다. 남들이 ‘좋아요’ 할만한 경험과 높은 성과를 이루고 싶다. 그렇지만 매일의 성실한 생활,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큰 보물이라는 것 – 그리고 그 보물들이 쌓이는 내 집을 가꾸지 않는다면 늘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 진부하지만 자주 잊는 그 사실을, 이제는 안다.
Youtube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고백이지만 노는 것만큼이나 일을 좋아합니다. 그만큼 생활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해, 오후 네 시가 되면 남은 하루를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저의 영수증이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싶은 직장인에게 작은 가이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 김보경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