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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재료의 산책
Bitter gourd
여주
여주는 모양이 괴상한 채소이다. 초록색 도깨비방망이를 연상하게 하는 모양 탓에 처음에는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한번 여주의 맛에 빠지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과일과 채소는 탱글탱글하고 매끄럽게 생긴 아이들을 골라야 한다는 요령은 적어도 여주에는 적용되기 힘들다. 모양만으로는 선택하기가 알쏭달쏭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차라리 가장 괴팍하게 생긴 아이를 고를까 싶기도 하다.
그 독특한 생김새에 걸맞게 여주는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갖는다. 할라피뇨나 겨자와는 또 다른 느낌의 맛이다. 일단 여주의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마치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고추처럼 불타게 맵지는 않지만 여주의 쌉쌀한 맛은 어느 순간 문득 생각난다. 마치 심장을 꼬집듯 아팠던 첫사랑처럼 말이다.
여주는 채소 중 유일하게 열에 강한 비타민C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주의 쓴맛이 담긴 성분은 우리 몸속 혈당치를 떨어뜨려 주며,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 손질도 요리법도 생김새만큼은 어렵지 않다. 모양은 낯설지만 여주는 분명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RECIPE 01
짭쪼름한 햄과 쌉싸래한
여주를 함께 볶다
초등학교시절 친구들과 야밤에 산속으로 별똥별을 보러 갔다. 별똥별도, 친구들끼리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널찍한 바위 위에 돗자리를 깔고 나란히 누운 채 우리는 잠이 들지않도록 연신 과자를 먹었다. 하지만 별똥별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꺼운 옷을 챙겨가지 않았던 탓에 덜덜 떨리는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부딪혀 소리를 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하나둘 시작되던 별똥별 소나기가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속도로 검은 밤하늘에 노란 줄을 그어나갔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마주해서일까.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그 광경을 지켜만 봤다. 어쩌면 몸서리쳐질 정도로 추운 날씨가 별똥별의 낭만을 한층 북돋아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재 료
여주 ½개, 삼겹살 100g, 스팸 50g, 두부 150g, 달걀 1개, 간장 1ts, 식용유 1Ts, 소금, 후추, 가쓰오부시 적당량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여주를 반으로 갈라 2~3mm의 두께로 썰어 손질한다. 삼겹살은 1.5~2cm, 스팸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두부는 키친타월에 감싸 물기를 제거한 뒤 3~3.5cm 정도로 큼직하게 썬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삼겹살과 스팸을 넣어 볶는다. 삼겹살이 어느 정도 익으면 두부를 넣고 표면을 골고루 익히듯 굽는다. 여주를 넣고 볶아 간장과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춘다. 달걀을 잘 풀어 전체에 두르고 스크램블 에그를 하듯 볶다가 바로 불을 끈다. 이때 달걀은 반숙인 상태가 가장 맛있다. 그릇에 담고 가쓰오부시를 조금 뿌려 마무리한다.
TIP
여주 손질법
여주는 특유의 쌉쌀한 맛을 완화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쌉쌀함을 즐길 수 있다면 분명 맛있는 채소이지만 너무 강하면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1. 먼저 여주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속의 하얀 씨 부분을 긁어낸다. 참외를 손질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하얀 부분이 쓴맛의 원인은 아니므로 꼭 남김없이 긁어낼 필요는 없다.
2. 속을 발라낸 여주를 얇게 썬다. 여주는 얇게 썰면 썰수록 쓴맛을 빼내기 쉬워진다. 하지만 너무 얇으면 식감이 없어지므로 2~3mm가 가장 적당하다.
3. 썰어낸 여주를 볼에 담고 여주 1개당 소금 1ts을 기준으로 뿌려 10분가량 그대로 둔다. 소금 1/2ts과 설탕 2ts을 함께 뿌려도 좋다.
4. 물에 잘 헹구고 물기를 제거한 뒤 바로 조리해도 괜찮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먹고 싶다면 그 상태로 끓는 물에 10초간 데친 다음 사용해도 좋다.
RECIPE 02
아삭한 여주를 얇게 썰어
참치와 버무리다
참 못생긴 남자와 연애를 했다. 그는 언제나 눌린 파마머리에 키도 작았으며 피부도 거뭇했다. 나이 서른을 넘기도록 가진 것이 변변치 않았고, 사람 사귀는 것도 잘 못해 언제나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으며 단어의 선택에 신중했다. 답답하도록 느렸지만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첫인상과 달리 알면 알수록 속은 하얗고 부드러웠다. 그와의 연애는 대체로 씁쓸했고 아주 가끔 달콤했다. 관계의 마침표를 찍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씁쓸함이 주었던 주름들이 떠오른다. 마음에 새겨지는 건 비단 달콤함만은 아닌 듯하다. 때로는 그 쌉쌀한 맛이 강렬하게 그립다.
재 료
여주 ½개, 참치캔 100g, 양파 ¼개, 마카로니 100g, 마요네즈 2Ts, 홀그레인 머스터드 1ts, 꿀 1ts, 소금, 후추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여주는 따로 기름에 조리하지 않으므로 최대한 얇게 1~2mm의 두께로 썰어 손질한다. 양파 역시 얇게 채썰고 캔 참치의 기름을 빼낸다. 마카로니는 삶아서 준비한다. 볼에 모든 재료를 넣고 잘 버무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다.
RECIPE 03
고기를 볶아 반으로 가른
여주 속에 채워 굽다
밤길을 혼자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밤길 여행은 혼자여서 좋고, 날이 밝지 않아서 더 좋다고 했다. 걷다보면 가끔은 어둠 속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치기도 한다며 웃었다. 그는 잠깐의 외출을 산책이 아닌 여행이라 표현했다. 그의 표정은 밤길처럼 어둡지도 그렇다고 적적해 보이지도 않았고, 이야기하는 내내 어딘가로 떠나있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혼자만의 시간을 블라인드 사이로 엿보는 기분이 들어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무더운 여름밤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밤이 오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걷기 좋은 가을밤이 오면 내게도 새로운 취미가 생길 것 같다.
재 료
여주 1개, 다진 고기 100g, 방울토마토 5개, 양파 ¼개, 모차렐라 치즈(체다 치즈나 피자 치즈로 대체 가능) 20g, 식용유 1Ts, 밀가루 약간, 소금, 후추
* Ts(테이블스푼), ts(티스푼)
만드는 법
여주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 손질한다. 방울토마토는 ¼등분, 양파는 조그맣게 다진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고기를 볶는다. 기호에 따라 고기를 칠리스파이스나 큐민, 카레가루 등으로 양념한다.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춘다. 양념한 고기와 방울토마토, 다진 양파와 모차렐라 치즈를 볼에 넣고 섞는다. 손질한 여주 표면에 밀가루를 흩뿌린 뒤 속을 채운다. 오븐을 200~220도로 예열하여 7~8분가량 굽는다.
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