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산책

BASIL 바질

재료의 산책
BASIL
바질

어쩐 일인지 지난 겨우내 그렇게나 좋아하는 바질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못했다. 찾아먹지 않으면 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청량리 시장에서 바질 1킬로그램을 박스째 사면 싸게 주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그 방대한 양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지만 못 이기는 척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가내 바질 페스토 공장이나 가동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돌아와 박스를 여는 순간 “미쳤어!”라는 세 글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의 결혼식 부케는 작약도 아마릴리스도 아닌 바질이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바질의 향기에는 카페인이나 니코틴 성분이 함유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바질 박스 속에 코를 들이밀고 코가 저려올 정도로 킁킁댔다. 머릿속 깊은 구석까지 젖어들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향이다.

RECIPE 01

바질을 잘게 다져
버터 속에 굳히다

나에겐 네 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언니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와 달리 안정적인 삶을 살며 잔잔한 호수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런 언니에게 며칠 전 한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회사원에 동갑, 유쾌한 성격, 적당한 야망, 계획적인 재테크 등 둘은 꽤 잘 어울리는 카테고리의 소유자였다. 마치 요리를 할 때와 같은 기분으로 둘의 하모니를 상상해본다. 허브의 향긋함과 기름진 고기, 상큼한 오렌지 잼에는 담백한 돼지 구이, 진하고 쌉싸름한 커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애플파이. 세상만사가 나의 상상대로 흘러간다면 참으로 재미가 없겠지만 언니가 혹시 두 번째 데이트를 가게 되면 바질 버터를 선물해보라고 해야겠다.

재 료 

버터 500g, 바질 50g, 레몬 ½개, 후추, 종이 호일

만드는 법 

상온에 꺼내어 부드러워진 버터에 바질을 잘게 다져 넣는다. 레몬즙을 내어 넣고 후추를 적당량 갈아 넣어 함께 잘 섞는다. 종이 호일을 길게 뜯어 바질 버터를 올리고 김밥을 말듯 둥글게 정리한다. 사탕 모양으로 양 끝을 말아준다. 이때 굳히는 모양은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냉장고에 넣어 굳힌 다음 조금씩 썰어 요리에 사용한다. 스테이크나 찐 감자 위에 올려 먹거나, 파스타를 요리할 때 넣으면 은은한 바질 향을 즐길 수 있다. 구운 빵 위에 발라 먹는 것 또한 빠질 수 없는 선택이다.

RECIPE 02

바질을 넣어 반죽한 파스타를
바질 페스토에 버무리다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얼음 잔에 맺힌 물방울이 보고 싶어서다. 낮 동안 한창 찌는 더위를 넘어 어둑함과 시원한 밤공기가 젖어드는 시간을 기다린다. 탄산이 가득한 진저에일이나 오래 절여 묵은 맛이 나는 레모네이드, 짓이긴 바질 잎이 얼음과 엉켜있는 바질 모히토를 시키고 멍하니 앉아 잔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아서인지 가끔 삶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을 때 ‘널 오롯이 사랑하기에도 남은 수십 년의 내 삶은 너무 짧아!’라고 했던 것이 아득한 먼 나라의 이야기 같다. 이 모든 허상들은 날이 덥고 물방울이 예쁜 탓일 것이다. 여름은 어쩔 수가 없다.

재 료 

01 바질 페스토 재료: 바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견과류(호두, 잣), 마늘, 소금, 후추, 기호에 따라 파르메산 치즈 

02 바질 뇨끼 재료: 감자 500g, 중력분 1컵, 달걀 1개, 바질 페스토

03 파스타 재료: 바질 뇨끼, 올리브오일, 마늘 2~3쪽, 올리브, 방울토마토

만드는 법 

01 바질 페스토 만들기: 믹서에 위의 재료들을 모두 넣고 곱게 간다. 기호에 따라 소금이나 치즈, 후추를 넣지 않고 요리할 때 추가로 넣어도 좋다. 빵이나 구운 채소에 올려 먹을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모두 넣어 만들어둔다. 

02 바질 뇨끼 만들기: 감자를 푹 삶아 껍질을 깐다. 볼에 곱게 으깬 감자 위에 중력분, 달걀, 바질 페스토 약간을 넣고 반죽한다. 중력분을 추가해가며 수제비와 비슷한 점도로 만든다. 완성된 반죽은 손가락 두 개 정도의 굵기로 둥글게 밀어 4~5센티미터로 자른다. 포크로 모양을 낸다.

03 파스타 만들기: 먼저 냄비에 만들어둔 바질 뇨끼를 삶는다. 속까지 익으면 망에 건져둔다.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슬라이스한 마늘을 넣어 약한 불에서 향을 낸다. 베이컨을 넣고 싶다면 마늘과 함께 볶는다. 망에 건져둔 바질 뇨끼를 팬에 함께 넣어 노릇하게 굽는다. 기호에 따라 양송이나 느타리버섯을 추가하여도 좋고 방울토마토나 올리브 등 재료를 더 넣는다. 뇨끼와 나머지 재료가 적당히 익으면 불을 끄고 만들어둔 바질 페스토를 스푼으로 떠 넣어 버무린다. 그릇에 담아 후추와 파르메산 치즈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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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요나 일러스트 최인애